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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1623년 사이에 마카오에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으로부터 철학, 신학, 한문을 배웠을 신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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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7 ㅣ No.1918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8.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耶穌會文獻匯編 홈페이지 제공의 검색 엔진에서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의 중국 이름 "湯若望"으로 검색을 해보면, 전혀 예상밖으로, 오로지 "주제군징" 하나 검색이 되고, "주교연기"는 검색이 되지 않는데,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의 한문본 천주교 호교서/교리서 문헌들의 본문들을 이 위 홈페이지 제공자 측에서 디지털화 할 때에, "숭정역서", 즉, "시헌력"을 완성하여 정확하게 일식과 월식을 예측할 수 있게 함으로써 명나라, 청나라,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에까지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던,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중국 명나라 멸망 1년 전인 1643년에 초간된 호교서/교리서 저서인, "주교연기"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로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6%B9%AF%E8%8B%A5%E6%9C%9B <----- 클릭한 후에 이 지적을 꼭 확인하도록 하라

 

1-2.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耶穌會文獻匯編 홈페이지 제공의 검색 엔진에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중국 이름 "王豐橚""高一志"로 검색을 해보면, 전혀 예상밖으로 그리고 대단히 놀랍게도, 단 한 권의 책도 검색되지 않는데,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의 한문본 천주교 호교서/교리서 문헌들의 본문들을 이 위 홈페이지 제공자 측에서 디지털화 할 때에, 특히 그리고 유별나게,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 문헌들의 디지털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로서는 더더욱 납득할 수 없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7%8E%8B%E8%B1%90%E6%A9%9A <----- 클릭한 후에 이 지적을 꼭 확인하도록 하라

https://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9%AB%98%E4%B8%80%E5%BF%97 <----- 클릭한 후에 이 지적을 꼭 확인하도록 하라

 

1-3. 그러나, 위의 제1-1항제1-2항에서 지적한 바와는 별개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주교연기"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수신서학" 이들 둘 다가 우리나라 조선에, 아무리 늦더라도 1782년 이전에, 이미 전달되어 일부 유학자들 사이에 읽혔음을 알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30_수신서학.htm <----- 클릭한 후에 이 지적을 꼭 확인하도록 하라

 

1-4. 그런데 필자가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위의 제1-3항에 안내된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에서 자세하게 말씀드리고 있듯이, 요즈음의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 소장의 천주교 관련 문헌들의 목록에 나열된 총 27 종류의 문헌들 중에서, 무려 1/3을 차지하는, 9 종류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저서들임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https://zh.wikipedia.org/zh-tw/%E9%AB%98%E4%B8%80%E5%BF%97

 

1-5.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에,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이, 상당히 지긋한 나이인 38세에 조차지인 마카오(오문)에 처음 도착하여 그때부터 74세에 선종할 때까지, 한문으로 저술한 책들이 총 18 종류임을 또한 고려할 때에, 더구나 총 18 종류의 책들 중에서 무려 1/2을 차지하는 이분의 책들이 1782년 이전에 우리나라 조선으로 전달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i) 우리나라 조선에서 북경을 방문한 다수의 조선인 관리들이 이런 저런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구입하다가 우연히(accidentally) 동일한 저자의 9 종류의 책들을 입수하였고 그리하여 이들이 요즈음의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에 보관 되었다기보다는오히려 (ii) 중국 북경에 있는 어느 한 사람의 특정 제공자가 이들 9권의 책들을 자신이 접촉한 조선인 관리에게, 한꺼번에. 건네주었을 수도 있다는, 상당한(?) 수준의 합리적인(?), 추정(presumption)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6. 위의 제1-1항제1-2항에서 지적한 납득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여러 이유들 중의 하나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i) 대만의 방호 신부님 측과, (ii) 2006년 경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耶穌會文獻匯編 홈페이지 제공자/운영자 측 둘 다에서, 1984년에 이르면 우리나라 천주교회 측에서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내용으로서 위의 제1-3항 및 제1-4항에서 필자가 말씀드린 바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필자가 바로 위의 단락에서 지적한 바가, 혹시라도 이 문제가 언어 장벽 때문에 발생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어,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기회가 닿을 때에, 예를 들어, 耶穌會文獻匯編 홈페이지 제공자/운영자 측과 이 문제에 대하여 대화를 진행해 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1-7. 다른 한편으로,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주교연기"를 읽고 이해하기 위한 필독 서적에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수신서학"이 포함됨은, 다음의 주소에 접촉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에서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였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3.htm <----- 필독 권고

 

1-8. 따라서, 지금까지 함께 고찰한 바로부터, 26살의 나이 차이가 있는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 사이에,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에 있어 어떤 특정한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어떤 영성(靈性)적 유대(紐帶)(a spiritual bondage)가 있을 수도 있음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어지는 항들에서는, 지금 바로 위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가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하여, 가능한 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1: 여러분들 생각에, 무려 26살의 나이 차이가 있는 이들 두 분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어떤 관계일 것이라고 생각되는지요? 예수회라는 동일한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로서 선,후배 사이에 있는, 소위 말하는, 교우의 관계일까요?

