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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인성(人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free_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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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ㅣ No.1893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3.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그리고 아래의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다산 정약용의 성기호설의 내용출처 및 자구출처 문헌들에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을 위하여, 제공되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2.htm <----- 필독 권고 

 

1. 들어가면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제2-6-1-(v)항을 읽으면 확인할 수 있듯이,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2.htm

(발췌 시작)

2-6-1-(v). "한어대사전"에 주어진 ""과 "本性"의 설명에 의하면, ""은 (i) 속적 인간(generic human being)의 본성(nature), (ii) 개별 인간(particular human being)의 본성(nature), 이들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출처: http://art.tze.cn/Refbook/entry.aspx?bi=m.20080419-m300-w001-041&ei=5EE15FC2740914DF1128406E782648B33F1842273081B0AF6C18773D40100338A335AE25EFFB1750&cult=TW&bv=1

(발췌 시작)

 

    《廣韻》息正切,去勁,心。【1】人的本。[졸번역: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易·繫辭上》:“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也。”{孔穎達}疏:“若能成就此道者,是人之本。”《論語·陽貨》:“相近也,習相遠也。”{劉寶楠}正義:“人相近,而習相遠。”{唐}{韓愈}《原》:“也者,與生俱生也。”{宋}{司馬光}《善惡混辨》:“夫者,人之所受於天以生者也。”【2】泛指天賦,天。[졸번역: 천부(天賦, 선천적으로 타고남), 천성()을 넓게 가리킨다] {宋}{王安石}《上執政書》:“鳥獸﹑魚鼈﹑昆蟲﹑草木,下所以養之,皆各得盡其而不失也。”{清}{惲敬}《<大云山房文稿二集>敘錄》:“是故百家之敝,當折之以六藝;文集之衰,當起之以百家.其高下﹑遠近﹑華質,是又在乎人之所焉。”【3】事物的質或能。[졸번역: 사물의 성질(性質) 혹은 성능()을 말한다]孟子·告子上》:“今夫水,搏而躍之,可使過顙,激而行之,可使在山,是豈水之?”《左傳·昭公二十五年》:“則天之明,因地之,生其六氣,用其五行。”{杜預}注:“高下﹑剛柔,地之也。”《南史·張充傳》:“故金剛水柔,之別也。”{唐}{柳宗元}《種樹郭橐駝傳》:“凡植木之,其本欲舒,其培欲平,其土欲故,其築欲密。”【4】現常用為名詞后綴,表示思想感情﹑生活態度和一定的范疇等。如﹕人民﹐彈﹑歷史事件﹑流行感冒。【5】生命;生機。《左傳·昭公八年》:“今宮室崇侈,民力彫盡,怨讟並作,莫保其。”{杜預}注:“,命也。民不敢自保其命。”《呂氏春秋·本生》:“靡曼皓齒,{鄭}{衛}之音,務以自樂,命之曰伐之斧。”《漢書·公孫賀劉屈氂等傳贊》:“處非其位,行非其道,果隕其,以及厥宗。”{顏師古}注:“,生也。”{宋}{辛棄疾}《滿江紅·漢水東流》詞:“馬革裹屍當自誓,蛾眉伐休重説。”【6】情,脾氣。《國語·周語上》:“先王之於民也,懋正其德,而厚其。”{韋昭}注:“,情也。”《韓非子·觀行》:“{西門豹}之急,故佩韋以自緩。”{晉}{陶潛}《歸園田居》詩:“少無適俗韻,本愛丘山。”《太平廣記》卷三六九引{唐}{薛用弱}《集異記·李楚賓》:“{李楚賓}者,{楚}人也,剛傲,惟以畋獵爲事。”{元}{無名氏}《陳州糶米》第一折:“依著我,則一下打出腦漿來。”{清}{李漁}《奈何天·狡脫》:“他是極怕兇的,待我發起來,他自然會轉去。”【7】指情緒。《初刻拍案驚奇》卷十二:“女子定,{王生}問他備細。”【8】身體;體質。《呂氏春秋·壅塞》:“夫登山而視牛若羊,視羊若豚,牛之不若羊,羊之不若豚。”{高誘}注:“,猶體也。”《史記·留侯世家》:“{留侯}多病,即道引不食穀,杜門不出歳餘。”{三國 魏}{嵇康}《與山巨源絕交書》:“危坐一時,痹不得搖,復多虱,把搔無已。”{宋}{葉適}《辭免除寶謨閣直學士提舉鳳翔府上清太平宮狀》:“而某志行凋落,問學空殫,與年徂,材隨老盡。”【9】姿態。《淮南子·修務訓》:“曼頰皓齒,形夸骨佳,不待脂粉芳澤,而可説者,{西施}﹑{陽文}也。”{高誘}注:“,猶姿也。”【10】別。如:男﹑女﹑雄﹑雌。【11】指與生殖﹑欲有關的。《浙江學刊》1989年第1期:“他反對一切對婦女的奴役﹑迫害﹑玩弄,反對一切愚昧的觀念和殘酷的道德,呼吁以尊重婦女為原則的解放。”如:器官﹑行為。【12】佛教語。指事物的本質。與“相”相對。《大智度論·釋初品中十八空》:“言其體,相言可識……如火,熱是其,煙是其相。”

