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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이신 하느님의 성성(Sanctity, 聖性/聖德)에 대하여 [교리용어_성성] [_거룩함] [_영광] [성경용어_거룩함] divine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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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2/2 [175.115.208.*]

2011-05-02 ㅣ No.1045

 
+ 찬미 예수님
 
 
게시자 주:
 
1. 하느님의 영광(the glory of God)을 위한 첫 번째 사건은? 에 대한 답변은 아래의 제2항에 있습니다.
 
2.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영광(光榮)"이라는 단어의 설명입니다. 이 국어사전적 정의(definition)에 근거하여, 성경,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교회의 핵심 문헌들의 본문에 수 없이 등장하는, 따라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영광(glory, 光榮)이라는 단어의 신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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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영광
 
명사
  •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1) ≒광영(光榮)ㆍ영요01(榮耀).
    영광으로 생각하다/영광의 그날까지 정진하다/승리의 영광을 차지하다/이렇게 만나게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오늘의 영광을 여러분에게 돌리고자 합니다./우리는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그분들이 어째서 이처럼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지, 나는 며칠을 두고 생각하여 보았었다.≪이희승, 먹추의 말참견≫
영광-되다(榮光--)  [--되-/--뒈-]
형용사
    ((주로 ‘영광된’ 꼴로 쓰여))
  •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를 느낄 만하다.($2)
    영광된 날들/영광된 자리/영광된 조국을 건설하다/영광된 졸업을 축하하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영광된 일이고 또한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다./여느 아버지들과는 달리, 황제에게 있어서 정 처사는 영광된 삶의 지표를 설정해 주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삶 자체를 함께 살아 준 사람이었다.≪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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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표준국어대사전 오류) 표준국어대사전"영예"라는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가 "영광스러운 명예"로 주어져 있고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영광스럽다"의 의미/정의(definition)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를 느낄 듯 하다"이므로,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영광"의 의미/정의(definition)는 "빛나고 아름다운 영광스러운 명예", 즉, "빛나고 아름다운 빛나고 아름다운 영광을 느낄 듯 한 명예"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기술은, 왜냐하면 "영광"이라는 단어의 의미/정의(definition)를 설명하는 과정에 또한 "영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논리적 악순환(vicious-circle/vicious-cycle)에 해당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2) 게시자 주: 여기에도, 바로 위의 (*1) 게시자 주에저 지적한 바와 동일한 논리적 악순환(vicious-circle/vicious-cycle)이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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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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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1: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 이어지는 글이며,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44.htm <----- 필독 권고

 

본글에 이어지는 글들인,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글들도 또한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1 끝)

[이상, 2019년 11월 5일자 내용 추가 끝]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매우 유감스럽게도,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 대사전 등에도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영광(glory, 光榮)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은 주어져 있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마련하여 올려드리는 이 글이, 영광(glory, 光榮)이라는 단어의 교의 신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국어사전, 국어문법을 잣대로 성경공부, 교리학습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신념(belief)인지를 또한 여러분들께 입증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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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grammar) 이전에 언어가 있고,
언어(language) 이전에 개념이 있으며,
개념(concept) 이전에 하느님께서 계신다.
 
따라서

세월따라 변하는 문법만으로 언어, 개념, 혹은 하느님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언어만으로 개념 혹은 하느님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개념만으로 하느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교만에 근거한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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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영광 - 용어 정의(definition) 외" 제목의 글에서

우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09항에 주어진 다음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하였습니다:

영광(glory)

창조와 역사에 있어 당신의 거룩함으로부터 드러내어지는 바를, 성경은 "영광(glory)", 즉 당신 엄위의 광채 라고 부른다(CCC 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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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0월 9일]
2-0.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줄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 II, 연중 제28주일, 제2독서(필리피 4,12-14.19-20), 제19절의 해설에서 발췌한 바이다:

(발췌 시작)
영광(glory)은 유일한 신성의 힘 및 유일한 신성의 현존(the divine power and presence)을 말하며, [영광은] 인간(human-beings)들을 하느님 고유의 비슷함(God’s own likeness) 쪽으로 형체(shape) 혹은 형상(form)에 있어 바꾸는(transformation)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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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i) 여기서 ‘영광’(glor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와 그 고유한 역할이 기술되고 있다. 그리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변화'(變化, change), '변성(變成)함'/'성위(成為)함'(becoming) 등의 의미와 유관 개념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4.htm

(2) 영어로 ‘glorious’로 번역되는 형용사는, 성경 본문 혹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등의 문맥 안에서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고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광을 발하는’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광’(glory)이라는 용어와 이 용어의 ‘영광을 발한다’(glorious) 등의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 및 올바른 우리말 번역들은, 본 해설서의 연중 제13주일 제2독서 중의 로마서 6,4의 각주에 안내된 글들에서 다루고 있으니 꼭 학습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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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상, 2020년 10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2-3.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09항에서 가르치고 있는 "영광(glory)"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CCC 2809 The holiness of God is the inaccessible center of his eternal mystery.
What is revealed of it in creation and history, Scripture calls "glory," the radiance of his majesty. In making man in his image and likeness, God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but by sinning, man fell "short of the glory of God." From that time on, God was to manifest his holiness by revealing and giving his name, in order to restore man to the image of his Creator.

(졸번역)
CCC 2809 하느님의 거룩함[holiness, 성성(sanctity, 聖性)]은, 접근, 도달 할 수 없는, 당신의 영원한 신비의 중심에 있다. 창조와 역사에 있어 당신의 거룩함으로부터 드러내어지는 바를, 성경은 "영광(glory)", 즉 당신 엄위의 광채 라고 부른다. 당신의 모습 및 비슷함으로(창세 1,26) 사람을 만드심에 있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영광과 명예의 관을 씌우셨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써, 사람은 "이 하느님의 영광(the glory of God, gloria Dei)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그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창조주이신 당신의 모습으로(콜로 3,10) 사람을 회복하게 하고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제시하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기로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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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vatican.va/chinese/ccc/ccc_zh-t-2759.pdf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759-2865항 전문)
 
2809. 天主的聖德是永恆奧秘不可接近的核心由之顯示在創造和歷史中的,聖經稱之光榮、天主尊威的光耀。天主「照自己的肖象,按自己的模樣」造人(創1:26),又以「光榮給他作冠冕」(詠8:6)。可是人犯罪,「失掉了天主的光榮」(羅3:23)。 從此以後,天主就以啟示和賜給世人祂名字的做法,來顯示祂的神聖性,為使人能「照創造他者的肖象」而更新(哥3:10)。
 
참고: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위의 졸번역과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2809 하느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영원한 신비의 다가갈 수 없는 중심이다. 이 신비 가운데 창조계와 역사 안에서 드러난 것을 성경은 ‘영광’, 엄위하신 하느님의 광채라고 하였다. 58) 하느님께서는“당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창세 1,26)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다. 59)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60) 그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콜로 3,10) 새로워지도록,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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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시편 111(110),9; 루카 1,49 참조.
58. 시편 8; 이사 6,3 참조.
59. 시편 8,6 참조.
60. 로마 3,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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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영광(glory)" 이라는 단어의 정의(definition)를 내리고 있는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809항의 바로 직전 항인,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08항에 있는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지적은, 일반적으로 우리말 번역 표현에 있어서 대부분 놓치고 있는 듯한, 구라파 언어 표현의 이미 표준화된 논리 구조에 대한 글이므로,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또한 읽으실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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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따라서, 우리는 "영광(glory)"이, 하나의 현실태(an actuality)로서, 창조 및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본질(essence)인 하느님의 거룩함(holiness, 성성, Sanctity, 聖性) 의 드러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0월 9일]
2-0.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줄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 II, 연중 제28주일, 제2독서(필리피 4,12-14.19-20), 제19절의 해설에서 발췌한 바이다:

