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행복한 첫영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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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1999-06-07 ㅣ No.228

오늘 주일 학교 어린이들의 첫영성체식이 있었습니다.

저희 성모회 엄마들은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면서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답니다.

1년전 쯤의 일을 되새기면서...

아픈 기억들이 우리 삶의 은총이었음을 새삼 새삼 깨닫게 되는...

아무도 그 때일을 이젠 아파하지 않는 듯 하였습니다.

생각만해도 진저리가 쳐진다고 말하는 엄마들의 얼굴에는

한 고비를 넘어선 여유로운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으니까요

 

오늘 복음 말씀은 성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습관처럼 미사 참례를 하고

아무 느낌 없이 모시던 성체에 대한 거룩함이

새롭게 다가온 날이었습니다.

 

저에겐

성체에 대한 어린 날의 아픈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 땐 그게 성체인지 뭔지도 잘 몰랐었지만,

성체를 모시며 들어오는 친구들이

너무 너무 부러워서,

나도 그냥 몰래 나가서 저 밀떡을 받아 먹어 버릴까하는...

마음 먹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

가슴이 쿵쾅 쿵쾅 뛰던 어린 시절에

신자는 아니었지만 성당에 들어가서

성수를 이마에 찍고

성호경을 긋는 일이 내겐

참으로 성스러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겐

이름뒤에 따라오는 예쁜 세례명도 없었고,

미사보와 묵주도 없었습니다.

 

학교 앞마당에 서 계신 마리아님의

얼굴은 어떤 인형보다 예뻐보였구요

그 분께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는

선생님 말씀에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라고 한 기도가 100일이 지나도

200일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아

'무슨 하느님이 이래?' 하던 웃음나는 기억.

 

제겐

어린 제 가슴에 작은 성호경을 긋는 일이

큰 평화를 주는 위안이었거든요

그런데 작은 친구가 저에게 그랬어요

"너 신자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하던

제 팔이 어린 그 나이에도

얼마나 무색하였던지요.

 

다음 날부터 저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

대학생이 된 다음

'하느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이럴 수 있을까?'

라고 저에게 물어보았지요.

그러면서도 제가 아주 힘이 들 때 찾아가곤 하던 곳은

명동성당이었습니다.

그 때 몰래 신자인 척하고 미사중 구석에 숨어 있던 제게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라는 신부님의 기도가

얼마나 얼마나 어색하였던지요.

그 때에도  예수님께선 제 곁에서 저를

어루만져 주고 계셨다는 걸

저는 엄마가 되고 난 다음에 알았습니다.

 

지난 날의 작은 아픔이

오늘의 큰 사랑으로 변화되는 신비로움은

하느님의 은총이겠지요?

 

오늘 첫영성체를 한 아이들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빛으로 반짝 반짝 빛날 수 있다는 걸

저는 믿고 바란답니다.

 

오늘,

엄마가 되어,,,,,

'모든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스스럼없이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지켜보았던

쳣영성체식은 저에게도 큰 행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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