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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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1-09-21 ㅣ No.2339

어느날 교황님은 하느님의 초상화를 한 점 갖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모든 화가들을 바티칸으로 초청하였다. 교황님은 화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구든지 하느님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내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였다. 화가들은 모두 교황청 안에 있는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각자 하느님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화가들은 수개월 동안 일생일대의 걸작을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느님의 초상화를 각자의 화폭에 표현하였다. 그러나 화가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화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는 붓을 놓은채 가끔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궁리하느라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이 보였지만 그보다 캔버스 앞에서 태평하게 자는 때가 더 많았다. 마침내 화가들이 그린 작품을 심사하는 날이 다가왔다. 화가들은 모두 다소 긴장한 채 각자 자신의 그림 옆에 서서 교황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황님은 넓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심사하였다. 그러나 교황님은 자신을 감동시켜줄 만한 훌륭한 작품을 끝내 발견하지 못하였다. 교황님은 매우 실망하였다. 교황님은 갤러리의 한 쪽 구석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그때 어디선가 심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황님을 수행하던 몇몇 사람이 그 소리에 당황하여 황급히 코고는 소리 쪽으로 달리듯 걸어갔다. 교황님도 천천히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한 노화가가 자신의 캔버스 앞에서 신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캔버스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빈 캔버스 뿐이었다. 수행자들은 너무 어처구니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황님은 아무 것도 그려있지 않은 빈 캔버스를 보시자 무릎을 치며 "바로 이거야"라고 소리쳤다. 수행자들은 더욱 어리둥절하였다. 교황님이 말씀하였다. "이 그림이야말로 완벽한 하느님의 초상화입니다." 교황님을 수행하던 추기경과 주교들은 몰론 모든 화가들이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캔버스 주변으로 몰려왔다. 한 추기경이 교황님을 향해 "교황성하, 캔버스는 비어있는 채로 하느님의 초상화는 전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교황님이 다시 말씀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캔버스의 빈 그림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표현할 수 없는 분이니까요"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혹시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하느님은 아니었나요? 때로는 언제나 내가 필요로 할때 돈을 내놓는 현금인출기로, 혹은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것이 나오는 자동판매기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느님은 이렇게 모든 것을 포함하는 비어있는 캔버스와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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