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성당 게시판

Dominico의 회고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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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석 [chsdominico] 쪽지 캡슐

2000-03-15 ㅣ No.619

안녕하세요... 현석 도미니꼬입니다.

 

회고록을 일욜마다 올릴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깐 이렇게 3일이나 늦었군요...

 

잼없는 글일지 모르지만 글두 예의상 읽어주신 열세분께 엄청 감사 드립니다....

 

전체 창으로 여는거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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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여행 95~99

 

"길고도 짧았던..." 이 식상한 말을 실감한다. 오늘은...

 

  현석이의 회고록 #3 -- 95년 ’코이노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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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부 학생회를 거친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가 다 한번쯤은 가 본 적이 있는, 때때로는 그 매력에 완전히 빠져 버

 

 려 5년 내내 다녀오는 케이스를 빚어내기도 하는... 여름캠프가 있다...지 아마?  ’코이노니아’!! 나는 중1때 참여한

 

 이후로 3년간 그 ’코이노니아’라는 이름의 행사는 우리 성당 유일의 것인 줄만 알았는데 언젠가 그 이름은 서울 대교구

 

 서 내려온 명칭이며 다른 성당들도 ’코이노니아’하면 ’신나는 여름캠프’라고 떠올린다는 사실을 알았었다. 누군가가 처

 

 음 이름을 만들었고 어떤 취지로 택한 이름인지는 잘 모르지만 뜻이 ’친교’라는 건 알고 있으며, 사실 우리들은 그 말

 

 뜻에 담긴 의미보다는 그 다섯 글자에서 풍기는 그 느낌을 사랑했다. 그 설레임과 신나는 마음... 학교에서 가는 수학

 

 여행이나 수련회하고는 전혀 색다른 그 기분...

 

  사람들은 ’코아’라는 애칭을 즐겨 써서 사실 ’코이노니아’의 약자인 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생기는 웃지 못할 경우

 

 도 있다.

 

  그런데 98년부터 어떤 방침에서였는지 전국의 모든 성당에서 여름캠프의 이름을 ’카톨릭 청소년 캠프’로 바꿔버렸고..

 

 몇몇 사람들은 ’가 청 캠’이라는 약자에 더욱 익숙해져 버렸을 게다.  하지만... 분명 아무런 연관이 없겠지만 ’코아’

 

 가 ’가 청 캠’이 되면서 주일 학교가 축소되어 온 느낌은 뭔지... 바보같은 생각이겠지만 난 그 우연의 일치를, ’가 청

 

 캠’이라는 이름을 싫어하게 되었다.

 

  나중에 나이 먹어서 자식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추억을 꼽으라면 아마도 난 성당에서의 일을, 그중에서도 3박4일간의

 

 추억 생산기 코이노니아-내가 쓰고 싶은 이름을 쓰려는 거다.-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테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 해엔 거진 스무조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인원은 200여명... 100명만을 선착순으로 받고

 

 아무리 열심히 활동을 해도 예비신자라는 이유로(즉,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잔인하게도 참여시키지 않는 이상

 

 얄딱구리한 제도(?)가 있는 지금과는 사실 좀 달랐다. 규모도 규모지만 교사든 학생이든 모든이의 인식 같은게... 달랐

 

 던 것 같다.

 

  난... 잘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14조였을 게다. 12조엔가 13조엔가는 천호준 녀석이 종석이 형네 조에서 설치구 있

 

 었구 우리조엔 병민이형(당시 전례부장)과 진구형(인연이 특별한 사람... 나중에 많이 나올꺼다.)과 나머지는 잘은 기

 

 억이 안 나구... 아! 연주누나가 또 같은 조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두 종종 같은 조가 되서 늘 조편성에 울둘이 뭐 있다

 

 는 얘길하구 그랬었다.

 

  역시 기억나는 건 그저 신났었다는 거다. 날씨는 대체로 좋았지만 물놀이 할 땐 좀 흐렸었는데(돌이켜 보면 5년 동안

 

 맑게 개인 물놀이는 못해본 것 같아서 무지 아쉽다.) 계곡물을 받아 쓰는 그 차디찬 수영장에서 밀고, 밀리고... 난리

 

 두 아니었다 정말... 종석이 형의 대담한 삼각 수영복에 난리났던 기억... 진구형이랑 텐트 안에서 옷갈아입은 일...

 

 내가 워낙 까불거려서 선배들이 얄밉게 봤던 기억(승우형과 진구형이 종종 그일로 나를 놀린다.) 5년이나 됐는데도 이

 

 렇게 생생한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또 기억에 남는 프로중 하나가 저녁 먹고 노래 자랑 코너였는데 내로라하는 선배

 

 들이 많이 노랠 불렀다. 그땐 그게 왜 그리 멋지게 보였는지... 호준이랑 그런 얘길 했었다. 우리도 고2가 되면 정말

 

 멋지게 놀자구...

