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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생활 1 [죽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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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박 [ad1004] 쪽지 캡슐

2002-09-07 ㅣ No.3393

 

 

 

“죽염이나 구운 소금은 건강에 좋다는데…” “근거는?” “아니면 말고…”

 

죽염과 구운 소금의 다이옥신 검출 파동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언론매체를 통해 자세히 보도됐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식약청은 8월 초 국내 시판 중인 죽염 및 구운 소금 4개 제품들을 표본 추출해 다이옥신 함량을 조사한 결과 다이옥신 검출량이 소금 1g당 최고 43.54pg(피코그램. 1pg은 1조분의 1g)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평균 검출량도 11.09pg이나 됐다.

 

이 같은 평균 검출량은 식약청이 그동안 국내에서 유통 중인 다소비 식품들을 대상으로 다이옥신 잔류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지금까지 최고 수준으로 조사된 어류(0.007∼1.452)의 평균잔류 수준보다 7.6배∼1571배 이상 높은 것이다.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죽염 생산업체에 비난이 빗발쳤으며 죽염 소비량이 급감하고 도산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다이옥신이 다량 검출된 제품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식약청의 방침에도 소비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 식자층에선 식약청이 이번 사건을 통해 밥값을 한다는 소릴 듣기 위해 충격적인 발표를 서둘러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요즘 같은 산업사회에서 다이옥신은 어딜 가도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일부 결과를 갖고 과대 포장해 국민들을 겁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긴 쌀이나 모유에서도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연구결과들을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이긴 하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번 다이옥신 파동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겨우 4개의 표본이긴 하지만 이중 1개 제품에서 43.54pg이 검출됐다. 이는 식약청이 국내에 유통 중인 식품을 대상으로 다이옥신 함량을 조사한 결과 지금까지의 최고치인 2000년 갈치에서 나온 2.9pg의 15배에 가까운 수치다.

 

또한 유럽연합이 정한 어류의 다이옥신 잔류허용기준인 4pg보다 10배나 높다. 세계보건기구는 사람의 경우 체중 1kg당 하루 4pg의 다이옥신 섭취를 유해기준으로 삼고 있다. 체중 60kg이라면 하루 240pg 이상의 다이옥신을 섭취하면 해롭다는 뜻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1g당 43.5pg의 다이옥신을 함유하고 있는 제품이라면 하루 5g만 섭취해도 유해수준을 초과한다. 한국인의 하루 소금 평균 섭취량이 15∼20g이나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는 대부분 위험 수준 이상으로 다이옥신을 먹어왔다고 봐야한다는 결론이다.

다이옥신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입증된 명백한 발암물질이며 불임이나 기형 등 비뇨 생식기 계통의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이른바 환경 호르몬이다. 독성 면에서도 파상풍 독 다음으로 독성이 강하며, 독극물의 대명사인 청산가리보다 1만 배나 강하다. 다이옥신은 청산가리보다 1만 분의 1의 소량이라도 같은 독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제품과 업체의 공개를 미루는 식약청의 태도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식약청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죽염 및 구운 소금이 73개 회사에서 150개나 되는데 조사대상 표본은 4개에 불과하므로 대표성이 적은 데다, 같은 회사 같은 제품이라도 들쭉날쭉한 결과를 보여 발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검사하지 않은 업체의 제품과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류나 육류 등 다른 식품과 달리 소금의 경우 법적인 처벌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거론됐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형평성을 이유로 업체의 입장을 고려해야한다고 밝혔으나, 43.5pg이라는 사상 초유의 다이옥신이 검출된 상황이라면 현재 이 제품을 섭취하고 있는 소비자를 위해서라도 바로 공개해야한다. 업체의 이익보다 소비자의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표본의 숫자가 적어 대표성이 결여됐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힘들다. 식약청은 다이옥신 분석장비가 10억 원에 달하므로 신규 구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장비를 이용해 이들 제품을 검사할 경우 2주일에 3제품 정도만 분석이 가능해 국내에 시판 중인 제품을 모두 분석하는 데엔 3년에 걸쳐 5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업체나 제품의 이름을 공개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만 아는가. 사과상자에서 꺼낸 사과 한 개가 썩었다면 나머지도 썩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식약청의 미공개 조치는 상자 속에 감춰진 나머지 사과는 괜찮으리라고 보는 억지 믿음과 다름없다.