 

질문 1에 대한 간략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사제(師弟) 관계, 즉,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2.

이번 항에서는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부터, 연대 순에 있어 내려가면서, 위의 제1-8항에서 말씀드린 바에 대하여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2-1.

2-1-1.  다음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Wikewand" 홈페이지로부터 발췌한 바인데, 원 출처들도 신뢰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wikiwand.com/zh-tw/%E9%AB%98%E4%B8%80%E5%BF%97

(발췌 시작)

  • 高一志神父於1566年出生於義大利都靈附近的特洛伐雷洛城貴族家庭,自幼即受到了良好的教育,1584年10月24日入耶穌會初學院,接受了系統而嚴謹的信仰與人文陶成。入初學後,曾在米蘭教授人文學及修辭學五年,哲學三年。1603年起航東渡,1605年月初至南京。1606年8月15日發願。他在南京專心學習中國語言文字,研究古籍經典文獻,著述立說,受到中國學者的高度評價。後因他傳教有方,信教者甚眾,1609年任南京會長 [출처: 《中國天主教史人物傳》,方豪 著,中華書局出版。]
     
  • 1611年5月13日,他在南京舉行了第一座奉獻聖堂慶典,牆上題寫中文大字:「至尊天主在中華帝國南京之第一座聖堂」。南京教會與上海杭州兩地教會成犄角之勢,又與北京教會遙相呼應,無疑是當時中華全國教務最為發達的地區之一。至1616年南京又有三位知名的士大夫皈依了天主教,這一切都與王豐肅神父積極貫徹利瑪竇的學術傳教的上層路線是分不開的。[출처: 《在華耶穌會士列傳及書目補編》,[法]榮振華 著,耿升 譯。中華書局出版。]

  • 1615年明神宗任命沈榷為南京禮部侍郎,沈榷素不喜歡天主教,且懷有私怨,經他周密策劃後,遂密奏朝廷誣陷教會。雖然徐光啟李之藻楊廷筠孫元化等人上疏辯護,而朝廷諭令終於1616年8月20日下達,敕令逮捕傳教士以驅逐出境,是為南京教案。高一志與謝務祿二位神父備受凌辱和拷打,後於1617年,被囚禁木籠,押送至澳門。在澳門期間,他寫了許多中文著作,為後來的傳教作了積極的準備。

  • 1634年,山西發生大饑荒,餓死的人數以千計。高一志神父不忘以救貧濟困、救死扶傷為已責,四處奔波,盡力救助難民,為病重垂危的人及時付洗,以拯救人靈。僅1634年高神父為絳州和蒲州兩地授洗一千五百三十人。高一志神父在山西傳教十五年,授洗8000餘人,內有功名中人二三百人,建教堂五十餘座。據瑪格賴斯記載:「高一志神父至1640年已建立102座教友聚會中心。[출처: 《山西天主教自始至1738年》Fortunato Margiotti O.F.M ROMA EDIZIONI「SINICA FRANCISCANA」1958]
  • (이상, 발췌 끝)

     

    (유관 단락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시작)

    -. 고일지(高一志)[즉,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1566년에 이탈리아의 투리노(Torino) 부근의 特洛伐雷洛 성(城) 귀족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양호한 교육을 받았고, 18세인 1584년 10월 24일에 예수회 초학원에 입회하였으며, 체계적이고 엄근(嚴謹)한 신앙 및 인문의 도성(陶成)을 접촉하고 받아들여 완료하였고, 초학에 들어간 후, 이미(曾) 밀라노(Milano)에서 인문학과 수사학(rhetoric)을 5년간, 그리고 철학을 3년간 가르쳤습니다(教授, instruct). 1603년에 동쪽으로 항해하는 배를 탔으며, 39세인 1605년 월초남경(南京)에 도착하였고, 40세1606년 8월 15일(성모승천 대축일))에 발원(發願, 즉, 서원, vow)하였습니다. 그는 남경에 거주하면서 전심(專心)으로 중국언어문자를 학습하였고, 고적(古籍)들인 경전들과 문헌들을 연구하였으며, 저술하고 학설을 세워(立說), 중국학자들의 고도의 평가에 도달함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그 뒤에 그의 전교는 도(道)/방법(方法)이 있었기(有方) 때문에, 믿는 자들이 대단히 많았으며, 43세인 1609년에는 남경회장(the Superior of Nanjing Mission)에 임하였습니다. [출처: 《中國天主教史人物傳》,方豪 著,中華書局出版。]  