(이상, 발췌 끝)

 

출처: http://art.tze.cn/Refbook/entry.aspx?bi=m.20080419-m300-w001-038&ei=5EE15FC2740914DF1128406E782648B33F1842273081B0AF72B16F7D9DD97E804FEA13C47E2B5F42&cult=TW&bv=1

(발췌 시작)

本性

 

    【1】固有的性質或個性。[졸번역: 고유한 성질(性質) 혹은 개성(個性)을 말한다]《荀子·性惡》:“然則禮義積僞者﹐豈人之本性也哉!”{南朝} {梁}{劉勰}《文心雕龍·事類》:“夫薑桂同地﹐辛在本性;文章由學﹐能在天資。”{曹禺}《雷雨》第二幕:“可是人家說一句﹐我就要聽一句﹐那是違背我的本性的。”《紅樓夢》第九七回:“這本是他數年的心病﹐一時急怒﹐所以迷了本性。”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6-1-(v): (1) 그런데 커다란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한한대사전" 권5, 제476쪽권6, 1103쪽에 각각 주어진 설명들과, 바로 위의 "한어대사전"에 제시된 설명들을 백 번 이상 읽더라도, 인간(human being)의 경우에 있어, ""과 "本性", 즉, "인성人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한문 문화권" 내에서 지금까지, 이들 용어들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정의되지(define) 못하였던 점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적은, 필자가 처음하는 것이 아니고, 일찌기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저서인 "천주실의"에서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2) 이와는 달리,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 안내되어 있듯이, 인간(human being)의 경우에 있어, ""과 "本性"이, 즉, "인성(人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이 무엇을 반드시 포함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의하고(define) 있습니다. 특히 일찌기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저서인 "천주실의"에서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제2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3.htm <----- 필독 권고

 

(3)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다산 정약용(1762-1836년)"여유당전서", "맹자요의", 권1, 滕文公 第三에서, 소위 말하는, "성기호설"을 제시할 때에 전후 문맥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라는 낱글자의 정의(definition)가 정확하게, (i) 속적 인간(generic human being)의 본성(nature), (ii) 개별 인간(particular human being)의 본성(nature), 이들 둘 중의  어느 것을 말하는지를, 또한 항상 추적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왜나하면,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직접적 체험/경험들에 근거한 유한한 숫자(finite number)의 개별 인간(particular human beings)들의 본성(nature)들로부터 하나의 속적 인간(a generic human being)의 본성(nature)을 도출하는 과정은, 소위 말하는, 귀납적 추론 행위(inductive reasoning)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1-6-(v) 끝)

(이상, 발췌 끝)

 

예상 밖으로, "인성(human natur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한문 문화권"의 문헌들에 주어져 있지 않음을 알게 되어,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1-1. 다음은, 영어본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nature(性, 본성)"에 대한 설명 중에 제시된 "human nature(인성, 人性)"에 대한 서술을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10715a.htm

(발췌 시작)

Nature


자연/본성(nature)

 

Etymologically (Latin natura from nasci, to be born, like the corresponding Greek physis from phyein, to bring forth) has reference to the production of things, and hence generally includes in its connotation the ideas of energy and activity. It will be convenient to reduce to two classes the various meanings of the term nature according as it applies to the natures of individual beings or to nature in general.


어원적으로 [라틴어 natura from nasci, 태어나게 됨, 대응하는 그리스어 단어 physis from phyein 처럼, 바깥으로 낳음/산출함(to bring forth)] [이 단어는] 사물을의 산출에 대한 언급을 가지며(has reference to), 그리하여 그 결과 일반적으로 그 함축(connotation) 안에 에너지(energy)와 활동(activity)를 포함합니다. 이 용어 nature의 다양한 의미들을, 이 용어가 개별 있음(beings)들의 본성(natures)들 쪽으로 혹은 일반적인 자연(nature) 쪽으로 적용되는 데에 따라, 두 개의 부류(classes)들로 환원하는(reduce) 것은 적합할(convenient) 것입니다.


