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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음력 기산일(起算日)에 대하여 외 1/2 [성경공부_음력기산일] 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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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ㅣ No.1020

 
 
+ 찬미 예수님
 
이 글에서는 성경 혹은 교회의 오래된 기도문들 중에서 날짜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흗날
 
1-1. 다음은 사도 신경의 한 구절입니다: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1-2. 다음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한 구절입니다: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in fulfillment of the Scriptures;
 
 
2. 질문-1
위의 제1-1항제1-2항에서 말하는 "사흗날에"는 다음의 어느 것을 말할까요?
 
2-1. 죽고나서 3일 뒤에, 즉 사흘 뒤에
 
2-2. 죽고나서 2일 뒤에, 즉 이틀 뒤에
 
정답: "죽고나서 2일 뒤에", 즉 "이틀 뒤에" 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레고리오 달력에 따라, 금요일(Good Friday, 성 금요일)에 죽으셨으며 이어지는 일요일(Easter, 부활절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이어지는 요일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금요일(성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부활절)
 
이것을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안식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식일 직전 날, 안식일 당일, 안식일 다음 날
 
 
3. 질문-2 
그렇다면 위의 제1항의 신앙고백 기도문들에서는 "이틀 뒤에" 라는 표현 대신에 "사흗날에" 라는 표현을 무슨 이유로 굳이 사용하고 있을까요? 
 
정답: 위의 신앙 고백 기도문들에서 "사흗날에"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기산일(起算日, 기간을 정하여 날수를 계산할 때의 첫날, the initial date in reckoning, the day from which a reckoning is made)"의 첫날(즉 시작일)이
 
예수님께서 죽으신 날(즉, 성 금요일, 즉 안식일 직전 날)의 하루 전날인, 예수님을 죽일 믐모를 꾸미기 시작한 날이며, 파스카 양을 잡는 날이고,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인 최후의 만찬 및 세족례가 거행된 날이기도 한, 성 목요일(Holy Thursday)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 사건의 시작일(기산일)이, 성 금요일이 아니라, 성 목요일(즉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 날이며, 파스카 양을 잡는 날이고,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인 최후의 만찬이 거행된 날)임을 분명하게 나태내고 있는 표현이 바로 위의 제1항에서의 신앙 고백문에서 "사흗날에" 라는 생각입니다.
 
 
목요일(성 목요일) 금요일(성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부활절)
안식일 이틀전 날, 안식일 직전 날,  안식일 당일, 안식일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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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i) 당시의 유다인들이 지금 위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표현들인, "성 목요일", "성 금요일", "성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이라는 표현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을 잊지 마십시오.
 
따라서,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안식일을 기준으로 하면, 안식일 이틀 전(마태오 복음서 26,2 및 마르코 복음서 14,1를 참조)이 부활 사건의 기산일(起算日)입니다.

(ii)
그리고 지금 헤아리고 있는 것은 하루를 단위로 하는 사흗날 이라는 기간이지, 결코 시간상의 단순한 순서가 아님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iii)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탈출기 21,1-28에 기록된 첫 파스카 축제의 완성/구현이므로 (즉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공적 계시의 절정),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음모 및 파스카 양을 잡는 등의 안식일 이틀전 날의 사건들이 이 부활 사건에 그 시작으로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탈출기 12,1-28 을 세 번 정도 읽고 차분히 묵상하시면 지금 드리는 이 지적을 모두들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iv) 그러므로 성 목요일에 드러나기 시작한,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크로노스(chronos/kronos)]의 나열이 아니라, 시간에 있어 하느님의 의지가 충만하게 개입된 기간/시기[카이로스(kairos)의 기간/시기](*) 이 사건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모두에게 있어 반드시 온전하게 받아들여 깊이 묵상하면서 잘 이해하면서 믿어야 하는, 신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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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른, 그러나 동일한 단어로 번역이 되고 있는, 이들 "때/시간(hour)"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라:

출처: 총 6권이 한 질을 이루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 대림 제1주일 제2독서(로마 12,11-14)의 제11절 해설 및 이 해설서 시리즈를 위한 다음의 인터넷 각주들:
http://ch.catholic.or.kr/pundang/4/tdnt/kairo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tdnt/chrono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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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v)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340항의 가르침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3Z.HTM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1340 By celebrating the Last Supper with his apostles in the course of the Passover meal, Jesus gave the Jewish Passover its definitive meaning. Jesus' passing over to his father by his death and Resurrection, the new Passover, is anticipated in the Supper and celebrated in the Eucharist, which fulfills the Jewish Passover and anticipates the final Passover of the Church in the glory of the kingdom.

