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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生己(시생기) 라는 표현의 출처에는 유희의 석명(釋名) 과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의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인 만물진원 이 포함된다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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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ㅣ No.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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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始生己"라는 표현의 출처와 기원을 알고 싶습니다. 혹시, 낱글자 "父(부)""始生己"의 의미로 처음으로/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1583년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서인지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아닙니다.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께서는, 아래에 이어지는 글을 차분히 읽도록 하십시오.

 

1. 들어가면서

 

다음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여유당전서", 다산시문집 제15권, 묘지명(墓誌銘), 정헌(貞軒)(*1)의 묘지명(墓誌銘) 에서 발췌 한 바입니다. 아래의 출처에 접속한 후에, 해당 한문 본문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우리말 번역문을 읽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260A_0150_020_0010&solrQ=query†御定奎章全韻 始生$solr_sortField†그룹정렬_s 자료ID_s$solr_sortOrder†$solr_secId†BT_AA$solr_toalCount†1$solr_curPos†0$solr_solrId†BD_ITKC_BT_1260A_0150_020_0010&viewSync2=KP

(우리말 번역문 발췌 시작)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은 정해(精該)한 책이다. 한치윤(韓致奫)이 사신(使臣)을 따라 연경(燕京)에 갔을 적에 연경 선비들이 이 책을 보고 서로 달라고 간청하였다 하니, 대개 뛰어난 운서(韻書)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본래 이덕무(李德懋)가 만든 것인데, 선조(先朝)께서 그 원고를 가져다가 이가환(李家煥)으로 하여금 그 잘못된 편방(偏旁)ㆍ점획(點畫)을 사정(査正)케 하시고 이명예(李明藝)에게 명하여 정서(淨書)케 하신 책이다. 이명예가 한 장의 정서를 끝낼 적마다 공이 그 잘못된 곳을 사정하여 점 하나 획 하나까지 자세히 살피니, 옆에서 보는 이들이 너무 심하다고 하였다. 이 책에 부(父)자를 ‘처음으로 나를 낳으신 분[始生己]’이라 훈고(訓詁)하고,(*2) 시(豉)자를 ‘소금물에 메주를 담그는 것[配鹽幽菽]’이라 훈고하였으니, 이는 모두 고훈(古訓)에 의거한 것이다. 또 이 책은 이덕무(*3)의 원고를 정리한 것일 뿐, 공이 주석(註釋)한 것이 아닌데도 공을 질투(嫉妒, envy)하는 병[媢疾]에 걸린(*4) 자들은 이 두 글자의 훈고를 가지고 경연(經筵)에서 공을 참소하여 훼판(毁板)하기를 청하였다. 상은 그들이 참소함을 아셨기에, 다만 크게 기뻐할 수 없으셨을 뿐이었다[上知其爲讒,亦殊不怡。].(*5) 악당(惡黨)들은 또 세상에 말을 퍼뜨리기를,

홍계희(洪啓禧)《삼운성휘(三韻聲彙)》를 짓고 이가환(李家煥)《규장전운(奎章全韻)》을 교정하였다가 모두 패망하였으니, 육서(六書)의 학(學)은 모두 흉화(凶禍)의 근본이다.”

하였다. 남인(南人)들은 자제(子弟)들에게 일부러《규장전운》의 자체(字體)와 틀리게 쓰도록 가르치는데, 《전운》의 자체와 틀리게 쓴다면 자연 글자가 잘못되고 추악해지기 마련이다. 이는 바로 목이 메인다 하여 음식을 전폐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남곤(南袞)심정(沈貞)이 조정암(趙靜庵)을 죽인 뒤 《소학(小學)》을 흉서(凶書)라 하여 읽지 못하도록 금한 것과 동일한 수법이다. 육서도 역시 《소학》의 일종이다.

참소하는 말이 이와 같았으나 선조(先祖)께서는 말년에 《규장전운옥편(奎章全韻玉篇)》의 편찬을 명하시어 검서관(檢書官) 유득공(柳得恭)으로 하여금 이가환정약용에게 문의하여 잘못된 곳을 수정(修正)한 다음 마지막으로 예재(睿裁 임금 결재)를 받아 결정하게 하셨으니, 이는 모두 어정(御定)하신 책이다. 그런데 상이 승하하신 뒤 어떤 당인(黨人)이 경시관(京試官)으로서 호남 향시(鄕試)의 시관(試官)으로 가서 여러 유생들에게 말하기를,

“시권(試券)에《규장전운》의 자체를 쓴 자는 낙방시킬 것이다.”

