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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환 [zealot] 쪽지 캡슐

2000-07-15 ㅣ No.6030

  최근에 여러 파업을 보았습니다. 지하철 파업, 의사들의 파업, 호텔직원들의

 

파업, 금융노조의 파업까지요. 그런데, 이들 파업 중에 광수 생각에 맞춰

 

생각할 수 있는 파업은 불행히도 의사들의 파업 하나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파업이 나면 흔히 뉴스에서 고통분담할 시기에 이기주의적인 마음으로

 

파업을 했고, 그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으니까 파업은 나쁘고

 

엄정히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듣습니다.

 

  그런데, 과연 금융노조의 파업이 단순히 이익단체의 제 목 챙기기 입니까?  

 

그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당장 무자비한 시장 논리에 따라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인 사람, 생계를 짊어지고 있는 엄마, 누나, 형이

 

직장을 잃어버리면, 그 집에 불이 난 것과 무슨 상황이 다르겠습니까?

 

그나마 불은 옆집에서 신고라도 해주고, 같이 꺼 주지만, 돈을 못 벌면

 

우선 주인집은 셋돈을 낼 수 있을까부터 걱정할 것이고, 식구들은 무엇으로

 

살 수 있습니까? 우리 사회가 직장을 다시 잡을 때까지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우리 사회는 모든 걸 결국에는 개인이 책임을 지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잖아요.

 

  그리고, 문제는 그런 정리해고,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단지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도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는 문제인데...

 

우리들은 쉽게 파업을 한 ’그들’을 비난합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노동자에게 ’파업’은 정당한 권리인데도 불법파업시 엄벌

 

하겠다는 으름장이 뉴스를 울려퍼집니다.

 

  저는 광수생각이 인간적인 여러 면들에 대해 좋은 그림, 글은 많지만,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을 때 너무 기성 언론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에 실망하곤 합니다. 조선일보에 그림을 실어서인가요? 아님, 조선일보가

 

광수씨에게 맞는 신문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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