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십계명에서 열 개의 말씀(Decalogue)들의 구분에 대하여 [주교연기, 1785_] Decalogue 1242_ free_will 1689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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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ㅣ No.1904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4.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질문 1: 천주교회 측에서 나열한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Decalogue)과 일부 개신교회 측에서 나열한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Decalogue)이 동일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아래의 본글을 작성하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을 구분하였는지에 대한 무지(ignorance) 때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는 글이 이번 글입니다.

 

질문 2; 그리스도교에서 4세기 말 - 5세기 초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십계명의 각 계명들의 구분 및 나열은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성 아우구스티노오로지 자신의 고유한 판단에 근거하여 십계명의 각 계명들을 구분하여 나열한 것인지요? 아니면, 성경 본문에 근거한 것인지요?

 

질문 2에 대한 간단한 답변: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편집된, 소위 말하는, 마소라본 히브리어 탈출기 20,17아니라당시에 자신이 읽었던 탈출기 20,1-17 본문에 대단히 충실하게 근거하여,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는 글이 이번 글입니다.

 

1. 들어가면서

1-1.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십계명(the decalogue, the ten commandments)의 성경 근거는 (i) 탈출기 20,1-17, (ii) 탈출기 34,14-26, 그리고 (iii) 신명기 5,6-21, 이렇게 세 부분들에서 입니다.

 

그리고 탈출기 20,1-17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사순 제3주일 제1독서 홀수 해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제1독서로 발췌되어, 미사 중에 봉독되며,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탈출기 20,1-17에 기록된 십계명들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3.htm 

 

1-2. 그런데 이들 세 부분들을 언뜻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1-2-1. 한편으로, (i) 탈출기 20,1-17에 있는 것은 금송아지 사건 이전에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들이고 그리고 (ii) 탈출기 34,14-26에 있는 것은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들인데, 커다란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이들이, 이들 둘이 그 내용들 및 글자들에 있어, 너무도 다른 점에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바로 아래의 1-2-1-(i)항과 1-2-1-(ii)항에 발췌된 성경 본문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사항 한 개: 아래의 본문에 발췌된 성경 본문들을 읽을 떄에, 16세기 중반 경에 독일어본 성경을 활자로 인쇄할 당시에 식자공에 의하여 처음으로/최초로 추가된, 절의 번호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읽도록 하십시오. 전후 문맥 안에서 오로지 문장의 구조들을 고려하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여전히 거의 무의식의 상태에 있는, 생각이 일어나는 초기의 상태에서 더러 발생하는, 이들 절 번호들에 의하여 야기되는 비 성경적 구분으로부터 벗어나, 성경 본문에 충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상, 주의 사항 한 개 끝)

 

1-2-1-(i) 다음은 탈출기 20,1-17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cbck.or.kr/page/bible_content.asp?p_code=k6100&GS=G&Bible=02&Jang=20&x=15&y=14

(발췌 시작)

1 그때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3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4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5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7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1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1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해서는 안 된다.


14 간음해서는 안 된다.


15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7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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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바로 이 우리말 번역문은 기원후 9세기 경에 최종적으로 편집된 유다교용 마소라본 구약 성경을 그 번역 대본으로 삼고 있는데, 그러나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탈출기 20,17의 문장 구조는, 이어지는 글에서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지적하듯이, 마소라본 탈출기 20,17동일하지 않고, 대신에, 마소라본 신명기 5,21 칠십인역 신명기 5,21 둘 다의 문장 구조와 동일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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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1-2-1-(ii) 다음은 탈출기 34,14-26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cbck.or.kr/page/bible_content.asp?p_code=k6100&LGB1=A&GS=G&Bible=02&Jang=34&x=20&y=13

(발췌 시작)

14 너희는 다른 신에게 경배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이름은 ‘질투하는 이’, 그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15 너희는 그 땅의 주민들과 계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저희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고 저희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면서 너희를 부르면, 너희는 그들의 제물을 먹게 될 것이다.
16 또한 너희가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에게 아내로 얻어 주어, 저희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는 그 여자들이 너희 아들들도 그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게 만들 것이다.
17 너희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어서는 안 된다.
18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아빕 달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너희가 아빕 달에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9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큰 가축이건 작은 가축이건 너희 집짐승 가운데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수컷은 모두 나의 것이다. 
20 그러나 나귀의 첫 새끼는 양으로 대속해야 한다. 대속하지 않으려면 그 목을 꺾어야 한다. 너희 자식들 가운데에서 맏아들은 모두 대속해야 한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21 너희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밭갈이하는 철에도 거둠질하는 철에도 쉬어야 한다.
22 너희는 밀의 맏물을 거두어들일 때 주간절을, 해가 바뀔 때 추수절을 지켜야 한다. 
23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곧 이스라엘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 
24 나는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너희 영토를 넓혀 주며, 너희가 한 해에 세 번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나오려고 올라올 때 아무도 너희 땅을 탐내지 않게 하겠다.
25 너희는 나를 위한 희생 제물의 피를 누룩 든 빵과 함께 바쳐서는 안 된다. 파스카 제물을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26 너희 땅에서 난 맏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주 너희 하느님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너희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서는 안 된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1-(ii): (1) 바로 위에 발췌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두 번째로 주셨다는 십게명들인 (ii) 탈출기 34,14-26은, 언뜻 들여다보더라도,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금송아지 사건 직전에 첫 번째로 주셨다는 십게명들인 (i) 탈출기 20,1-17과 너무 다른 내용들입니다.

 

심지어 탈출기 34,1 및 34,27에 다음과 같은 서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내용들이 왜 너무도 다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탈출기 34,1 과 34, 27발췌 시작)

34,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두 개를 깎아라.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그 처음 돌판에 새겨져 있던 말을 내가 새 돌판에 다시 써 주겠다.

 

34, 2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는 이 말을 조건으로 너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다.” 

(이상, 탈출기 34,1 및 34,27 발췌 끝) 

 

(2)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ii) 탈출기 34,14-26에 있는 것은 일부 성서 학자들에 의하여 "예식 십계명(the ritual decalogu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하는데(출처: 주석 성경, 탈출기 34,14 각주), 그러나, 바로 위에 안내된 출처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탈출기 34,1-29 전체 문맥 안에서 살펴보년, 이러한 이해 또한,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탈출기 34,1; 탈출기 34,27 때문에,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3) 바로 이러한, 오랜 기간 동안의 구전(口傳, oral tradition)을 통한 전달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error)의 문제 때문에, 예를 들어,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유다인들의 경신례 관련 규정들을 폐지하셨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 게시자 주 1-2-1-(ii) 끝)

 

1-2-1-(iii) 다음은 신명기 5,6-21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cbck.or.kr/page/bible_content.asp?p_code=k6100&LGB1=A&GS=G&Bible=05&Jang=5&x=17&y=8

(발췌 시작)

6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7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8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어떤 형상으로도 신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9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10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11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12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여라. 
13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14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너의 소와 나귀, 그리고 너의 모든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여 너의 남종과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 
15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16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하는 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고 잘될 것이다.


17 살인해서는 안 된다.


18 간음해서는 안 된다.


19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20 이웃에게 불리한 허위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21 이웃의 아내를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이나 밭,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재산은 무엇이든지 욕심내서는 안 된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1-(iii): 신명기에도 십계명들에 대한 언급이 금송아지 사건 이전금속아지 사건 이후의 시점들에서, 탈출기에서처럼, 각각 언급되고 있으나, 그러나 탈출기 기록과는 너무도 다르게, 다음에 발췌되었듯이,  금속아지 사건 이후의 시점에서의 서술에는 탈출기 34,14-26에 대응하는 서술이 전혀 없습니다:

 

(신명기 10,1-4 발췌 시작)
1 “그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먼젓번과 같은 돌판 두 개를 깎아서, 산으로 나에게 올라오너라. 또 나무 궤를 하나 만들어라.
2 그러면 네가 부수어 버린 먼젓번 판 위에 쓰여 있던 말을 내가 그 판 위에 써 줄 것이니, 너는 그것을 궤 안에 넣어라.’ 
3 그래서 나는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고, 먼젓번과 같은 돌판 두 개를 깎아서, 그 두 판을 손에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집회의 날에 그 산의 불 속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먼젓번에 쓰셨던 것처럼 그 판 위에 쓰셔서 나에게 주셨다. 

