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새벽의 성체조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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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s2j2] 쪽지 캡슐

2002-03-29 ㅣ No.1619

  ’삐리리리릭, 삐리리리릭’

  새벽 1시 30분, 핸드폰의 알람 소리가 곤한 잠을 깨웁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뜨며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솔직히 그냥 계속 자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몸은 좀 개운할지 모르지만 마음이 매우 불편할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미사 때 하신 신부님의 말씀이 가슴 한 켠을 지긋이 누르며

  ’그냥 자자’

는 생각과

  ’그래도 가야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내 마음 속에서 다툽을 시작합니다.

  ’어제 저녁 미사 때 신부님 말씀만 듣지 않았더라도....’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를 아껴주시는 지역장님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어제 저녁 신부님은

  수난 전 날

  ’나를 위해 기도해 다오.’

  하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하며 같이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특히 한밤중에 하는 성체조배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간단히 썼지만 직접 들었을 때는 ’꼭 나와야지’ 하는 마음이 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한편으로 심적인 부담을 많이 주며 말씀하셨다는 뜻도 됩니다.

 

  내 마음 속의 전쟁을 재빨리 종결짓고 옷을 갖추어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자매님 세 분을 만나 함께 성당을 향해 걸었습니다.

  넓은 길에 오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다 새벽까지 주(?)님을 모시고 오는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 무리 속에 오늘 제가 끼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칭찬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세원 아파트 앞 가파른 언덕 길을 오릅니다.

  저는 그 길을 오를 때마다 실제와는 상관없이 골고타 언덕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오늘 새벽에는 그 상상이 더욱 더 가깝게 현실화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웬지 그 언덕 저 편에 예수님이 계신 듯하여 나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 합니다.

 

  성당에 도착하여 보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십니다.

  이분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성당의 희망을 보는 듯했습니다.

  특히 우리보다 먼저 성체 조배를 끝내고 나오는 5구역 교우들과, 저희 뒷시간을 맡으신 8구역 교우님들을 보고 더욱 그랬습니다.

  구역의 특성상 몇 분 못 오셨으려니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셨더군요.

  (제가 직접 보지 못한 다른 구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작성가를 부르는데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내 감정을 내가 모르겠습니다. 슬픈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상태 그대로 좋았습니다.

 

  끝내고 돌아가는 길, 웬지 걷고 싶었습니다.

  동승을 권하는 실바노 형님의 배려를 정중히 사양하고 나만의 골고타(?) 언덕을 향해 걸었습니다. 걸음이 가볍습니다. 예수님이 저와 함께 걷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성모님도 뒤에 따라오시는 듯합니다.

 

  2시간여 잠 못 잔 것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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