     

    -. [...] [출처: 《在華耶穌會士列傳及書目補編》,[法]榮振華 著,耿升 譯。中華書局出版。]

     

    -. [...] 그 뒤 51세1617년에 나무로 만든 롱(籠)에 수금(囚禁) 당하여, 압송되어 마카오(오문)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카오에 머무르는 기간에 그는 다수의 중문 저작들의 초고들의 완료를 허락받았으며, 그 이후에 있을 전교를 위한 적극 준비 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 [...] [출처: 《山西天主教自始至1738年》Fortunato Margiotti O.F.M ROMA EDIZIONI「SINICA FRANCISCANA」1958]

    (이상, 유관 단락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2-1-2. 다음은, "An anthology of Chinese Discourse on Translation (Volume 2): From the late 12th Century to 1800" 제목의 책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金尼閣" "高一志"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1-3. 다음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께서 마카오(오문)로 구축된 후에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바를 발췌한 바인데, 예를 들어, 위의 제2-1-1항에 서술된 바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bdcconline.net/zh-hant/stories/gao-yizhi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생평.htm

    (발췌 시작)

    後於1618年初皆被遣送回澳門。當時,澳門早已成為天主教會進入大陸傳教的基地。王豐肅此後在澳門修院教授哲學,同時對自己在南京十二年的傳教工作做了深刻反思和全面的總結。五年裏,他撰寫出多部中文著作,並且為再度進入中國傳教做了充分的準備。

     

    그 뒤에 1618년 초에 그들 모두는 오문(마카오)로 되돌려 보내어졌습니다. 당시에, 오문(마카오)은 천주교회가 대륙 전교에 진입하기 위한 기지(基地)로 빠르게 이미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왕풍숙(王豐肅, 즉,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께서는 그 뒤에 오문(마카오)의 수도원(修院)에 머물면서 철학(哲學, Philosophy)을 가르쳤으며(教授, instruct), 동시에 자신이 남경에 머물면서 수행한 12년 간의 전교 공작(工作, work)에 대하여 심각하게 반성(反省)하였으며[즉, 과거의 경험들을 사고(思考)하여 총결 경험들의 교훈에 부합함(中)을 쫓았으며, 주: 한어대사전](反思), 그리고 전면적인 총결을 짓는 것을 완료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5년 안에(, within), 그는 많은 분야의 중문 저작들을 저술하여(撰寫, write) 내놓았는데, 이 모두가 장차 재차 중국에 진입하여 전교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는 것을 완료하였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 다음은, 金尼閣[즉, 니콜라 트리고우] 신부님(1577-1629년)에 대한 안내의 글 중에서 발췌한 바인데, 이 분이 카타네오 신부님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으로부터 한어(漢語)를 배웠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bdcconline.net/zh-hant/stories/jin-nige 

    출ㅊ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7-1629_니콜라_트리고우/생평.htm

    (발췌 시작)

    初到南京,為方便傳教,儘快熟悉中國文化,金尼閣師從于郭居靜(Lfizaro Catfino)、高一志(Alphose Vagnoni)耶穌會士學習漢語。

     

    [金尼閣[즉, 니콜라 트리고우] 신부님(1577-1629년)은] 처음에 남경에 도착하여, 전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중국의 문화를 자세히 앎에 다만 빨랐을뿐이며, 예수회 회원인 카타네오 신부님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에게 나아가 한어(漢語)를 학습하였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다음은, Macau Ricci Institute 홈페이지 제공의 Monograph입니다:

     

    출처 1: http://www.riccimac.org/research/monographs/monographs.html [주: Macau Ricci institute, 원 출처]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exchange_of_learning_yet_failed_encounter.pdf

    [제목: Exchange of learning yet failed encounter:]

    (발췌 시작)

    In such a new context, the case of another important actor in the exchange of learning at that time deserves to be mentioned. Adam Shall von Bell (湯若望, 1592-1666) is not particularly known for his writings. But his long and active presence in China (from age 27 until age 74, 47 years) has revealed some cultural intricacies in the exchange of learning. After two years in Macau (1619-1621) to learn Chinese and teach mathematics, in 1630 he was called to Peking and succeeded the defunct Johann Schreck (鄧玉函, 1576-1639) in the correction and compilation of the 崇禎Chongzhen calendar, more accurate in the calculation of solar and moon eclipses.26

