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공모)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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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일 [hoillee] 쪽지 캡슐

2000-11-02 ㅣ No.667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이제는 희미한 저의 기억력을 더듬어 본 ’천주교요리문답’에는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나뇨?’하고 물으면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나이다’라고 답이 써 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세례성사를 받았고 주일학교도 다녔으니 하느님을 알고 살았지만 제대로 하느님을 공경하지도 못했고 더욱 저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 나이가 되도록 과연 주님 대전에 받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자문해 보면 부끄럽게도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음을 느낍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 우리들 육신의 삶을 위해서는 지성과 경제력 그리고 온갖 꾀를 총동원해 세상일에는 열중하면서 보다 더 중요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마태오 22장37-38절)는 성서의 말씀을 묵상하면 그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했는데 행동이 따르지 않는 생활로 일관했으며 어느 신부님 말씀에 ’삶은 사랑이다’라는데 저는 남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로 어느 자매님은 ’성당에 다니며 기도하기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여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마 애덕송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중에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하니 그렇게도 못하며 기도만 할 수 없어서....."하는 말을 듣고 제 자신을 돌아보면 저는 그 자매님 보다도 못한 삶을 살면서도 매일 저녁기도를 뻔뻔하게 하느님께 바치고 있으며 아직도 좁은 테두리 안의 제 가족만을 사랑하며 삶을 이어 왔는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참으로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으로 살았는가? 저의 대답은 "모두가 아닙니다."

 이제 죽음이란 명제를 놓고 생각하니 황금만능을 외치는 현실에서 대단한 재력가나 또는 과학만능을 부르짖는 이 시대의 고명한 의사선생님도 죽음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며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들의 슬픔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거역하고 잠시도 붙잡을 수없이 작별하는 것이 죽음인데 역설적으로 저도 그렇게 대단한 분들과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죽음 밖에는 없는데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 저의 생활을 반성한다면 영원한 생명보다는 세상사의 아주 사소한 일에도 남에게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으며 이웃을 사랑하기 보다 이웃에게 온갖 상처만을 안겨주며 살아 온 일을 생각하면 보잘 것 없는 일에 매달려 마치 큰 일이라도 난 것 같이 전생애를 몽땅 거기에 걸다시피 하며 살아 온 것이 저의 인생이라 이 얼마나 값없이 살았는가 하고 허무한 생각이 듭니다,.

 이 때까지 저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 이제 죽음은 예고 없이 저를 찾아 올 것이니 이 목숨이 다하기 전에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을 위한 삶을 살아야할텐데 하는 마음은 먹으면서도 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생각뿐입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할 것인지 아직도 저에게는 짧고 쓸모 없는 세상사에 미련이 남아있으며 이기적인 욕심이 꽉 차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일상적으로 바치는 기도 중에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하면서 성모님께 전구를 구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그나마 죽음을 묵상하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자기 생활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들어섰다.(요한 5장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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