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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심장에 있는 바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관념들 1032_heart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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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7 ㅣ No.1597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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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입문 게시자 주 1: "특정 개념들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이 의미하는 바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글자를, "마음" 이라는 단어 대신에, 사용하기 위하여서였지, 그 역을 위하여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즉,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와 이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 "한 가운데" 등의, 여러 파생 의미들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한자 단어 "心" 글자 대신에,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을 사용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달리 말하여, "心(심장)" 이라는 상형 문자는, 이미 우리들의 기억에 주입된 "마음 심" 이라는 방향성을 가지는 한 개의 연상(an association)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 을 연상하게 하나, 그러나, 역으로, "마음" 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는, 이 단어가 나타내는 개념/의미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心(심장)" 을 연상하게 하지 못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지금 지적한 바에 관하여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과 "심장"에 대한 설명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른 한편으로,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heart)" 과 "마음(mind)" 사이에, 우리말로의 번역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원 단어들 "heart" 와 "mind" 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의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ionality)을, 우리말로의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 과정에서 충실하게 보존하여 전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차용 번역 용어들이 아닌 우리말 단어들인 "심장" 과 "마음"에 대하여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이들 우리말 단어들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우선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는, 어느 특정 언어에 종속되는 문제가 아니고, 언어 이전에 언어를 통하여 전달될 대상들인, 논리(logic)의 단계에 있는개념들 사이 존재하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에 관한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心臟, heart)""마음(mind)" 의 차이점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 모두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heart.htm <----- 필독 권고

(이상, 입문 게시자 주 1 끝)

 

게시자 주: 아래의 2013년 4월 1일자 기사는, 미국의 EWTN (Eternal Word Television Network)가 제공하는 미국의 National Catholic Register 뉴스에 기고된 라틴 아메리카 특파원인 ALEJANDRO BERMUDEZ의 글입니다. 예수회 회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성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대단히 좋은 글이라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판단에 따라, 우리말 번역문과 함께, 전달해 드립니다:

 

출처: http://www.ncregister.com/daily-news/pope-francis-ideas-of-what-is-
at-the-heart-of-the-church

 

Pope Francis’ Ideas of What Is at the Heart of the Church
교회의 심장에 있는 바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관념들

 

NEWS ANALYSIS
뉴스 분석

 

by ALEJANDRO BERMUDEZ 04/01/2013


Italian television covered the personal struggle of a 20-something, non-practicing Catholic woman who was deeply moved by Pope Francis’ first two encounters with the world after his election: directly on the day of his election and via television the next day, when he presided at the cardinals’ Mass in the Sistine Chapel.

 

이탈리이 텔레비젼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출 후, 직접 당신의 선출의 날에 그리고 당신께서 시스티나 경당(the Sistine Chapel)에서 추기경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실 때인 그 다음 날 텔레비젼을 통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세상과의 첫 두 번 만남들에 의하여 깊게 김동을 받았던, 한 명의 20대, 냉담 중인(non-practical) 가톨릭 여인의 인격적 고투(personal struggle)를 보도하였습니다.

 

The young woman told the Italian state-run television station RAI that she felt moved to buy a Bible and was planning to read the Gospels over the weekend.

 

이 젊은 여인은, 이탈리아 국영 텔레피젼 방송국인 RAI 에게, 그녀가 한 권의 성경을 구입하도록 감동받음을 느꼈으며 그리고 이 주말 기간 동안에 복음서들을 읽고자 계획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RAI caught up with her again on the following Monday, after Pope Francis’ Mass and homily at the tiny Church of St. Anna inside the Vatican walls. “What I saw in Pope Francis’ person is totally consistent with what I read in the Gospels. ... I think I now need to go back to the Church,” the young lady said.