     

    [...] 그[아담 샬(Adam Schall)]는, 마카오(Macau)에서 2년간(1619-1621년) 중국어를 배우고 그리고 수학을 가르친 후에, 1630년에 북경으로 불려갔으며 그리고, 일식일들 및 월식일들의 계산에 있어 더 정확한, 숭정역서의 교정 및 편찬에 있어, 선종한 Johann Schreck (鄧玉函, 1576-1639)의 뒤를 이었습니다, [...]

    (이상, 발췌 및 일무 분장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2-4. 다음은, "The Jesuits, the Padroado and East Asian Science (1552-1773)"라는 제목의 책에 게재된, Ugo Baldini의 논문[제목: THE JESUIT COLLEGE IN MACAO AS A MEETING POINT OF THE EUROPEAN, CHINESE AND JAPANESE MATHEMATICAL TRADITIONS: SOME REMARKS ON THE PRESENT STATE OF RESEARCH, MAINLY CONCERNING SOURCES (16TH–17TH CENTURIES)], 제46쪽과 제48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Livros Sinicos” "1619/20"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다음은 바로 위의 각주에서 유관 부분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졸번역 시작)

    바로 그 해(즉, 1619-1620년)에 마카오의 성 바오로 대학(St. Paul College)은 70명의 예수회 회원들을 접대하였습니다. 일부 자료(sources)들에 의하면, 알퐁소 바뇨니(1567년경-1640년)는 마카오에서, 신학[즉,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을 가르치기 전에, 철학을 또한 가르쳤으며, 그리고 이것은, 그가 이 마을에 1604년 여름에 도착하였고 그리고 1605년 2월-3월에 중국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가 추방당하였고 그리고 마카오로 되돌아가도록 강제되었던 때인, 1618년과 1623년 사이만 오로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 일부 문장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2-5. 다음은, Macau Ricci Institute 홈페이지 제공의 Monograph입니다:

     

    출처 1: http://www.riccimac.org/research/monographs/monographs.html [주: Macau Ricci institute, 원 출처]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macao_and_the_jesuits.pdf 

    [제목: Macao and the Jesuits: A Reading Through the Prism of History, 저자: Yves Camus]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게시자 주: 16-18세기에 걸쳐 약 200년 동안 "한문 문화권"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를 위한 교육의 본거지였던 중국 마카오(오문) 소재 성 바오로 대학(St. Paul College)에서의 강의명들과, 특히 수학(Mathematics)의 경우 교수/강사들의 이름들이, 연대 순으로 나열된 바로 위의 표에서, (i)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에 표기된 바와 같이 1619년에 약 20명[의 예수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여, 수학(Mathematics)을 강의한 분들의 명단이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에 나열되어 있으며, 그리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에 이름들이 제시된, 1619년수학(Mathematice)을 강의한 분들 중에서 굵은 글씨로 표기된 네 명의 신부님들은, 다음의 참고 자료 1에 의하면, 유럽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와서 마카오1619년 7월 15일[주: 아담 샬 신부가 (그 일행과 함께) 중국 마카오에 도착한 날짜]에 처음 도착한 15명의 신부님들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ii)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은 마카오에 머무른 기간이 표기되어 있으며, 그리고 (iii) 왼쪽에서 첫 번째 열과 두 번째 열은, 예를 들어, 1619-1620년 2년 동안에 "중국 책들"에 대한 강의[즉, 한문학 강의]가 있었고 그리고 윤리 신학 강의가 있었음을 표시하는데, (iii) 가장 나이가 어린 아담 샬 신부님이 포함된 이들 네 명의 신부님들이 현지 적응을 위하여, "한문 문화권"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의 마지막 단계로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인(absolutely necessary), 토착화(inculturation)를 위한 한문과 윤리 신학을 가르치는, 이들 두 강의들을 당연히 들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repertorio_des_Jesuites_de_Chine_de_1552_a_1800.pdf

    참고 자료 2: https://web.archive.org/web/20070727003058/http://form.nlc.gov.cn/sino/show.php?id=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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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자 주: 서양사 수녀의 책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니콜라 트리고우 신부, 제230족-제235쪽에는 다음의 언급들이 있다:

     