CCC 1340 파스카 식사[즉, 과월절 식사, the Passover meal] 과정에서 당신의 사도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경축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파스카에 그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새 파스카인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하여 당신의 성부께로 건너가심은 이 만찬에서 미리 실제화되어(is anticipated in) 그리하여 성찬례 안에서 경축되는데, 이 성찬례는 유다인들의 파스카를 구현하며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영광 안에서 교회의 최후의 파스카를 미리 실제화합니다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참고 1: 여기를 클릭하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340항 및 전후의 내용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참고 2: 여기를 클릭하면(<----- 필독 권유),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인 하느님 나라[Kingdom of God, 즉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가 미사 중의 성찬례 시에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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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클릭하면, 파스카 성삼일의 시작일이 성 목요일임에 대한, 고 김인영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전례학 사전(A. Bergamini)" 의 자세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부활 사건의 시작일이 성 목요일임을 또한 마태오 복음서 27,63-64에서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4.
구약 성경 창세기 제1장에서
 
첫날(5절)
이튿날(8절),
사흗날(13절),
나흗날(19절),
닷샛날(23절),
엿샛날(31절),
이렛날(안식일)(제2장1절)
 
이라는 표현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기산일"은, 위의 나열에서, "첫날로 불리는 날의 하루 이전 날", 즉 "때가 차는 기간의 시작일"에 해당하는, "아무 것도 창조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5.
이와 같은 방식으로, 즉 특정한 기간 중의 날짜를 헤아림에 있어, 제4항에서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기산일의 "첫날"로 잡는 날이 "첫날로 불리는 날의 하루 이전 날"인 방식은, 사람들이 음력(lunar calendar)을 사용하면서 자연적으로 채택해 온 방식으로, 성경의 본문은, 당연히, 모두 이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6.
위의 제3항 - 제5항에서의 설명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음력으로 한 달의 시작점은, 음력 "초하룻날"인 "(초저녁에 서쪽 지평선 부근에 잠깐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지평선 아래로 이동하므로 육안으로 관측이 잘 되지 않는) 초승달이 뜨는 날[클릭하여 살펴보십시오]"이 아니라, 바로 이 초승달 뜨기 하루 전날인 그믐날, 즉 달이 보이지 않는 날을 생각하면, 아마도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십시오: 

Moon_phase_calendar_May2005.jpg

 
실제로 그믐날(dark moon, 즉 천문학적으로 해와 달과 지구가 이 순서대로 일직선 상에 있는 시각)부터 새 달(new moon)이 자라기 시작하기 때문에, 음력 한 달의 기산일은, 달(moon)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포함하는, 그믐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음력에서 날짜를 헤아릴 때에 이렇게 기산일을 잡는 것은 참으로 과학적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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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한 개:
 
동양 문화권의 음력 날짜와 성경에 있어서의 음력 날짜 사이에는 하루가 차이나는데, 즉, 만월인 날이 유다인들 경우에는 제14일이지만(예를 들어, 니산달 제14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제15일인데(예를 들어, 추석 대보름 8월15일), 이것은 성경의 유다인들의 경우에 있어 육안으로 잘 관측이 되지 않는, 그믐날(dark moon) 그 다음 날인, 첫 초승달이 뜨는 날이 초하룻날이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그믐날이 초하룻날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어 음력 초하룻날" 로 불리는 날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문화권에 있어 음력 초이튿날" 로 불리는 날과 동일합니다. 즉, 이들 두 문화권들에 있어, 음력으로 날짜를 헤아릴 때에, 비록 음력 기산일은 동일하나, 어느 날을 초하룻날로 부르는가가 다르기에, 이러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있어서의 유다인들의 음력 날짜를 헤아리는 방식은, 음력의 기산일인 그믐날(dark moon, 즉 천문학적으로 해와 달과 지구가 이 순서대로 일직선 상에 있는 시각)로부터 하루가 지난 날을 초하룻날로 부르기 때문에,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문화권의 음력보다도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음력이 음력 기산일로부터 천문학적으로 훨씬 더 정확하게, 즉 자연의 질서와 훨씬 더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날짜를 헤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믐날(dark moon) 다음의 초저녁에 서쪽 지평선 부근에 잠깐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지평선 아래로 이동하므로 육안으로 관측이 잘 되지 않는 초승달이 뜨는 날을 음력 초하룻날의 시작점으로 정한, 그리하여 서산에 해가 질 무렵을 그 다음날의 시작으로 정한 유다인들 날짜를 헤아리는 방법은, 위에서 말씀드린, 해와 달과 지구가 일직선상에 있는,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능력으로 관측을 할 수 있는 범위와 정도 내에서 전혀 빈 시간대 없이, 천문학적 자연의 질서 및 조화와 매우 정확하게 일치를 이루도록 설정되어 있기에, 음력으로 날짜를 헤아리는 방법들 중에서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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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숫자 "0"의 개념이 없던 시기라서]
 