(이상, 신명기 10,1-4 발췌 끝)

 

1-2-2. 다른 한편으로, (iii) 신명기 5,6-21에 있는 것은 (i) 탈출기 20,1-17에 있는 것과, 그 내용들 및 글자들에 있어, 다만 띄어서 읽을 것인가 혹은 붙여서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합니다.

 

게시자 주 1-2-2: 그런데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 본문을 어디서 띄어서 읽어야 하는지의 문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유념하여야 하는 점들이 적어도 둘 있는데, 이미 잘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i)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 본문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모음(母音, vowel)이 없는 언어인 점, 그리고 (ii) 성경 본문의 절 번호들이 처음/최초로 도입된 시점이 기원후 16세기인 점. 즉, 기원후 16세기 중반 경에 들어와 [독일어본 신약] 성경 본문이 금속 활자체로 처음으로 인쇄될 때에 식자공이 자신의 필요성에 의하여 처음으로 절 번호들을 도입한 점입니다.

 

1-2-3.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iii) 신명기 5,6-21 본문과 (i) 탈출기 20,1-17 본문에 대하여, 이들 본문들을 그 내용에 따라 열 개의 말씀들(Decalogue)로 구분하여 나열함에 있어, 어디에서 띄어서 읽는 것이 더 합리적(reasonable)/논리적(logical)인지에 대하여, 그 구체적 근거들도 또한 고려하면서,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

다음은 "주석성경"에서 발췌한 바들인데, 예를 들어, NAB(New American Bible)의 입문들 및 각주들에는 없는 내용들로 알고 있으며, 모세 오경의 다섯 권의 책들 중에서 신명기가 언제쯤에 최초로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1. 다음은 "주석 성경", 탈출기 입문, 제184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탈출기에 들어있는 비사제계 본문의 편집은 사제계 본문보다 훨씬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사제계 본문보다 오래 되었거나 같은 시대의 것이지만, 그 가운데 어떤 본문들은 분명히 후대의 것이다. 십계명이나 다른 특정 본문의2) 단락들은, 분명히 후대에 현재의 본문 자리에 삽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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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주석가들은 탈출 3-4장과 19-24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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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2-2. 다음은 "주성 성경", 신명기 입문, 제432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이미 교부들도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중요한 발견을 근거로, 신명기가 처음 기록된 시기를 더욱 정확이 알 수 있다. 2열왕 22장은 요시야 임금 제18년에, 곧 기원전 622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서" (2열왕 22,8.11) 또는 "계약 책" (2열왕 23,2.21)이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이 책에 담긴 경고에 충격을 받은 임금은 온 백성을 불러 모아 장엄하게 계약을 갱신하고 종교 개혁을 선포한다. 그런데 이 개혁의 내용이(2열왕 23,4-20) 신명기의 기본 요구와 일치한다. 곧 지방에 있는 모든 성소를 파괴하고 모든 예배를 예루살렘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신명 12). 따라서 요시야가 선포한 문서는 원래의 짧은 신명기 원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 발췌 끝)

 

2-3. 다음은 "주석 성경", 신명기 입문, 제433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기원전 7세기 중엽에 탄생한 신명기는 오랜 동안의 발전을 거쳐 마침내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 구성은 아주 분명하다.

(이상, 발췌 끝)

 

2-4. 다음은 "주석 성경", 신명기 5,6에 대한 각주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신명] 6-21절에서 소개되는 십계명 탈출 20,1-17에 나오는 십계명과는 조금 차이가 나는데, 신명기의 것이 더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탈출기의 내용과 같은 구절들에 대해서는 탈출 20장의 각주들 참조. 이곳의 각주에서는 신명기의 고유한 구절만 다룬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 (1) 필자가 소장 중인 성요셉출판사 발행의 주석성서, 구약(상), 탈출기 입문 첫 페이지에, 탈출기B.C.(즉, 기원전) 4세기 경에 완성되었고, 편집시기는 기원전 400년 경까지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 또한 성요셉출판사 발행의 주석성서, 구약(상), 신명기 입문 첫 페이지에, 신명기북왕국에서 기원전 8세기 중엽과 7세기 중엽 사이에 편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3) 무슨 말씀인고 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구전 전승(oral tradition) 이후에, 탈출기(Exodus)가 먼저 글로 쓰인 다음에 신명기(Deutronomy)가 글로 쓰였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측은 한 개의 오류(an error)라는 것이, 이들 성경 주석서들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전달해드린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특히 성경 용어들의 출처/어원에 대단히 밝은 주석들의 제공이 그 장점인 "주석 성경"의 거의 대부분의 각주들의 번역 대본은, 프랑스의 가톨릭 성서 신학자들과 프랑스의 개신교회 성서 신학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마련된, 프랑스어본 공동 번역 성경(TOB)의 각주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성서 신힉에 있어 상당히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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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졸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01.htm <-----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제목: 2010년 판 프랑스어 공동 번역 성경 TOB 에 대한 안내, 게시일자: 2011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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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18년 3월 13일자 내용 추가 끝]

 

(4) 그리고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전달해드린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Decalogue(열 개의 말씀들)가 한 개의 표제어로서 수록되어 있는, 특히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편집된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는 유다 교회 측 성서 신학자들에 의하여 집필된 것으로 보이는"Jewish Encyclopedia"가 출판된 시점인 20세기 초(즉, 1901-1906년) 이후의 성서 신학 분야의 중요한 새로운 연구 결과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5032-decalogue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5033-decalogue-the-in-jewish-theology

(이상, 게시자 주 2 끝)

 

3.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apostolic) 유일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교주이신, 그리스도교 교회(Church)가 16세기 중반에 들어와 비로소 처음으로 구분되어 불리기 시작한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 측과 16세기 조반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루터파(Lutheran) 개신교 교회(Protestant Church) 측의 십계명들의 구분과, 10세기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동방 교회 측과, 16세기 이후에 처음을 등장하는, 루터파가 아닌 다른 개신 교회(Protestant)의 다른 교파(denominations)들 측의 십계명들의 구분이 다른 것은, 열 개의 말씀(Decalogue)들로 나열함에 있어,

 

(i) 칠십인역 신명기 5,7-10마소라본 탈출기 20,3-6을 한 개의 계명으로 구분할 것인가 아니면 두 개의 계명들로 구분할 것인하 하는 문제,

 

(ii) 칠십인역 신명기 5,21마소라본 탈출기 20,17을 한 개의 계명으로 구분할 것인가 아니면 두 개의 계명들로 구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

 

이렇게 이들 두 문제들로 환원됩니다(reduced).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들은, 어떻게 구분하든지 간에 결론은 총 10개의 말씀들(Decalogue)로 구분하여야 하기 때문에, 별개의 독립적인 문제들이 아니고 서로 관련이 된 문제들입니다.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신명기의 최조 기록 연대(기원전 7세기)가 탈출기의 최초 기록 연대(기원전 4세기)보다 더 오래된 것임이, 성경 본문들에 대한 분석의 결과로 밝혀졌음을 이미 말씀드렸기 때문에, 따라서, 신명기 5,6-21에 기록된 십계명들이 탈출기 20,1-17에 기록된 십계명들보다 더 오래된 십계명들임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어지는 항들에서는, 지금 말씀드린 바가, (i) 기원전 4세기 경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신명기와 칠십인역 탈출기, (ii)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편집된 마소라본 히브리어 성경의 신명기와 탈출기의 유관 단락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함으로서, 실제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는지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어떠한 이유들 때문에, (i) 칠십인역 신명기 5,7-10을 제1계명으로 구분하였고, 그리고 (ii) 칠십인역 신명기 5,21ㄱ을 제9계명으로 구분하였고 그리고 칠십인역 신명기 5,21ㄴ을 제10계명으로 구분하였는지에 대하여, 또한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3: 십계명들의 열 개의 말씀들(Decalogue)의 구분에 관하여 정밀하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또한 분명하게 알고 계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아래에 나열된 바에서 제(ii)항부터 제(iv)항에서 말씀드리는 역사적 사실들이, 이후에, 십계명들의 열 개의 말씀들(Decalogue)의 구분에 분명하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i)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인정해온 십계명들의 열 개의 항들을 구분하였던 당사자인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기 살아있을 당시에는,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최종적으로 편집된, 소위 말하는,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도 존재하지 않았고