    트리고우 신부(i) 33세 1610년에 마카오에 도착하였고, (ii) 남경으로 가서 카나네오 신부 [앙퐁소] 바뇨네 신부로부터 중국어를 배웠으며, (iii) 1613년에 당시 관구장인 롱고바르디 신부가 트리고우 신부를 로마 교황청에 파견하였고, 교황 바오로 5세를 알현하고, 종교 예식 때 중국어를 사용하고 중국인 사제 양성과 미사 때에 제건(祭巾)을 쓰는 것을 허락 받았으며, (iv) 22명의 [유럽 전역에서 선발된 선교사] 신부들을 수행하고 책 7천여 권을 가지고 1618년 4월 16일에 리스본에서 인도로 가는 예수호에 승선하였으며, 배에서 전염병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였으며, 1620년(#)마카오에 도착하였고, (v) 22명 중 7명의 선교사 신부들은 해상에서 목숨을 잃어 중국에 도착하지 못하였으며, 요한 테렌츠 신부, 로드리게 드 피게레도 신부, 아담 샬 신부, 장 프로에스 신부, 자코모 로 신부 등이 포함되어 있는, 나머지 15명의 신부들은 1620년(#)마카오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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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자 주: 이 도착 년도는, 바로 위에 제시된 표에 기록된 바와 일치하지 않는, 오류라는 생각인데, 또한 아담 샬 신부님의 일행들인 이분들이 동일한 배를 타고 중국 마카오에 도착한 날짜는 1619년 7월 15일이라고, 바로 위의 참고 자료 1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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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발췌 끝)

     

    3.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결과들

     

    3-1.

    3-1-1. 다음에 나열된 바는, 단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에의 삶과 아담 샬 신부님의 삶이 언제 어느 지역에서 함께 엮이었는지에 대하여 고찰한 바를 연대순으로 배치한 것입니다:

     

    [위의 제2-1-1항으로부터 발췌 시작]

    -. 고일지(高一志)[즉,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1566년에 이탈리아의 투리노(Torino) 부근의 特洛伐雷洛 성(城) 귀족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양호한 교육을 받았고, 18세인 1584년 10월 24일에 예수회 초학원에 입회하였으며, 체계적이고 엄근(嚴謹)한 신앙 및 인문의 도성(陶成)을 접촉하고 받아들여 완료하였고, 초학에 들어간 후, 이미(曾) 밀라노(Milano)에서 인문학과 수사학(rhetoric)을 5년간, 그리고 철학을 3년간 가르쳤습니다(教授, instruct). 1603년에 동쪽으로 항해하는 배를 탔으며, 39세인 1605년 월초남경(南京)에 도착하였고, 40세1606년 8월 15일(성모승천 대축일))에 발원(發願, 즉, 서원, vow)하였습니다. 그는 남경에 거주하면서 전심(專心)으로 중국언어문자를 학습하였고, 고적(古籍)들인 경전들과 문헌들을 연구하였으며, 저술하고 학설을 세워(立說), 중국학자들의 고도의 평가에 도달함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그 뒤에 그의 전교는 도(道)/방법(方法)이 있었기(有方) 때문에, 믿는 자들이 대단히 많았으며, 43세인 1609년에는 남경회장(the Superior of Nanjing Mission)에 임하였습니다. [출처: 《中國天主教史人物傳》,方豪 著,中華書局出版。]  

     

    -. [...] [출처: 《在華耶穌會士列傳及書目補編》,[法]榮振華 著,耿升 譯。中華書局出版。]

     

    -. [...] 그 뒤 51세1617년에 나무로 만든 롱(籠)에 수금(囚禁) 당하여, 압송되어 마카오(오문)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카오에 머무르는 기간에 그는 다수의 중문 저작들의 초고들의 완료를 허락받았으며, 그 이후에 있을 전교를 위한 적극 준비 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 [...] [출처: 《山西天主教自始至1738年》Fortunato Margiotti O.F.M ROMA EDIZIONI「SINICA FRANCISCANA」1958]

    [이상, 발췌 끝]

     

    [위의 제2-1-3항으로부터 발췌 시작]

    그 뒤에 1618년 초에 그들 모두는 오문(마카오)로 되돌려 보내어졌습니다. 당시에, 오문(마카오)은 천주교회가 대륙 전교에 진입하기 위한 기지(基地)로 빠르게 이미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왕풍숙(王豐肅, 즉,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께서는 그 뒤에 오문(마카오)의 수도원(修院)에 머물면서 철학(哲學, Philosophy)을 가르쳤으며(教授, instruct), 동시에 자신이 남경에 머물면서 수행한 12년 간의 전교 공작(工作, work)에 대하여 심각하게 반성(反省)하였으며[즉, 과거의 경험들을 사고(思考)하여 총결 경험들의 교훈에 부합함(中)을 쫓았으며, 주: 한어대사전](反思), 그리고 전면적인 총결을 짓는 것을 완료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5년 안에(, within), 그는 많은 분야의 중문 저작들을 저술하여(撰寫, write) 내놓았는데, 이 모두가 장차 재차 중국에 진입하여 전교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는 것을 완료하였습니다.

