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세상에 이럴수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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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년은 정말 가난한 사람을 위한 대희년이어야 합니다
우리본당(신월동) 게시판에 올라와 있던 내용인데요, 이곳 게시판에도 올라왔을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과 다시 한번 상기하기 위하여 올려봅니다. 여러분들 부디 끝까지 읽어보시고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좋은 의견이 있으면 연락부탁드립니다.
호 소 문
: PC 통신을 사랑하는 분들께.....
: 저와 제 동료들의 불행과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이 글을 올립니다.
: 저는 올해 나이 만36세로 이름은 정희양 이라고 합니다. 저는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 16BL 소재의 (주)동국합섬에서 10년을
: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를 자신할 수 없는
: 만신창이의 몸이 되어 쓸쓸히 이 회사를 상대로
: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럼 먼저 이 동국합섬이란 회사가 어떤 회사이며 얼마나 비도적인
: 회사인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 (주)동국합섬은 공장이 4개 있습니다.
: 주요 생산품목은 1공장 8폴리에스텔(원사), 2공장 :
: 스판덱스(고무실), 3공장 : 폴리에스텔(원사), 4공장 : 폴리에스텔 칩(원료)
: 등 주로 화학섬유를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 그래서 동국합섬엔 일반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독성을 지닌
: 화학약품들을 많이 취급하고 있습니다.
: 특히 2공장 스판덱스 생산라인은 고부가가치의 사업이긴 하지만
: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각종 부작용 등으로 인해 동국합섬보다 기술이 우수한
: 다른 업체에서도 생산을 포기한 사업이었습니다.
: 안전시설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되기 때문이었지요.
: 하지만 e동국합섬은 가건물(조립식건물)처럼 지어진 공장을 199-년
: 봄부터 가동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엔 관심이 없는 듯 무서운
: 화학약품들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안전장비류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채 면으로된
: 일반작업복 차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화학약품에 화상을
: 입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피부병이 유행처럼 번져서 문둥병 환자를 방불케 합니다.
: 독자여러분! 동국합섬의 피부병이 왜 계속 발생하고 있을까요?
: 이것은 피부병이 아니라, 화학약품에 의한 부작용이기 때문입니다.
: 저는 직업병이란 것이 노동자들의 실수에 의해, 드물게 일어나는 것인 줄
: 알았습니다. 하지만, 동국합섬엔 너무나 평범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 지난 95년도에는 피부병 문제가 심각해져서 시끄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 노동조합에서 이의를 제기하며 노동부에 고발까지 됐던걸로 알았는데
: 어느날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 조용해진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달라진 일이 있다면
: 안전시설이나 안전장비를 지급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 피부병 환자들은 다른 공장으로 이동 시켰습니다. 그 이후로는 환자가 발생할때면
: 계속 이런 일들만 되풀이 되었습니다.
: 저는 1989년 3월에 입사하여 1997년 10월까지 1공장에서 근무했으나
: 인사이동으로 2공장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때부터 저에게 불행이
: 시작 된 것입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온몸이 붉은 반점으로 얼룩지더니 가려움증을
: 동반한 종기들이 수없이 발생했습니다. 흰색의 런닝셔츠엔 피와 고름으로
: 깨알같은 점들이 생기는 일이 잦아 졌습니다. 그리고 화공약품의 악취로 코피가 나고,
: 코속이 헐어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심한 편두통으로 시달려야 했으며,
: 알수없는 현상으로 피로감을 빨리 느끼곤 했습니다.
: 그런데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저와 같은 증상들이
: 싫어서 직장을 떠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 인사이동으로 다른 공장으로 간다고 해도 좋아지는 건 별로 없습니다.
: 다른 공장에서는 화공약품은 물론 소음까지 심하여 귀마개를
: 착용하지 않으면 고막이 찢어지는 듯 합니다. 소음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 라인에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 그러나 이곳에도 시설은 형편없어서 소음을 흡수할만한 방음벽은
: 생각 해 볼수도 없습니다. 블록으로 지어진 단순한 벽에 불과 합니다.
