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객관적 구속과 주관적 구속에 대하여 [용어] [교리학습_구속교리] [성경공부] 112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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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0 ㅣ No.1122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1월 14일]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2.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이상, 2021년 11월 14일자 내용 추가 끝] 

 
질문:

창세기3장15절 ; "네 후손과 그여자의 후손 사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이 구절은 원시복음 이라고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이 시기에 결국 인간이 타락의 길로 들어서 신약 부분에서 예수님을 출현 시켜 모든 인간을 구원할 것임을 예언? 하셨다고 배웠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구약의 인간들은 어찌 어찌 했던 결국 반드시 타락했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왜냐하면 신약에서 예수님은 반드시  등장 출연이  되었어야 하니까요.


구약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각본대로 산것 아닌가요?


우리는 하느님의 각본 시나리오에 맞추어 살아 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영세를 받은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하느님의 계획이 있어서라는 말을 들은것 같거든요.


(잘못된 조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톨릭 교리에 엄청 반하는 생각인줄은 알지만 머리속에서 떠나지가 않아서요  답변은 뻔한 방향인건 알지만   어떤 식으로든 잘 납득이 되어서 저도 님과 같은 방향으로 맘이 향하고 싶네요  발끈 하지 마시고 좋은 조언 부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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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찬미 예수님


1.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신 바(구약 성경 포함)를 두고서 "객관적 구속(objective redemption)"이라고 말하며, 이미 잘 알려진 바로 이 "객관적 구속"에 참여해야 하는 바를 두고서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이라고 말합니다.


즉,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업을 통하여 공적 계시를 다 드러내시어 우리의 구속을 위한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이를 두고서 "객관적 구속(objective redemption)"이라고 부릅니니다. 그리하여 이제 오로지 남은 것은, 우리 각자가 이 객관적 구속에 참여하여야 하는 것인데, 이것을 두고서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이라고 부릅니다.


위의 글을 주신 분께서는 각자의 몫인 "주관적 구속"에 대하여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1-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objective" 라는 형용사 용어에 대한 신학적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5204

OBJECTIVE

What belongs to a thing or is grounded in reality, prior to and independent of the mind's consideration of something. Also called ontological, in contrast with the mental or psychological. Opposite of subjective. Thus objective certitude is founded on reality, and objective morality is based on divinely established standards. (Etym. Latin obiectio, something thrown before or presented to [the mind], from obicere, to throw in the way, present.)


객관적인(OBJECTIVE)


어떤 것(something)에 대한 마음의 고찰 이전에 그리고 그것에 독립적인, 한 개의 사물(a thing)에 속하는 바 혹은 실재(reality)에 근거되어 있는 바를 말한다. 또한, 심인적인 혹은 심리적인 것(the mental or psychological)들과 대조적으로, 존재론적(ontological)이라고 불린다. 주관적인(subjective)의 반대말이다. 따라서 객관적 확신(objective certitude)은 실재(reality)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리고 객관적 윤리(objective morality)는 하느님에 의하여 설정된 기준들에 근거하고 있다. [어원: Latin obiectio, something thrown before or presented to [the mind] [마음] 앞에 던져진 혹은 [마음]에 제시된 어떤 것], from obicere, to throw in the way, present.


1-2. 이들 개념들의 적용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 공부 해설서 다해-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16주일 제2독서(콜로새 1,24-28)의 제24절에 대한 해설 및 주석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어가 가능한 분들께서는 특히 주석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1-3. 그리고 이 성경공부 해설서 시리즈의 인터넷 각주로서 또한 제공되고 있는, 다음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홀수해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콜로새 1,24-2,3) 해설을 또한 참고하십시오.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3_mon.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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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코 복음서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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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1월 20일]

게시자 주: 위에서 말하는 "제 십자가"의 의미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제7-3항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4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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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다음은, 콜로새서 1,24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세 개의 항들 전문입니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야 하는, 우리들 각자의 몫인, "주관적 구속"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CCC 307, CCC 618, CCC 1508

(발췌 시작)

307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온 땅을‘지배’ 하고 다스릴 책임을 맡기시어 142) 자유로이 당신의 섭리에 참여할 권한도 주신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창조 활동을 완성하고, 자신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조화를 완성시키는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원인이 되게 하신다.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동, 기도,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계획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143) 이때 인간은“하느님의 협력자” (1코린 3,9) 144) 되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협력하게 된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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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창세 1,26-28 참조.
143. 콜로 1,24 참조.
144. 1테살 3,2 참조.
145. 콜로 4,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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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참여한다

618
십자가 죽음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 502)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강생하신 하느님으로서 당신 위격 안에서“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키셨기” 503) 때문에“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 504)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요구하신다. 505)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기 때문이다. 506)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속량을 위한 당신 희생 제사의 첫 수혜자들인 바로 그들이 당신 희생 제사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507) 속량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비에 그 누구보다도 가장 긴밀히 참여한 분은 바로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508)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는 하나뿐이다. 십자가 이외에, 하늘에 오르는 다른
     사다리는 없다.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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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1티모 2,5 참조.
503. 사목 헌장, 22항.
504. 사목 헌장, 22항 참조.
505. 마태 16,24 참조.
506. 1베드 2,21 참조.
507. 마르 10,39; 요한 21,18-19; 콜로 1,24 참조.
508. 루카 2,35 참조.
509. 한센(P. Hansen), 「놀라운 삶(리마의 성녀 로사)」 (로마, 1664), 1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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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시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지닌 힘을 나타내신다. 116)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모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코린 12,9) 는 것을 배워야 했고, 또 고통을 견뎌 내는 것은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다.” (콜로 1,24) 는 의미가 있음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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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코린 12,9.28.3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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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3.


3-1.

여기를 클릭하면,


"창세기 3,15(원복음)"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들 그리고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학습하실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1월 14일]
3-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객관적 구속"(objective redemption) 및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에 대한,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1995년 10월 7일자로 공개된,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문헌 한 개[제목: 구속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학에 대하여(ON THE THEOLOGY OF GOD THE REDEEMER)]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rc_cti_1995_teologia-redenzione_en.htm <----- 또한 필독 권고  

[이상, 2021년 11월 14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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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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