(발췌 시작)
영광(glory)은 유일한 신성의 힘 및 유일한 신성의 현존(the divine power and presence)을 말하며, [영광은] 인간(human-beings)들을 하느님 고유의 비슷함(God’s own likeness) 쪽으로 형체(shape) 혹은 형상(form)에 있어 바꾸는(transformation)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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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i) 여기서 ‘영광’(glor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와 그 고유한 역할이 기술되고 있다. 그리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변화'(變化, change), '변성(變成)함'/'성위(成為)함'(becoming) 등의 의미와 유관 개념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4.htm

(2) 영어로 ‘glorious’로 번역되는 형용사는, 성경 본문 혹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등의 문맥 안에서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고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광을 발하는’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광’(glory)이라는 용어와 이 용어의 ‘영광을 발한다’(glorious) 등의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 및 올바른 우리말 번역들은, 본 해설서의 연중 제13주일 제2독서 중의 로마서 6,4의 각주에 안내된 글들에서 다루고 있으니 꼭 학습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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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상, 2020년 10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2-1. 예를 들어,
 
 
이 드러남의 첫 번째 사건, 예제(example)가,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천지창조이라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93-294항의 가르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III.“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293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118) 이것은 성경과 성전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찬미하는 진리이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시기 위해서이다.” 119) 하느님께는 당신의 사랑과 선하심 이외에 창조를 위한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쇠가 만물을 창조할 손을 열었다.” 120) 그리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신의 선하심으로, 그리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유일하신 참하느님께서는, 당
     신의 행복을 더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당신의 완전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아니
     라, 당신의 창조물들에게 부여하신 선을 통하여 당신의 완전함을 드러내
     시기 위하여, 가장 자유로운 계획 안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한처음에, 유
     형무형의 피조물 하나하나를 무에서 창조하셨다. 121)
 
294 이렇게 당신 선하심을 드러내고 나누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며, 이를 위하여 세상이 창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에페 1,5`-`6) .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살아 있는 인간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창조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가 벌써 지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게 생명을 주시는데, 하물며‘말씀’을 통한 성부의 드러나심이야 하느님을 뵙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생명을 주는 일이 되겠습니까.” 122)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만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서 마침내‘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 (1코린 15,28) 이 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동시에 우리의 행복을 돌보시는 것이다.”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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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하느님의 아드님」 ,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에 대하여, 제5조: DS 3025.
119. 성 보나벤투라, 「제2명제집」 , dist. 1, p. 2, a. 2, q. 1, concl: Opera omnia, 2권(클라라 아쿠아, 1885), 44면.
120. 성 토마스 데 아퀴노, 「명제집 주해」 , 서문: Opera omnia, 8권(파리, 1873), 2면.
121.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하느님의 아드님」 , 제1장: DS 3002.
122. 성 이레네오, 「이단 반박」 , 4, 20, 7: SC 100, 648(PG 7, 1037).
123. 선교 교령, 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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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THE WORLD WAS CREATED FOR THE GLORY OF GOD"
III. "이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CCC 293 Scripture and Tradition never cease to teach and celebrate this fundamental truth: "The world was made for the glory of God."134 St. Bonaventure explains that God created all things "not to increase his glory, but to show it forth and to communicate it",135 for God has no other reason for creating than his love and goodness: "Creatures came into existence when the key of love opened his hand."136 The First Vatican Council explains:
 
This one, true God, of his own goodness and "almighty power", not for increasing his own beatitude, nor for attaining his perfection, but in order to manifest this perfection through the benefits which he bestows on creatures, with absolute freedom of counsel "and from the beginning of time, made out of nothing both orders of creatures, the spiritual and the corporeal. . ."137
 
