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성당 게시판

조성만 요셉열사 추모연극

인쇄

허다연 [ggampu] 쪽지 캡슐

2001-11-27 ㅣ No.1154

 

<조성만 추모 연극에 함께 하여 주십시요>

 

----------------------- AD... 다시 시작 ----------------------

  일  시 : 2001년 12월 12일(수) ~ 15일(토)

  장  소 : 명동 마루소극장

  주  최 : 조성만 연극제 준비위원회

  주  관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문  의 : 02-747-4130

  홈페이지 : www.kcfj.org/cho

 

----------------------- 조성만의 일생 -------------------------

   조성만은 1964년 12월 13일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용암리 126번지에서 부친 조찬배씨와 모친 김복성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성만은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으나 4형제 중 유독 고집이 남달리 세었다고 한다.

 

   1981년 6월, 전주 중앙성당에서 요셉이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천주교에 입교한 뒤 줄곧 신학교에 진학해서 사제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뒤늦게 영세받은 셈이지만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였던 만큼 이미 종교성을 몸에 체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던 1980년 조성만은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경찰들의 폭력적 진압이 일어나자 시위에 참여하려 하였고, 가족들의 만류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1984년 3월에 조성만은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한다. 조성만은 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재수 시절부터 낯을 익혀왔던 ‘명동성당청년단체연합회’(이하 명청) 소속의 ‘가톨릭민속연구회’(이하 가민연)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조성만은 워낙 조용하고 말이 없는 성품인지라 학교에서 별로 튀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학교에서도 써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고, 함운경(85년 5월 미문화원 점거 농성투쟁, 물리학과 82학번), 김세진(86학번 전방입소철폐 투쟁위원장, 신림사거리에서 분신, 미생물학과 83학번), 그리고 사랑하는 동료들과 학습하고 토론하고 투쟁했던 경험들은 성만이로 하여금 조국의 현실에 대해 인식의 눈을 뜨도록 자극했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이 써클에서 조성만은 차분하고 심지가 곧고, 희생정신이 강하면서도 부드러워 ‘예수같은 사나이’로 불리게 되었다.

 

   1985년 초에 입대하였는데 의정부에 위치한 한미연합사에 배치를 받았다. 한반도의 모순이 미국에 의해 비롯되었고,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 미국을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군대 경험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1988년 5월 14일 명동성당청년회 주최의 ‘광주민중항쟁 계승 마구달리기대회’ 행사준비를 마치고 술자리 후 후배와 집으로 돌아온 조성만은 술에 취한 후배를 옆에 눕히고 유서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향한 명동성당, 행사가 준비되던 시간에 조성만은 유서를 복사하여 명동성당 교육관으로 올라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성만은 구호를 외치며 복부에 칼을 꽂은 채 투신하였다.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으랴」 中)

 



1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