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미사중에 생긴 일

인쇄

이유진 [elle] 쪽지 캡슐

2001-05-22 ㅣ No.3090

안녕하세요?

오늘 배꼽빠지게 웃음나오던 일이 있어 혼자 웃기 아까워 글 올립니다.

 

저만 우스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화요일 오전 10시 미사에 반주를 하러 갔었어요. 물론 선영이도 함께 갔지요. 일년이 조금 넘게 미사를 따라다녀서 제법 10시 미사엔 익숙해져 과자만 조금 가져가면 제 주위를 왔다갔다하면서 과자먹고 가끔 중얼중얼 기도도 따라해보고 성가도 따라하곤 한답니다. 물론 흉내내는 수준이지만요...^^

오랫동안 얼굴을 익혀오던 아주머니들께서 옆에 앉으라해도 안가더니 이번 부활즈음 부터는 앞에 앉아계신 아주머니(죄송. 갑자기 본명이 생각나질 않네요)옆에 가서 앉아 있기도 하고 수녀님옆에도 가고 완전히 적응을 해가나보다 안심이 되었었는데 오늘 큰 일(?)을 터뜨리고 말았답니다.

 작년에 몇 번 운 적도 있고 미사중에 갑자기 화장실을 꼭 가야겠다고 떼 쓴 적도 있었거든요....집에서 볼일을 보고 왔음에도 꼭 가야겠다고 떼를 쓰더군요. 심심하단 얘기였지만요...아무튼 다른 분들께 죄송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지요....

 

그런데 오늘, 다른 날 보다도 더 얌전히 미사를 잘 드리고 있었는데 성체분배때 였어요. 아주머니 옆에 앉아 있던 선영이가 아주머니께서 영성체 하시러 일어나시자 마자 제 옆으로 뛰어오다시피 하더니 옆에 바짝 붙어서서 제 얼굴 한 번, 신부님쪽 한 번 번갈아 보다가 신자분들 영성체가 끝나고 수녀님께서 성체를 주시려고 제 쪽으로 오시니까 수녀님 손을 계속 쳐다 보고 있었어요. 저는 반주때문에 손은 올겐 위에, 얼굴만 왼쪽으로 살짝 돌려 입을 벌리고 영성체를 했죠. 그리고 수녀님께서는 다시 자리에 앉으셨구요.  그 짧은 사이 갑자기 앙~~~하는 소리가 나더니 선영이가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두 줘, 나두 줘" ..... 큰일 났다 생각했지만 아직 성가가 끝나지 않았고 갑자기 끊을 수도 없고....그런데 주책맞게 웬 웃음이 그렇게 나던지 저는 계속 큭큭 거리고 아주머니들께서는 자꾸 쳐다 보시고..... 진땀 나는 상황이었어요. 수녀님께서 얼른 오셔서 선영이를 안아주셨지만 울음을 그치기는 커녕 점점 더 크게 우는 거예요. 저는 그게 더 우스워 웃음이 그칠줄 모르구요... 게다가 큰 신부님께서 집전하시던 미사였던거 있죠.

오늘따라 성가가 길어 1절이 끝나자 마자 선영이한테 가려고 일어섰는데 2절이 시작되고..어쩔수 없이 2절은 반주 없이 계속되고 울음소리는 성당안을 가득메우고.....

 

선영이한테 설명을 하기 시작했죠. "왜...너만 안줘서?   <끄덕끄덕>  아냐... 이건 먹는 빵이 아니고 예수님이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울음을 잠시 멈추고>   애기들은 아직 영성체를 못해. <자기를 애기라고 부른다고 또 울기 시작>   큰 언니,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그러니까 10살이 되면 공부해서 예쁜 드레스 입고 영성체 할 수 있다.  < 큰 언니?>   응...  너 몇 살이야. 4살이지? 10살 되면 예쁜 드레스 입고 영성체 할 수 있어.. 지난 번에 친구들 있는 미사 드린 적 있지?  그때 친구들도 영성체 하러 안 나갔지? 작은 언니들도 안 나갔잖아.... 경준이 오빠(선영이 사촌 오빠)도 지금은 못해. 10살이 되면 할 수 있어.... <그럼 지인이도 안해? >  그럼... 서원이 언니도..<정익이도? 숙희도? 서영이도? >그럼 그럼... 나중에 10살 되면 하자... 이제 됐지? " 완전히 수긍은 못했지만 친구들도 다 안 하고 뭐든지 할 거 같은 사촌오빠도 안 한다고 하자 조금 안정을 찾았어요.

 

그 사이 파견 성가 부를 때가 되어 안고 있던 선영이를 내려 놓자 또 기분이 안 좋아졌죠.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게 다 마치고... 앞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미사 잘드리는 선영이가 왜 울었니?" 하고 물어보셔서 "성체 자기만 안 줬다고 그랬어요...."말씀드렸더니 또 앙~~~  

"다 주는데 너만 안 줘서 서운했구나....3학년되면 너도 할 수 있어....." 달래주시고 음료수 뽑아 먹으라고 돈까지 주시고... 그래도 안 그쳐서 결국 또 안고 성당마당으로 나오는데 문 앞에서 아주머니들께서 또 물어보시고, 또 울고..... 울면 침 놓는다는 아저씨 협박(?)에 소리는 안내고 훌쩍 훌쩍 .... 음료수 뽑으러 가서 또 울고 뽑아놓기만 하고 계속 서러워하다 계속 이어지는 설명에 대충 이해하고....

"안아줄께... 우산 네가 들고가...." 겨우 달래서 집으로 왔답니다.

 

신부님, 수녀님, 다른 분들께 정말 죄송했어요...

 

 

어렸을 적에 저도 엄마 성체 모시러 나갔는데 자꾸 입 벌려 보라고.... 뭐냐고...해서 엄마가 곤란한 적 있었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언젠가도 한 번 미사에 선영이를 안고 영성체하러 나갔다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별 생각 없이 있다가 오늘 혼쭐 났습니다. 다음부터는 뻥튀기라도 사가지고 가야 할 모양이예요.

작년부터 초등부 교사들이 주일학교 보내라고 귀가 닳도록 얘기 했는데 주일 아침에 게으름 을 피우느라 딱 한 번 데리고 갔었어요. 어려도 받아준다고 할 때 주일학교엘 다녔더라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그쵸?  스스로 어린 아이들은 영성체를 안한 다는걸 느끼거나, 아니면 선생님이나 제게 한 번 쯤은 더 물어 봤을테니까요.

 

아뭏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져서 웃음도 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네요.

정말 엄마가 되는 건 너무 어려워요.

 

추신: 선영이를 만날 기회가 있으신 분들.. 당분간은 선영이한테 이 일에 대해선 모르는 척 해주세요. 제가 집에 오는 길에도 계속 웃고 아빠랑 전화통화하면서 계속 웃고 했더니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예요. 쑥스러운가봐요...

 

그럼, 행복하세요....

 

 

 

 

 

  



8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