I. In an individual being, especially if its constitutive elements and its activities are manifold and complex, the term nature is sometimes applied to the collection of distinctive features, original or acquired, by which such an individual is characterized and distinguished from others. Thus it may be said it is the nature of one man to be taller, stronger, more intelligent, or more sociable than another. This meaning, however, is superficial; in philosophical terminology and even in ordinary language, nature refers to something deeper and more fundamental. These features are manifestations of a man's nature; they are not his nature. Nature properly signifies that which is primitive and original, or, according to etymology, that which a thing is at birth, as opposed to that which is acquired or added from external sources. But the line that divides the natural from the artificial cannot be drawn with precision. Inorganic beings never change except under the influence of external agencies, and in the same circumstances, their mode of activity is uniform and constant. Organisms present a greater complexity of structure, power of adaptation, and variety of function. For their development out of a primitive germ they require the co-operation of many external factors, yet they have within themselves the principle of activity by which external substances are elaborated and assimilated. In any being the changes due to necessary causes are called natural, whereas those produced by intentional human activity are called artificial. But it is clear that art supposes nature and is but a special adaptation of natural aptitudes, capacities, or activities for certain esthetic or useful purposes. Stars, rivers, forests, are works of nature; parks, canals, gardens, and machines are works of art. If necessary conditions are realized, where the seed falls a plant will grow naturally. But the seed may be placed purposely amid certain surroundings, the growth of the plant may be hastened, its shape altered, and, in general, the result to be expected from natural activities may be modified. By training the aptitudes of an animal are utilized and its instincts adapted for specific ends. In such cases the final result is more or less natural or artificial according to the mode and amount of human intervention.


I. 한 명의 개별 있음(an individual being)에 있어, 특별히 만약에 그 구성 요소들과 그 활동들이 다중의 겹이고 복잦하다면, 본성(nature)라는 용어는, 본래의(original 혹은 습득된(accquired), 눈에 띄는 특징(distinctive features)들의 집합(collection)에 때때로 적용되며, 바로 이 적용에 의하여 그러한 한 개인은 특징지어지고 그리하여 다른 이들로부터 구분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다른 이보다 더 키가 크거나, 더 강하거나, 더 나은 지능을 가졌거나, 혹은 더 사회적이라고 말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의미는 피상적이이며, 그래서 철학 용어에 있어 그리고 심지어 일상의 언어에 있어, 본성(nature)은 더 깊고 더 근본적인 그 무엇(something)에 대한 언급입니다(refers to). [따라서] 이들 특징(features)들은 한 사람의 본성(nature)의 명시/드러남(manifestation)들인 것이지, 그들은 해당자의 본성(nature)이 아닙니다. 본성(nature)은, 외부의 출처들로부터 습득되거나 혹은 추가된 바로 그것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원초적이고(primitive) 그리고 본래의(original) 바로 그것, 혹은, 어원에 따라, 한 사물이 출생 시점에 지니고 있는 바인, 바로 그것을 온당하게 의미합니다(properly signifies). 그러나 본성적인 것들을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나누는 선은 정확하게 그어질 수 없습니다. 비 유기체적 있음(inorganic beings)들은, 외부의 작위자(agencies)들의 영향 아라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결코 변하지 않으며, 그리고 동일한 여건들 안에서, 그들의 활동 양식(mode of activity)은 한결같고(uniform) 그리고 일정합니다(constant). 유기적 조직체(the organisms)들은 구조, 적응력(power of adaptation), 그리고 역할(function)의 다양성에 있어서의 어떤 더 커다란 복잡성(complexity)을 나타냅니다. 어떤, 원초적인, 살아있는 본체(living substance)의 작은 덩어리(germ)로부터인 자신들의 발전(development)을 위하여 그들은 수많은 외부의 요인(external factors)들 사이의 상호-작동(co-operation)을 요구하나, 여전히(yet) 그들은 자기 자신들 안쪽에, 바로 그것에 의하여 외부의 본체(external subtance)들이 동화(同化)되고(elaborated) 그리하여 흡수(吸收)되는(assimilated), 활동의 원리(the principle of activity)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의의 있음(any being)에 있어 필연적 원인(necessary causes)들에 기인하는 변화들은 자연젹(natural)이라고 불리고, 이와는 달리, 의도적인 인간의 활동에 의하여 산출되는 바로 그것들은 인위적(artificial)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기술(art)은 자연(nature)을 가정하며 그리고 다만(but) 본성적 적성(natural aptitudes)들의, 수용력(capabilities)들의, 혹은 구체적인 심미적(esthetic) 혹은 유용한(useful) 목표들을 위한 활동들의, 어떤 특별한 적응(adaptation)일뿐입니다. 별들, 강들, 숲들은 자연(nature)의 일(works)들이며, 그리고 공원들, 운하들, 정원들, 그리고 기계들은 기술(art)의 일들입니다. 만약에 필요하다면 조건들은 실현되며, 씨가 떨어진 곳에서 한 식물이 자연적으로 장차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씨는 구체적인 주변들 사이에 고의로(purposely) 배치될 수도 있으며, 해당 식물의 성장은 촉진될 수도 있고, 그 모습은 변경될 수도 있으며,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연적 활동들로부터 예상되는 결과는 수정될 수도 있습니다. 훈련 행위에 의하여 한 동물의 적성은 활용되고(utilized) 그리고 그 본능들은 특별한 끝(ends)들을 위하여 순응됩니다(adapted). 그러한 경우들에 있어, 최종 결과는, 인간의 개입의 양식(mode)과 양(amount)에 따라, 다소(more or less) 자연적이거나(natural) 혹은 인위적입니다(artificial).