 

  성당이 빚어낸 스타 연보라님(?)을 알게 된 것두 그 때였다. 겨우 중2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로포즈’라는 노랠

 

 했었는데... 정말 대단했다.  울 조의 혜령이 누나하구 친구여서 그때 보라누나와 같은 파의 은선누나, 혜선누나등도

 

 알게 되었었다.

 

  어린 나이때문이었는지, 마냥 즐겁기만했었는데... 가장 뭤도 모르고 설치는, 그래서 코아의 참맛을 느낄 겨를도 없을

 

 나이에 그런 기억들 남기고 와서 정말 좋았다. ’첫인상’이라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성당활동에서는 특히 연중 행

 

 사에 대한 첫인상이... 그래서 처음 참여한 어린 아이들에게 캠프나 그밖의 행사를 의미있고 소중한 추억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에는 선배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실 귀엽고 팔팔해서 보기좋긴 해두 일일이 신경 써주기 참 힘들고,

 

 그래서 소외되어 성당을 싫어하게 되는 중1을 본 적이있다...  그런 안타까운 경우는 안 되었는지 선배들이 워낙 잘 해

 

 줬고 내가 워낙 설쳐서, 또한 내게 첫번째 코아의 충격은 실로 커다란 것이었기에... 그 여파로 난 급기야 고 2때 2년

 

 간 계획했던 미국여행을 포기하구 코아를 갔다오는 열정까지 보였고... 5번의 모든 코아에 참여한 몇 안되는 사람이 되

 

 고 말았다.(몇 안되었지만 내 동기중엔 꽤나 많다.)

 

  캠프든 수련회든 갔다 하면 늘 있던 내 징크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할 만큼 목이 쉬어버리는 거다. 1학년 때두 애같지

 

 않게 걸걸한 목소리가 되어 돌아왔지 아마...지금 생각해두 팔팔했다 그땐... 3박 4일간 선배들한테 들은 재밌는 얘기

 

 며 무서운 얘기랑, 재밌는 말투같은 걸 배워오기두 했구... 정서적으로두 날 크게 한번 흔들고 지나갔었다...

 

  그 때의 워크북도 지금은 찾을 길이 없는게 아쉽지만... 내게 알수 없는 감동을 던져주며 그렇게 워크북의 롤링 페이

 

 퍼와 함께 추억속으로 묻혀버렸다...

 

  사실 학생회 활동을 안 하던 때라 2학년 이후의 이벤트와는 좀 다른- 정확히 말해 좀 약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성당

 

 이란 곳에 흥미를 가지기에는 손색이 없는 큰 감흥이었다.

 

  ’뒷풀이’란 말도 그 해에 처음 알았다. 행사 끝나면 함께 했던 동료들, 선후배들 함께 모여 우르르 홍보석이다 부산

 

 이다 하믄서 먹으러 갔다가 노래방에두 가구 그랬었구 행사두 워낙 많이 겪은 만큼 뒤풀이도 하두 많이 해서 솔직히 이

 

 젠 뒤풀이 코스 레파토리도 다 떨어진게 사실이지만 코아와 함께 여름방학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 게 바로 이 뒷풀이였

 

 다.

 

  아! 하마터면 정말 중요한 얘길 빠트릴 뻔 했다.

 

  코아를 비롯해 갈무리등 빅 이벤트 뒤에, 아니 이벤트 중에 꼭 빠지지 않는 ’이스라엘 악수’! 뒤늦게 나와버린 얘기지

 

 만 누구나 다 인정하는 건... 코아의 꽃! 이스라엘 악수의 영향력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코아며, 갈무리를 사랑하는 이유도 수십,수백명 사람들과 일일이 손잡고 얘기하며 때로는 펑펑 울기도

 

 하고 멋쩍게 웃기도 하는 ’초고농도 느낌 나누기 시간’인 이 ’이스라엘 악수’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한다. 모든게 새로

 

 워서 마냥 신나기만 했던 중 1 때부터 그런 중 1 녀석들 등 다독거려준 고2때까지의 그 많은 사람들과의 교감은 이렇게

 

 한 인간의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더욱 그런게... ’이스라엘 악수’에 관한 눈물젖은 사연 때

 

 문인데 그 사연에 대해선 뒤에서 얘기하고...

 

  어쨌든 그런 이스라엘 악수를 처음 접했던 기회였다. 커다란 선배들 올려다보면 부러워하던 그때의 가장 큰 추억이었던

 

 것 같다.

 

  나를 성당에 푹 빠지게 만든... 겨울이 되면 다음해 여름을 기다리게 만든 첫 행사가 그렇게 이스라엘 악수며 불놀이,

 

 물놀이, 추적놀이, 뒤풀이 등의 코아를 대표하는 단어와 함께 다음해를 기약하며 끝이났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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