 

RAI는, 바티칸 성벽들 안쪽에 있는, 조그마한, St. Anna 교회에t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와 강론 이후인, 뒤따르는 월요일에 또다시 그녀를 따라잡았습니다. 이 젊은 숙녀는 "제가 보았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격(person) 안에 있는 바는 제가 복음서들에서 읽었던 바와 전적으로 일관됩니다. ... 제가 이제 교회로 되돌아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If Pope Francis could describe his mission, the encounter recounted by RAI would be a prime example.

 

만약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설명하신다면, RAI에 의하여 자세하게 말해진 이 만남(the encounter)은 한 개의 훌륭한 예(a prime example)일 것입니다.

 

This early in his pontificate, many have attempted to describe Pope Francis either based on his past — sometimes even a false account of it — or on his small, widely publicized gestures.

Much has been said, positively or negatively, about his call for a Church that is “poor and for the poor” or about his liturgical decisions, such as not wearing the papal cape and stole during his first appearance, his choice of the third Eucharistic Prayer for his first solemn Mass, and his celebrating Holy Thursday Mass at a Rome juvenile detention center and kissing the feet of two females during the washing of the feet.

 

이 교황님의 교황직에 있어 바로 이 이른 시기에, 다수의 사람들은 이분의 과거에, 때로는 심지어 이 과거에 대한 어떤 잘못된 이야기, 혹은 이분의 작은 양의, 널리 공개된, 의례적인 거동(gestures)들, 이들 둘 중의 하나에 근거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평하고자(describe) 이미 시도하였습니다. "가난한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나의 교회(a Church)를 위한 이 교황님의 요구(call)에 관하여 혹은, 이 교황님의 첫 나타남 동안에 교황의 어깨 망토(cape)와 영대(領帶, stole)를 착용하지 않음, 이 교황님에 의한 자신의 첫 번째 장엄 미사를 위한 감사 기도 제3양식(the third Eucharistic Prayer)의 선택, 그리고 이 교황님에 의한 로마의 청소년 구치 센터(juvenile detention center) 한 곳에서 성 목요일 미사(Holy Thursday Mass)를 경축함 그리고 세족(洗足) 행위 동안에 두 명의 여성들의 발들에 입맞춤을 함 등과 같은, 이 교황님에 의한 전례에 대한 결정들에 관하여,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더 많은 것들이 이미 말해졌습니다.

 

An equal amount of electronic ink has been shed about his decision not to wear red shoes or to wear a silver ring rather than one made of gold.

 

빨간 구두들을 착용하지 않고자 하는 혹은 금으로 만들어진 반지 대신에 한 개의 은 반지를 착용하고자 하는 이 교황님의 결정에 관하여 전자 먹물(electronic ink)에 의한 어떤 같은 이야기가 이미 내뿜어졌습니다.

 

This overreading, which leads to concluding about things too early in the pontificate, either disturbing or encouraging trends, comes from the long, frequently divisive debate regarding what is at the heart of the Church.

 

이 교황직에 있어 너무 일찍, 불안하게 하는 혹은 격려하는 추세들 이들 둘 중의 하나인, 사물들에 관한 결론을 내리는 행위의 원인이 되는, 바로 이러한 지나친 해석(overreading)은 교회의 심장(heart)에 있는 그 무엇에 관한 오래된, 자주 불화를 일으키는 토론(debate)으로부터 유래합니다.

 

Some would say the heart is the liturgy, since it is the “source and summit of the life and mission of the Church,” to quote from the Second Vatican Council’s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Lumen Gentium.

 

어떤 이들은 이 심장이 전례(the liturgy)라고 말할 것인데, 이는, 교회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의적 헌장인 인류의 빛(Lumen Gentium) 으로부터 인용한다면, 전례가 "교회의 생명과 사명의 원천(source)이고 정상(summit)이기 때문입니다.

 

Others, instead, judge Francis through the prism of Matthew 25 and the belief that the Final Judgment is at the heart of the Church.

 

다른 이들은, 대신에, 마태오 복음서 제25장이라는 프리즘 및 최후의 심판이 교회의 심장에 있다는 신념(belief)을 통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판단합니다.

