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착한 사마리아인은 천국에 갔을까? [성경공부_착한사마리아인] <다연중15주일복음> <연중27월복음> 869_tran KH_er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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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ㅣ No.1325


질문:

복음 말씀에 나오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마리아인이  있던데 예수님은 그를 우리의 이웃이라고  지칭하셨는데  그럼 그사마리아 사람도  천국을 갔나요 만일 갔다면 천국은 주님을 알고 믿는자 만이  간다고 알고 있는데 여기사마리아인은 무교도에 가까운것으로 아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천국은 예수님안에서만 이뤄진다고 했던것같은데 무교인에게도 천국의 문이 열려 있나요?  무교인도  천국을 간다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것과 무슨차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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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주신 질문의 몇 부분에 있어, 논리적 비약이 심한 질문자 고유의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s)들이 있다는 생각에, 해당 부분들에 대하여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시작)
복음 말씀에 나오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마리아인이 있던데  

<----- (자구적 해석) 주신 질문의 문맥에 비추어 볼 때에, 이 내용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parable)" 라는 소제목이 붙은, 루카 복음서 10,29-37을 말씀하신다는 생각입니다.

우선적으로 이 비유는 루카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는 비유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비유(parable)정의(definition)를 읽을 수 있는데 [주: 클릭한 후에 부록들을 읽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일반적으로, 비유라고 불리는 이야기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연중 제15주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10,25-37) 그리고 매년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10,25-37)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i) (영성적 해석 - 종말론적/신비적 해석) 이 해설에는 특히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가 자신의 저술인 "De Verbis Domini Sermones", 37 에서, 이 비유에 등장하는 "강도를 만난 사람"을 "아담(Adam)"과 동일시하였고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인"을 "새 아담(new Adam)"인 "우리의 주님"과 동일시하였다는 언급이 주어져 있습니다.

(ii) (영성적 해석 - 윤리적 해석) 그리고 또한 이 해설에는 "일곱 개의 영적(spiritual) 자비의 일들(the works of mercy)"이 무엇인지를 나열하고 있고 그리고 또한 "일곱 개의 육체적(corporal) 자비의 일들(the works of mercy)"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로 아래의 (iii)에 발췌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47항에 나열된, 자비의 일들, 즉, 자선 활동들을 더 분명하게 나열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iii)
(영성적 해석 - 윤리적 해석) 그리고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47항 전문입니다. "the works of mercy(자비의 일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자선 활동"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2447 자선 활동은 육체적으로나 영신적으로 궁핍한 이웃을 돕는 사랑의 행위이다. 204) 용서해 주고 참을성 있게 견디어 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가르치고, 충고하며,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행위는 영적인 자선 활동이다. 육체적인 자선 활동은 특히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잃은 사람을 묵게해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며, 병자와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보고, 죽은 이들을 장사 지내는 것이다. 205) 이러한 행위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206) 형제애의 주요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하다. 207)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
     겠습니까?(야고 2,15-16)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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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이사 58,6-7; 히브 13,3 참조.
205. 마태 25,31-46 참조.
206. 토빗 4,5-11; 집회 17,18 참조.
207. 마태 6,2-4 참조.
208. 1요한 3,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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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

예수님은 그를 우리의 이웃이라고 지칭하셨는데  

<----- (영성적 해석 - 윤리적 해석) 예수님께서 그가 우리의 이웃이라고 직접 지칭(指稱)하지 않으셨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 :

(예수님의 질문)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루카 복음서 10,29에 기록되어 있는 이 질문은, 이 비유 직전의 내용에서 등장하는 율법 교사 A가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라는 질문을 예수님께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소위 말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 교사와 그리고 이 질문을 들은 청중들에게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후에, 이 비류을 들은 그들에게 그렇게 우회적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우회적 질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율법 교사 A의 답변 또한 우회적 답변입니다:

(율법 교사 A의 답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이 답변에서 율법 교사 A가 "사마리아인입니다" 라고 직접적으로, 즉 비우회적으로 답변하지 못한 이유는, 아래의 (자구적 해석 *)에서 말씀드리고 있듯이,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유다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은 이미 대화나 혹은 만남마저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수준의 원수(enemies)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게시자 주: 그래서, "가장 큰 계명"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 루카 복음서 10,25-28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루카 복음서 10,26-37에 등장하는, 예수님과의 대화의 당사자인 율법 교사 A는 이 대화들 이후에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그리고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성적 해석 - 윤리적 해석) 전후의 문맥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서 10,25-28에서 언급되고 있는, 열심인 유다인들에 의하여 날마다 암송되는 한 개의 기도문이고 또 믿음에 대한 중요한 유다인들의 고백인, shema(셰마,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 기도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유다인들의 이웃"에 또한 "사마리아인들"이 포함되어야 함을, 이들 유다인 청중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영성적 해석 - 윤리적 해석, 종말론적/신비적 해석)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그리스도인들의 사랑(Christian love)"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는데, 더 나아가, 이 비유는 특히 예수님께서 친히 실천하셨던, "그리스도인들의 사랑(Christian love)"의 실천에 대한 가르침, 즉, 향주삼덕들 중의 하나인 "애덕(charity, 사랑, 아가페)"의 실천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i)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25항 전문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싮시오

(발췌 시작)
1825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원수” (로마 5,10) 였던 때에도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가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처럼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77) 사랑하며, 가장 먼 사람들을 이웃으로 삼고, 78) 어린이들과 79)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당신 자신처럼 80)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비길 데 없이 훌륭하게 묘사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
     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
     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
     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
     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
     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1코린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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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마태 5,44 참조.
78. 루카 10,27-37 참조.
79. 마르 9,37 참조.
80. 마태 25,40.4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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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ii)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22항 전문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III.“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2822 우리 아버지의 뜻은“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1티모 2,4) 것이다. 아버지께서는“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신다” (2베드 3,9) 85) 다른 모든 계명을 요약하고 또한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온전히 밝혀 주는 그분의 계명은,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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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마태 18,14 참조.
86. 요한 13,34; 1요한 3; 4; 루카 10,25-3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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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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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사마리아 사람도 천국을 갔나요

<----- 여기서 말씀하시는 "천국"

(1) "하늘(천당, heaven)"을 말하는 것인지요, 아니면,

(2)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그러나 한자 단어로는, "천국")]" 을 말하는 것인지요?