소금에 대한 처벌기준이 아직 없다는 주장도 비판의 대상이다. 지금 상황이 죄형 법정주의 원칙을 논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소금에 대한 다이옥신 기준이 없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소금을 굽거나 태워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해에만 1만3천8백 톤의 죽염과 구운 소금이 생산되어 국민의 입으로 들어갔으며, 매출액만 1백2십억 원에 이른다. 수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죽염 열풍으로 많은 국민들이 건강을 위해 일반 천일염보다 10배나 비싼 죽염이나 구운 소금을 구입해서 먹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식약청의 이번 발표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이번 사태를 접한 학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태도다. 다이옥신이 무엇인가. 유식한 말로 독성을 지닌 유기염소 화합물을 총칭해서 일컫는 용어다. 즉 염소와 탄소란 원료에 열이 가해지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염소와 탄소는 대부분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공업용 제품을 구성하는 주요한 원소다. 염소와 탄소 자체가 유해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가열이다. 특히 200∼300도의 어중간한 온도로 가열될 때 다량 발생한다.

 

그러나 800도 이상 고열로 완전 연소시키면 대부분 발생하지 않는다. 젖은 생활쓰레기가 섞일 경우 소각장에서 다이옥신이 배출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쓰레기 속의 수분이 가열시 온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소금의 화학명은 염화나트륨이다. 염소와 나트륨이란 원소로 구성된다. 탄소는 나무와 숯, 음식물 등 유기물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이므로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든 널려 있다. 한마디로 구운 소금이나 죽염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될 개연성은 충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업체들이 연료비 절감이나 가열 시설의 미비 등으로 소금을 충분한 온도로 굽지 않은 것이 다이옥신 파동을 불러온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항간에서 말하는 중국산 수입소금이 원인이라는 지적은 옳지 않다. 이번 식약청의 조사에서 바다의 염전에서 만든 이른바 천일염에선 다이옥신이 일절 검출되지 않았다. 중국산 수입소금에 일부 불순물이 섞여 있다한들 가열만 충분한 온도로 해주면 모두 열에 의해 분해된다. 결국 열쇠는 소금 자체보다 충분히 굽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800도 이상으로 충분히 굽게 되면 안전할까. 이 정도 온도면 다이옥신이 거의 검출되지 않으므로 적어도 다이옥신에 관한 한 안심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결국 식약청이 해야할 일은 죽염이나 구운 소금 업체들이 ‘800도 이상’ 가열 조건을 지키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다이옥신 소금 파동과 관련해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왜 그토록 우리는 생소금 대신 죽염이나 구운 소금을 신봉할까 하는 부분이다. 한국인들의 죽염 사랑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이유로 든다. 죽염이나 구운 소금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심지어 암이나 관절염 등 난치병 치료를 위해 하루에 서너 숟가락씩 죽염을 섭취하기도 한다. 죽염 치약이나 죽염 비누니 하는 것처럼 죽염의 인기를 모방한 생활용품들도 유행하고 있다.

 