 

(ii)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는, 성 예로니모(St. Jerome, 347-420년)에 의하여, 당시의 유다인인 히브리어 성서 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번역된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이, 그 당시까지 또한 유다교 회당 측(여기에는, 지중해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던 "디아스포라(Diaspora)의 회당들"도 당연히 포함됨)과 그리스도교 교회 측에서 크게 존중해온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권위(Authority)[주: 이와 관련하여, 특히,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동방 교회의 구약 성경은,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결코 아니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임을 또한 주목하라]를 존중하지 않았음을 이미 지적하였으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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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예로니모(St. Jerome, 347-420년)가 그 당시까지 유다교 교회 측과 그리스도교 교회 측 둘 다에서 크게 존중해온 칠십인역 구약 성경권위(authority)[주: 이와 관련하여, 특히,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동방 교회의 구약 성경은 칠십인역 구약 성경임을 또한 주목하라]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졸글[제목: 성 예로니모의 성경 번역 - 이사야 7,14 [마소라본][칠십인역][사해문서][번역오류_젊은여인], 게시일자: 2009년 6월 25일]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4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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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기원후 451년에 개최된 세계 공의회인 칼케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된 단성설의 주장자들이, 이 공의회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그 이후의 시기에 주장하기 시작하였던 "성 화상 파괴 논쟁"이, 따라서,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인정해온 십계명들의 열 개의 항들을 구분하였던 당사자인,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기 살아있을 당시에는, 없었음/대두되지 않았음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성화상 파괴 논쟁"과 관련하여서는, 기원후 787년에 개최되었던 세계 공의회인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최종적으로 "성화상 파괴"를 주장하는 일체의 설들이 이단임이 공포되었습니다.(#2)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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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글들을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512.htm <----- 필독 권고

http://www.catho.org/9.php?d=bxs#bjp [라틴어본 덴칭거: DS 581, DS 600-603]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dvj.htm#bhf [프랑스어본 덴칭거: DS 581, DS 6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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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동방 교회가, 세속의 헤게모니 다툼 때문에, 즉, 교황님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갈라져 나간 시점이 기원후 1054년이었음을 또한 반드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게시자 주 3 끝)

 

3-1. 바로 아래에 발췌된 바는,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신명기 5,21 전문인데, 우선적으로 결코 성경 본문이 아닌, 5:21이라는 숫자들은 완전히 잊어버리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또한 제시되고 있는 영어 번역문들이, 시작 부분이 "You shall not desire(επιθυμήσεις)"인, 따라서 문법/어법에 있어 독립의 문장들인, 두 개의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studybible.info/interlinear/Deuteronomy%205:21

(발췌 시작)

Deuteronomy 5:21

 5:21  3756ουκ You shall not 1937επιθυμήσεις desire 3588την the 1135γυναίκα wife 3588του  4139-1473πλησίον σου of your neighbor. 3756ουκ You shall not 1937επιθυμήσεις desire 3588την the 3614οικίαν house 3588του  4139-1473πλησίον σου of your neighbor, 3777ούτε nor 3588τον  68-1473αγρόν αυτού his field, 3777ούτε nor 3588τον  3816-1473παίδα αυτού his manservant, 3777ούτε nor 3588την  3814-1473παιδίσκην αυτού his maidservant, 3777ούτε nor 3588του  1016-1473βοός αυτού his ox, 3777ούτε nor 3588του  5268-1473υποζυγίου αυτού his beast of burden, 3777ούτε nor 3956παντός any 2934κτήνους beast 1473αυτού of his, 3777ούτε nor 3956πάντα any thing 3745όσα as much as 3588του  4139-1473πλησίον σου[2 of your neighbor 1510.2.3εστί1 is].

(이상, 발췌 끝)

 

3-2. 바로 위의 제3-1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는, 또한 바로 아래에 발췌된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신명기 5,21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biblehub.com/interlinear/deuteronomy/5-21.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3-3. 그리고 더 나아가, 바로 위의 제3-1항제3-2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는, 다음에 발췌된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탈출기 20,17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studybible.info/interlinear/Exodus%2020:17

(발췌 시작)

Exodus 20:17

20:17  3756ουκ You shall not 1937επιθυμήσεις covet 3588την the 1135γυναίκα wife 3588του  4139-1473πλησίον σου of your neighbor(이웃의 아내). 3756ουκ You shall not 1937επιθυμήσεις covet 3588την the 3614οικίαν house 3588του  4139-1473πλησίον σου of your neighbor(이웃의 집), 3761ουδέ nor 3588τον  68-1473αγρόν αυτού his field, 3761ουδέ nor 3588τον  3816-1473παίδα αυτού his manservant, 3761ουδέ nor 3588την  3814-1473παιδίσκην αυτού his maidservant, 3777ούτε nor 3588του  1016-1473βοός αυτού his ox, 3777ούτε nor 3588του  5268-1473υποζυγίου αυτού his beast of burden, 3777ούτε nor 3956παντός any 2934-1473κτήνους αυτού of his beasts, 3777ούτε nor 3745όσα as much 3588τω[2to 4139-1473πλησίον σου3 your neighbor 1510.2.3εστί1 is].

(이상, 발췌 끝) 

 

(이 글의 결론 1) 따라서, 이상 고찰한 바로부터, 기원전 3세기 경까지,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탈출기 20,17의 번역 대본인 히브리어 탈출기 20,17(*),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신명기 5,21히브리어 신명기 5,21과, "you shall not covet(επιθυμήσεις)"로 시작하는, 동일한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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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편집된,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결코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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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8년 3월 13일]

게시자 주 3-3: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1은 아래의 제6항에 발췌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읽었던 탈출기 201,17의 시작 부분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된다.

[이상, 2018년 3월 13일자 내용 추가 끝]

 

(이 글의 결론 2) 그리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권위(authority)를 존중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또한 바로 이 글의 결론 1에 도달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결론 1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 도출합니다.

 

3-4. 그러나 다음은, 다마소 1세(Damasus I) 교황님의 명에 의하여, 기원후 4세기말 경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의 한 동굴 근처의 동굴 안에 머무르면서, 당시의 유다인인 히브리어 성서 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성 예로니모(St. Jerome, 347-420년)에 의하여 번역된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 탈출기 20,17 전문인데, 바로 위에 발췌된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탈출기 20,17 전문과 정밀하게 비교/검토를 하면, 위의 제3-1항, 제3-2항, 그리고 제3-3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와는 매우 다르게"이웃의 집""이웃의 아내"기 제시된 위치가 서로 바뀌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bible/exo020.htm
(발추 시작)

17 Non concupisces domum proximi(이웃의 집) tui, nec desiderabis uxorem ejus(이웃의 아내), non servum, non ancillam, non bovem, non asinum, nec omnia quæ illius sunt.

(이상, 발췌 끝)

 

(이 글의 결론 3) 따라서,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말 사이의 어느 시점에, 히브리어 탈출기 20,17 본문(*1) 중의  "이웃의 아내"라는 표현과 "이웃의 집"이라는 표현이, 필사 과정에서, 그 위치가 서로 뒤바뀌는 필사 오류(error)가 발생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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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편집된,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결코 잊지 말라.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3월 10일] 

(*2) 게시자 주: 이 결론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지지하는, 방대한 분량의 라틴어 저술들에 대한 검색 결과는, 아래의 제6항에 있는 필자의 (*) 게시자 주: 출처 1, 출처 3, 출처 4, 출처 5, 출처 6, 출처 7, 출처 8, 그리고 출처 9에 제시되어 있다.

