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목련나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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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1-07-03 ㅣ No.2977

청량리성당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내가 75년에  떠났던 청량리성당에  97년 가을 무렵 다시 돌아왔을때 우선 눈에 들어왔던것은  빨간 기와를 인  아담한 수녀원 건물과 그 마당에 서 있는 키 큰 목련나무 한그루였다. 목련나무는  담장을  훌쩍 넘어 커 올라 해마다 봄이면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 주는 성당의 상징이었다.

봄이면 우리는 하나씩 둘씩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을 보며 가슴 설레했다.

 

 지난 주 화요일인가  성당에 갔을때 성당이 웬지 휑하니 빈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보니 수녀원의 빨간 기와가 벗겨지고  마당의 목련나무는 이리저리 잘려 누워있었다.

단정히  버티고 서 있었던  나무가 없어지니 그 만큼 허전하였던 것이다. 잘려진 나무를  보고 낙심해 하는 나에게 이강호 시설분과장은 " 나무를 살려보려고 했으나 워낙 나무가 커서 이- 이 만큼 넓고깊게 파서 뿌리를 싸야하고, 그런 작업을 해도  산다는 보장이 없어 포기했노라" 고 미안해 했다.  그날 마당에서 원장 수녀님을 보니 나무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 수녀님, 목련나무가 잘려 섭섭하시겠어요".

"예 아주  섭섭해요."

수녀님의 얼굴에도 나무를 잃은 아픔이 있었다.

 

내가 서울 도심 한복판의 직장에 다닐때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재빨리  점심을 먹고 덕수궁 옆의  성공회성당 마당으로  갔다. 그 성당 마당은 자연스러운 영국식 정원 스타일로 꽤 넓고 온갖 꽃들이 심어져 있어서 우리는  꽃그늘 아래서  마음껏  놀았다.

  어느날 산책 나온 성공회 김성수 대주교님으로부터 우리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지금까지의 성당은 미완성건물로 성당 1백주년을 맞아 마당을 없애고 성당을 증축한다는 것이었다 ".

 며칠후 성당 마당에서 김성수 주교님의 부인을 만났다. 그 부인은 영국사람이지만 한국 여성들보다   더 부지런하고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일찍부터   한국의 장애인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장난감 도서관을 세워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빌려주는등  아주 훌륭하게 사는  분이다. 그 분을 만나 "성당을 크게 짓게되어  기쁘겠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 많은 사람이 즐기던 꽃과 나무가 없어지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 고 했다.

몇년후에 12사도를 본따서 12개의 방향으로 작은 지붕을 세운  성공회 성당은 완공되었지만  우리가 아꼈던  자연스러운 정원은 영영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지난 주일날 내가 보기에 꽤 진지하고 심각했던 사목회의가 있었다. 그런 회의가 왜 좀더 빨리 열리지 않았을까가 안타까왔다.  보통때는 말을 아끼시는 형제님들께서 속내를 이야기하셨다.

라틴어로 ’함께 간다’는 뜻의  시노드가 열리고 있는 이때 전교회 구성원이 좀더 교회의 일을 소상히 알 수 있도록 배려하며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

 지금까지 있어왔던 여러 차례의 대 역사 (두차례의 성전건축, 다볼산묘지건설등)들에서 보듯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어 ’하나보다 나은 여럿’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고 간격을 좁히려는 겸손함, 이것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 헌장)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등,   상당히 내용있고 건설적이며 고민하고 아파하는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어떤  아름다운 모습을 훔쳐보았다.  발언을 하시느라고 한때 얼굴을 붉히셨던  한 형제님은  신부님께 다가가서  사과의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후 신부님은  담배 한개비를 물고 마당에 나와 빈터를 바라 보셨다.

"저대로 두고  집짓지 말까?"

" 예. 그것 좋겠어요.  꽃이나 심지요. 저는 환경론자이거든요."

 "그럼 성당은 어찌 먹고 살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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