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반 게시판

베드로의 노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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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옥 [mqwert] 쪽지 캡슐

2002-06-30 ㅣ No.377

베드로의 노래 4


류해욱


보랏빛 어둠이 눈처럼 내리는 저녁


우리는 이층 다락방에서 만찬을 나누었지
그분은 알고 계셨으리라
그것이 이별의 만찬이라는 것을


그분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눈을 들여다보며
우리도 느낄 수 있었네
사랑해 주시는 마음 너머
이별의 아픔이 배인 고요를


그분은 아셨지
당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맡겨주셨다는 것
아버지께로 가야할 시간이
도둑처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분은 고요히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동이셨지
가만히 무릎을 꿇으시고
우리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셨다네


사위는 어둠속에 잠기고
등잔불이 방안의 숨을 죽이는데
감히 침묵을 깨고 여쭈었지
"정녕 제발을 씻으시렵니까?"


그대 지금은
나의 행동을 모르지만 훗날 알게 될 것이오


그분의 깊은 뜻은 헤아리지 못하고
나는 덤벙거렸지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나는 속으로 외쳤지
"알고 계십니까?
발을 씻는 것은 종들의 몫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가 아니십니까?
그것이 제가 드린 고백이지 않습니까?"


그분은 슬픈 눈빛으로 말씀하셨지
"그대 정녕 알고 있는가?
그대 고백의 의미를
내가 그대를 씻어주지 않으면
그대는 이제 나와 나눌 수 없게 되리라"


그대는 이제 알게 되리
내가 그대의 발을 씻어줌은
영원히 그대와 함께하리라는 약속임을


그분이 내 발을 씻기실 때
나의 가슴으로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지


그대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슴을 씻어내는 맑은 바람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푸른 외침


그분의 손이 내 발에 닿을 때
나는 알았네
그분의 마음, 크고 깊은 사랑을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신 발 씻음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사랑
그것이 바로
당신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


이제 그분은 떠나셔도
언제나 내 가슴에 남아 있으리
그분의 사랑 가득한 눈망울
내 발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손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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