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어떤 출판 기념회와 쌀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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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0-04-04 ㅣ No.716

나는 호기심이 많다. 특히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오랫동안 해 온 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관심이나 기대를 갖게했던 이들에게서 실망하면서 웬만하면 관심을 끄고 살려고 해 온 요즘이다. 그럼에도 월요일 오후에 참석했던  한 출판 기념회에서  희망을 얻었다.

 

 얼마전  < 봉두완의 SBS 전망대>를 진행하는 광운대학 신문방송학과  봉두완교수의 책 - <여자가 좋다, 세상이 좋다> 의 출판 기념회 초청장을 받았다.   초청장을 받았을 때 "가야 하나?"-이런 생각이 들었다. 봉교수는  같은 직종의 평신도  모임에서 집행부 일을 하느라 가까이  해 온 선배이기는 하지만," 손님도 많을텐데...  나까지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초청장의 연락처를 보니 가톨릭회관으로 되어있어서 참석자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판 기념회의 수익금은 나자로마을 나환자 돕기와 남북장애인 걷기 운동을 위해서 쓰겠다는 취지및 추기경의 인사 말씀이 있어서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출판기념회는 저자의 약력 소개,추기경의 축하말씀, 본인 인사,가족소개등 언뜻보면 여느 출판기념회와 다를 바 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날 출판 기념회는 아주 색 달랐고 인상 깊었다. 식장에는  꽃 한송이, 화환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그 대신 "꽃을 보내려거든 불쌍한 이들을 돕게 쌀을 보내 달라"는 주인공의 뜻을 따라   모모한 인사들이 보낸  쌀 자루들이  한 가운데  쌓여져 있었다. 또  다른 출판기념회라면 인사와, 내빈의 덕담등 공식행사 끝에 칵테일과 성찬이 차려진 음식 잔치로 들어가는게  상례인데  과감히 음식 테이블이  생략되어 있었다.  마지막 여흥 순서로  사물놀이패 차림의 청소년들이 줄지어 나왔다.     "봉교수가 재직하는 광운대학의 풍물  동아리라도 되나?" 하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은 뜻밖에도  그가  박성구신부를 도와 후원하는 장애인걷기운동본부의  정박 장애아 사물놀이패였다. 몸도, 머리도 마음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 장애인들은 얼마나 손님들 앞에서 열심히 신나게  풍물을 노는지...참으로  감동을 주고 있었다.

 

 기자,국회의원,방송 진행자,대학교수... 화려한 경력에 봉교수는  곧잘 자기 자랑도 해서 오해를 사기도한다. 그러나  그의 숨김없는 인간성을 알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소설가 박완서씨 글).

 실향민인  그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민족 복음화 추진회장으로 매주일 북한 땅이 보이는 곳에 가서 통일 기원 미사를 드리며 통일이 되는 그날을 위해 기도 운동을 주선한다. 또한 남북한 장애인 걷기운동 본부를 통해서 재가 장애인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또 나자로 마을 돕기 회장으로  나환자들을 돕는다. 이외에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등  돈 생기지않는 일에 하루도 쉴 틈 없이  달린다.

 

"60대는 언제 어디서 죽느냐를 생각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하다가 죽는것보다 나환자 돕다가, 장애인하고 같이 걷다가 죽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남을 돕다가 죽고 싶습니다" , "내일 잘 하겠다고 오늘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해요." - 66세의 현역인 그의 지론이다.

 

 그는 딸을 시집 보낼때 가족30명만 참석한채 식을 올렸다. 명동성당에서 아들을 결혼시킬때는 친척 중심으로  50명만 초청했다.  

 

 말로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부분들을 그는 행동으로 옮기는 특별한 삶을 산다.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많은 행사들이  허식과 거품들 속에 녹아버리고 ,정신과 달리 이름만 남는 신앙인들의 모임이 수다한  우리 현실 속에서 그날의 출판 기념회는 큰 일깨움을 주었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 인생의 그림을 그려가는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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