 

But for Pope Francis, the heart of the Church is, well, the heart. That is, the human heart and its transformative relationship with God’s heart.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경우에, 교회의 심장은, 이런(well), [다음과 같은] 심장(the heart)입니다. 즉,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그리고 하느님의 심장(God's heart)(*) 이 인간의 심장의, 변화하는 경항을 가지고 있는, 관계(its transformative relationship with God's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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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당연히 강생/육화하신 하느님이신, 성자(the Son of God, 하느님의 아드님) 하느님의 심장,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결코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의 심장(human heart)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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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rt in Jesuit spirituality is a crucial concept. The Jesuits were the first to promote devotion to the Sacred Heart of Jesus around the world. Initially, they were accused of heresy for promoting the concept that the human heart of Jesus was a permanent living source of mercy, as revealed by God to St. Marguerite Marie Alacoque in the 17th century.

 

[1534년에 창립되었고 1540년에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하여 인준된] 예수회(the Jesuit, the Society of Jesus)에 있어 심장(the heart)은 한 개의 결정적인 개념(a crucial concept)입니다. 예수회 회원(the Jesuits)들은 세계 곳곳에 예수님의 성스러운 심장[즉, 예수 성심(the Sacred Heart of Jesus)] 쪽으로 공경/경례(敬禮)(devotion)를 증진시킨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들은, 17세기에 하느님에 의하여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St. Marguerite Marie Alacoque, 1647-1690년)(**) 에게 계시되었듯이, 예수님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of Jesus)이 자비(mercy)항구적인 살아있는 원천(source) 한 개라는 개념을 증진시킨다는 이유 때문에, 이단(heresy)으로 비난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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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월 7일]

(*) 번역자 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예를 들어, Modern Catholic Dictionary의 저자이며 예수회 소속의 사제였던 Hardon 신부님(1914-2000년)의  다음의 저술, For Jesuits, Ch. 7 - Heart of the Lord 을 읽도록 하라: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Prayer/Prayer_041.htm [Ch. 7]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Prayer.htm [차례, 상당히 아랫 부분에 있음]

[이상, 내용 추가 끝]

 

(**) 번역자 주:  이 성녀의 일생에 대한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info.catholic.or.kr/saint/view.asp?ctxtSaintId=578&Orggubun=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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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like the modern reduction of the heart to the experience of feelings, which are to be followed at the expense of our brains, in the Jesuit tradition, the heart is the core of the human person, the place of the soul, where the encounter between God and man takes place. The heart is, in fact, not only the most inner sanctum of the human person, but also the root of the human will.

 

우리의 뇌(brains)들에게 폐를 끼치면서 뒤따르게 되는 것들인, 느낌(feelings)들의 경험 쪽으로 심장(the heart)의, 현대의, 환원(modern reduction)과는 달리, 예수회 전통에 있어, 심장(the heart)은, 거기서 하느님(God)과 사람(man)의 만남(encounter)이 발생하는(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63항)(*), 인간의 격(the human person, 인격)의 핵(core)인, 영혼의 장소(the place of soul)입니다. 사실, 심장(the heart)인격의 가장 내면의 성소(聖所, sanctum)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인간의 의지(the human will)의 근원(根源, roo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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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제1-3항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4.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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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the Jesuit understanding, the heart is the source of human action and endurance. Therefore, both personal conversion and solidarity begin with the human heart.

 

예수회의 이해에 따르면, 심장(the heart)안간의(human) 행동(action) 및 인내(endurance)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적(personal) 귀의(歸依)/회심(conversion) 및 연대(solidarity)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과 함께 시작합니다.

 

This is the concept of heart that has formed Pope Francis. In 10 years of written homilies, speeches and pastoral letters, the then-archbishop of Buenos Aires has mentioned the heart from this perspective an average of four times per occasion. In some documents, like one of his Lenten pastoral letters, the human heart is mentioned as much as 26 times.