[이상, 2018년 3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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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결론 4) 그리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의 권위(authority)를 존중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또한 바로 이 글의 결론 3에 도달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결론 3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 도출합니다.

 

3-5. 다음은 마소라본 히브리어 성경탈출기 20,17 전문인데, 바로 위의 제3-4항에서 고찰한 바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 즉, 위의 제3-1항, 제3-2항, 그리고 제3-3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와는 매우 다르게"이웃의 집""이웃의 아내"기 제시된 위치가 서로 바뀌어져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biblehub.com/interlinear/exodus/20-17.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3-6. 다른 한편으로, 소유(所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는, 사회적 신분/지위에 무관하게 한 가정의 가장(家長)인 누구에게나, (i) 아내와 자녀 등과 같이 너무도 소중하여 본인이 품에 안고 있는, 즉, 옹유(擁有)하고 있는 바와, (ii) 아내와 자녀 등과 같이 너무도 소중하여 본인이 품에 안고 있는, 즉, 옹유(擁有)하고 있는 바를 보존하고 양육하면서 지키기 위하여, 타인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종류의 소유들,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즉, 소유(所有)에는 크게 (i) 옹유(擁有)인 소유(所有)(ii) 옹유(擁有)가 아닌 소유(所有)가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구분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없는, 따라서 자연적 구분임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이 글의 결론 5) 그러므로, 지금 바로 위에서 지적한, 사회적 신분/지위에 무관하게 한 가정의 가장(家長)인 누구에게나, 소유(所有)라는 개념에 있어 현실적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 (i) 옹유(擁有)인 소유(所有)(ii) 옹유(擁有)가 아닌 소유(所有)를 또한 고려하여,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신명기 5,21히브리어 탈출기 20,17는, 한 개의 문장으로 요약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두 개의 문잗들로, 즉, 제9번째 말씀/계명제10번째 말씀/계명으로, 구분하여 그 내용이 요약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임(logical)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6) 그리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의 권위(authority)를 존중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또한 바로 이 글의 결론 5에 도달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결론 5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7) 따라서, 바로 위에 제시된 이 글의 결론 5를 받아들이면, 칠입인역 그리스어본 신명기 5,7-10히브리어 탈출기 20,3-6은 제1번째 말씀/계명으로 요약되어야 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8) 그리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의 권위(authority)를 존중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또한 바로 이 글의 결론 7에 도달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결론 7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6: (1) 아래의 제5항에서, 위에 제시된 이 글의 결론 5에서 말씀드린 바가 매우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임(logical)을, 추가적인 근거 문헌의 제시와 함께, 따라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또다른 한편으로, 이어지는 제4항에서는, 칠입인역 그리스어본 신명기 5,7-10히브리어 탈출기 20,3-6은, 두 개의 문장들로 요약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제1번째 말씀/계명으로 요약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인(logical) 근거/이유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3-6 끝)

 

4.

다음은,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수석 편집자인 Antonio Fuentes에 의하여 마련된 신명기 입문에서 발췌한 바인데,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어떠한 내용을 포함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성서 신학적으로 대단히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intro_Deuteronomy_AF.htm  

(발췌 시작)

The second discourse takes up the center of the book (4:44-28:69). From chapter 5 to chapter 11 Moses promulgates the Decalogue and spells out what the first commandment of the Law entail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and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ght. And these words which I command you this day shall be upon your heart, and you shall teach them diligently to your children and shall talk of them when you sit in your house, and when you walk by the way, and when you lie down, and when you rise. And you shall bind them as a sign upon your hand, and they shall be as frontlets between your eyes. And you shall write them on the doorposts of your house and on your gates" (6:4-9).


두 번째 강화(講話, discourse)는 이 책의 중심(신명 4,44-28,69)을 집어 올립니다(takes up). 제5장부터 제11장까지 모세는 십계명(the Decalogue)을 선포하고 그리고 이 법(the Law)의 첫 번째 계명(the first commandment)이 수반하는/의미하는(entails) 바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설명합니다(spells out):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cor, heart)을 다하고 목숨(soul)을 다하고 힘(might)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cor, heart)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신명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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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여기서 말하는 첫 번째 계명은,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구분에 따른, 신명기 5,7-10탈출기 20,3-6의 요약을 말한다. 

 

(2) 여기서, 영어로 "heart"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라틴어: cor)를,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하는 대신에, "마음(mind)"으로 번역한 것은 명백한 번역 오류(error)이다.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의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1.htm <----- 또한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heart.htm [유관 글들 모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heart.htm
[성 토마스 아퀴나스 용어집 중의 심장(heart) 설명]

 

(3) 특히 그 내용에 있어 하나의 단락을 구성하는 신명기 6,4-9에서 말해지고 있는 "사랑(love)"이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오로지 하나의 특정 대상(즉, 하느님)과 나 자신 사이의 매우 밀접한 좋은 관계(a very intimate and good relationship)를 말하므로, 그 내용에 있어, 신명기 5,6-10에 기록된 바 그리고 탈출기 20,1-6에 기록된 바가, "셰마(Shema)"로 불리는, 바로 이 신명기 6,4-9에 포함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달리 말하여, 신명기 6,4-9의 내용 자체가, 신명기 5,7-10과 탈출기 20,3-6에 기록된 바가, 두 개의 구분되는 계명들로서가 아니라, 한 개의 계명으로서 이해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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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text we can see the two basic principles in Deuteronomy: (1) monotheism--Israel has to believe in the one true God, and (2) it must love him above all else. This prayer, called the Shema, is a summary of true religion. No other book in the Old Testament puts such stress on the love man gives God. Jesus Christ quotes this text when he promulgates the law of love of God (Matt. 22:37). Because God is the only origin of all creation, he is to be adored and loved above all things.


바로 이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명기에 있는 두 개의 기본 원리들을 봅니다: (1) 일신론(一神論, monotheism) -- 이스라엘은 한 분이신 참 하느님 쪽으로 믿어야 하고, 그리고 (2)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것 위에 계신 그분을 사랑하여야 한다. 셰마(Shema)라고 불리는 바로 이 기도는 참 경신(true religion)의 한 요약입니다. 구약 성경에 있는 다른 책 어디에도 사람이 하느님께 제공하는 사랑에 대하여 그러한 강조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법(마태오 22,37)을 선포하실 때에,, 바로 이 본문을 인용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모든 창조의 유일한 원천이시기 때문에, 이분께서는 모든 사물들 위에서 흠숭되어야 하고 그리고 사랑받게 되어야 합니다.

(이상, 발췌 끝) 

 

(이 글의 결론 9) 따라서,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그리스도교 성서 신학적으로 명쾌하게 지적하듯이, 칠입인역 그리스어본 신명기 5,7-10히브리어 탈출기 20,3-6은, 두 개의 문장들로 요약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제1번째 말씀/계명으로 요약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임(logical)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0) 그리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의 권위(authority)를 존중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또한 바로 이 글의 결론 9에 도달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결론 9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1) 따라서, 바로 위에 제시된 이 글의 결론 9를 받아들이면,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신명기 5,21히브리어 탈출기 20,17는, 한 개의 문장으로 요약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두 개의 문잗들로, 즉, 제9번째 말씀/계명제10번째 말씀/계명으로, 구분하여 그 내용이 요약되어야 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2) 그리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의 권위(authority)를 존중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또한 바로 이 글의 결론 11에 도달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결론 11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 도출합니다.

 

5.