<----- 말씀 잘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은 제가 말씀드린 "음력의 기산일 개념"이 있어, 그믐날(dark moon) 다음의 첫 초승달 뜨는 날을 초하룻날로 불렀던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다른 문화권에서 그믐날 자체를 초하룻날로 불렀던 것은 그냥 순서를 헤아리는 데에 문제가 없기에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러나 그러한 문화권에 하루를 단위로 하여 기간을 헤아림에 있어 기본인 "음력의 기산일 개념"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없기에, 사고의 깊이/정도에 있어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0"의 개념이 있는 시기에 있어서의 천문학적 정확한 설명과 잘 일치하도록, 유다인들이 날짜를 성경에 기록한 것은 대단히 지혜롭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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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여기를 클릭한 후에 한줄답변들을 읽어 보십시오), 유다인들이 음력 윤달을 추가하는 시기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문화권과는 달리,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에, 즉 니산달의 시작 직전으로 고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즉, 과월절의 첫 부분인 무교절 약 한 달 전에 전문가가 보리가 제대로 익었는지를 확인하여 (예를 들어, 덜 익은 보리 알갱이들 몇 개를 달구어진 프라이 팬에 정해진 높이에서 떨어뜨려 보면, 보리 알갱이 안에 포함된 수분의 정도에 따라, 톡 튀어 오르는 높이의 정도가 다르게 되는데 이 정도를 직접적으로 실험을 통하여 확인 한 후에, 아직 보리가 덜 익었음을 파악하였다고 합니다), 보리가 덜 익었을 경우에 한 달의 윤달을 추가하였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인 아주 어릴 때에 저도 직접 경험하였지만, "보리 고개" 시기에, 즉, 춘궁기에, 배가 고파서 보리밭 혹은 밀밭을 지나가다 친구들과 보리밭/밀밭으로 살짝 들어가 누워서는, 덜 익은 보리 이삭/밀 이삭을 손으로 부벼서 맛있게 까 먹고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마태오 복음서 12,1-2에도 이러한 언급이 있습니다만, 덜 익은 보리 알갱이/밀 알갱이는 별로 씹을 것도 없어 참 맛있게 먹었는데, 특히 덜 익은 밀 이삭의 경우에는 오래 씹으면 껌처럼 되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그런데... 진짜로 맛있는 것은 덜 익은 목화 봉우리입니다. 가시가 있어 주인 몰래 조심스럽게 따서 입에 넣으면 "그 특유의 살아있는 달콤한 맛"이 입 안에서 사르르 사탕 녹듯이, 아니 잘 익은 멜론처럼 사르르 녹아요 녹아! 아! 다시 한 번 먹어 봤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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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로 이러한 점이 음력으로 어떤 기간 중의 날짜를 헤아리는 방식과 양력으로 어떤 기간 중의 날짜를 헤아리는 방식의 커다란 차이점일 것입니다. 
 
개기월식 혹은 개기일식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음력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달(moon)이 보이지 않는 날있으나,
 
양력에는 이렇게 해(sun)가 보이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따라서 양력으로 기산일을 잡을 때에는, 해가 보이지 않는 날이 없기 때문에"첫날로 불리는 날로부터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하루 이전의 날" 을 기산일로 채택할 수가 없게 됩니다.
 
8.
예를 들어, 사람의 나이는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이라는 시점까지의 기간을 년 수로 헤아린 것인데,
 
오늘 태어난 아기의 태어난 당일에 있어서의 양력 나이는, 태어난 날을 기산일로 하니, 0 살이나,
 
그러나 오늘 태어난 아기의 태어난 당일에 있어서의 음력 나이는, 제7항에서 달이 보이지 않는 날(즉 그믐날)을 음력 한 달의 기산일로 잡는 것에 해당하는,
 
"난세포가 성장하여 난자가 되기까지의 두 달" + "아이가 잉태되어 출산할 때까지 성장하는 기간인 열 달"의 합으로 이루어진, 총 열두 달 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간의 시작일을 기산일로 잡으니
 
한 살인 것입니다.
 
