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연중 제15주일 강론(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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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heonheon] 쪽지 캡슐

2000-07-15 ㅣ No.1581

1독서 :   아모스   7,12~15
2독서 :   에페소서   1,3~14
복  음 :   마르코  6,7~13
 
 *  이 강론은 제가 3년전 평화방송에 근무할때 어떤 잡지에 실었던
연중 제15주일 강론입니다.
 
 
저는 방송국에 근무하기 때문에 본당에 계신 신부님들과는 달리 매일 아침 일어나 걸어서 5분정도 걸리는 회사로 출근을 합니다.  
출근할때 꼭 챙기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삐삐, 안경, 전자수첩, 열쇠꾸러미, 지갑등입니다.
그것들을 주섬 주섬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특히 혹시라도 지갑을 흘릴까 봐 양복 윗도리 안주머니에 잘 집어넣고 나서 안주머니에 지갑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다시 한 번 만져보고 나서야 챙길 것 다 챙겼다는 안도감을 갖고 방문을 나섭니다.
 가만히 따져 보니까 아침에 방문을 나설 때 뿐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없이 열 번도 넘게 제가 지갑을 만져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회사 사무실 옷걸이에 윗도리를 벗어서 걸어 놓을때면 지갑이 제대로 들어있는지 또 다시 안주머니를 만져봅니다.
 점심식사 약속이라도 있어서 나갈 때도 지갑을 만져봅니다 제가 돈을 안내는 경우도 있지만 식사후에 서로 내겠다는 적당한 실갱이를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지갑입니다.  
 퇴근해서 숙소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 입으면서도 지갑을 꺼내봅니다.  지갑속에 든 돈을 세어 보면서 오늘 어디에 얼마를 썼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갑 속에 남아 있는 돈이 부족하면 내일 은행 자동 인출기에서 돈을 좀더 빼내서 지갑 속에 채워 넣어야지 하고 마음 먹습니다.
 
 지갑을 그렇게 자주 챙기는데도 저는 건망증이 심한 편이라 퇴근해서 안주머니를 만져봤을때 지갑이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당황해 하면서 급히 회사로 전화를 합니다.  
야간 근무자를 바꿔 달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제 사무실 서랍에 지갑이 들어있는지 당장 알아보라고 채근합니다.  지갑이 그곳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하는 한숨과 함께 안심합니다.
  지갑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면서 제 자신이 그토록 지갑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에 슬며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는 그렇게 지갑에 집착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지갑에 얽매여 있는가?
지갑을 소지하고 있을때의 안도감과 지갑이 없으면 어디 한 발짝도 나설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초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지갑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돈 십만원 정도와 신용카드와 운전면허증 밖에 없는데 왜 이런 것들이 그토록 내 행동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는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돈이 없을때 혹시 당할지 모르는 내 품위의 손상이나 위신이 깎이는 것은 참을 수 없기에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돈의 위력 앞에 굴복하고 있구나 싶은 자괴감이 들어 어디론가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바오로 사도께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언제 죽음에 처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도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받고 세상에 파견된 자로서 누리는 '완전한 자유'(에페소서 1,14)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완전한 자유'는 돈이 넉넉하기때문에 얻어지는 그런 자유는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경제적인 풍요와 물질적인 보호 장치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입니다.  현재나 미래를 보장해 주시고 돌아보기조차 무참한 과거까지도 용서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함으로서 주어지는 자유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마음의 준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세상을 사느라 가슴 속에 담아둔 온갖 잡다한 세속의 찌꺼기를 몰아내고 마음을 비워두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 (마르코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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