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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준의「가슴에 빗금 하나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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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홍 [clemenskim] 쪽지 캡슐

2015-10-16 ㅣ No.7898

전홍준의「가슴에 빗금 하나 새긴다」해설 / 권순진

 

 가슴에 빗금 하나 새긴다

 

가슴에 빗금 하나 새긴다

 

                                                           전홍준

 

 

 

안개 깔린 고속도로를 헤치고 딸을 수녀원에 데려다주었다

아비가 가는 넓은 길을 마다하고 오솔길을 선택한 딸 

 

이 년 동안이나 반대도 하고 설득도 해 보았지만

이 길만이 자기가 행복하다는 말에

결국, 지고 말았다

 

내가 뿌리내린 아수라의 세상은 영혼이 탁해도 편안하지만

그곳은 항상 빗질하고 닦아야 하는 곳

 

생명이란 곳간에서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욕망을

여린 기도가 물리칠 수 있을지…

 

딸을 보내고 한 주일

방문만 쳐다봐도 신발장을 열어도 울컥울컥 올라오는 이 슬픔!

 

신은 참 야속하기도 하다

이십칠 년간이나 내 입에서 녹고 있던 사탕을 빼앗아 가버리다니

 

송아지를 팔고나면 며칠간 울어대는 어미 소 같이

눈발 날리는 하늘을 향해 각혈 같은 울음만 토해낸다.

 

 

- 시집『아비의 호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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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깊은 가톨릭 집안에서는 가족 가운데서 신부나 수녀를 배출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고 기뻐하는 풍조가 있다. 고 이태석 신부는 형제 중에 먼저 신부가 된 형과 수녀가 된 누님이 있었다. 막 의대를 졸업하여 집안의 기대가 컸을 터인데, 그럼에도 사제의 길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홀몸으로 10남매를 키운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이태석 신부처럼 형제자매가 여럿인 집안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자식이라야 달랑 하나 아니면 둘인 집안에서 수녀가 되겠다는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미어지고 기가 막힐까.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자신의 의지도 의지지만, 그 보다는 자꾸만 마음이 끌리고, 주님이 부르는 것 같고, 그 길로 가야지만이 자신이 살 수 있고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불과 지금으로부터 230여 년 전이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프랑스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 때부터 본격적인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명동성당 부근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루어졌다. 이는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자기 민족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례가 되었다.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의 우리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교에 두었다. 유교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와 가정생활의 바탕이었다. 따라서 유교에 회의를 품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파멸될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실학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천주교란 새로운 종교의 가르침에 빠져 든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엄청난 자기개혁 의지이자 용기였다. 사랑과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그 자체가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사회개혁이고 혁명적 태도였던 셈이다.

 

하느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이며 자매라는 가르침은 양반과 천민, 남자와 여자의 엄격한 신분차별이 존재했던 사회에서 획기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유교사상에 젖은 당시의 지배층은 천주교 신자들을 윤리의 이단이며, 모든 악의 전형으로 몰아 온갖 박해를 가하였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100여 년 동안 네 번에 걸친 커다란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어쩌면 이 시대에 성직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온갖 박해를 견디고 죽음조차 두렵지 않았던 그 순교정신을 이어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는 직접적인 복음 선교활동은 물론이려니와 다양한 사회복지사업, 사회정의수호와 인권옹호활동 등을 꾸준히 전개하면서 그러한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가톨릭 수녀님들은 주님의 품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빗질하고 닦’으면서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고, 남북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가난한 형제들과의 나눔을 실천하며,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고 있다.

 

시인의 딸인 전지영 아우구스티나 수녀도 종신서원을 거친 뒤 현재 서울의 한 가톨릭 복지기관에서 소외계층 자녀를 돌보는 등 봉사와 희생을 실천하며 6년째 수도생활을 해오고 있다. 내 것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펄쩍뛰며 말렸던 시인도 이제는 그 순명을 받아들이고서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응원하고 있다. 시집『아비의 호수』에는 딸이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한 빛고을 광주의 ‘씨튼 수녀원’을 비롯해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담긴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이젠 꺼이꺼이 소울음을 우는 대신 1년에 10일 딸의 황금 같은 휴가를 매번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권순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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