죽염 신봉자들은 죽염이 오염된 바다에서 만들어진 천일염 속의 불순물을 불로 깨끗이 태워 없애는 데다 제조 과정에서 송진이나 대나무, 황토 등 여러 가지 자연성분이 어우러져 죽염 특유의 효능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죽염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몸에 좋은 성분으로 무엇이 남을지 지극히 의문스럽다. 의학적으로 생체에서 무엇인가 유효한 작용을 하려면 효소가 됐든 영양물질이 됐든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 유기물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기물이란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체가 만들어낸 탄소화합물로서 비타민도 넓은 의미에선 유기물에 포함된다. 유기물은 아니지만 제약회사에서 치료목적으로 합성한 신약도 있다. 대부분 복잡한 화학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유기물의 형태가 됐든 효능을 지닌 복잡한 화학구조의 약물이 됐든 죽염의 제조과정처럼 수백 도의 고온에 오래 노출시키면 모두 단순한 몇 가지 무기물로 분해된다는 것이다. 무기물도 물론 생체에 필요하긴 하다. 건강을 위해 복용하는 영양제에 포함된 칼슘이나 철, 아연 등 미네랄이 바로 무기물이다. 하지만 이들 무기물은 소량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죽염의 원료인 소금은 염소와 나트륨 외에 어떤 원소도 없다. 이를 어떻게 가열하든 염소는 염소이고 나트륨은 나트륨일 뿐 죽염 예찬론자들이 말하는 신비의 영약 성분은 탄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대로 불완전연소 시 몸에 치명적인 다이옥신이 검출될 뿐이다.

 

죽염 다이옥신 파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적어도 우리가 먹는 식품에 대해선 최소한의 과학적 합리성을 지녀야한다는 것이다. 죽염은 단순히 건강보조식품일 뿐 치료제로서 효능을 지닌 약품이 아니다. 신약처럼 부작용과 효능을 검증하기 위해 대규모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기간 임상시험을 거치지도 않았다. 이미 죽염을 과량 섭취한 뒤 고혈압 등이 악화됐다는 연구결과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것은 다이옥신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죽염이 소금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으나 죽염 역시 체내에서 흡수되면 소금처럼 혈관 내로 물을 끌어들여 혈압을 올린다. 고혈압 환자가 죽염을 서너 숟가락씩 퍼먹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죽염은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해도 효능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대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A가 B에 좋다’란 새로운 주장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먼저 거치는 과정이 바로 ‘생물학적 개연성biological plausibility’이다. 말 그대로 현재까지 입증된 과학적 진리를 토대로 전문가들이 심증만 갖고 내리는 판단이다. 죽염은 어떠한 전문가들로부터도 효능에 대해 ‘생물학적 개연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생물학적 개연성은 나름대로 한계가 있다. 확증을 내리기 위해선 별도의 실험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당신이 언제 죽염이 효과가 없다고 밝힌 연구결과라도 있느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새로운 주장을 하려면 주장을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의무가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를 막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먼저 죽염이 좋다고 말한 사람부터 이를 입증할 실험적 증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믿을 만한 기관에서 다수의 표본을 이용해 죽염의 효능이 통계학적으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 사례는 아직 없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술가이자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1996년 작고하기 직전 내놓은 그의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사이비 과학의 폐해를 악령에 비유해가며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한동안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지금은 다이옥신 파동으로 스러져 가는 죽염 신화 역시 믿을 만한 실험적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사이비 과학으로 전락할 것이다. 하긴 죽염뿐이겠는가. 머리를 좋게 한다는 무슨 뇌파발생장치나 키를 크게 한다는 무슨 보약, 암에 좋다는 무슨 생식, 관절염에 좋다는 무슨 매트,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무슨 침, 한달에 10kg을 뺀다는 무슨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수백 가지 건강상품의 광고로 홍수를 이루고 있는 이들은 매우 유사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개 귀에 솔깃한 이론을 갖고 있으며, 박사나 연예인 등 손님을 끌 만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치료 전후 사례가 체험담을 빌미로 소개된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떼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선택은 돈을 내는 사람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내 돈 내가 써서 효험을 본다는데 말릴 순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대개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에 놓여 있으며 교육 수준이 낮은 사회적 약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건강을 위해 죽염을 먹는다면 식약청에 의해 옥석이 가려지기까지는 당분간 중단하는 것이 옳다. 다이옥신이 없는 죽염이라도 가능하면 적게 섭취하면 좋겠다. 죽염도 소금이며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바람직한 것은 죽염 같은 이른바 검증이 부족한 비방에 매달리기보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잡힌 식사, 충분한 휴식 등 누구나 인정하는 원칙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이다.

 

홍혜걸 / 의사.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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