이번 항에서는, 위의 게시자 주 3-6: 제(1)항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글의 결론 5에서 말씀드린 바가 매우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임(logical)을 추가적으로 입증하는 문헌인,1643년에 초간된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주교연기"에 주어진 십계명들에 대한 해설 중의 특정 부분을 함께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5-1. 다음은 "주교연기"의 유관 부분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92-1666_아담_샬/1643_주교연기.htm

(발췌 시작)

주교연기_권3_성교위주공은_20-25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011년 11월 3일) 주: 권3, 제15쪽에 다음의 표현이 있음: "혹 중5륜 혹 존10계 리 본상통". [졸번역:  5륜을 중요하게 여김 혹은 10계를 존중함의 도리/원리(principle)는 원래 서로 통하나니라]; 권3, 제16쪽에 "5륜10계지속 바유부(賦)야"[졸번역: 5륜과 10계의 무리는 [천주께서] 부여하심/천성(賦)에 말미암은 바이니라] 는 언급이 있고, 그리고 각주에서 "양지"를 언급함. 또다른 각주에서 "원죄"를 언급함;권3, 제18쪽에 10계명들과 그 해설이 있음.] [(2011년 11월 14일) 주: 권3, 제19쪽에 "서납산"(즉, 시나이 산), "매슬"(즉, 모세)이 언급됨.] [(2017년 12월 14일) 주: 제14쪽에서 "교리", "성", "총", "성교", "공은", 제15쪽에서 "공교", "5륜", "10계", "성교", "천주", "창조인군(創造人羣)", "교리", "유공", "공은", "사은", "영성(spirituality)", 제16쪽에서 "5륜", "10계", "유부(繇賦)", "명광", "양지", "사욕", "충렬", "절효", "희", "노", "종부", "원죄", "획죄", "초량", "자주지권", "욕능(concupiscible faculty)", "노능(irascible faculty)", [(2017년 12월 25일) 주: cf. 수신서학_권3_5_혈기사애위하_33-34  주의 사항:, 욕능 = 욕사, 노능 = 분사 임],(*)  [(*) 게시자 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제시된 본문 및 필자의 각주들을 읽을 수 있는 알퐁소 바노니 신부님"수신서학"은 다음의 주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30_수신서학.htm], "자주", 제17쪽에서 "성교", "계규", "인심", "천주", "의리", "천법", "주교", "10계", "권형", "인륜", "수3계", 제18쪽에서 "천주10계" "흠숭", "첨례", "망증", [주: 제9계명(신명 5,21ㄱ); 제10계명(신명, 5,21ㄴ)], "총귀(總歸, 라틴어: recapitulatio, 영어: recapitulation, 총괄복귀)", "후7계", "성교", "치국", "선3계", 제19쪽에서 "주교", "첨례", "효경", "애인지강", "신체", "성명(聲名)", "재물", "살인", "투도(偸盜)", "사음", "행(行)", "언(言)", "념(念)", "인성", "개벽", "알라비(曷刺比)(Arabs, 즉, 阿拉伯)국", "서납산(즉, 시나이 산)", "매슬(즉, 모세)", "천당", "지옥", "천주강생", "총교" 등의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

 

 

게시자 주 5-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i) 십계명들 중의 제6번째 계명[즉, 간음하지 마라)제9번째 계명(즉, 남의 아내를 탐내지(covet) 마라(신명기 5,21ㄱ)]이 매우 인접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두 계명들이 사실은, 심장(heart) 바깥으로 행위(acts, deeds)로 표출되었는지 혹은 심장(heart) 안에서의 행위(acts, deeds)로 머물러 있는지의 차이점이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동일한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인 그 무엇(something)에 대하여 자유 의지(free will)가 동의함에 있는, 한 개의 동일한 집단(group)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ii) 제7번째 계명(즉, 도둑질을 하지 마라) 제10번째 계명[즉, 남의 재물을 탐내지(covet) 마라(신명기 5,21ㄴ)]이 매우 인접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두 계명들이 사실은, 심장(heart) 바깥으로 행위(acts, deeds)로 표출되었는지 혹은 심장(heart) 안에서의 행위(acts, deeds)로 머물러 있는지의 차이점이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동일한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인 그 무엇(something)에 대하여 자유 의지(free will)가 동의함에 있는, 또다른 한 개의 동일한 집단(group)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부터 읽기 시작하여, 바로 아래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까지, 읽도록 하라.

 

(유관 부분에 대한 졸번역 시작)

또한 인간을 해치는 도구로서 사용되는 바에 대하여 논하자면, 행[行, 즉, 심장(heart) 바깥으로 표출된 행위(acts, deeds)]이 무겁고(重)하고, 언[言, 말(words), 즉, 심장(heart) 바깥으로 표출된 말(words)이라는 행위(acts, deeds)]이 그 다음이며, 그리고 념[念, 생각(thoughts), 즉, 심장(heart)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은 행위(acts, deeds)]이 그 다음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의] 제5,6,7계[즉, 사람을 죽이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을 하지 마라.]들은 행[行, 행위(acts, deeds)]을 경계하고, [십계명의] 제8계[즉,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언[言, 말(words)]을 경계하며, [십계명의] 제9계[신명기 5,21ㄱ, 즉, 남의 아내를 탐내지(covet) 마라] 및 제10계[신명기 5,21ㄴ, 즉, 남의 재물을 탐내지(covet) 마라]는 또한 념[念, 생각(thoughts)]을 경계합니다.

(이상,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과 두 번째 열까지 또한 계속하여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그러니까, 문장 구조에 근거한 제6번째 계명제7번째 계명의 명확한 구분에 의하여, 간음도둑질이 두 개의 구분되는 종(species)들에 각각 속하게 된다면, 이들 윤리적 악(moral evils)들, 즉, 죄(sins)들을 범하고자 하는, 생각 중인, 그러나 자유 의지(free will)가 이미 동의한, 욕망(desire)도, 즉, 심장(heart) 안에 있는 욕망(desire)도, 또한, 문장 구조에 근거한 제6번째 계명제7번째 계명의 명확한 구분에 의하여 이미 구분된 해당 종(species)에 속하는 것이, 대단히 합리적이고(reasonable) 그리고 논리적일(logical) 것입니다. 그렇치 않는지요?

 

(이 글의 결론 13) 따라서, 위의 제5-1항에 서술된 바에 의하여, 그리고 특히 게시자 주 5-1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추가적으로 지적한 바에 의하여, 심장(heart) 안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인 행위(acts, deeds)들에 대하여, 육의 나악함을 경계하라는 제6번째 계명재물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라는 제7번째 계명을 구분하는 바로 그 받아들여진 동일한 기준(norm)/표준(standard)[즉,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받아들여진 올바름(rectitude)](*)을 또한 적용하여, (i) 상대방의 옹유(擁有)인 소유(所有)(즉, 남의 아내)(ii) 상대방의 옹유(擁有)가 아닌 소유(所有)(즉, 남의 재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신명기 5,21ㄱ(즉, 제9번째 계명)신명기 5,21ㄴ(즉, 제10번째 계명)의 중요성에 대하여 지적하는 이 글의 결론 5가, 인간들의 윤리적 처신들에 관한 한, 매우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임(logical)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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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과 같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제4항]

(발췌 시작)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영원한 법(the eternal law)에 순응/부합하는(fitting, conform),(#) 마지막 끝(the last end) 쪽으로 최적의 방향성 및 기울어짐과 함께 움직이도록 (어떤 방식, 시간, 혹은 정도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합당하게 명령을 받고 있음의 수용(受容)이라는 올바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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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부합(符合)하다/적합하다(, fitting, conform, virtuous, honestum)"이라는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 및 그 용례(examles)들은 다음의 글들에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8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0.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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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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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결론 14) 그리고 칠십인역 그리스어본 구약 성경의 권위(authority)를 존중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또한 바로 이 글의 결론 13에 도달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결론 13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 도출합니다.