하였다. 과장(科場)에 들어온 유생들은《규장전운》을 구경도 못한 처지라 놀라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옛날 송(宋) 나라 때 정국(政局)이 뒤집히자 왕씨(王氏 왕안석(王安石))《자설(字說)》을 금지하였었다. 그러나 어정(御定)하신 책에도 오히려 이런 관습을 쓰는 것은 매우 불공(不恭)한 일이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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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정헌(貞軒)은 1801년 신유박해 때에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옥사(獄死)한 이가환(李家煥, 1742-1801년)의 호이다.

 

(*2) 게시자 주: 따라서, 질문 1의 답변은 결국에, 논리적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님께서 바로 여기서 지적하신 "고훈(古訓)"의 출처가 무엇인지를 잦아내는 일로 귀착됨을 알 수 있다.

 

(*3) 게시자 주: 소위 말하는 북학파에 속하는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임금 정조의 즉위 후 두 번쨰 해인 1778년에, 채제공(蔡濟恭, 1720년 ~ 1799년)이 중국 연경(즉, 북경)을 사신의 자격으로 방문 할 때에 함께 다녀왔으며, 또한, 그 이후에, 홍대홍에 의하여 천거되고 임금 정조에 의하여 임명된, 규장각의 네 명의 서자(庶子) 출신의 검서관들 중의 한명이었음은, 널리 잘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다. 

 

(*4) 게시자 주: (1) 한문 원문에서 사용된 "媢疾"이 기존의 우리말 번역문에서 "미워하다"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이 번역은 "媢" 낱글자의 자구적 의미/어의(literal sense)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번역 오류라는 필자의 판단에 따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는, "媢" 낱글자의 자구적 의미 "嫉妒"(질투하다, be envious)를 제대로 살려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한문 원문에서 사용된 "媢疾者"를 "질투(嫉妒, envy)하는 병에 걸린 자들"로 번역하였는데, 줄여서, "질투하는 자들"로 번역하여도 무난할 것이다:

http://www.zdic.net/z/18/js/5AA2.htm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7월 19일]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특히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바로 이 오류가, 주희(朱熹, 즉, 주자, 1130-1200년)에 의하여 편집된, "大學章句"의 본문 중의 "媢疾"에 대한 주자의 각주에 제시된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설명, 媢,忌也。[졸번역: 모()는 기(忌)를 말한다]에서 전와(轉訛)되었을 수도 있음을 밝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졸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3.htm <----- 필독 권고

[이상, 2018년 7월 19일자 내용 추가 끝]

 

(2) 또한 낱글자 "媢"(모)의 자구적 의미가 "嫉妒"(질투하다, be envious)임은, 다음에 발췌된 "한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으로부터도 알 수 있다:

 

(발췌 시작)

 

 

mào
ㄇㄠˋ
〔《廣韻》莫報切,去號,明。〕
〔《廣韻》武道切,上皓,明。〕
〔《廣韻》莫沃切,入沃,明。〕
〔《廣韻》彌二切,去至,明。〕
嫉妒。[졸번역: 질투(嫉妒)하다 를 말한다]
 漢王充《論衡‧論死》:“妒夫媢妻,同室而處。”
 《新唐書‧奸臣傳‧盧杞》:“既得志,險賊寖露,賢者媢,能者忌,小忤己,不傅死地不止。”
 宋陳亮《王珪確論如何》:“同列之人相與瑁其長而媒孽其短。”
 《明史‧衛青傳》:“尚書吳中等劾升(柳升),且言升媢青功。”
 清譚嗣同《報貝元徵》:“見有識者討論實學,力挽危局,又惡其形已虛而乘己短也,從而媢之,疾之,詈之以異端,訾之以邪說。”

(이상, 발췌 끝)

 

(3) 또한 낱글자 "疾"의 의미에도 "嫉妒"(질투)가 포함됨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 선생님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된, 주역사전(周易四箋)에 나열된 8가지의 질병례(疾病例)들에 제시된, 화풍정(火風鼎) 九二에 대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님의 주석에 의하여, [십익(十翼)으로 불리는, 소위 말하는, 주역(周易)의 부록을 구성하는, 열 개의 문헌들 중의 한 개인 설괘문(說卦文)에서 심병(心病)이라고 설명되고 있는] 疾(질) 이, 화풍정(火風鼎) 九二에서,  嫉(질, 질투, envy)를 말함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이를 위하여,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사랑(love) 안에만 시기(jealousy)가 있을 수 있고, 시기 안에만 질투(envy)가 있을 수 있다]게시자 주 2-2-2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5.htm <----- 필독 권고

