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어느 광부의 밥

인쇄

황송희 [songhee] 쪽지 캡슐

1999-09-03 ㅣ No.386

하느님!

지옥처럼 캄캄한 이천미터나 되는 지하 갱속 입니다

여기는 육신을 위한 그리고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하는 총 없는 전선 입니다

어제의 동료를 만나니 재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오늘도 수없이 합니다

우리는 서로 말은 없지만 아침에 보고온 식구들과 높은하늘

맑은 공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합니다

태양을 그리며 오늘도 하루를 지내는 인생 두어지 들이 옵니다

도시락을 열면 탄가루가 더러 떨어 지겠지만

어두운 곳이라 잘 보이지 않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시원한 선풍기를 쐬가며 상큼한 냉면 한그릇 후루륵 먹고 싶지만

아내의 손길이 머무는 이 음식을 더 맛있게 먹도록 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아내의 정성과 사랑을

그리고 당신의 더 크고 큰 은총을 이곳에서도 꽃피우게 하시는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 옵소서

오늘 저녁은 큰 녀석과 레슬링을 해볼 작정 입니다

"아버지, 나 큰학교 안갈테니 큰 굴속에 들어가지마!" 하던 큰녀석이

벌써 5학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더 깊은 갱속에 머물 더라도 거기 함께 계시는 하느님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사랑 합니다

 

 

 

 

 



2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