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성당 게시판

뿌리가 나무에게.... '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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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dorinamu] 쪽지 캡슐

2000-07-02 ㅣ No.792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을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두울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을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등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 가야만 했다.

 

 

잎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 이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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