    [이상, 발췌 끝]

     

    [위의 제2-2항에서 발췌 시작]

    [金尼閣[즉, 니콜라 트리고우] 신부님(1577-1629년)은] 처음에 남경에 도착하여, 전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중국의 문화를 자세히 앎에 다만 빨랐을뿐이며, 예수회 회원인 카타네오 신부님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에게 나아가 한어(漢語)를 학습하였습니다.

    [이상, 발췌 끝]

     

    [위의 제2-3항으로부터 발췌 시작]

    [...] 그[아담 샬(Adam Schall)]는, 마카오(Macau)에서 2년간(1619-1621년) 중국어를 배우고 그리고 수학을 가르친 후에, 1630년에 북경으로 불려갔으며 그리고, 일식일들 및 월식일들의 계산에 있어 더 정확한, 숭정역서의 교정 및 편찬에 있어, 선종한 Johann Schreck (鄧玉函, 1576-1639)의 뒤를 이었습니다, [...]

    [이상, 발췌 씉]

     

    [위의 제2-4항으로부터 발췌 시작]

    바로 그 해(즉, 1619-1620년)에 마카오의 성 바오로 대학(St. Paul College)은 70명의 예수회 회원들을 접대하였습니다. 일부 자료(sources)들에 의하면, 알퐁소 바뇨니(1567년경-1640년)는 마카오에서, 신학[즉,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을 가르치기 전에, 철학을 또한 가르쳤으며, 그리고 이것은, 그가 이 마을에 1604년 여름에 도착하였고 그리고 1605년 2월-3월에 중국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가 추방당하였고 그리고 마카오로 되돌아가도록 강제되었던 때인, 1618년과 1623년 사이만 오로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 발췌 끝]

     

    3-1-2. 바로 위의 제3-1-1항에 발췌된 바들을 정독한 읽은 후에, 이제 위의 제2-5항의 표(Table)의 중앙 부분과 게시자 주를 읽도록 하십시오. 이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i)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께서는, 39세인 1605년에 중국 남경에 오셔서 그곳에서 1616년까지 선교사로서 약 12년 동안 활동하기 전에,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이미 약 8년 동안 인문학과 수사학, 그리고 철학을 가르치셨으며, 특히, 1626년에 "서유이목자" 책을 저술한, 니콜라 트리고우 신부님1610년부터 한문을 가르치셨습니다.

     

    (ii) 니콜라 트리고우 신부님(1576-1629년)께서는, 1613년에 마카오에 도착 직후 남경으로 가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으로부터 한문을 배우셨는데, 이 신부님께서 교황님께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선교 활동을 보고드리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유럽으로 되돌아갔다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중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적 능력이 거의 수재 혹은 천재인 대단히 우수한 예수회 소속의 22명의 신부님들을 선교사로 선발하여 중국으로 또한 모셔 왔는데, 거의 1/3인 7명은 항해 도중에 전염병으로 선종하셨으며, 나머지 15명이 1520년에 마카오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iii) 그런데,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선교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아 중국에 선교사로 지원한, 대부분 젋은 청춘이었을 것이 분명한, 이들 새 선교사 신부님들의 중국 본토 현지 적응에 필수적인,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tion), 더 나아가, 토착화(inculturation)에 필수적인 한문 교육은, 1613년에 이미 니콜라 트리고우 신부님께 한문을 가르친 분으로서, 1616년에 발생한 남경 교난의 결과로 당시에 이미 마카오에 구축되어 마카오에 계시던, 자신의 선교 방식을, 남경 교난 이전의 남경에서의 가두 군중 집회 등의 급진적인 선교 방식으로부터 크게 수정하여,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에 따른, 문서 선교 방식으로 수정한 것이 분명한, 남경 교난 직전까지 12여 년 동안 남경 지역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신, 그리고 한문 실력이 탁월하다는 것이 이미 당시의 남경의 유학자들에 의하여 검증된, 당시에 연세도 이미 53세로서 중국 본토에서 중국인들과의 삶을 많이 경험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께서 맡아서 가르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를, 서양자 수녀의 책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제228쪽에서는 "그 후 바뇨네  신부는 마카오에서 2년 동안 신학 교수를 하였다."라고 매우 짧게 요약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iv) 이제, 위의 제2-5항을 다시 한 번 차분히 읽도록 하십시오. 지금까지 이 글에서 말씀드린 바에 근거하여, 아담 샬 신부님께서 한문 및 토착화를 위한 신학알통소 바뇨니 신부님으로부터 배우셨을 것임을, 충분하게 "심증(心證)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3-1: (1) 바로 위의 제3-1항에서 필자가 말씀드린 바는,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에 대하여 이미 잘려진 바를, 필력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독자들을 위하여 종합한 것입니다.

