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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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3-06-23 ㅣ No.1212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나해. 2003. 6. 22)

                                            제1독서 : 출애 24, 3 ~ 8

                                            제2독서 : 히브 9, 11 ~ 15

                                            복   음 : 마르 14, 12~16. 22~26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최후의 만찬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나눠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건네시자 그들은 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체성사에 관한 신비는 단순히 “축성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체성사의 신비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누가 이 백성이며 공동체의 일원입니까?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심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성찬의 식탁에 모여 온 신자들이 바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참 백성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한 이들이 모여 있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초대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은 신자들이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서로 나누어 쓰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우리처럼 미사를 통해 예수님을 받아 모셨을 것이고, 그들도 기도 하였을 것이고, 그들도 우리처럼 신앙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와 다른 모습일까요?  초대교회와 오늘 우리 교회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초대교회 신자들은 나누고 섬길 줄 알았는데 오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복잡하고 더 많이 가진 자를 더 알아주는 세상이다 보니 누구 할 것 없이 서로 더 가지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신자들이나 오늘의 우리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사회도 많이 가진 사람, 높은 사람, 귀한 사람이 대접받았던 사회였고 지금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초대교회 신자들과 우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체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는 있었고 오늘 우리에게는 없거나 아주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오늘 우리보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보다 분명했습니다.  밖에선 인간 대접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한 형제로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았고,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서로 나누어 썼으니 그들에게는 교회 생활 자체가 하나의 구원체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체험을 통해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를 이룸으로써 기쁨을 얻게 되었고 그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고 기쁨이었고 하느님과의 계약의 완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지 않는 다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쁨을 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편의 연극을 본 것과 같습니다.  연극을 통해 감동을 받고 기립박수를 치고는 연극이 끝나고 나면 다 잊어버리고 그 감동을 따라 살기보다 자신의 과거의 삶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아니 명령을 내리시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기쁨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쁨은 예수님처럼 “내 몸”과 “내 피”를 이웃에게 내어주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날마다 성체를 영한들, 우리와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것이 어찌 기쁨이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제자들은 하느님이신 그분과 최후의 만찬을 함께하며 그분이 건네 준 잔을 함께 돌려 마신 후 기껏 한다는 것이 모두 그분을 버리고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우린들 어찌 그처럼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의 성체를 영하는 것은 그분 안에서 살겠다는 것, 곧 나도 그분처럼 내 생명을 바치겠다는 삶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성체성사의 완성은 단순히 주일에 미사 참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 내 살과 피를 내어 놓은 삶을 살아감으로써 완성 되는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들은 진정 남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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