In scholastic philosophy, nature, essence, and substance are closely related terms. Both essence and substance imply a static point of view and refer to constituents or mode of existence, while nature implies a dynamic point of view and refers to innate tendencies. Moreover, substance is opposed to accidents, whereas we may speak of the nature and essence not only of substances but also of accidents like colour, sound, intelligence, and of abstract ideals like virtue or duty. But when applied to the same substantial being, the terms substance, essence, and nature in reality stand only for different aspects of the same thing, and the distinction between them is a mental one. Substance connotes the thing as requiring no support, but as being itself the necessary support of accidents; essence properly denotes the intrinsic constitutive elements by which a thing is what it is and is distinguished from every other; nature denotes the substance or essence considered as the source of activities. "Nature properly speaking is the essence (or substance) of things which have in themselves as such a principle of activity (Aristotle, "Metaphysics", 1015a, 13). By a process of abstraction the mind arises from individual and concrete natures to those of species and genera.


스콜라 철학(scholastic philosophy)에 있어, 본성(nature), 본질(essence), 그리고 본체(substance)가깝게(closely) 관계된(related) 용어들입니다. 본질(essence)과 본체(substance) 둘 다는 어떤 정적인(static) 관점을 의미하고 그리고 구성원(constituents)들 혹은 존재의 양식(the mode of existence)에 대한 언급이나(refer to), 이와는 달리, 본성(nature)은 어떤 동적인(dynamic) 관점을 의미하고 그리고 본유(本有)적/태생적 경향(innate tendencies)들에 대한 언급입니다(refers to). 더구나, 본체(substance)는 부수(accidents, 부수적인 것)들에 반대되나, 이와는 달리, 우리는 본체(substances)들의, 본성(nature)과 본질(essence)에 대하여뿐만이 아니라 또한, 색깔, 소리, 지능(intelligence)과 같은, 부수(accidents)들에 대하여서도, 그리고 덕(virtue) 혹은 임무(duty) 같은 추상적인 관념(abstract ideas)들에 애하여서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본체적 있음에 적용될 때에, 이들 용어들, 본체(substance), 본질(essence), 그리고 본성(nature)은 실제적으로(in reality) 해당 동일한 사물의 서로 다른 양상들을 오로지 나타낼뿐이며, 그리하여 그들 사이의 구분은 어떤 심리적인 구분입니다. 본체(substance)는 아무런 지지(support)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서, 그러나 그 자체로서 부수(accidents)들의 필수적인 지지(support)로서, 사물을 의미하며(connotes), 본질(essence)은, 바로 그것에 의하여 한 사물이 그것이 무엇인지(what it is) 그리고 모든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되는, 내재하는(intrinsic) 구성 요소들을 온당하게(properly) 나타내며, 그리고 본성(nature)은, 활동들의 출처로서 간주되는, 본체(substance) 혹은 본질(essence)을 나타냅니다(denotes). "본성(nature)은, 온당하게 말하여(properly speaking), 원래(in themselves) 활동의 한 원리(a principle of activity) 같은 것을 지니는, 사물들의 본질(essence) [혹은 본체(substance)]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형이상학(Metaphysics)", 1015a, 13]. 추상화(abstraction)의 한 과정에 의하여 마음(the mind)은 개별적이고(individual) 그리고 구체적인(concrete) 본성(natures)들로부터 일어나서(arises from) 종(種, species)들과 류(類)[속(屬), genera)]들 바로 그들 쪽으로 항합니다(to).


A few special remarks must be added concerning human nature. This expression may mean something concrete, more or less different in various individuals, or more generally something common to all men, i.e., the abstract human nature by which mankind as a whole is distinguished from other classes of living beings. In both cases it is conceived as including primitive and fundamental characteristics, and as referring to the source of all activities. Hence nature, as the internal principle of action, is opposed in the first place to violence and coercion which are external principles of action and prevent the normal play of human faculties. It is opposed also, but less strictly, to education and culture which at times may be the checking of natural tendencies, at times also their development and perfection. Education, physical and mental, is not a primitive endowment; it must be acquired and is built upon nature as on its foundation. In this sense habit has been termed a second nature. But although education is due largely to external causes and influences acting on the mind and the organism, from another point of view it is also the unfolding of innate aptitudes, and hence partly natural.