     

    (2) 그런데,

     

    질문 1: 과연,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께서, 당시에 마카오 소재 성 바오로 대학에서, 한문뿐만이 아니라, 철학과 신학을 강의할 수 있는, 교수(Professor)로서의 능력과 자격을 갖춘 분인지요? 이를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그 무엇들이 있는지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예, 있습니다. 위의 제1-5항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에,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이, 상당히 지긋한 나이인 38세에 조차지인 마카오(오문)에 처음 도착하여 그때부터 74세에 선종할 때까지,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호교서, 인문학, 그리고 철학 분야의, 특히 필자가 구체적으로 분석한 일부 책들 모두는 번역이 아니고 저술인 책들인, 총 18 종류임이, 간접적으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지적 능력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끝)

     

    (3) 이어지는 제4항에서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발견되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파악된, 위의 질문 1에 대한 실증적인(positive) 증거(evidences)들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4.

    4-1.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저서로서 1630년 혹은 그 이전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수신서학" 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 Ia IIae, q23에 따라, 11개의 정(情, passion)들 사이의 유관 관계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한문본 문헌임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차용 번역 용어들인 애정(愛情, love) 등 11개의 정(情, passions)들 사이의 유관 관계가 최초로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서술된 한문본 문헌은 수신서학 이다., 게시일자: 2017년 12월 25일]에서 필자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81.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4-1: (1) 이번 항에서 말씀드리는 바를 이해하는 데에 혹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말씀드립니다만, (i)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제1단계의 본분의 내용 분석으로서, "수신서학"을 처음으로 입수하여 그 본문 내용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날짜가 2017년 12월 18일 21:40경이었고, (ii) 바로 이 제1차 단계의 본문의 내용 분석의 결과,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의 가르침들과 관련하여 "수신서학"의 내용의 중요성을 알아차려. 제2단계의 본격적인 본문의 내용 분석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 결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을 처음으로 작성하기 시직한 날짜가 2017년 12월 24일이었으며,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30_수신서학.htm <----- 필독 권고

     

    그리고 (iii) 이 본문 분석 작업이 더욱 더 깊게 진행되는 과정에 작성된 졸글이 바로 위의 제4-1항에 있는 주소에 안내된 2017년 12월 25일자 졸글입니다.

     

    (2) 그런데, 서양자 수녀의 책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제168쪽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수신서학"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누군가에 의하여 언급된 것이 분명한, 명백한 오류(error)의 서술입니다:

    (발췌 시작)

    알퐁소 바뇨네 신부의 수신서학 제4권에서 혈액 순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상, 발췌 끝)

     

    (3) 그리고 아래에 안내된 필자의 졸글들은,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수신서학"의 본문 내용의 분석이 더 조밀하게 진행 되는 과정에 산출된 연구 결과물들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4-1 끝)

     

    4-2. "천주실의 의 내용 이해를 위한 필독서들에는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라는 제목의 졸글[게시일자: 2018년 1월 2일]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84.htm <----- 필독 권고

     

    4-3.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저서인 "천주실의" 본문 중의 "영재"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무엇인지가 "수신서학"에 의하여 알 수 있음에 대한 필자의 졸글[제목: 영재(靈才) 라는 천주실의 의 신조어 한문 교리 용어의 출처와 의미에 대하여 [capax Dei], 게시일자: 2018년 1월 5일]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85.htm <----- 필독 권고

     

    4-4. 다산 정약용 선생님(1762-1836년)의 성기호설"수신서학"에 제시된 설명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는 필자의 졸글[제목: 다산 정약용의 성기호설의 내용출처 및 자구출처 문헌들에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 게시 일자: 2018년 1월 17일]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2.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4-4: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은, "수신서학" 본문의 내용 분석 과정에서 전혀 예상 밖으로 인지하게 된 바로부터 출발하여, 실증적인(positive) 입증(demonstration)/고증 과정을 거쳐, 작성하여 글로 남긴 것인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떄에, 다산 정약용 선생님께서 참으로 기쁘하실 좋은 연구 논문이라는 생각이며, 따라서, 특히 다산학 연구자들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4-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의 한문본 천주교 호교서/교리서인, "주교연기 의 내용 이해를 위한 필독서들에는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라는 제목의 졸글[게시 일자: 2018년 2월 25일]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졸글의 제2-5항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3.htm <----- 필독 권고

