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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 시성 청원자 6 [최인길 마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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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나 [sanghoo] 쪽지 캡슐

2003-11-20 ㅣ No.4019

 

 

 

6. 최인길 마티아

 

(서울 포도청 1795년 6월 28일 31세)장하치명

 

 

최인길 마티아는 선교사가 입국하면 거처할 집을 마련하는 일은 맡았다.

 

최인길은 1795년 서울 계동 자기 집에 무사히 도착한 주 신부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통역을 맡아 성무 집행에 어려움을 덜어주고 우리말을 가르쳐

 

주었다.

 

 

주 신부가 들어 온지 6개월만에 한영익에 의해 고발되어 6월 27일 은신처인

 

최인길 집이 급습을 당하였지만 강완숙의 기지로 주 신부는 피신할 수가

 

있었다.

 

 

역관인 최인길은 주 신부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문모 신부 행색으로 체포되고 윤유일과 지황도 함께 체포 되었다.

 

그러나 한영익의 대질 심문에서 주 신부가 피신한 것이 발각되자

 

주 신부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아무리 형벌을 가해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고백하였다.

 

다음날 28일에는 포도청 뜰에서 세 사람을 사정없이 때려 숨지게 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 풍덕말에 어농 성지에는 주문모 신부를 모셔 들였던

 

윤유일, 최인길, 지황과 강완숙의 가묘와 윤유일 가문의 순교자들의 가묘가

 

조성 되어있고 주문모 신부와 윤유일 바오로의 동상이 건립 되어있다.

 

 

 

(달레 한국 천주교회 사상권308, 363, 372, 378, 594)

 

(순교는 믿음의 씨앗이되고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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