 

인성(human nature)에 관하여 몇 개의 특별한/종적인 주목(special remarks)들이 반드시 추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표현은, 다소간 다양한 개인들에 있어 서로 다른, 혹은 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인 그 무엇(something common to all men)인, 즉, 바로 그것에 의하여 인류(mankind)가 한 개의 전체로서 살아있는 있음(living beings)들로 구성된 다른 부류들로부터 구분되는, 구체적인(concrete) 그 무엇(something)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들 둘 다의 경우들에 있어 그것[즉, 인성]은,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특성들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그리하여 모든 활동들의 원천(the source of all activities)에 대하여 언급하는(referring to) 것으로서, 인지됩니다(is conceived). 따라서, 본성은, 행동의 내면 원리로서(as the internal principle of action), 우선적으로, 행동의 외면의 원리들이고 그리고 인간의 능력(human faculties)들의 정상적인 행함(play)을 방해하는, 폭력(violence)과 강제(coercion)에 반대됩니다. 그것[즉, 인성]은 또한, 그러나 덜 엄밀하게, 때로는 본성적 경향들에 대한 저지 행위(checking)일 수도 있는, 교육(education)과 문화(culture)에, 때로는 또한 그들의 계발(啓發, development)과 완미(perfection)에, 반대됩니다. 신체에 대한 그리고 정신에 대한, 교육(education)은 어떤 원초적인 타고난 재능(endowment)가 아니며, 교육은 반드시 습득되어야 하며 그리고 본성(nature) 위에 그것의 기초로서 쌓아서 올려집니다(is build). 바로 이러한 의미로 습관(habit)은 어떤 두 번째 본성(a second nature)이라고 불리어 왔습니다. 그러나 교육이 마음(the mind)과 유기적 조직체(the organism)에 작용하는 외부적 원인들과 영향들에 크게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점(point of view)에서, 교육(education)은 또한 타고난 적성(innate aptitudes)들의 펼침(unfolding)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부분적으로(partly) 본성적입니다/본성에 기인합니다(natural)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1-2. 다음은, 2012년 1월 24일자 필자의 졸글[제목: 있음(有, being)과 존재(existence)의 차이점에 대하여 [신학대전입문_용어] 969_토미즘학습 [_개념]]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6.htm

(발췌 시작)

2-5.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nature"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n/n041.htm

(발췌 시작)

NATURE

 

The essence of a being considered as the principle of activity. Also the substance of a thing as distinguished from its properties, considered as the source of its operations. Nature is also definable in contrast to its opposites from a variety of viewpoints. In contrast with God, it is the created universe. In contrast with human activity, it is the world considered prior to or independent of the changes produced by human free will. In contrast to the life and operations of divine grace, it is that to which a human person has claim, as creature, as distinct from a share in God’s own life, which is the supernatural. (Etym. Latin natura, the inner principle of a thing’s operations and activity; from nasci, to be born.)

 

본성(本性)/자연(nature)

 

활동(activity)의 원리로서 간주되는(considered), 한 있음(a being)의 본질(本質, essence)을 말합니다. 또한, 그 작동들의 원천으로서 간주되는, 그 성질(properties)들로부터 구분되는 것으로서, 한 사물의 본체(本體, substance)를 말합니다. 본성/자연(本性, nature)은 관점들에 있어서의 갖가지로부터 그 정반대들에 대조적으로 또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대조를 이루어, 이 용어는 창조된 우주(the created universe)를 말합니다. 인간의 활동과 대조를 이루어, 이 용어는 인간의 자유 의지(frew will)에 의하여 산출되는 변화들에 앞서거나 혹은 종속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세상(the world)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은총(divine grace)에 기인하는 생명 및 작동들과 대조를 이루어, 이 용어는, 초자연적인 것인, 하느님 고유의 생명에 대한 한 몫/함께 함(a share)으로부터 구분되는, 그쪽으로, 피조물로서, 한 인격(a human person)이 권리(claim)를 가지는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어원. Latin natura, the inner principle of a thing’s operations and activity; from nasci, to be born.]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2. 