산모가, 아기가 태어난 당일에,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기의 나이를 한 살이라고 말할까요, 아니면 0 살이라고 말할까요? 틀림없이 한 살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기가 태어나기 전 만 일 년 동안에, 아기와 아기로 성장하는 바로 그 난자는 자신의 몸 안에서 엄연히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9.
음력에 있어서의 "이러한" 기산일의 선택은 그리스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인과에 따른 사물의 생성에 관한 자신의 철학에, 숨겨진 날에 해당하는, "가능태 [可能態, dynamis, potentiality]"/"질료 [質料, matter]"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러한 음력의 기산일 개념을 귀납적으로 추상화하여 정립한 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태 [可能態, dynamis, potentiality]"/"질료 [質料, matter]" 개념이라는 생각입니다. 
 
참고 자료1: http://100.naver.com/100.nhn?docid=402 (네이버 백과사전: 가능태)
참고 자료2: http://100.naver.com/100.nhn?docid=110487 (네이버 백과사전: 현실태)
참고 자료3: http://100.naver.com/100.nhn?docid=144018 (네이버 백과사전: 질료)
참고 자료4: http://en.wikipedia.org/wiki/Potentiality_and_actuality (Potentiality and Actuality)
 
 
이와 같이, 어떤 개념(a concept)을 추상화 과정인 귀납의 과정(a process of induction)을 거쳐 한 개의 보편적 개념(a universal concept)으로 인식하고 또 받아들이게 되면, 그리하여 우리의 내면적/비가시적 세계에 한 개의 새로운 개념으로서 존재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그 이후부터 이 새로운 개념을 연역적으로 적용하여(applying deductively) 다른 개념들에 대한 직관적 이해(understanding) 혹은 이성(reason)을 사용하는 논리적인 추론(deduction)들을 할 때에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10.
다음은 아래에 첨부한 질문글에 대하여 제가 간략하게 드렸던 한줄답변들입니다. 아래의 첫 한줄답변에서 "유다인들의 달력이 음력이므로, 음력에서 날짜를 헤아리는 방식을 따라가"  라고 말씀드린 부분을 더 자세하게 설명드린 것이 위의 제1항-8항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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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성경 전반에 걸쳐 날짜는 유다인들의 달력이 음력이므로, 음력에서 날짜를 헤아리는 방식을 따라가, 예를 들어, "2박 3일"의 경우를 두고서 "사흘째" 라고 표현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박 2일"의 경우는 "이튿날".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날들은 모두 일요일(즉, 제 8일, 즉 유다인들의 안식일 다음 날)이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나가 있다 자정이 넘어 들어왔는데..., 아침에 출타하기 전에 급하게 쓰다가 "표현 한 개"를 빠드렸습니다. 위의 한줄답변에서 다음과 같이 바로잡습니다. "... 모습을 드러내신 날들은 ..." -----> "... 모습을 드러내신 날짜가 적힌(dated) 날들은 ..." . 다들 잘 아시겠지만, 구체적인 날짜 언급이 없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록들도 또한 복음서들에 당연히 있으므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정하여야 유의미한 문장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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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날짜가 적힌 날들은 모두 일요일(즉, 제 8일, 즉 유다인들의 안식일 다음 날)인 것은, 다음과 같이, 당연히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의 본문 중에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28,1;
마르코 복음서 16,1-2; 16,9-12;
루카 복음서 24,1.13;
요한 복음서 20,1.19.26.
 
10-2. 위의 제10-1항에서 언급한 절들과 NAB 성경의 해당 절들을 비교/검토해 보면, 위의 제1-9항들에서 말씀드린 음력에 있어서의 기산일을 더욱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28,1)
1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1 After the sabbath, as the first day of the week was dawning, Mary Magdalene and the other Mary came to see the tomb.
 
 
(마르코 복음서 16,1-2)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1 When the sabbath was over, Mary Magdalene, Mary, the mother of James, and Salome bought spices so that they might go and anoint him.
2 Very early when the sun had risen,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they came to the tomb.   
 
 
(마르코 복음서 16,9-12)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9 When he had risen, early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he appeared first to Mary Magdalene, out of whom he had driven seven demons.
10 She went and told his companions who were mourning and weeping.
11 When they heard that he was alive and had been seen by her, they did not believe.
12 After this he appeared in another form to two of them walking along on their way to the country.
 
