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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07 ㅣ No.1415

안녕하세요? 저는 다니엘입니다.

 

무심코 둘러보다가 자매/형제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게 아닌데 하는 적이 많아 기분이 우울하곤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제가 우울한 것은 저의 실제 자아을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흔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며 우울해 합니다.

 

1. 하느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2.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데

3.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아야 하는데

4. 주위 친구 동료로부터 신임과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5.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6. 나의 단점들만 없다면

7. 내가 좀 더 머리가 좋다면

8. 나의 외모가 더 멋있다면

9. 내가 돈이 더 많다면

10.훌륭한 반려자와 결혼한다면

 

등등(이외에도 많죠?) 현재 나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존재하지 않은 나를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울하고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답니다. 이것을 심리학적으로는 자기학대라고 표현하지요.

 

이러한 자기학대를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기분이 자기학대인지를 인정해야 겠지요? 그리고 자기에게 관용을 베풀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나에 대한 관용은 "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I am because I am.)" "나는 나다(I am I.)"와 같은 심리철학을 통해서 베풀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뉴욕에 있을 때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날씨와 바다를 동경하면서 우울해 하고, 플로리다에 있을 때는 뉴욕의 낭만과 화려함을 그리며 우울해 한다면 무언가 잘 못된 것이겠지요? 따라서 미래나 과거보다는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고 (성서에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 이야기 참조) 현재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현재를 중요시 하면 언제나 최선을 다 하게 되고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충분히 책임을 질 수 있겠지요? (나의 기준에 의거 최선을 다했으므로)

 

우리는 위와 같은 면에서 다른 점보다는 유사한 점이 더 많습니다.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평화롭거나, 이타적이거나, 자신있거나, 유모어스럽거나, 시기/질투하지 않거나, 미워하지 않거나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이러한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대단한 겸손입니다. 따라서 자기학대를 그만두는 데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지요?) 자기에게 관용을 베풀기 시작하면 자기학대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기 관용과 겸손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관용을 베풀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자신에게 잔인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 하스다이 벤 하멜레크 베하나제

 

추신) 이러한 내용은 제가 특별하게 체득한 것이 아니라 어느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나름대로 전달한 것에 불과합니다. 혹시 그 책을 보시고자 한다면 e-mail 주십시오. 책 이름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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