다음은, 위의 제1항에서처럼,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저서인 "천주실의", 권하, 제42쪽에 주어진, "인성(人性, 인간의 본성, human nature)"정의(definition)가 제시된 단락과 그 직전 유관 단락들을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ctext.org/wiki.pl?if=en&chapter=938302#p424

(발췌 시작)

西士曰:吾觀儒書,嘗論性情,而未見定論之訣,故一門之中恆出異說。

 

서양 선비[西士, 즉, 마태오 리치((1552-1610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가 유학의 책들을 살펴보았더니, 성(性, natures)들정(情, passions)들을 논함을 경험하나(嘗) 그러나 최종 결론(定論)이 결정됨을 보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한 개의 학파(一門) 안에서도 이설(異說, 서로 다른 설명)들을 항상 산출하였습니다(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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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예를 들어, 다음은 "한한대사전", 권5, 제478-479쪽에서, 표제어 "性說(성설)" 아래에 제시된 사람의 본성에 관한 "한문 문화권" 내의 대표적인 11개의 설들은 다음과 같다: (i) 맹자(孟子, 기원천 372년경 - 289년경)가 주창한 性善說(성선설)(ii) 순자(荀子, 기원전 315-230년)가 주창한 性惡說(성악설)(iii) 주대(周代)에 세석(世碩), 복자천(伏子賤), 칠조개(漆雕開) 등이 주창하고 한(漢) 왕충(王充, 기원후 27-104년)이 계승한 性有善惡說(성유선악설), (iv) 공손이자(公孫尼子), 고자(告子) 등이 주창한 性無善惡說(성무선악설)(v) 한(漢)의 양웅(揚雄, 기원전 53-기원전 18년) 등이 주창한 性善惡混合說(성선악혼합설),, (vi) 한(漢)의 유향(劉向, 기원전 77년경-기원전 6년)과 후한(後漢) 순열(荀悅, 148-209년) 등이 주창한 性情相應說(성정상응설), (vii) 당(唐)의 이고(李翶, 772-841년)가 주창한 性善情惡說(성선정악설), (viii) 한(漢)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년)와 당(唐)의 한유(韓愈, 768-824년)가 주창한 性三品說(성3품설), (ix) 송(宋)의 장재(張載)가 주창한 本然氣質說(본연기질설), (x) 송(宋)의 정호(程顥, 1020-1070년)가 주창한 性氣一元說(성기1원설), (xi) 송(宋)의 왕안석(王安石, 1021-1086년)이 주창한 性情一元說(성정1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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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事而不知己,知之亦非知也。欲知人性本善耶,先論何謂『』、何謂『善惡』。

 

일/경우(事, cases)들을 알지만 [해당 경우] 자체(己)의 근본(本, origin)을 알지 못하니, 아는 것이 또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人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이 본래부터(本) 선(善, good)함을 알고자 욕망하면(欲, desire), 무엇이 "성/본성(性, nature)"이라고 일컬어지는지, 무엇이 "선 혹은 악(善惡, good or evil )"이라고 일컬어지는 지를 먼저 논하여야 합니다.

 

夫「」也者,非他,乃各物類之本體耳。各物類也,則同類同性,異類異性。曰「」也,則凡在別類理中,即非茲類本性;曰「」也,則凡不在其物之體界內,亦非性也。

 

대체로 헤아려 생각하건데(), "성/본성(性, nature)"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정말로(乃) 다만(耳, only) 각 물류(物類)의  본체(本體, substance)일뿐입니다. [여기서] 각 물류(物類)라고 말하는 것은, 정의(定義)에 의하여(則, by definition), 동일한 류(同類, same species)이면 동일한 성(同性, same nature)을 가지고, 다른 류(異類, different species)들이면 다른 성(異性, different natures)들을 가짐을 말합니다. "본/근본(本, origin)"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의(定義)에 의하여(則, by definition), 무릇 [그것이 자신과] 구별되는 류(類, species)의 이치/원리(理, principles)들 중에 있으면(在), [해당] 류(類)의 본성(本性, 타고난 성) 바로 그것이(茲) 아님을 말합니다. "체(體)"라고 말하는 것은, 정의(定義)에 의하여(則, by definition), 무릇 해당 물(物, thing)의 체의 경계(體界) 안에 있지 않으면, 또한 성(性, nature)을 가지지 않음을 말합니다.

 

但物有自立者,而性亦為自立;有依賴者,而性兼為依賴。可愛可欲謂,可惡可疾謂也。通此義者,可以論人性之善否矣。

 

다만(但) 물(thing)이 자립(自立, independence)[의 상태]에 있는 자이면, 그래야 비로소(而, and then) [해당 물의] 성(性, nature)도 또한 자립(自立, independence)이 되고, [오로지 해당 물이] 의뢰(依賴, depencende)[의 상태]에 있는 자이면, 그래야 비로소(而, and then) [해당 물의] 성(性, nature) 또한 의뢰(依賴, depencende)가 됩니다. 가히 사랑할 만 하다(可愛, lovable), 가히 욕구할 만 하다(可欲, desirable) 함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선(善, good)이라고 일컬어지고, 가히 미워할 만 하다(可惡, abhorrent, detestable), 가히 고통받을 만 하다(可疾, sufferable) 함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악(惡, evil)이라고 일컬어집니다.