 

바로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이미 형성하였던 장(the heart)에 대한 개념(concept)입니다. 저술된 강론들, 연설들 그리고 사목 서간들에 있어서의 십 년에 있어,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의 이 과거의 대주교님께서는 각 기회마다 평균 네 번씩 바로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심장(the heart)을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일부 문서들에 있어, 이분의 사순 사목 시기 서간들 중의 한 개처럼,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은 스물여섯 번 만큼이나 많이 언급됩니다.

 

Or 22 times in his homily during the opening Mass at the 2004 National Eucharistic Congress, where he said:

 

혹은 2004년도 전국 성체 대회(National Eucharisticc Congress)에서 개막 미사 동안에 이분의 강론에서 스물두 번이 언급되었는데, 거기서 이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When Peter perceives that it is the Lord, he dives into the water to arrive first. He throws himself in. He doesn’t doubt. If it is the Lord, this is what we must do. His vocation grants him the strength to exercise the Christian virtue of courage, that of boldness.”

 

"베드로(Peter)는 그분이 주님이심을 인지한 후 곧바로, 그는 첫 번째로 도착하기 위하여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면, 바로 이것이 우리가 행하여야 하는 바입니다. 그분에 의한 소명(召命, vocation)은, 용기(courage)라는 그리스도인들의 덕(virtue)을, 대담함(boldness)에 있어서의 바로 그것을, 수행하도록 하고자 굳셈(strength)을 그에게 수여합니다."

 

He continued, “This is the boldness to dive into the water when I see my Lord because I find everything with Jesus. He changes our hearts and makes us audacious, bold, to defend what we’ve received, what is non-negotiable. They would rather receive martyrdom than negotiate what they had received, thus sealing the certainty of this encounter with their very lives.”

 

이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하셨습니다: "제가 저의 주님을 뵈올 때에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바로 대담함인데 왜냐하면 제가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심장(hearts)들을 변화시키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이미 받아들인 바를, 타협할 수 없는 바를, 옹호하기 위하여(to defend), 우리를 뻔뻔스럽게(audacious), 대담하게(bold) 만드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받아들인 바를 타협하는 대신에 오히려 순교(殉敎, martyrdom)를 받아들여, 그리하여 그 결과 바로 이 만남(this encounter)의 확실성을 자신들의 바로 그 생명(lives)들로써 도장을 찍을(sealing) 것입니다.

 

In another homily, addressed that same year to teachers from Catholic schools in the Buenos Aires Archdiocese, he said: “To those who lead these institutes, I ask for your courage, the courage to assume the responsibility of forming Christian hearts, hearts that know they have encountered Jesus Christ.”

 

동일한 해에 부에노스 에리레스 대교구에 있는 가톨릭 학교들로부터의 선생님들에게 연설된 또다른 강론에서, 이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들 기관들을 지도하는(lead)하는 분들께, 저는 여러분들의 용기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만났음을 아는 바로 그 심장(hearts)들인, 그리스도인들의 심장(hearts)들을 형성하는 책임을 맡는 용기를, 요청합니다."

 

The centrality of the human heart modeled according to the heart of Jesus has not only been an issue frequently mentioned by Pope Francis in these first weeks of his papacy. It has also been at the heart (pun intended) of his message. And it is a message he believes can be shared with other religious traditions; in fact, also in 2004, Cardinal Bergoglio was invited by the Buenos Aires Jewish community — one of the world's largest — to deliver the comment after the reading of the Scripture during the feast of Rosh Hashanah.

