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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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구나
김 광 균
주안 묘지 산비탈에도 밤벌레가 우느냐,
너는 죽어서 그곳에 육신이 슬고
나는 살아서 달을 쳐다보고 있다.
가물에 들끓는 서울 거리에
정다운 벗들이 떠드는 술자리에
애다.
네 의자가 하나 비어 있구나.
월미도 가까운 선술집이나
미국 가면 하숙한다던 뉴우욕 하렘에 가면
너를 만날까
있더라도 김형 있소 하고
손창문 마구 열고 들어서지 않을까.
네가 놀러 가 자던 계동집 처마 끝에
여름달이 자위를 넘고
바람이 찬 툇마루에서
나 혼자
부질없는 생각에 담배를 피고 있다.
번역한다던
’리처어드 라잇’과 원고지 옆에 끼고
덜렁대는 걸음으로 어딜 갔느냐.
철쭉꽃 피면
강화섬 가자던 약속도 잊어버리고
좋아하던 ’존슨’ ’브라운’ ’테일러’와
맥주를 마시며
저 세상에서도 흑인시를 쓰고 있느냐.
해방 후
수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 땅 진흙 밭에
너를 묻고 온 지 스무 날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구나.
* 이미 라파엘님이 ’9월’이라는 자작시를 올렸지만,,, 저는 미흡한 글솜씨로 인해,,, 김광균님의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구나>로 대신하여 그분의 넋을 기립니다... 풍요로운 추석,,, 가슴 한켠에... 구월의 어제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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