(졸번역)
CCC 293 성경(Scripture)과 성전(Tradition)은 다음과 같은 근본 진리(fundamental Truth)를 가르치고 경축하는 것을 결코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the glory of God)을 위하여 창조되었다.”성 보나벤뚜라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증대시키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이 영광을 밖으로 나타내어 그리하여 이것을 나누어 주시고자(communicate)" 만물들을 창조하셨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선함(goodness) 이외에 창조 행위을 위한 다른 이유를 전혀 가지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물들은 사랑의 열쇠(the key of love)가 당신의 손을 열었을 때에 비로소 존재(existence)로 나타났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당신 고유의 선함(goodness)과 "전능하신 힘"을 지니신 바로 이 한 분이신, 참 하느님께서는, 당신 고유의 지복(beatitude)을 증대시키기 위하여서도 아니고, 당신의 완미(perfection)를 얻기 위하여서도 아니고, 당신께서 창조물들에게 베푸신 혜택들을 통하여 바로 이 완미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계획의 절대적 자유로우심과 함께 "한처음에, 무로부터 영적인 및 형이하학적 창조물들 둘 다에 있어서의 순서(orders)들을 ..." 만드셨다.
 
CCC 294 The glory of God consists in the realization of this manifestation and communication of his goodness, for which the world was created. God made us "to be his sons through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purpose of his will, to the praise of his glorious grace",138 for "the glory of God is man fully alive; moreover man's life is the vision of God: if God's revelation through creation has already obtained life for all the beings that dwell on earth, how much more will the Word's manifestation of the Father obtain life for those who see God."139 The ultimate purpose of creation is that God "who is the creator of all things may at last become "all in all", thus simultaneously assuring his own glory and our beatitude."140
 
(졸번역)
CCC 294 하느님의 영광(the glory of God) 당신의 선함(goodness)의 바로 이러한 나타남(manifestation) 및 나누어 줌(communication)의 실현(realization)을 그 주된 내용으로서 가지는데(consists in), 이 실현을 위하여 세상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의 은총에 대한 찬미를 하고자 하는, 당신 뜻의 목표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아들들이 되도록" 우리를 만드셨는데(에페 1,5`-`6), 이는 다음과 같이 "하느님의 영광(the glory of God)은 사람(man)이 충만하게 살아있는(alive) 것이며,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의 살아있음/생명(life)은 하느님을 뵈옴(the vision of God)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를 통한 하느님의 드러내심(revelation)이 땅에 사는 모든 존재들을 위하여 생명을 이미 얻게 하였다면, 거룩한 말씀(the Word)에 의한 성부의 나타나심(manifestation)은 당신을 뵙는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장차 얻게 할 것일까요." 창조의 궁극적인 목표는 "만물들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최종적으로  "모든 것 안에 모든 것"(1코린 15,28)이 되시어, 그 결과 당신 고유의 영광과 우리의 지복(참행복)을 동시에 확증하시고자 함에 있다."
 
(이상, 발췌 끝).
  
참고: 위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번역문들과 저의 졸번역문들을 비교/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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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글에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본질인 당신의 성성(Sanctity, 聖性), 즉 거룩하심(Holiness)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들에 대하여 함께 읽고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3-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주어진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성성(Snactity, 聖性)"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SANCTITY
성성(聖性)

In an absolute sense, the Divinity. The sanctity of God is his total transcendence or total otherness. It is in this sense that the Church prays in the Gloria of the Mass, "You alone are the Holy One, you alone are the Lord, you alone are the Most High." All other sanctity is by participation, so that a creature has as much sanctity as it shares in the Divinity. Essentially it consists in the possession of sanctifying grace, although the term is usually applied to persons who practice more than odinary virtue, especially the love of God and their neighbor.
 