 

예수님의 심장(the heart of Jesus)에 따라 [본에 맞추어] 만들어진(modeled) 인간의 심장의 중심적 역할(the centrality of the human heart)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하여 당신의 교황직의 이들 첫 주들에 자주 언급된 단지 한 개의 사안이었던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역할은 이 교황님의 메시지의 심장(heart)[의도된 재담(pun intended)]에 또한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종교의 전통들과 함께 하게 될 수 있는, 한 개의 메시지임을 이분께서 믿으시며(believes), 그리하여 사실은, 또한 2004년도에, Bergoglio 추기경님께서는, 세계의 가장 커다란 유다인들의 공동체들 중의 하나인, 부에노스 에리레스(Buenos Aires) 유다인들의 공동체에 의하여, Rosh Hashanah 축제 동안 성경 본문의 독서 후 다음의 주석을 말하기 위하여(deliver the comment) 초대받았습니다.

 

Commented Cardinal Bergoglio: “‘And these words, which I instruct to you this day, shall be in your heart. And you shall explain them to your sons. And you shall meditate upon them sitting in your house and walking on a journey, when lying down and when rising up’ (Deuteronomy 6:6-7). This is our memory. We cannot lose it. The fascination with idols leads us to a weakening of the memory of us all, each and every day of our lives.”

 

Bergoglio 추기경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주석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심장(heart)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짐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신명기 6,6-7). 바로 이것이 우리의 기억입니다. 우리는 이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상(idols)들에 대한 매료가 우리를, 우리의 삶들을 이루는 매일, 우리 모두에 대한 이 기억의 약화시킴(a weakening)으로 인도합니다."

 

Does Pope Francis dismiss the importance of liturgical gestures, great or small? Does he believe that Catholics will only be saved by practicing social justice?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커거나 작거나 간에, 전례에 있어서의 의례적인 거동(liturgical gestures)들을 내쫓는다는 것입니까? 이분이, 가톨릭 신자들이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실천함으로써만이 오로지 장차 구함을 받게 될 것임을, 믿는다는(believe) 것입니까?

 

No. He is a deep lover of the Church’s liturgical traditions. He is also a strong supporter of the need to influence politics and culture, as he has shown repeatedly in his writings. But, most importantly, he believes that if there are no changed hearts, there will be no eyes with which to praise God at the sight of elegant liturgical vestments; no families to enjoy the true definition of marriage; no person to receive with love a newborn baby. 

 

아닙니다. 이분께서는 교회의 전례 전통들에 대한 한 명의 깊은 애호자이십니다. 이분께서는 또한, 이분께서 자신의 저술들에서 반복적으로 이미 보이셨듯이, 정치와 문화에 영향을 끼쳐야 할 필요성에 대한 한 명의 강력한 지지자이십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이분께서는, 변화된 심장(changed hearts)이 바로 거기에 없다면, 우아한 전례용 제의(liturgical vestments)들을 보면서 그것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눈(eyes)들이, 그리하여 혼인의 참된 정의(definition)를 향유하는 가족들이, 그리하여 사랑(love)과 함께 한 명의 새로 태어난 아기를 받아들이는 인격(person)이, 바로 거기에 없을 것임을, 믿습니다(believe).

 

Or, in his own words, which we are challenged to take personally: “This is the Lord’s commandment: Surrender our hearts.   Open them and believe in the Gospel of truth; not in the Gospel we’ve concocted, not in a light Gospel, not in a distilled Gospel, but in the Gospel of truth.”

 

혹은, 우리가 인격적으로(personally) 받아들이기 위하여 도전하게 되는, 이분 고유의 말들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대의 심장들을 넘겨 주어라(Surrender our hearts). 이 심장들을 열어서 그리하여, 우리가 이미 날조한(have concacted) 복음 쪽으로가 아니고, 한 개의 희미한(light) 복음 쪽으로가 아니며, 한 개의 증류하여 얻은(distilled) 복음 쪽으로가 아니라, 진리의 복음 쪽으로인, 진리의 복음 쪽으로 믿도록 하십시오(believe in)."

 

Alejandro Bermudez is the Register’s Latin-America correspondent.

Alejandro Bermudez 는 Register의 라틴 아메리카 특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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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현재까지 약7시간 (자료 조사 및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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