 

5-2. 그리고 심장(heart) 안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인 행위(acts, deeds)들에 대하여, 육의 나악함을 경계하라는 제6번째 계명재물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라는 제7번째 계명을 구분하는 바로 그 받아들여진 동일한 기준(norm)/표준(standard)[즉,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받아들여진 올바름(rectitude)]을 또한 적용하여, (i) 상대방의 옹유(擁有)인 소유(所有)(즉, 남의 아내)(ii) 상대방의 옹유(擁有)가 아닌 소유(所有)(즉, 남의 재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신명기 5,21ㄱ(즉, 제9번째 계명)신명기 5,21ㄴ(즉, 제10번째 계명)에서, 특히 신명기 5,21ㄱ(즉, 제9번재 계명)의 중요성은, 마태오 복음서 5,31-32; 19,3-9; 마르코 복음서 10,9; 루카 복음서 16,19에 기록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라는 소제목이 붙은, 한 가장의 옹유(擁有)인 소유(所有)(즉, 한 가장의 아내)에 대한 "혼인의 불가해소성"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더욱 더 확고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5-3. 다른 한편으로, 미사가 시작되면, 입당, 인사 직후에 미사 집전 사제와 회중 모두가 참여하게 되는, 다음에 발췌된, "참회 예식(Confiteor, Confess, Penitential Rite)"에서,

 

출처: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ordinary.asp

(발췌 시작)

참 회

 

* 주일, 특히 부활 시기 주일 미사에서는 보통으로 하는 참회 예식 대신에 세례를 기억하는 성수 예식을 할 수 있다.

 

4. 그다음에 참회 예식이 이어진다. 사제는 신자들을 참회하도록 이끈다.

╋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잠깐 침묵한다. 그다음에 모두 함께 고백 기도를 바친다.

╋ 전능하신 하느님과
◎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thoughts)말(words)행위(deeds)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말한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이어서 계속한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사제의 사죄가 이어진다.

╋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교우들은 응답한다.

◎ 아멘.

(이상, 발췌 끝)

 

"... 생각[cogitatióne, 念, 생각(thoughts), 즉, 심장(heart)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은 행위(acts, deeds)]말[verbo, 言, 말(words), 즉, 심장(heart) 바깥으로 표출된 말(words)이라는 행위(acts, deeds)]행위[opere, 行, 즉, 심장(heart) 바깥으로 표출된 행위(acts, deeds)] ..."를 입 바깥으로 말하는 순간에, 득히 심장(heart) 안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인 행위(acts, deeds)들에 대하여, 육의 나악함을 경계하라는 제6번째 계명재물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라는 제7번째 계명을 구분하는 바로 그 받아들여진 동일한 기준(norm)/표준(standard)[즉,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받아들여진 올바름(rectitude)]을 또한 적용하여, (i) 상대방의 옹유(擁有)인 소유(所有)(즉, 남의 아내)(ii) 상대방의 옹유(擁有)가 아닌 소유(所有)(즉, 남의 재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신명기 5,21ㄱ(즉, 제9번째 계명)신명기 5,21ㄴ(즉, 제10번째 계명) 내용들을 또한 상기하는(recall) 것은, 참회 예식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기에, 상당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5)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도, 이 글의 결론 5가, 인간들의 윤리적 처신들에 관한 한, 매우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임(logical)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6. 

6-1. 다음에 발췌된 바는,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자신이 밝힌, 자신에 의하여 마련된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의 구분에 대한 글입니다.

 

게시자 주 6-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위의 제1항부터 제5-1항까지 작성 완료한 후에, 아래의 출처에 있는 글을 찾아내었는데, 영어가 수월한 분들께서는, 위의 제1항부터 제5항까지에서 필자가 말씀드린 바가, 그 내용들에 있어,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자신이 밝힌 십계명들의 구분에 대한 글에서 말하는 바와 어느 정도까지 부합하는지(fitting, conform)에 대하여 정밀하게 비교/검토할 것을 꼭 요청드립니다:

 

출처: http://lonelypilgrim.com/2013/10/09/st-augustine-on-how-to-divide-the-ten-commandments-did-catholics-change-the-ten-commandments/

(발췌 시작)

St. Augustine on How to Divide the Ten Commandments: Did Catholics “Change” the Ten Commandments?

 

Saint Augustine in His Study, by Botticelli.

Saint Augustine in His Study (1480), by Botticelli (Wikipedia).

 

Here’s a little something that I shouldn’t spend a lot of time on by way of introduction (I’m presently nearly at the honest-to-goodness final attack of my thesis) — but it is nonetheless an important apologetic topic: Did Catholics change the Ten Commandments? The presentation of the Ten Commandments (or Decalogue) used by Catholics is in fact different from the one used by many Protestants. The “Catholic Ten Commandments” seems, very suspiciously, to omit the commandment that forbids the making of “graven images” — which, to the minds of anti-Catholics, seems to confirm their every accusation: “Catholics worship idols, and not only do they know it, but they changed the Ten Commandments so their gullible followers would never even know it was wrong!”

 

… No. The Catholic Church condemns idolatry explicitly, both the worship of images and the exaltation of any thing above God. Why, then, did Catholics “leave out” that commandment? Here are several things the critic should realize:

  1. The Ten Commandments are not numbered in Scripture. The original texts of the Bible did not even have verse numbers — the system of verse numbers we have today is a product of the Protestant printer Stephanus.

  2. The listings of the Ten Commandments in Exodus 20 and Deuteronomy 5 do not even state that there are ten of them; it is only elsewhere (cf. Exodus 34:28) that they are called the Ten Commandments. Taken by themselves, there are actually about fourteen imperative commands given by the Lord to Moses on Mount Sinai.

  3. Ten Commandments

    St. Augustine was really Moses? Or Charlton Heston was really St. Augustine?

  4. When the Church Fathers received this unnumbered, undivided lump of fourteen-ish commandments, it was up to them to formulate them into a list of “Ten,” grouping some commands with others to which they seemed to be related. And different Fathers arrived at different lists.

  5. The Catholic Church follows the tradition of numbering established by St. Augustine — and has been since long before anybody numbered the verses. The Lutheran churches follow the same tradition. The Reformed, I suspect just to be contrary and anti-Catholic, were the ones who “changed” the Ten Commandments, adopting the numbering established by Eastern Christianity.

  6. Rather than dividing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and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y graven image” into two separate commandments, as do the Reformed and Evangelicals, Augustine saw that “making for oneself an idol and bowing before it” (Exodus 20:4) was but an elaboration of having other gods before God, and grouped the two into one commandment. In Catholic catechetical formulae, the “graven images” part is often omitted — not because we are abridging Scripture, but because it is easier for kids to memorize that way, and the part about “graven images” is pretty much redundant. Augustine instead divided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 and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wife” into two commandments.

  7. Ten Commandments

  8. Evangelical Protestants (at least, speaking from my experience) tend to overlook any further grouping of the Ten, and take for granted that five would be placed on either tablet. But Augustine rightly saw an internal division: the first three commandments pertain to man’s obligations to God, and the last seven pertain to man’s obligations to his fellow man. The three pertaining to God, fittingly, form a Trinity.

  9. It is worth noting that the commandment against “making a graven image and bowing to it” is not a prohibition against making any image or statue ever. God directly commands the Israelites to fashion images or statues on at least several occasions: the cherubim on the mercy seat of the Ark of the Covenant (Exodus 25:17–22, 37:7–9) and woven into the fabric of the tabernacle (Exodus 26:1, 31, 36:8, 35), the bronze serpent in the desert (Numbers 21:4–9), and the elaborate carvings and adornments of Solomon’s Temple (1 Kings 6–7). This commandment is specifically against idolatry, creating and worshipping images as gods. It is also worth noting that Catholics don’t worship statues.

St. Augustine

St. Augustine (c. 1645-1650), Philippe de Champaigne.

 

When I read in the Catechism about Augustine’s numbering of the Decalogue, I thought that would be a valuable text to have for refuting anti-Catholic arguments, and I set out to find it. I mostly found only other people similarly looking for it, but did find a reference: Question 71 in Augustine’s Questions in Exodus (Quaestio LXXI, Quaestiones in Exodum). At last I found the Latin text [주: 제251쪽], with no English translation — and thought I would do everyone else a service and here give a translation. I am not an expert on this stuff, so if anyone out there is, please feel free to critique my work and help improve it.