절대적인 의미에 있어, 유일한 신성(the Divinity)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성성(聖性)은 당신의 전적인 초월성(total transcendence) 혹은 전적인 다름(total otherness) 말합니다. 교회가 미사 중의 대 영광송(Gloria)에서,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You alone are the Holy One, you alone are the Lord, you alone are the Most High)" 이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입니다. 모든 다른 성성(聖性)은 참여에 의한 것이며, 그 결과 피조물은 이 유일한 신성에 그것이 참여하는 정도까지의 성성(聖性)을 가집니다. 본질적으로 이 참여에 의한 성성(聖性)은, 비록 이 용어가 보통 통상적인 덕(virtue)보다 더한 바를, 특별히 하느님과 자신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적용되고 있기는 하나, 성화 은총(the sanctifying grace)의 소유를 주된 내용으로서 가집니다(consists in).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2. 다음은,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성성(Sanctity)"에 대한 설명에서, 특히 구약 성경에 있어서의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성성(聖性)"에 대한 설명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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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성서학적 고찰] 
1. 구약에서 : 우리말‘거룩함’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카도쉬(qados)이다. 카도쉬의 어근 qds는 본래 ‘분리‘, ‘격리’의 뜻을 지닌다. 같은 셈족어인 베니게어(Phenician)에서도 qds는 ‘거룩함’을 뜻하며 거기서 파생된 mqds는 ‘성소’를 가리킨다. 아시리아어(Assyrian) Kadasu는 ‘정결’을 Kadistu는 이스타르 신에게 성전노예(hierodule)를 가리킨다. 아랍어와 이디오피아에서도 qds는 히브리어와 같은 뜻을 지닌다. 시라아어 qades는 ‘신에게 바쳐진’, ‘인정하게 된’을 뜻한다. 여기서 파생된 아랍어 케다샤(qedasa)는 ‘귀고리’, 혹은 ‘코고리’를 뜻한다. 본래 그러한 ‘고리’는 신성한 것이었다. 구약에서 ‘거룩’함이라고 하는 속성이 부여되거나 관련되어 언급된 대상은 주로 하느님, 시간, 사람, 장소 및 기타 사물들이다.
 
① 하느님의 거룩함 : 거룩함이란 개념은 일차적으로 하느님과의 관련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사람과는 구별되고, 사람과는 격리되어 있는 분, 그러기에 거룩한 분으로 언급되어 있다.

현현(theophany)과 관련된 이사야는 우치야 왕이 죽던 해에 야훼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야훼의 보좌 주변에서 스랍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외친 내용이 바로 야훼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이사 6:3). 여기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구나. 입들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여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이사 6:5)에서, 즉 하느님을 뵙는 자는 죽음을 각오한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에 대한 예언자의 인식을 본다. 하느님께 대한 묘사로서의 ‘거룩한 분’은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라는 표현과 평행을 이루어 쓰이기도 한다(시편 22:3, 이사 57:15). 거룩함’‘두려움’(nora)이 곧 하느님의 이름이다(시편 99:3, 111:9).
 
㉯ 인간의 결함, 분순 및 죄와는 완전히 격리된, E문서 기자는 인간이 지닌 결함, 불손 및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섬길 수 없게까지 한다고 말한다(여호 24:19). 즉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하느님의 거룩과 인간의 죄 사이에는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양자를 관계 맺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거룩한 분의 임재 앞에는 아무(것)도 거룩하게 되지 아니한 상태로는 나타날 수 없다(1사무 6:20). 거룩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 분과 관계를 가질 사람이 거룩해지는 길 뿐이다(레위 11:44-45, 19:2, 20:26, 21:8). “나 야훼 너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
 
하느님의 칭호. 주로 이사야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gedos yisrael)’으로 불린다(이사 1:4, 5:19-24, 10:20, 12:6, 17:7, 29:19, 30:11·12·15, 31:1). 제2 이사야에게서도 이런 표현은 계속 나타난다(이사 41:14·16·20, 43:3·14, 30:11, 47:4, 48:7, 54:5, 55:5, 60:9·14). 예레미야(50:29, 51:5)와 시편(71:22, 78:41, 89:19)에서도 이런 표현을 볼 수 있다. 달리, ‘야곱의 거룩하신 이(qedos yaaqob)’(이사 29:33), ‘그(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qedoso)’(이사 10:17, 49:7), ‘너희의 거룩한 자(qedosekem)’(이사 43:15) 등으로도 나온다.
 