이들 둘 중의 어느 것을 의미하는가에 따라, 답변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이들이 왜 특히 우리나라에서 동일하게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

만일 갔다면 천국은 주님을 알고 믿는자 이 간다고 알고 있는데

<----- 어떻게 이렇게 알고 계신지요? 20세기 중반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렇게 알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질문자께서는 본인이 가톨릭 신자인지 아닌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그리고

여기를 클릭한 후에, <----- 필독 권고

제0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또한,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하여 <----- 또한 필독 권고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여기 사마리아인은 무교도에 가까운것으로 아는데

<----- (자구적 해석 *) 아닙니다. 당시에 사마리아인들은, 예를 들어, 자신들 고유의 모세 오경을 성경으로서 가지고 있으면서 유다인들의 하느님인 야훼 하느님을 섬겼고 [그래서 무교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 고유의 성전을 기원전 400년경에 그리짐 산(Mount Gerizim)에 지었으나 그러나 기원전 128년경에 유다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기원전 722년에 발생하였던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의 유배 이후에, 이스라엘 왕국에 다섯 개의 이민족들을 이주시켜 이들과 남아있던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과 강제 결혼 정책을 추진하였던 아시리아의 지배 정책의 결과, 유다인들의 피에 이방인들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으로 불리는 "새로운 인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동일한 내용의 비유를 들면서, 특히 한 명의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킨 데에는 지금 대단히 간략하게 말씀드린 바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사마리아인들의 출현과 유다인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1) 사마리아인들로 불리는 인종의 출현에 대하여서는 2열왕기 17,24-41을 읽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2)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이 원수가 된 결정적인 사건들에 대한 요약의 글은, 예를 들어, 다음의 교재에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3주일 제1독서(느헤미야 8,2-4ㄱ.6-6.8-10) 입문 그리고 이 입문의 각주.
-----

우리가 알다시피 천국은 예수님안에서 이뤄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 여기서 말씀하시는 "천국"

(1) "하늘(천당, heaven)"을 말하는 것인지요, 아니면,

(2)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그러나 한자 단어로는, "천국")]" 을 말하는 것인지요?

이들 둘 중의 어느 것을 의미하는가에 따라, 답변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이들이 왜 특히 우리나라에서 동일하게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

무교인에게도 천국의 문이 열려 있나요?  무교인도 천국을 간다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위하여, 다음의 질문을 드립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천국"

(1) "하늘(천당, heaven)"을 말하는 것인지요, 아니면,

(2)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한자 단어로는, "천국")]" 을 말하는 것인지요?

이들 둘 중의 어느 것을 의미하는가에 따라, 답변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이들 둘 중의 어느 것을 의미하는가에 따라, 예를 들어,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문"

(1) "하늘의 문" (요한 묵시록 4,1) 이 될 수도 있고, 혹은

(2) "하늘 나라의 문"(마태오 복음서 23,13)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여기를 클릭하여 <----- 또한 필독 권유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무교인도 천국을 간다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 대단히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의 길",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해주신 "길(the Way)"을 따라 가는 것과, 자신의 탓이 아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몰라서 그러지 못하는 것과의 차이입니다.

(i) 그리고 이 "길(the Way)"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사도행전 19,8-9를 읽도록 하십시오.

(ii) 또한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59항 전문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459 ‘말씀’ 은 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 그리고 성부께서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산에서 이렇게 명하신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르 9,7) 81) 참으로 그분께서는 참행복의 모범이시며, 새 율법의 기준이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 . 이 사랑에는 그분의 모범을 따라 실제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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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신명 6,4-5 참조.
82. 마르 8,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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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특히 올 해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학습하여야 하는 "신앙의 해"입니다.

(iii) 다음은, 바로 이 "새 생명의 길"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54항 전문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654 파스카의 신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시고,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다시 얻게 해 주는 의화이다. 582)“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로마 6,4) . 의화는 죄로 생겨난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은총에 대한 새로운 참여이다. 583)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가서 내 형제들에게 전하여라.” (마태 28,10) 584) 하고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셨듯이, 부활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양자 입양을 실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이다. 이 양자 입양은 그분의 부활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외아들의 생명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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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로마 4,25 참조.
583. 에페 2,4-5; 1베드 1,3 참조.
584. 요한 20,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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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 글의 끝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위에서 말씀드린, 이들 일곱 개의 영적 자비의 일(the seven spiritual works of mercy)들과 일곱 개의 육체적 자비의 일(the seven corporal works of mercy)들의 실천과 이들의 실천시에 유의하여야 하는 점들에 대하여서 다루고 있는,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Corporal and Spiritual Works of Mercy(육체적 및 영적 자비의 일들)" 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연중 제34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서 25,31-46)인, 다음에 발췌한, 마태오 복음서 25,41-46을 함께 묵상하였으면 합니다:

출처 1: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king.htm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발췌 시작)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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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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