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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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3-02-17 ㅣ No.1124

연중 제6주일(나해. 2003. 2. 16)

                                             제1독서 : 레위 13, 1∼2. 44∼46

                                             제2독서 : 1고린 10, 31 ∼ 11, 1

                                             복   음 : 마르 1, 40 ∼ 4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부자가 되고 싶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방법을 연구한 그는 '복권'에 당첨되는 길만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자신이 믿는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제발 제가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그의 기도는 하루, 이틀, 사흘을 지나 일년, 십년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복권에 당첨되기는커녕 아직도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십년이 되도록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는 하느님께 화가 난 그가 "아니, 하느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그토록 기도를 했는데도 어쩜 한번도 안 들어 주시는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알았어.  알았다구.  그러니까 일단 복권부터 사라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하시자.  그는 곧 나병증세가 사라지면서 깨끗이 나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나병환자의 믿음의 외침도 외침이지만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즉시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나병을 우리나라에서는 문둥병이라고도 합니다.  나병에 걸리면 피부와 관절이 문드러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나병 환자는 자신의 손마디가 떨어져 나가고, 살갗이 문드러지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스스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병을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하여 천형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나병의 판단을 사제가 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살갗에 부스럼이나 뾰루지나 어루러기가 생기면, 살갗에 문둥병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니 아론 사제에게나, 그의 아들 사제 중 누구에게든지 데려 와야 한다."  그리고 그 환자는 "부정한 사람이라고 선언되고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윗수염을 가리우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하고 외쳐야 한다"며 더욱이 "병이 있는 동안은 진지 밖에서 자리잡고 따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나병에 걸린다는 것은 버림받는 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수 없이 격리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병으로 오는 고통과 아픔보다는 자신이 다른 이들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였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마음으로부터 오는 고통, 위로 받을 수 없고, 가족과 친구들과 멀어진다는 고통은 엄청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요즘 "왕따"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잘못한 것도 없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소외되는 이들 소외의 고통은 엄청날 것입니다.  누가 '왕따'를 시키지 않아도 요즘은 사회자체가, 우리 스스로가 외로움을 만듭니다.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들이 살아야 하는 의미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모습, 방향성과 가치관을 잊어버린 우리의 모습은 많은 이들 속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친구도 잊어버리고 혼자, 홀로 서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라고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동체와 격리된 나병환자를 측은한 마음과 함께 낫게 하심으로 하느님의 영광, 사랑을 드러내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측은해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낫기를 원하는 나병환자에 대해 그냥 측은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그를 치유해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도 소외된 이들에 대해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행동이 따라야 하겠습니다.  적극적인 믿음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적극적인 생활은 복권에 당첨되기를 원하면서 복권은 사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이번 주를 생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나도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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