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ㅣ도미니카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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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agnes kim] 쪽지 캡슐

1998-11-23 ㅣ No.20

 사랑하는 도미니카 수녀님!

가을 하늘이 눈이 부시고, 가슴 한 쪽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참 좋은 계절입니다.

텅 빈 거리에 뒹구는 낙엽과 파아랗고 높다란 하늘이 살아있음을 기쁘게 하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소중함으로 다가옴이 그저 행복합니다.

나이 탓인지, 세월의 선물인지 모든 것 안에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이 복된 우리 삶이겠지요.

일상의 반복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 때면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훨씬 낫더군요.

죽음, 그리고 잠.

아마 살아있음을 기뻐할 수 있기에

무겁게 느껴질 만큼 많은 잎사귀를 모두 다 떨궈내고 황량한 거리에 초연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삶의 진지함으로 초대하고, 모든 것에 때가 있듯 우리의 삶도 기다림 안에 해답이 있음을 살아가며

더 절실해 지는 것 같아요.

살아있음에 사랑할 수 있듯,  혼자인 것이 너무나 좋아 이 렇게 몸살이 나듯 사랑의 열병으로 부추김

받기에 그저 고마울 뿐이지요.

사랑,

그건 자연스러움입니다.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것이 누구나 이해되듯,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자연스러

이어야 되지 않을까요.

아무에게도 해 되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것.

그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이 아닐까요.

산다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되는 그 모든 것 안에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그것만으로 전부일 수 있다면.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채워 간다는 것입니다.

 

비어있어야 비로서 가득해지는 사랑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비우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큰 사랑의 그 속에 들 수 있습니까

 

한 개의 희고 깨끗한 그릇으로

비워있지 않고는 어떻게 거듭거듭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까.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기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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