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성당 게시판

#사순일기-여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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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fromrahel] 쪽지 캡슐

2002-03-09 ㅣ No.1270

어제 성서모임 요한 연수신청을 하고 왔다.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 요한  신청했다구 담당신부님께서 뭔가 찜찜해 하시기도 했다.

스물 다섯 나이가 어린건가....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내나이...삶에서 하나 둘씩 내 이름을 걸어야 하고 책임을 진다는것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요한복음 노트정리를 하면서 자꾸 반복되는 말이 있었다. 12과까지 노트정리를 하면서 묵상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에 매번 이런말들이 있었다. "주님과 함께","온전히 의지할때 내 삶이 사랑이 될 수 있다","오직 그분께"...묵상 내용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수도원에 가야할 것만 같았다. 정말로 내가 이렇게 느끼는가...묵상할 때엔 하느님이 내 옆에 계신것 같고...아니 이미 내 안에 오신것 같은데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한번 속은것같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늘 나는 예전에 한달 다녔던 컴퓨터 학원에서 취소처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따져서 반드시 환불받겠다고 큰맘 먹고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녀왔다.

 

백만원이 넘는 학원비를 제대로 취소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학원이 영업정지 되었으니 까딱하면 환불받지도 못하고 잔금까지 내야할 판이어서 아부지를 앞장세우고 조목조목 따졌다. 내가 머리털 나고 그렇게 타인에게 무언가를 따지고 요구해 본건 처음이었다.

당연한 내 권리를 주장하는건데도 바르르 떨리는 내 목소리가 나를 화나게 했다.

앞으로 정말 더 나이 먹으면 아부지 없이 혼자서도 요구해서 내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대학입시 면접 때에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는데...힘이 들었다. 나 뿐 아니라 수많은 수강생들이 이런식으로 반 사기를 당한 샘이었다.

왜 이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있는건지...난 정말 열심히 살고 있고 착하게 살려고 무진장 애쓰고 사는데...법 앞에서도 저렇게나 태연한 사람들은...왜 그냥 두시는건지...다행히 환불을 약속받고 기다리기로 했지만...집에 오는길에 내내 하느님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온전히 믿고 따른다는 것....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수없이 많은 유혹들이 있는지...

 

묵상내용을 적을 때 마다 정말로 든든한 백이 있어 걱정할 게 없다 느꼈었는데...학원취소처리가 잘 되지 않아서 거액을 부담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빨리 응답해주시지 않는 하느님이 야속했다. 입시때에도 이런식으로 기대하진 않았었는데..나이가 든다는것, 돈이 연관된다는것, 내가 책임 져야 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제대로 경험했다.

 

기도할 때 뿐 늘 세상엔 부정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음을 체험할 때엔 정말 살맛이 안 난다...기도는 대체 왜 하는걸까...허무하기 짝이 없다.하느님 뜻에 맞아야 기도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뜻을 알게 되기란 좀처럼 쉬운일이 아닌걸 알기에 또 한번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애를 쓴다. 요한 연수를 준비하고 있지만 생활속에서 정말 사소한 일들에 아직 민감하고..화를 많이 낸다. 하느님,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많이 하지만 아직도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나’를 안고 연수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창피한데...그나마 한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이것이다. 화내고 짜증내고 허탈해 했다가도 예전보다 일찍 십자가를 찾는다는 것이다. 사춘기 때에는 인간이 나약하다는 말이 너무나 싫었는데 철들고 나면 알게 된다는 어른들 말씀을 이제서야 좀 알겠다. 나이에 맞게 큰 일들을 치르고 날때마다 겸손하게 되고 더욱 분명히 살아계신 하느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 같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 인것 처럼 힘듦 속에서 더욱 가까이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어쩜 당신께 소홀하지 말라고 이따금씩 어려움을 주시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썰렁한 글을 남기게 하시면서까지  당신을 보이시는걸 보면 내가 마음에 드시긴 한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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