: 저는 동국합섬의 이러한 환경에서 10여년을 근무하여 생활한 탓에
: 병마에 시달리며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1999년 2월엔 결국 쓰러지는
: 일까지 생겼습니다. 저는 오른쪽 귀가 아파서 견딜 수 없었고,
: 편두통이 있을때는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 그러던중 병원을 찾았는데, 저는 이곳에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 저는 몇십만에 한명이 나올까 말까한 희귀한 암(외이도 선암)이라는
: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대 병원까지 가게 되었는데, 저는 이곳에서 또
: 한번의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설마설마 했었는데 정말로 저는 암이었습니다.
: 그것도 말기(4기)라는 것과 2개월을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판정이었습니다.
: 저의 암은 귀에서부터 뇌속까지 확대되어 있었는데 정맥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 저는 시한부라는 것과, 심한 고통, 막대한 병원비를 우려하여 한때는 자살을 결심한 적도
: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때의 절박한 심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 저는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으며, 결국 수술까지
: 받게 되었습니다. 24시간의 수술이 있었고, 정맥까지 파고든 암세포들은
: 제거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 독자 여러분. 저는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암세포 때문에 방사능
: 치료를 받았으나 재발한다면 더 이상 수술할 공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 지금 오른쪽 귀가 제거 되었으며 귀에서 뇌속으로 이어진 신경조직들이 모두 제거
: 되었습니다. 저는 뇌를 감싸고 있는 뇌막도 없으며 우측의 뇌를 들어 내야만
: 했습니다.
: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측 턱뼈의 관절부분을 잃게되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 혀는 신경의 절반을 뽑아서 뇌신경에 이식한 상태라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 저는 오른쪽 눈에도 수술 후유증이 있습니다.
: 뇌수술을 받을 때 우측시신경도 절반을 잃게 되었습니다.
: 저는 우측눈을 감을수도 없으며 테이프를 붙여놓고 생활해야
: 합니다. 그리고 안면마비가 심하여 어쩌면 좌측의 시력까지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 이밖에도 저의 배 부분은 상당히 많은 피부를 머리에 이식했으므로 몸은
: 뒤틀리고 허리를 펼수도 없으며 음식도 밥 한공기를 다 먹지 못합니다.
: 독자 여러분! 수술이 끝난 지금 저의 단란했던 가정은 비참할 정도로
: 변했습니다. 거액의 수술비로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습니다. 생계는 아내가,
: 제 병간호를 하면서 틈틈이 청소일을 하러 다니는데, 월 20만원의 수입으로 생계를
: 꾸리고 있습니다. 집안엔 하루하루 쌀을 사서 밥을 짓고 때로는 끼니를
: 거를때도 있습니다.
: 제가 몸이 뒤틀려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므로 아내가 영양가 있는
: 음식(계란)을 마련하는데 정작 아내는 너무나 자주 굶어서 몸이 퉁퉁 부어
: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수술을 한번 더 받아야 한다는데
: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할 길도 없고
: 부채에 찌든탓에 그리고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러 명예퇴직까지 하고
: 말았습니다.
: 이제 우리가정은 이집(사택)도 비워줘야 합니다.
: 병든몸으로 어디를 가야할지 막연하기만 합니다. 6세의 서은이와
: 4세의 딸 채은이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저 죄스러울 뿐입니다.
: 무너질대로 무너지고 만신창이가 된 가장의 마음이 이런것인줄 몰랐습니다.
: 독자 여러분,
: 저는 살고 싶었기에 처 자식을 먹여 살리고 부채도 탕감해 보려고 보험일을
: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움직일때마다 찾아오는 통증과 어지러움 증상은
: 2~3일만에 저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 독자여러분, 저의 이병이 어디에서 비롯 되었다고 생각되십니까?
: 저는 지금도 암투병과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회사는 저를
: 완전히 외면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 찾아오지도 않았으며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지 않았습니다.