(루카 복음서 24,1)
1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1 But at daybreak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they took the spices they had prepared and went to the tomb.
 
(루카 복음서 24,13)
13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3 Now that very day two of them were going to a village seven miles from Jerusalem called Emmaus,
 
(요한 복음서 20,1)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1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Mary of Magdala came to the tomb early in the morning, while it was still dark, and saw the stone removed from the tomb.
 
 
(요한 복음서 20,19)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9 On the evening of that first day of the week, when the doors were locked, where the disciples were,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in their midst and said to them, "Peace be with you."
 
 
(요한 복음서 20,26)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6 Now a week later his disciples were again inside and Thomas was with them. Jesus came, although the doors were locked, and stood in their midst and said, "Peace be with you."
 
참고: 특히 요한 복음서 20,26에서 우리말로 "여드레 뒤에" 로 번역한 표현을 NAB에서 "now a week later"로 번역하였는데,
 
"여드레 뒤에" 라는 표현이, "8일 뒤에" 가 아니라, "한 주일 뒤에", 즉 "7일 뒤에", 즉 "그 다음 주일에" 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의 제1항 및 제2항에서의 표현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즉 이미 위의 제1-9항에서 자세하게 말씀드린 음력에 있어서의 기산일을 사용하여, 한 주일이라는 기간을 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
이번의 글에서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음력에 있어 어떤 특정 기간에 대한 날짜를 셀 때에 적용되고 있는 개념(concept)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특정 기간을 나타니는 표현에 대하여 언어(language)만으로 혹은 문법(grammar)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어리석은 생각일 것입니다.
 
12.
12-1. "주님의 날(Lord's Day, 즉 주일)", 즉 "일요일(Sunday)", 즉 "제8번째 날(the eighth day)", 즉 "여드레"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의 가르침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일이 왜 의무적으로 미사 참례를 하여야 하는 날인지에 대하여 쉽게 가르치고 있는 매우 좋은 글이기에, 바쁘지 않으신 분들께 필독을 권합니다.
 
12-2. 여기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본문 중에, "한 주일(a week = 7 days)이 되는 날"을 뜻하는, "여드레"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절들 모두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2-3. 여기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신약 본문 중에, "한 주일(a week = 7 days)이 되는 날"을 뜻하는, "여드레"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절들 모두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려, 만 7일간의 기간을 음력 기산일을 기준으로 하여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7일간의 첫날(주일, 주님의 날, 일요일),  
이튿날,
사흗날,
나흗날,
닷샛날,
엿샛날,
이렛날(유다인들의 안식일)
여드렛 날(주일, 주님의 날, 일요일) = 이어지는 7일간의 첫날.
.
.
.
 
참고: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분명히 양력 달력에도 불구하고, 한 주일의 시작일이 일요일(Sunday)로 양력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음력 기산일에 따라 일요일(주님의 날, 주일)로 불리는 날이 한 주일의 첫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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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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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요 며칠 사이에 제가 바빠서 주신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을 구체적으로 드리지 못하였는데, 주신 질문들 아래에, <----- 표시와 함께, 답변들을 아래에 붙였습니다.
 
요한 복음서 제1-2장에 국한된 부분에서 언급된 사건의 진행 시기들에 대한 질문들이기에, 나름대로 유의미한 질문들이라는 생각입니다.
 
위의 제1-9항에서 말씀드린 음력의 기산일과 관련된 성경 본문의 날짜/기간 표기들의 궁금증들을 이해하는 데에 또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 복음서 제1장에서

하느님의 어린양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기산일 시작일] (요한 복음서 1,19-28, 즉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증언한 바로 그날) 다음의 자료들에 의하면, 여기서 "이튿날" 로 번역한 표현의 그리스어 사본의 표현을 글자 그대로 영어로 번역을 하면 "on the morrow", 즉, "the next day", 즉 "그 다음 날" 이라고 합니다:
 
 
(필독 권유)
 