 

Below is St. Augustine’s reasoning regarding why he chose to divide the Decalogue the way that he did, the way that the Catholic Church continues to observe. There was a bit more to the question following this about divisions between the other commandments, the ones regarding which everyone tends to agree — but this was the part relevant to the commandment against idolatry, and the common anti-Catholic charge.

(If anybody is interested in the rest of it, let me know and I can finish the translation. Also, I did this translation months ago! It is not distracting me from my thesis right now other than this introduction I’m giving — which, as usual, has proven more formidable than I intended.)

 

St. Augustine on How the Ten Commandments are to Be Divided

열 개의 계명들이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


Quaestiones in Exodum, Question 71

탈출기에 있어 질문들, 질문 71

 

It is asked, in what way the Ten Commandments of the Law are to be divided: whether there are four up to the commandment concerning the Sabbath, which pertain to God Himself, and six that remain, of which the first is, “Honor thy father and mother,”1 which pertain to man; or whether it is more fitting that the former be three, and the latter seven. Indeed those who say the former to be four, separate the commandment, “You shall have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that it might be a separate commandment,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dol,”2 whereby the worshipping of images is prohibited. However those same wish to combine into one,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wife;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3(*1) and all the rest up to the end. Certainly those who say the first group to be three, and the second group seven, wish to combine into one whatever is commanded concerning worshipping God, that nothing before God is worshipped. These on the other hand divide the last one into two, that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 might be a separate commandment. In neither case is there any doubt that there are Ten Commandments, since Scripture itself testifies to this.

 

어떤 방식으로 율법의 십계명(Ten Commandments of the Law)들이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있어, 다음과 같이, 질문하게 됩니다: 하느님 당신 자신 쪽으로 적절한/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pertain to), 안식일에 관련한 계명에 이르기까지 네 개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첫 번째가, 사람 쪽으로 적절한/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pertains to), "그대의 부모들을 공경하라"1인, 남아 있는 여섯 개가 있어야 하는지?, 혹은 전자가 세 개이고, 그리고 후자가 일곱 개인 것이 더 부합(符合)한지/적합한지(fitting)? 정말로 전자가 네 개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바로 그러한 자들은 "그대는 내 앞에서 다른 어떠한 잡신(gods)들도 가져서는 안 된다"를 분리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 바로 그것에 의하여 상(images)들에 대한 경배 행위가 금지되는, "그대는 자신을 위하여 한 개의 우상(an idol)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2가 한 개의 분리된 계명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바로 그러한 자들은 "그대는 그대의 이웃의 아내(wife)를 탐내서는(covet) 안 된다; 그대는 그대의 이웃의 집/창고(house)를 탐내어서는(covet) 안 된다"3(*1) 및 [이 문장의] 그 끝에 이르기까지 그 나머지를, 한 개로 결합시키는(combine) 것을 바랍니다(wish).(*2) 확실하게, 첫 번째 집단이 세 개로 구성되어야 하고 그리고 두 번째 집단이 일곱 개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바로 그러한 자들은, 하느님을 경배함에 관련하여 명해진 무엇이든지를 하나(one)로 결합시켜(combine),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 앞에서 어떠한 사물(thing)도 경배되지 못하는 것을 바랍니다(wish). 바로 이러한 자들은, 다른 한편으로, 마지막 하나(the last one)를 둘(two)로 구분하는데, 그리하여 그 결과 "그대는 그대의 이웃의 집/창고(housee)를 탐내어서는 안 된다"가 한 개의 분리된 계명이 됩니다. 어느 경우에 있어서도, 열 개의 계명(Ten Commandments)들이 거기에 있음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없는데, 왜냐하면 성경 본문(Scripture) 자체가 바로 이것에 대하여 증언하기(testifies) 때문입니다. 


Still it seems to me more fitting that the first group be accepted as three, and the other as seven, because those three which pertain to God seem to make known the Trinity to those diligently contemplating. And truly the commandment,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is itself explicated more completely by the prohibition of worshipping images that follows. Further on, coveting another’s wife, and coveting another’s house, differ as much in the sins as in the commandments themselves.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 might also be joined to other things Scripture says, “Nor his field, nor his manservant, nor his maidservant, nor his ox, nor his ass, nor anything of your neighbor’s.”4 Moreover coveting the wife of another seems to be separate from coveting anything else of another, since both begin thus,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wife;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1) both commandments begin with the statement “You shall not covet,” but it is only to the latter that it fastens the other things, saying nor his house, nor his field, nor his servant, and the rest.(*2) These all appear to have been joined together and seem to be contained by one commandment, and are separate from that commandment where the wife has been named. The commandment which says,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appears more devoted to the carrying out of those things which have been placed under it. To what indeed does this pertain, “You shall not make an idol, nor any likeness of anything which is in heaven on high, or anything on earth below, or anything in the sea beneath the earth; you shall not worship them or serve them,”5 unless to the commandment,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저에게는, 첫 번째 집단이 셋으로서 그리고 다른 집단이 일곱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부합(符合)하는/적합한(more fitting) 것으로, 더한층(still) 생각되는데(seems to), 왜냐하면 하느님 쪽으로 적절한/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pertain to) 바로 그것들은 부지런히 관상하는(contemplating) 바로 그러한 자들에게 성삼위/삼위일체(the Trinity)를 알게 한다고 생각하기(seem)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그대는 내 앞에서 어떠한 잡신(gods)들도 가져서는 안 된다"라는 계명은, 그 자체로, 뒤따르는 상(images)들을 경배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더 완전하게(completely) 상세하게 설명됩니다(is explicated). 더구나, 다른 이의 아내(wife)를 탐내는 행위와 다른이의 집/창고(house)를 탐내는 행위는, 죄(sins)들에 있어, 이 계명들 자체에 있어 서로 다른 바로 그만큼(as much), 많이 서로 다릅니다(different). "그대는 그대의 이웃의 집/창고(house)를 탐내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그대의 이웃의 무엇이나, 탐내어서는 안 된다"4라고 성경 본문이 말하는, 다른 사항(things)들 쪽으로(to) 또한 결합될 수 있습니다(might). 더구나, 다른 이의 아내(wife)를 탐내는 행위는 다른 이의 다른 어떠한 사물을 탐내는 행위로부터 분리된다는 생각인데, 왜냐하면 이들 둘 다는 "그대는 그대의 이웃의 아내(wife)를 탐내어서는 안 된다; 그대는 그대의 이웃의 집/창고(house)를 탐내어서는 안 된다"(*1)라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thus) 시작하여, 그리하여 이들 둘 다 계명들은 "그대는 탐내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하며, 그러나, 그의 집/창고(house)나, 그의 종이나, 그리고 그 나머지를 탐내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함으로써, 다른 사항(things)들을 붙들어 매는 것은 오로지 후자 쪽으로(to)이기 때문입니다.(*2) 이들 모두는, 이미 함께 결합되어진 것으로 생각되고(appear to) 그리하여 하나의 계명에 의하여 포함된다고 생각하며(seem to), 그리하여 이웃의 아내(wife)가 이미 거명된 바로 그 계명으로부터 분리됩니다. "그대는 내 앞에서 다른 어떠한 잡신(gods)들도 가져서는 안 된다"라는 계명이 그것 아래에 이미 배열된 바로 그 사항(things)들의 실행 쪽으로 [이들 사항들보다도] 더 헌신하는/전념하는(more devoted to)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대는 어떤 우상(an idol)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위로 하늘에 있는 어떠한 사물의, 혹은 아래로 땅 위에 있는 어떠한 사물의, 비슷함(likeness)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5라는 바로 이 문장이, "그대는 내 앞에서 다른 어떠한 잡신(gods)들도 가져서는 안 된다"라는 계명 쪽으로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 쪽으로 정말로 적절할까요/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될까요(pertain to)

 

3. Exodus 20:17 <--- 게시자 주: 위의 본문 중의 제3항에서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지적하였듯이, 여기를 클릭하면 읽게 되는,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편집된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 번역 대본으로 하고 있는, 탈출기 20,17 본문은, 아래의 출처 1, 출처 2, 출처 3, 출처 4, 출처 5, 출처 6, 출처 7, 출처 8, 그리고 출처 9 본문 중에서 발췌된 탈출기 20,17 본문과 정확하게 동일하지 않음.