: 오로지 저에게 전한 말이 있다면
: 휴직기간이 끝났으니 더 이상 급여(60만원)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과,
: 출근을 하라는 통지였습니다. 수술을 하고 실밥도 풀지 않은 사람에게 말입니다.
: 독자여러분! 저는 몸이 채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을 했습니다.
: 그리고 오래전부터 회사에서 너무한다고 생각했기에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고
: 생각했습니다. 저에겐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웠지만 너무도 냉담했으며 괴물
: 취급을 받는게 싫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저는 수술 후 귀도 없고 형편없이 야위어서 사람들에게
: 나서기를 두려워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게는 더 이상 잃을게 없다고
: 생각했기에 회사를 상대로 투쟁을 해 왔습니다.
: 변호사를 만나기도 했으며, 성당이나 각종 사회단체를
: 찾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음식도 잘 먹지 못하여 체력이 형편없습니다.
: 쓸쓸히 투쟁을 한지 벌써 한달이며 지금 저는 너무도 지쳐 있습니다.
: 병든 몸으로 혼자서 대기업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 저는 정말 너무 괴롭습니다.
: 독자 여러분! 저는 뇌손상이 심하여 제 생명이 많이 단축될 것
: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36세의 젊은 나이는 죽는날까지 암재발을 염려하며
: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투쟁을 하려 합니다.
: 제가 무덤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이 회사의 부당노동 행위들을 알리려 합니다.
: 지금 동국합섬은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를
: 이번 명예퇴직 대상에 포함시켜 반 강제로 회사를 떠나게
: 했습니다. 이들에게도 입과 입을 통해서 전달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 있도록 하고 싶은게 제 소망이랍니다.
: 독자여러분, 동국합섬은 제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제 억울함을
: 하소연 한다는 것을 알고 저에게 접근하여 돈을 원하면 돈을 줄테니 조용히
: 있으라고 말을 했습니다.
: 그리고 수개월전 제가 병원에 있을때도 하지 않았던 모금운동을
: 회사를 떠난 지금에 했던 것입니다.
: 제가 이렇게 분개한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회사는 열악한 근무환경
: 속에서 병들어가는, 또 박봉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려 모금을 하고
: 그 돈으로 제입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 동국합섬 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피부병에 시달리고, 귀마개를
: 끼운채, 밤잠을 못자며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금운동으로 받은 이 돈만은
: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의 생계가 걱정 되지만 이 돈은
: 힘없고 불쌍한 노동자를 위해 사용하고 싶습니다.
: 저는 이 회사의 상무이사로 있는 남한진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 남한진 상무는 저에게 이런말을 했습니다. "회사는 10원짜리 하나도 보상해
: 줄수가 없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 마치 비웃듯이 싱글거리며, "만약 법으로 가려면 2~3년은 걸릴 것이다.
: 법으로 가려면 가고, 합의를 하려면, 돈은 10원짜리 하나도 안되고 하도급이나
: 맡아라."
: 독자여러분 사실 저는 병 때문에라도 포기하고 싶습니다.
: 그러나, 동국합섬은 지금도 피부병 환자가 생기고 있고 앞으로도
: 계속 생길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보다 동료들의 불행이 더 염려스러워
: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독자 여러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 누구라도 좋으니 저에게 좋은
: 의견을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수술 후유증으로 기억을 많이 잃었으며
: 좋은 판단을 내리려면
: 오랫동안 생각을 해야합니다. 또 저는 하나뿐인 귀 마저도 난청이
: 심하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투쟁을 하려해도 활동하는데 많은 장애를
: 받습니다. 여러분 제발 도와 주세요. 좋은 의견을 보내주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지.
: 그래서 사회, 정의로운 사회란 걸 보여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끝으로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글을
: 마칩니다.
: 1999년 7월 17일
: 정 희 양 드림
: 연락처 : (0546)455-1371
: 주 소 : 경북 구미시 형곡동 4주공아파트 401동 301호
: 거듭 부탁합니다
: 글 카피해서 다른 게시판에 붙여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 살아 있다는 것은
: 내가 남과 어울리는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빌며
: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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