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사순 제3주일] 영원한 생명의 샘물 (요한 4,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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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5일 주일 [사순 제3주일] 영원한 생명의 샘물 (요한 4,5-42)]
제1독서<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시오(탈출 17,2).>(탈출 17,3-7) 그 무렵 백성은 3 목이 말라,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하였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 4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5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 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7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
화답송 시편 95(94),1-2.6-7ㄱㄴㄷ.7ㄹ-9(◎ 7ㄹ과 8ㄴ)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
제2독서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로마 5,1-2.5-8)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복음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요한 4,5-42) 5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한 것은 맞는 말이다. 18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7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30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31 그러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시자, 33 제자들은 서로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36 이미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37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자가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사순 제3주일 제1독서 (탈출17,3-7)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 (6-7)
'이제 내가 ~ 네 앞에 서 있겠다'에 해당하는 '히느니 오메드 레파네카' (hinni omed lephaneka)에서 '이제 내가'로 번역된 '히느니'(hinni)는 일종의 감탄사로 '나를 보라'라는 뜻이지만, 대개는 '보라 내가'(Behold, I)로 번역된다. 이것은 상황의 급박성을 나타내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어떤 중요한 사건이발생할 것을 강조하는 히브리어의 독특한 표현이다.
또한 '서 있겠다'에 해당하는 '오메드'(omed; will stand)는 '서다'(창세24,30), '머물다', '살다'(창세9.28)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아마드'(amad)의 능동 분사형으로 '서 있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네 앞에'에 해당하는 '레파네카'(lephaneka)는 '얼굴'을 뜻하는 명사 '파님'(phanim)에 전치사 '레'(le)와 대명사 접미어가 결합한 형태로 '네 앞에', '너의 면전에', '너를 대하여'(before you)라는 뜻이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아마드'(amad)는 '~앞에'라는 뜻의 '리프네'(liphne)와 함께 사용될 때는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요셉이 파라오 앞에(창세41,46), 다윗이 사울 앞에(1사무16,21), 아비삭과 밧세바가 다윗 앞에(1열왕1,2. 28), 느부자르아단이 네부카드네자르 앞에(예레52,12) 선 것을 묘사할 때도 이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곧 신하로서의 복종과 존경과 섬길 각오의 자세를 가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주님 앞에(예레9,5; 에제44,15) 선다는 것 역시 자신이 주님의 종임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며, 더불어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충성과 복종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금 전능하신 창조주 주 하느님께서 '모세 앞에 서 계실'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헌신과 복종을 표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주 하느님께서 언제나 모세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늘 변치 않고 도와 주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모세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일시에 벗어 버리게 하는 큰 확신을 갖게 했을 것이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탈출기 17장 6절에는 '바위'라는 단어가 2번 나온다. 그런데 2번 다 정관사 '하'(ha)가 붙어 있다. '그 바위를'에 해당하는 '밧추르'(batsur)는 '바위'를 의미하는 '추르'(tsur) 앞에 정관사 '하'(ha)와 '~을'에 해당하는 전치사 '뻬'(be)가 결합된 것이다. 이처럼 정관사가 거듭 사용되는 것은 당시 그 바위(반석)가 모세가 잘 알고 있었던 바위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또다시 완고하고 사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바위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여 그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친 그 바위에서만 물을 얻었듯이, 오직 생수(生水)를 내는 바위(반석)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적 갈증이 해소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1코린10,4)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영적 갈증에 허덕이는 인생들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55,1)고 하셨으며,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하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십시오'라고 말하여라.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 (묵시22,17)로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처럼 온 천지 만물이 창조주요 모든 인생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갈증을 호소하는 모든 이들에게 생수를 값없이 풍성하게 베푸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요한7,37)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계시는가'에 해당하는 '하예쉬'(hayesh)는 '있다'(창세18,24; 24,23)라는 뜻을 지닌 '예쉬'(yesh)에 일반 의문문을 이끄는 의문사 '하'(ha)가 결합된 형태이고, '계시지 않는가'에 해당하는 '아인'(ain)은 '없다'(1사무9,4)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쉬'와 '아인'은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뜻을 지닌 단어로서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 유무(有無)를 나타낸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에 해당하는 '뻬키르뻬누'(beqirbenu; among us)는 사람이나 동물의 신체 또는 도시나 공동체의 내부를 나타내어 '속'(창세18,12; 예레4,14), '~중'(가운데)(창세18,24; 24,3) 등으로 해석하는 '케레브'(qereb)에 '~안에'라는 전치사 '뻬'(be)와 대명사 접미어사 결합한 형태이다.
따라서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존재하고 계신지 아니 계신지'확인하려고 그들이 시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마름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했다는 말이다(탈출17,2참조). 이처럼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이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고 힘이 들면 이전에 자신을 은혜와 축복으로 인도하신 하느님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마싸와 므리바' '마싸'에 해당하는 '맛싸'(massah; Massah)는 '시험하다'(창세22,1; 1열왕10,1) 라는 뜻을 지닌 동사 '나싸'(nassah)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시험'이라는 뜻이고, '므리바'에 해당하는 '메리바'(meribah; Meribah)는 '싸우다'(탈출21,18; 신명33,7), '다투다'(창세26,20)라는 뜻을 지닌 동사 '리브'(rib)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다툼' 또는 '싸움'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지명들이 모두 그 곳에서 벌어진 사건에 근거하여 명명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지명의 이름을 지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과 더불어 다투고, 그리고 하느님을 시험했음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지명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대들던 이스라엘 선조들의 불신앙적인 모습을 대대 후손들에게 전함으로써 이것을 후대의 교훈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시편95,8-9).
♣ 일상에서 하느님을 알아보는 해방의 길 ♣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푼 꿈을 안고, 종살이를 하던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그들은 이제는 파라오의 지긋지긋한 속박도, 목마름과 배고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해방의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픔과 목마름과 배고픔이 없는 세상이 있을까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