(*1) 게시자 주: 바로 이 부분은, 성 아우구스티노가 읽었던 탈출기 20,17칠십인역 그리스어본 탈출기 20,17과 정확하게 동일함을 말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따라서, 바로 이 부분은, 성 아우구스티노가 읽었던 탈출기 20,17(i) 성 예로니모에 의하여 번역된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 탈출기 20,17정확하게 동일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고, 또한 (ii) 기원후 9세기 경에 유다교 용도로 편집된 마소라본 히브리어 탈출기 20,17정확하게 동일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따라서, 바로 이 부분은, 위의 제3-4항에 있는 이 글의 결론 3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가 실제로 발생하였음을 지지하는, 한 개의 강력한 실증적 증거(a strong positive evidence)이다. 그리고 다음의 출처 1 주소에 접속하면, 라틴어 원문, 제252쪽에 서술된 바를 직접 읽을 수 있다:
출처 1: http://archive.org/stream/operaomniaaccura06auguuoft#page/252/mode/2up [주: 구약 성경의 첫 일곱 개의 책들(즉, 1. 창세기부터 7. 판관기까지)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해설들 모음; (2021년 2월 14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해설집이 419년에 저술되었음을 알 수 있음: https://books.google.co.kr/books?id=rkvLsueY_DwC&pg=PA134&lpg=PA134&dq=%22St+Augustine%22+%22Locutionum%22&source=bl&ots=hlnm_cMixJ&sig=ACfU3U1na76S7-QiCH_dDjlZhTyBc7kBug&hl=ko&sa=X&ved=2ahUKEwjwz5i71OjuAhWlKqYKHQV1CnM4ChDoATAIegQIBRAC#v=onepage&q=%22St%20Augustine%22%20%22Locutionum%22&f=false]
출처 3: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de/5q.htm [주: digitalized texts. 2071항. 첫 번째 및 두 번째 단락의 영문본 번역문이 위의 본문에 발췌됨]
출처 4: http://www.augustinus.it/latino/questioni_ettateuco/quest_ettateuco_2_libro.htm [digitalized texts. 제71항. 첫 번째 및 두 번째 단락의 영문본 번역문이 위의 본문에 발췌됨]
출처 5: http://www.mlat.uzh.ch/MLS/xfromcc.php?tabelle=Augustinus_Hipponensis_cps2&rumpfid=Augustinus_Hipponensis_cps2, Quaestiones in Heptateuchum, 2, 71&id=Augustinus_Hipponensis_cps2, Quaestiones in Heptateuchum, 2, 71, 14&level=99&level9798=&satz=14&hilite_id=Augustinus_Hipponensis_cps2, Quaestiones in Heptateuchum, 2, 71, 14&string=Sed!rursum!quaeritur!quo!differat:!Non!furtum!facies&binary=&corpus=&target=&lang=0&home=&von=suchergebnis&hide_apparatus=1&inframe=1&jumpto=14#14 [주: digitalized texts. 이 검색 결과는 http://www.mlat.uzh.ch/MLS/ 에 접속하면 확보되는 화면의 왼쪽 아래에 있는 검색창에 "Sed rursum quaeritur quo differat: Non furtum facies"을 입력하여 검색함으로써 확보된 다음의 검색 결과로부터 획득된 것임: http://www.mlat.uzh.ch/MLS/advsuchergebnis.php?suchbegriff=Sed%20rursum%20quaeritur%20quo%20differat:%20Non%20furtum%20facies&table=&level2_name=&from_year=&to_year=&mode=SPH_MATCH_EXTENDED2&lang=0&corpus=all&verses=&lemmatised=&suchenin=alle ]
출처 6: http://www.mlat.uzh.ch/MLS/advsuchergebnis.php?suchbegriff=Non%20concupisces%20uxorem%20proximi%20tui:%20Non%20concupisces%20domum%20proximi%20tui&table=&level2_name=&from_year=&to_year=&mode=SPH_MATCH_EXTENDED2&lang=0&corpus=all&verses=&lemmatised=&suchenin=alle [주: digitalized texts. 이 검색 결과는 http://www.mlat.uzh.ch/MLS/ 에 접속하면 확보되는 화면의 왼쪽 아래에 있는 검색창에 "Non concupisces uxorem proximi tui: Non concupisces domum proximi tui"를 key word로 하여 검색한 결과 확보된 정보들임] 
출처 7: http://archive.org/stream/operaomniaaccura06auguuoft#page/488/mode/2up [주: Questio X. 신명기 5,5-6; 5,24 가 인용되고 있으며, 그러나 신명기 5,21의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음]
출처 8: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de/5t.htm [주: digitalized texts. 제5010항. 신명기 5,5-6; 5,24 가 인용되고 있으며, 그러나 신명기 5,21의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음]
출처 9: http://www.mlat.uzh.ch/MLS/xfromcc.php?tabelle=Augustinus_Hipponensis_cps2&rumpfid=Augustinus_Hipponensis_cps2, Quaestiones in Heptateuchum, 5, 10&id=Augustinus_Hipponensis_cps2, Quaestiones in Heptateuchum, 5, 10, 1&level=99&level9798=&satz=1&hilite_id=Augustinus_Hipponensis_cps2, Quaestiones in Heptateuchum, 5, 10, 1&string=Et!ego!stabam!inter!Dominum!et!vos!in!tempore!illo&binary=&corpus=&target=&lang=0&home=&von=suchergebnis&hide_apparatus=1&inframe=1&jumpto=1#1 [주: digitalized texts. 이 검색 결과는 http://www.mlat.uzh.ch/MLS/ 에 접속하면 확보되는 화면의 왼쪽 아래에 있는 검색창에 "Et ego stabam inter Dominum et vos in tempore illo"을 입력하여 검색함으로써 확보된 다음의 검색 결과로부터 획득된 것임: http://www.mlat.uzh.ch/MLS/advsuchergebnis.php?suchbegriff=Et%20ego%20stabam%20inter%20Dominum%20et%20vos%20in%20tempore%20illo&table=&level2_name=&from_year=&to_year=&mode=SPH_MATCH_EXTENDED2&lang=0&corpus=all&verses=&lemmatised=&suchenin=alle ]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3월 17일]
(*2) 게시자 주: 바로 이 서술은,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 가 읽었던 탈출기 20,17의 문장 구조에 대하여, (위의 결론 1)(위의 결론 3)에서 필자가 도출한 결론들을 지지하는 분명한 한 개의 실증적 증거(a positive evidence)일 것이다..
[이상, 2018년 3월 17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즉, 십계명에서 열 개의 말씀들의 구분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설명)의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3월 17일]

6-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6-1항에 발췌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의 구분에 대한 설명을 읽은 것이 분명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주어진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의 구분에 대한 설명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유관 문장들의 우리말 번역문들이 또한 제시된, 제4조를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7.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6-2: 특히,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주어진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의 구분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교 내에서 십계명의 열 개의 말씀들의 구분에 있어, (i) 헤시키오(Hesychius)에 의한 구분, (ii) 오리게네스(Origen, 184-253년)에 의한 구분, (iii) 예로니모(Jerome, 347-420년)에 의한 구분, 그리고 (iv) 아우구스티노(Augustine, 354-430년)에 의한 구분, 이들 여러 구분들 사이의 차이점들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6-3.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신학 대전"이 저술된 이후인 1573년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십계명들에 대한 해설(Explanation of the Ten Commandments)"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isidore.co/aquinas/TenCommandments.htm 

[이상, 2018년 3월 17일자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2월 20일]

게시자 주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본글에 이어지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1.htm <----- 또한 필독 권고

[이상, 2020년 2월 20일자 내용 추가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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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32시간 (자료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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