 

通此義者,可以論人性之善否矣。

 

이들 뜻/정의(義, definition)들을 통달한 자들은, 가히 이에 근거하여 인성(人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의 선함과 그렇지 않음(善否, good or non-good)을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可以, can).

 

西儒說「人」云,是乃『生覺者』、能推論理也。曰生,以別於金石;曰覺,以異於草木;曰能推論理,以殊乎鳥獸;曰推論不直, 曰明達,又以分之乎鬼神。鬼神者,徹盡物理如照如視,不待推論;人也者,以其前推明其後,以其顯驗其隱,以其既曉, 及其所未曉也。故曰能推論理者, 立人於本類,而別其體於他物,乃所謂人性也。仁義禮智,在推理之後也。

 

서양의 학자(西儒)들은 "인간(人)"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은 실제로/정말로(乃, really, indeed), 이치/원리(理, principles)들을 능히 추론(推論, inference)을 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자(者, that which)인, 생각하는 자(生覺)입니다. [여기서] 생(生)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생물들인] 금석(金石)으로부터 구별되기(別) 때문이고, 각(覺)이라고 말하는 것은 초목(草木)과는 다르기(異) 때문이며, 이치/원리(理, principles)들을 능히 추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조수(鳥獸)보다 뛰어나기(殊) 때문이고,(*1) 곧지 않음(不直)을 추론한다고 말하고 명달(明達)을 말하는 것은, 또한 귀신(鬼神)으로부터 구분되기(分) 때문입니다. 귀신(鬼神)이란 자는 모든 사물의 이치/원리(理, principles)들을 꿰뚫고 있어, 마치 비춤(照)과 같고 마치 [눈들로] 봄(視)과 같아서, 추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不待). 인간(人)이란 자는, 자신의 과거 일들에 근거하여 자신의 미래 일들을 추론하여 밝히고, 자신의 분명한 일들에 근거하여 자신의 어두운 일들을 조사하며(驗), 자신의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분명하게 함에 근거하여, 자신의 환히 알지 못하는 바에 도달합니다(及). 따라서, "이치/원리(理, principles)들을 능히 추론[推論, inference, 즉, 합리적인/이성적인 사고(rational thought) 및 자발적인 판단/결정(voluntary decision)]할 수 있는 자(能推論理者)"라고 말함은, ["천주실의", 상권, 제48쪽에 있는 물종류도(物種類圖)에 표시된 물체(things)들의] 근본 류(本類)들로부터 인간(人)을 세워서 그리하여 다른 물체(他物, other things)들로부터 그 체(體, substance)를 구별함이니, 정말로(乃, indeed) "인성(人性, 인간의 본성, human nature)"을 일컫는 바입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이치/원리(理, principles)들을 추론한 후에 있게 됩니다(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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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이 설명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천주실의", 상권, 제48쪽에 있는 "물종류도(物種類圖)"를 반드시 또한 참조하라.

 

(*2) 번역자 주: 다음에 발췌된 바는, 바로 이 문장에 대한 우리말본 "텬쥬실의"에 주어진 우리말 각주를 여기에 옮기면서 필자가 요즈음 어법에 맞게 다듬은 것이다:

 

(발췌 시작)

옛 글에 인의예지란 사람의 성품이라 한 고로 그렇지 않음을 말함이라.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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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3.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human nature(人性, 인성)"에 대한 서술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h/h169.htm

(발췌 시작)

HUMAN NATURE.

 

The nature of humankind considered abstractly and apart from its elevation by grace to a supernatural state with a heavenly destiny. It is the human as such, having a body and soul, capable of rational thought and voluntary decision. Actually human nature has never existed independent either of a supernatural destiny or of free acceptance or rejection of the supernatural invitation of God's grace.

 

인성/인간의 본성(人性, human nature)

 

추상적으로 고찰되는 그리고 하나의 천상의 운명과 함께 하는 하나의 초자연적 지위 쪽으로 은총(grace)에 의한 그 들어올려짐(elevation)을 제외하고(apart from), 인류의 본성(the nature of humankind)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몸과 영혼을 가진, 합리적인/이성적인 사고(rational thought) 및 자발적인 결정(voluntary decisiion)[즉, 추론(推論, inference)]을 할 능력이 있는, 그러한 자으로서 인간(the human)을 말합니다. 현실태적으로(actually) 인성(人性, 인간의 본성, human hature)은 결코, (i) 하나의 초자연적 운명 혹은 (ii) 하느님의 은총의 초자연적 초대/부름(invitation)에 대한 자유로운 수락 혹은 거부, 이들 둘 다로부터 독립적인 상태(independent of)로 존재해 온 적이 없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 (1) 바로 위에 제시된 설명을, 특히 밑줄이 그어진 "인성(人性, human natur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제시된 부분을, 처음 읽으면 약간 생소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위의 제1항제2항에 발췌된 바들을 읽은 다음에 다시 읽으면,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inference (추론)"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i/i135.htm

(발췌 시작)

INFERENCE

 

A process of reasoning by starting with a proposition as true and arriving at a conclusion as also true because it was already implicit in the original assumption. Inference may be either deductive or inductive, i.e., starting from the general and going to the particular, or vice versa.