② 시간의 거룩함 : ‘거룩함’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카도쉬가 구약 안에서 적용된 최초의 예가 ‘시간의 거룩’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 쉬시고 이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창세 2:3). 안식의 ‘시간’(안식일)이 복받고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조에 관한 기록에는 공간 속의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거룩하다’는 특성을 부여한 것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 다만 ‘거룩하다’는 최초의 적용이 ‘시간의 거룩함’, 그 중에서도 노동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의 거룩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간에 대한 성화(聖化)는 느헤미먀에게서도 볼 수 있다(느헤 8:9·10·11). 이사야도 안식일을 ‘야훼의 거룩한 날’(이사 58:13)이라고 한다.
 
③ 사람의 거룩함 : 시간 다음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것은 개인으로서나 단체로서의 사람이다.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출애 19:6). 백성 전체가, 한 나라 전체가 거룩하다는 속성을 부여받는다(신명 7:6, 14:2·21, 26:19, 28:9). 이것은 다른 나라, 다른 백성과의 구별이다. 백성 사이에서도 사제들(레위 21:7·8, 민수 16:5·7), 아론(시편 106:16), 레위인들(2역대 35:3), 예언자(2열왕 4:9), 나실인들(민수 6:5·8)이 또 달리 거룩하게 구별된다.
 
④ 장소와 사물의 거룩함 : 거룩한 장소로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성막과 그 안의 기구들이다.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민수 7:1) 성막의 신성함은 오경의 여려 곳에 언급되어 있다(출애 29:31, 레위 6:9·19·20, 7:6, 10:13, 16:24). 그밖에 예루살렘(전도 8:10), 사제들의 거실들(에제 42:13), 이스라엘 진(신명 23:15)도 거룩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 밖에도 거룩한 물(민수 5:17), 거룩한 천사(시편 89:6·8, 욥기 5:1, 15:15, 즈가 14:5, 다니 8:13) 등에 관한 언급들도 보인다.
 
이상에서 보듯이 거룩한 시간, 사람, 장소, 사물등은 모두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거룩한 것이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속성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질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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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다음은 "주석 성경"의 레위기 입문에 주어진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성성(聖性)에 대한 설명입니다(제227-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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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성성(聖性) 
 
   성성 또는 거룩함 레위기만이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에게서 성성은 종교 의식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개념으로서의 정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성은 근본적으로 초월하시는 하느님, 절대적으로 다르시고 비교될 수 없으며 파악될 수 없는 하느님, 인간으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절대 타자(他者)이신 하느님의 불가사의한 모든 신비를 가리킨다. 그래서 주님께서 거룩하시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도덕적인 본질을 규정하기보다는, 그분께서 인간이 인식하거나 상상하는 모든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분이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초월적인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께 접근하도록 허락하신다(레위 23장). 이것은 그분의 성성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인간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알게 해 주시고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레위 19장).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성을 떨치시면서, 인간이 당신의 그 성성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9,2).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면서 이 백성이 다른 백성들과는 다르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거룩하신 당신과 통교를 이룰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 놓으시고 구별하시며 다른 백성들과 갈라 놓으신다. 하느님의 이 선택은 이스라엘이 수행해야 하는 도덕적인 의무를 끌어들인다. 이 의무는 선택된 백성이 지니게 된 성성의 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이 백성이 하느님과 이루는 생명의 통교 안에 머물고 이를 통해서 다른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성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성화시켜 준다.
 
   그런데 거룩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표현하는 모든 것 또한 거룩하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영역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는데도 세속적인 행동을 삼가야 하는 사제들이 우선 거룩한 존재이다(레위 21-22장).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성별된 날로서 세속적인 일을 멈추어야 하는 주님의 날, 곧 안식일같은 시간과(탈출 20,8-11), 세속적인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성소와 같은 장소(사도 21,28; 히브 9,7-8), 또한 세속적인 용도로는 쓸 수 없고 오직 성별 의식에먄 사용할 수 있는 성유와 같은 물건도 거룩한 것이다(탈출 30,23-33).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성이라는 개념은 세 가지 근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곧, 모든 속된 것으로부터의 분리, 하느님과 통교를 이루기 위한 성별,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그분께 봉사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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