     

    4-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삼비아시 신부님(1582-1649년)의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인, "영언여작 의 내용 이해를 위한 필독서들에는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라는 제목의 졸글[게시 일자: 2018년 3월 4일]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5.htm <----- 필독 권고

     

    5. 이 글의 결론들

     

    5-1. 질문 1에 대한 답변 

    (이 글의 결론 1) 상당히 지긋한 나이인 38세에 조차지인 마카오(오문)에 처음 도착하여 그때부터 74세에 선종할 때까지,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호교서, 인문학, 그리고 철학 분야의, 특히 필자가 구체적으로 분석한 일부 책들 모두는 번역이 아니고 저술인 책들인, 총 18 종류의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들의 저자인,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께서는, 위의 제2-1-1항과 바로 위의 제4항에서 추가적으로 고찰한 바에 의하여마카오 소재 성 바오로 대학에서, 한문뿐만이 아니라, 철학과 신학을 강의할 수 있는, 교수(Professor)로서의 능력과 자격을 갖춘 분이셨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5-2. (이 글의 결론 2) 바로 위의 제5-1항에 있는 (이 글의 결론 1) 그리고 위의 제2-4항제2-5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마카오에 도착하자마자 첫 2년간 마카오에서, "한문 문화권"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의 마지막 단계로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인(absolutely necessary), 토착화(inculturation)를 위한 한문과 윤리 신학을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으로부터 배우셨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4-2: (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그동안 고찰한 바에 의하면, 1583년부터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신부님들 중에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가장 정통한, 탁월한 윤리 신학자였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분의 저술인 "수신서학"은, "한문 문화권" 내에서 교육을 받은 자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의 윤리 신학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엄청나게 도움을 주는, 대단히 훌륭한 "백미(白眉)"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 실증적 증거(positive evidences)들로서 또한 제시된, 위의 제4항에 나열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졸글들이, 이를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2월 15일]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에 올 떄에 동일한 배를 타고 온 아담 샬 신부님동갑내기인 자코모 로 신부님(1592-1638년)이 또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학문적 제자였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졸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31.htm <----- 또한 필독 권고 
    [이상, 2020년 12월 15일자 내용 추가 끝]

     

    5-3. (이 글의 결론 3) 

    질문 2: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 그리고 더 나아가, 토착화(inculturatio) 접근 방식을 계승하여 심화 발전시킨 한문본 천주교 호교서/교리서들에는 어떤 문헌들이 있는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그동안 들여다본 한문본 천주교 호교서/교리서들 중에서, 우선적으로, (i)1630년 경에 초간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수신서학"에 근거하여, 중국에 청나라가 들어서기 직전 명나라 말기인 1643년에 초간된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의 한문본 천주교 호교서/교리서인, "주교연기" 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필자에 의하여 마련된 "주교연기"의 본문에 대한 용어/내용 분석 결과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92-1666_아담_샬/1643_주교연기.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두 번째로,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주교연기 는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3,5-6 등간우3 윤출어5 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이다]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고 있듯이, "주교연기"가 그 내용 출처에 포함되는, 이벽 성조"성교요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6.htm <----- 필독 권고

     

    왜냐하면, 이후 시기의 한시(漢詩)들에 비하여 문법의 제약이 적은, 4서5경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의 한 종류이기도 한, 시경(詩經)에 수록된 4언고시(四言古詩)들의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한문본 천주교 성경(즉, "천주강생언행기략""천주강생성격직해")들과 교리서/호교서들의 내용 전달에 있어서의 탁월함(卓越)/수월함(秀越)(excellence)을 확보하여, "한문 문화권" 안에서 성장한 식자층 유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적응주의적 그리스도교 문서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의 토착화inculturation)를 심화시킨 "성교요지"는, 필자가 아는 한, "한문 문화권" 내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아니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 2에 대한 답변 끝)

     

    이상으로, 이번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다음은, 토착화에 대한 교황청 국제 신학위원회의 1988년 10월  문헌[제목: Faith and Inculturation (신앙과 토착화)] 입니다: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ti_documents/rc_cti_1988_fede-inculturazione_en.html [영문본]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ti_documents/rc_cti_1988_fede-inculturazione_ko.html [우리말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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