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 - 루카 9,62 #<다연중13주일복음> 869_KH [_하느님나라] [_하늘나라]

인쇄

. [218.55.90.*]

2013-06-20 ㅣ No.1401


질문: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 하지않다"

58절에서 62절 까지 읽는 동안 저는 예수님께서  냉정하신 분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특히 62절이 가슴에 와 닿았는데....사랑이신 예수님이 왜 그러셨는지 궁금하기도하고 답답 합니다.

저만그렇게 느끼고 있는 걸까요?? 다른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질문을 주신 구절은 루카 복음서 9,62인데, 이 절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연중 제13주일 복음 말씀(루카 9,51-62)에 포함됩니다.

1-2. 사실, 가톨릭 보편 교회는 1960년대에 개최되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9년에, 이 공의회의 정신인 "교회 일치 정신"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을 개정하였는데, 가톨릭 신자들 모두 (여기에는 성직자 및 수도자들 포함)가 주일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를 충실게 할 수 있도록 대단히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1-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69년에 마련된 가톨릭 전례력에 대한 안내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되도록 많은 분들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 필독 권고

2.
주신 질문에 대한 답변과 관련하여, 이미 가톨릭 보편 교회가 다해 연중 제13주일 복음 말씀인 루카 복음서 9,51-62와 관련이 있는 다해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1열왕 16ㄴ.19-21) 를 선정해 두었기에, 이 제1독서를 복음 말씀과 함께 들여다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missaid=5562&gomonth=2013-06-30

(발췌 시작)

제1독서: 1열왕기 19,16ㄴ.19-21
[그 무렵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19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복음: 루카 복음서 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7월 1일]

(*) 게시자 주: 이 문장에서, 첫 번째 "죽은 이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the physically dead)들 즉, 임종을 맞이한 자들을 말하고, 두 번째 "죽은 이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the spiritually dead)들을 말한다.

출처 1: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I" (<----- 클릭하십시오)(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13주일 복음 말씀(루카 9,51-62)의 제60절 해설.

그리고 "영적 죽음(the spiricual death)", 즉, 불멸인 "영혼의 죽음(the death of the soul)"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출처 2에 있다: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6.htm <----- 필독 권유

[이상, 내용 추가 끝].

3.
3-1.
루카 복음서 9.61과 9,62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카 복음서 9,61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이 마지막 두 절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1열왕 19,19-21).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은, 제자에게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도록 허락해 주는 엘리야의 부름보다 훨씬 준엄하다.

[루카 복음서 9,62의 '합당하다'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
'합당하다' 는 하는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또는 60절에서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게시자 주: 이들 주석들이 비록 주신 질문에 대한 그리 명쾌한 답변은 아니나, 그러나 그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에 또한 전달해 드립니다. 즉, 1열왕기 19,19-21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 동일한 주일의 제1독서, 즉, 다해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3-2. 루카 복음서 9,62에 대하여, 다음의 주소에 있는, NAB(New American Bible)의 주석은 없습니다:

http://old.usccb.org/nab/bible/luke/luke9.htm

3-3. 다음은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에 주어진 루카 9,62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주석 성경"의 주석에서처럼 또한 1열왕기 19,19-21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aydock1859.tripod.com/id73.html

(발췌 시작)
Ver. 62. Putting his hand to the plough. A proverb and metaphor, to signify that nothing must hinder a man from God's service. (Witham) --- Christ seems here to allude to the call of Eliseus by Elias. The former was at the plough, and the latter called him. Immediately Eliseus quits his plough, runs with Elias's permission to bid adieu to his father and mother, sacrifices two of his oxen, roasts them with the wood of the plough, and joins the company of the prophets. Jesus Christ wishes that all who follow him, should in like manner think of nothing else. (Calmet)

Ver 62. 쟁기에 손을 대고. 어떠한 것도 하느님을 위한 봉사로부터 사람을 방해하지 말아야 함을 나타내는, 한 개의 잠언(proverb)이며 은유(隱喩, metaphor)입니다 (Witham). --- ...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뒤따르는 자 모두가 마찬가지 방식으로 다른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말 것을 원하십니다 (Calmet).
(이상, 발췌 및 일부 구절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3-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다해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ot_13.htm

특히 제1독서(1열왕 19,16ㄴ.19-21)의 제19-21에 대한 해설을 또한 읽도록 하십시오. 거기서 인용되고 있는 대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설명이 정말 좋습니다.

3-5. 끝으로,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I" (<----- 클릭하십시오)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13주일 복음 말씀(루카 9,51-62)의 제61-62절에 대한 해설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제1독서에서의 엘리사(Elisha)보다 더 요구하시는데, 이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쟁기질(ploughing)' 은 희생을 수반하며, 그리고 '이 일'이 훼손되면 아니되므로(lest the work suffer), [쟁기질을 하면서]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따라서,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들 중에는,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세속적 생각/판단 때문에,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도 또한 포함될 것입니다.

게시자 주: 특히 위의 "성경공부 해설서"다해 연중 제13주일 제1독서 입문에는, 1열왕기 19,16ㄴ.19-21까지의 줄거리 요약이 대단히 잘 제공되고 있습니다.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1시간


1,779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