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미사 그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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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철 [shin765] 쪽지 캡슐

2002-07-21 ㅣ No.2333

미사 그 요지경

 

이런 불온한 글을 올리게 됨을 깊이 사죄한다.

벌써부터 고백 성사를 볼 마음은 있으나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부활 고백성사 때, 뒤의 아주머니가 핸드백으로 계속 쳐 대는 바람에

성사(聖事)는 성사(成事)되지 않았다.불행한 것은 그 뒤로도 교회는, 그 아주머니는 계속 등을 쳐댄다는 사실이다.핸드백으로.나는 교회의 핸드백에도,그 아주머니의 핸드백에도 관심이 없다.내가 만약 훔치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몰라 강도짓을 한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외냐하면 그 핸드백이 다 떨어지면 또 강도짓을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감옥에 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차라리 그냥 감옥에 가려고 하는 짓이라면 이해가 가겠다.

 

굶는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이제야 나는 세상을 아는가 보다.불행하게도.교회를 믿고 기도만 하다가는 굶어죽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이 동네에서 30년 가까이 산 덕분에,

그리고 조금은 양심적인 패거리(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때문에, 혹은 저 잔혹한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이런 글을 아는 척하지 말라.하하. 좀 죽으면 어떤가.거룩한 순교의 영성을 물려받지 않았는가.죽이면 어떤가.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깡패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칼을 쓸 것인가 자존심을 내어줄 것인가.노예적 평화와 굴욕을 감수하면서 무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는가]겨우 부모 덕을 보고 산다.내가 육체를 놀려,허리가 부러지게 일할 때 ,그리고 매일 아침 긴 기도문을 외우고 나가 일할  때 교회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다.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저 마녀의 악 쓰는 소리를 당해내지 못했다.

 

교우들 혹은 형제님들이-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모상이나 성당문 앞에서 예를 갖추는 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금지하는 편이 옳다.그것은 단순한 예의에 불과한 것이다. 정해진

규범에 맞추어 그런 예는 치루어져야 한다.제멋대로 기분나는 대로,형편되는 대로 치루는 예의란 오해의 여지가 많다.성수로 성호를 긋는 행위도 나의 10년 신앙

생활에 의하면 무의미하다.마귀가 절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유심히 관찰한 바는 없지만 사람들은 습관적이다.심리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처럼

마귀가 고함을 지르고 도망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요컨대,형식적이라는 것이다.

 

안내하는 자들은 주의하라.도둑님이 노리고 있으니.그리고 무엇보다 저 마녀의 속임수를 조심하라.내게 어떤 선생님 대하듯 인사하지 말라.웬만하면 깡마른 당신은 안내를 그만두는 것이 어떨까.내 기억에는 당신은 모 학교 서무실에서 근무했던것 같은 데 나는 돈에 관심이 없다.왜 당신이 안내를 하는지 당신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기왕 말 나온 김에 미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헌금 낼 돈이 없거나 내고 싶은 기분이 아니면 헌금 내러 나가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그 교리는 처음부터,10년 전 처음 배울 때 부터 약간 웃겼다.낼 돈이 없어도 손을 넣어야 한다는 의무는 돈 없어 빈손을 넣어야 하는 사람의 심리를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좀더 자발적인 헌금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나는 신부님을 무조건 존경해야 하는 줄 알았다.그러나 이제 그건 아닌 것 같다.요즘 성인에 대해서 약간 읽어 보았다.그러면서 왜 신부에 따라 어떤 신부는 성인의 지위에 오르고 어떤 신부는 그렇지 못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요컨대,신부에게도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말을 바꾸면 어떤 신부님은 벌써 태몽부터 다르고 이마에 별이 빛나기도 한다는 말이다.우리 성당은 더구나 한분이 신부님이 안 계신다.신부님 한 분이 더 오시면 누가 죽는다는 풍문의 진실 여부를 캐어보았는가.

그런 탐정같은 일을 하면 안되는가.줄창 기도만 하고 있는가.도둑이 안방 드나들 듯 하는데도 내탓이요 사랑타령 뿐인가.혹시 내가 인질이라면 가차 없이 신부님을 모셔라.즐거이 목을 내밀지는 못할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으니.옛날에는 치명을 영광으로 알지 않았던가.이제 죽을까봐 다칠까봐 도망다니면서 개짓거리 다하면서 입으로는 한국의 순교성인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인가. 죽기 싫으면 칼이라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옳다.낫이면 더 좋다.경찰은 아무레도 교회 편이다.한 마디로 맞장 뜨자는 거다.사람도 많고 힘도 명분도 있는데 허구헌날 얻어터지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다.

 

불행하게도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이 말은 원수를 원수로 갚는 불행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말쯤으로 해석하면 안될까.예수님은 도둑을 강도를 죄인을 더 사랑했다????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은 회개를 촉구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나는 도둑을 강도를 죄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예수가 아니다.우리 성당엔 예수님 같은 분이 많은가 보다.강도와 도둑이 들끓으니.그 가혹한 십자가의 형을 달게 받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 분이 받은 영광은 어째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죄인들에게 시달림받는 것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의 의미인가? 원수를 강도를 도둑을 죄인을 미워해야한다.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회개를 촉구한 말씀이고 그들을 용서한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성부의 뜻대로 받아들였다.

 

요컨대 강도가 들어오는데 힘센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극동방송을 하루 종일 들었다.요지경 미사의 질려 버린 내겐 위로다.8시에 방송미사를 들으려 평화방송을 틀었더니 야구중계다.

평화방송과 극동방송의 차이는 하나는 라디오 방송이고 하나는 선교방송이라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 중에 찔리는 말씀이있었다.감사하라는 것이다.

부족하고 어쩌면 과격하고 어쩌면 삐틀린 말씀을 올리게 됨을 다시 한 번 죄송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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