 

추론(推論, inference)

 

참으로서 전제된(as true) 한 명제(a proposition)와 함께 시작하여, 왜냐하면 이 결론이 원 가정(original assumption)에 이미 내재(implicit)하였기 때문에, 또한 참으로서(as true) 한 결론에 도달함에 의한, 이성(理性)의 행위(reasoning)라는 한 과정(a process)을 말합니다. 추론(推論)연역적이거나(deductive) 혹은 귀납적(inductive), 즉, 일반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개별적인 것 쪽으로, 혹은 거꾸로( vice versa), 이들 둘 중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그리고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free will(자유 의지)"이라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전통적 용어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f/f158.htm

(발췌 시작)

FREE WILL

 

The power of the will to determine itself and to act of itself, without compulsion from within or coercion from without. It is the faculty of an intelligent being to act or not act, to act this way or another way, and is therefore essentially different from the operations of irrational beings that merely respond to a stimulus and are conditioned by sensory objects.

 

자유 의지(free will)

 

안쪽으로부터 충동(compulsion) 혹은 외부로부터 강제(coercion)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determine itself) 그리고 자기 스스로 행동하는(act of itself), 의지[the will, 즉, 지성의 욕구(intellectual appetite)]의 힘/능력(power, faculty)을 말합니다. 행동하거나 혹은 행동하지 않거나, 이러한 방식으로 혹은 저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한 지능을 지닌 있음(an intelligent being)의 능력(faculty) 바로 그것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이 능력은], [식물들과 동물들 처럼] 어떤 자극(a stimulus)에 단지 반응하고(respond) 그리고 감각 기관의 대상(sensory objects)들에 의하여 결정되는(conditioned), 비 이성적인 있음(irrational beings)들의 작동(operations)들로부터 본질적으로(essentially) 다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 그런데, 바로 위에 발췌된, 요즈음에 들어와 "자유 의지"로 번역되는, "free will"라는 용어의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17세기 초에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였던 예수회 소속의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저서인 "수신서학", 권3, 제2장 [제목: 사애(司愛, will)는 홀로 자주(自主)의 능력(司, faculty)이 되나니라]에 제시된, "主(자주, act on one's own, 즉, 움직여 나아가는 쪽으로 향하여 추구하면서 제한(制, restriction)을 가지지 않음)"를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4.htm <----- 클릭하여 꼭 읽도록 하라

 

(5)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추론(推論, inference)"의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 의지(free will)"를 행사함으로써 어떤 결론에 도달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따라서, 우리의 추론(推論, inference) 능력 안에는 자유 의지[free will, 자주()] 능력이 포함되어 있음을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6) 그러므로,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제시된 이라는 용어의 설명은, 바로 위의 제(2)항, 제(3)항, 제(4)항, 그리고 제(5)항에서의 고찰에 따라, 이들 두 능력들을 분리하여, 다음과 같은 논리적 등가의 문장(logically equivalent statement)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h/h169.htm

(발췌 시작)

HUMAN NATURE.

 

The nature of humankind considered abstractly and apart from its elevation by grace to a supernatural state with a heavenly destiny. It is the human as such, having a body and soul, capable of rational thought and voluntary decision. Actually human nature has never existed independent either of a supernatural destiny or of free acceptance or rejection of the supernatural invitation of God's grace.

 

인성/인간의 본성(人性, human nature)

 

추상적으로 고찰되는 그리고 하나의 천상의 운명과 함께 하는 하나의 초자연적 지위 쪽으로 은총(grace)에 의한 그 들어올려짐(elevation)을 제외하고(apart from), 인류의 본성(the nature of humankind)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몸과 영혼을 가진, 추론(推論, inference) 능력자유 의지[free will, 자주(自主)] 능력을 가진, 그러한 자으로서 인간(the human)을 말합니다. 현실태적으로(actually) 인성(人性, 인간의 본성, human hature)은 결코, (i) 하나의 초자연적 운명 혹은 (ii) 하느님의 은총의 초자연적 초대/부름(invitation)에 대한 자유로운 수락 혹은 거부, 이들 둘 다로부터 독립적인 상태(independent of)로 존재해 온 적이 없습니다.

(이상, 발췌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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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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