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2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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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3-09-01 ㅣ No.1250

연중 제22주일(나해. 2003. 8. 31)

                                          제1독서 : 신명 4, 1~2. 6~8

                                          제2독서 : 야고 1, 17~18.21b~22.27

                                          복   음 : 마르 7, 1~8.14~15.21~23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느 추운 겨울밤에, 한 떠돌이 고행자가 절에 와서 잠자리를 청했습니다.  그 가엾은 사람이 눈을 맞으며 떨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스님은 내키지 않았으나 그를 들어오게 하면서 말했습니다.  “좋아요, 하룻밤만 묵어 갈 수 있습니다.  여기는 절이지 여인숙이 아니오.  아침에는 떠나야 합니다.”  한밤중에 그 스님은 탁탁 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법당으로 달려갔고, 거기서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목조 불상이 하나 빠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물었습니다.  “불상이 어디 있소?”  떠돌이 고행자는 불을 가리키더니 말했습니다.  “이 추위에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스님은 외쳤습니다.  “정신이 나갔소?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소?  그건 불상이오.  당신이 부처님을 태워 버렸단 말이오!”  불이 서서히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떠돌이 고행자는 잿속을 들여다보더니 작대기로 재를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또 무얼 하고 있는 거요?”하고 스님은 고함을 쳤습니다.  “스님이 내가 태워 버렸다고 하시는 그 부처님의 뼈를 찾고 있습니다.”  그 스님이 나중에 어느 선사(禪師)에게 그 일을 보고하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넨 못된 중이로구먼.  죽은 부처를 산 사람보다 가치 있게 여기다니.”(개구리의 기도 중에)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다고 비판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주시는 규정과 법규를 듣고 지킴으로써 다른 민족들로부터 “정령 지혜 있고 슬기로운 민족”이라고 인정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법을 지키면서 하느님을 의식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해야 그 법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을 지키면서 그 안에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잊지 않고 하느님을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을 의식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법이기에 따르기보다는 ‘조상의 전통’이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법은 한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최소한의 규범입니다.  그런데 법보다 더 완전한 규범이 있습니다.  그것은 윤리도덕입니다.  법에는 저촉되지 않는 일이더라도 윤리도덕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윤리도덕보다 더 완전한 것은 양심입니다.  윤리도덕적으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양심에 가책을 받을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양심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의 양심과 사랑의 계명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같을 수 없습니다.  법만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은 소극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법만 어기지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기적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것은 이렇게 저렇게 법에 걸리니까 하면 안되고 저것은 해도 되고 등등.  그러나 세상은 법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뿐만 아니라 이것도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회가 유지되어 가는 삶입니다.  양심에 따라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서로 의지하면 도와가면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 사회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불상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상보다는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보다 불상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조상의 전통만을 강조하는 유다인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교황의 상징은 3중 왕관을 비롯한 교황이 가지고 있던 가치 있고 교황의 권위를 나타내던 많은 보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소중히 여겼던 보물을 판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결정이고 전통으로 보아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교황님처럼 교황의 권위의 상징을 과감히 팔아서 나누어 줄 수 있는 적극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을 받은 우리들은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며, 사랑의 계명을 그저 정해진 법에 맞추어 살아가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더 찾아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에게 나오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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