따라서, 요한 복음서 제1장의 "이튿날"로 번역된 표현이 있는 절들에 있어 사실은 음력의 기산일로부터 날짜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요한 복음서 1,29; 1,35; 1,43 에서 우리말로 "이튿날" 로 번역된 표현은 "그 다음 날"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번역오류).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우리말 번역 시에, 음력에서 날짜/기간을 헤아릴 때에 사용하는 표현인 "이튿날" 이라는 고유의 표현 대신에, 그냥 그리스어 사본에 충실하게, "그 다음 날"(the next day, 즉 on the morrow)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날"이라는 표현은 음력 기산일로부터 날짜를 헤아리는 것이 아니나, 그러나 음력에 있어 "이튿날" 이라는 표현은 음력 기산일로부터 날짜를 헤아릴 때에 사용하는 고유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용어의 사용에 있어, 이 차이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께서는 위의 본글을 차분히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참고: 만약에 새 번역 성경의 요한 복음서 1,29; 1,35; 1,43 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튿날" 이라는 표현이 글자 그대로 정확하게 우리말로 직역 번역된 표현이라면, 동일한 음력 기산일로부터 이튿날에 세 개의 사건들이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나,
 
그러나 그리스어 사본에 "그 다음 날(on the morrow, the next day)" 에 해당하는 표현이 세 번에 걸쳐 이어져 사용되고 있으므로, 세 개의 사건들이 이어지는 3일에 걸쳐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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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제자들
35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 이튿날 = 그 다음 날 [제2일째](번역오류).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 [제3일째]
 
43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 이튿날 = 그 다음 날 [제4일째](번역오류).

요한 복음서 제2장에서

카나의 혼인 잔치
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 이 절에서, "사흗날" 이 아니고, "사흘째 되는 날" 이라고 명기하였으므로, 이 날은, 위의 제4일째 되던 날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즉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증언하였던 바로 그날[즉, 기산일인 첫 번째 날]요한 복음서 1,29로부터 음력으로 "한 주일이 되는 날" 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위의 참고 자료 2에 주어져 있습니다.
 
 
참고: 공동번역 성서 요한복음서 2,1은 다음과 같은데,
 
1 이런 일이 있은지 사흘 째 되던 날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인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그러나 여기서 "이런 일이 있은지" 라는 표현은 새 번역 성경에서 삭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확인한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에서도(가톨릭용인 DRB, RSV, NAB 포함) "이런 일이 있은지" 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요한 복음서 2,1에 있지 않습니다.  
 
 
 
 
작성자    번  호   4879
 
작성일   2011-02-27 오전 9:03:09 조회수   69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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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태 ( (2011/03/01) : + 찬미 예수님! 주신 질문들에 대한 저의 답변 및 음력의 기산일에 대한 글인 위의 제4885번 글을 참고하십시오.
 
 ㄱㅈㅇ ( (2011/03/03) : 요한복음에서의 날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한날로부터 갑니다. 그렇게해서 이튿날은 그 다음날이니 2일째이지요. 다음은 3일 째이고요. 그다음은 4일째랍니다. 이로부테 사흘째이니 7일이 됩니다. 7  
 
 ㄱㅈㅇ ( (2011/03/03) : 7~~~~요한 복음사가는 7이란 완전수룰 인용합니다. 창세기에서도 7일째는 쉬십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표징으로 나타나는 기적사화도 7가지 이지요~~~ 좋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시길 빕니다.~~~살롬~~~  
 
   
 
소순태 ( (2011/03/03) : + 찬미 예수님! ㄱㅈㅇ 형제님의 한줄답변들을 읽고 더 타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자료를 찾아 보았더니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요한 복음서 1,29; 1,35; 1,43에서 우리말로 "이튿날" 로 번역된 표현의 그리스어 단어를, 다음에 있는, 일부 영어 성경들에서 또한 "on the morrow", 즉 "그 다음 날"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http://bible.cc/john/1-35.htm
 
소순태 ( (2011/03/03) : 그래서 혹시 새 번역 성경에서 "이튿날" 로 번역한 그리스어 표현이 "on the morrow"라는 자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좀 더 찾아보았더니, 다음의 자료에 의하면, 그러하다고 합니다: http://www.agapebiblestudy.com/John_Gospel/Chapter%202.htm
 
소순태 ( (2011/03/03) : 사실이 이러하다면, 요한 복음서 1,29; 1,35; 1,43에서 우리말로 "이튿날" 로 번역된 표현은 "그 다음 날"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번역오류). 우리말 번역 시에, 음력에서 날짜/기간을 헤아릴 때에 사용하는 표현인 "이튿날" 이라는 표현 대신에, 그냥 그리스어 사본에 충실하게, "그 다음 날"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한 번 더 살펴보도록 좋은 한줄답변들을 주신 ㄱㅈㅇ 형제님께 감사드리며, 지금 말씀드린 자료들에 근거하여, 제가 올린 답글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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