 

(4) 그리고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질투(envy)""시기(jealous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질투""시기"이나,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특히 국내의 인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을 요구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5) 게시자 주: 이 문장은, 기존의 우리말 번역문 "상은 그들이 참소한다는 것을 아셨으나 역시 그 훈고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생각하셨다."을 읽고서, 우리말 번역자에 의하여, 전후 문맥 안에서, 묘지명에 결코 적합하지 않은, 부정적인 의미 쪽으로 지나치게 의역(free translation)이 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부득불,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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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료 분석

 

질문 1: "始生己"라는 표현의 출처와 기원을 알고 싶습니다. 혹시, 낱글자 "父"(부)"始生己"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1583년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서인지요???

 

2-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始生己"라는 표현의 내용 출처에,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의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로서 1628년에 초간된, "만물진원"이 포함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28_만물진원.htm 

(발췌 시작)

만물진원_제1장_논물계유지종_10-13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고대 한문 문화권에서의 복희, 신농, 황제의 시기가 언급되고 있음. 요 순 임금들도 언급되고 있음.] [(2018년 6월 10일) 주: 제3b쪽에서 "한처음"을 의미하는 "始(시)"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만물진원_제2장_논물불능자생_13-16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한문 문화권 자연 철학에서의 주장들에 대한 비판이라는 생각임] [(2018년 6월 10일) 주: 제4a쪽-5a쪽에서, "生己(생기)"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1: 그러나, 소위 말하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바로 위의 출처에 접속하면 본문 전체를 읽을 수 있는, "만물진원"없다는 생각입니다.

 

2-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康熙字典(강희자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父" 낱글자의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zdic.net/z/1e/kx/7236.htm 

(발췌 시작)

 

《唐韻》扶雨切《集韻》《韻會》奉甫切,音輔。《說文》矩也。家長率敎者。从又,舉杖。《釋名》父,甫也。始生已者。[졸번역: 父는 시작()이니라, 처음으로 몸을 낳음을 말하니라] (*)書·泰誓》惟天地萬物父母。《爾雅·釋親》父爲考。父之考爲王父。王父之考爲曾祖王父。曾祖王父之考爲高祖王父。父之世父。叔父爲從祖祖父父。之晜弟先生爲世父。後生爲叔父。父之從父晜弟爲從祖父。父之從晜弟爲族父。
又《詩·小雅》以速諸父。《傳》天子謂同姓諸侯,諸侯謂同姓大夫,皆曰諸父。
又老叟之稱。《史記·馮唐傳》文帝輦過問唐曰:父老何自爲郞。
又《廣韻》方矩切《集韻》《韻會》匪父切,音府。《集韻》同甫。《廣韻》男子之美稱。《詩·大雅》維師尚父。《箋》尚父,呂望也。尊稱焉。◎按管仲稱仲父。孔子稱尼父。范增稱亞父。皆倣此。
又野老通稱。《戰國策》田父見之。
又《詩·小雅》祈父。《傳》司馬也。
又《春秋·桓十三年》盟于武父。《註》武父,鄭地。《釋文》音甫,有父字者,皆同甫音。
又《廣韻》漢複姓。三氏孔子弟子宰父黑,漢主父偃,左傳宋之公族皇父充石。漢初皇父鸞,改父爲甫。
又《正韻》防父切,音附。父母。〇按父字古無去聲。正韻始收入五暮。俗音从之。防父切,父字誤。
又叶扶缶切《蘇轍·釀酒詩》誰來共佳節,但約鄕人父,生理正艱難,一醉陶衰朽。

漢典

考證:〔《廣韻》漢複姓。三氏孔子弟子宰父黑,漢主父偃,左傳,宋之公族皇父充石,漢初,王父鸞,改父爲甫。〕 謹照廣韻原文王父改皇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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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釋名》(석명) 이 중국 한(漢, 기원전 202년~220년)나라 말기의 훈고학자 유희(劉熙, ?~?)에 의하여 저술된 훈고학 사전임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07728&cid=51070&categoryId=5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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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2-3.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釋名》, 《釋親屬》에 그러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ctext.org/shi-ming/shi-qin-shu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釋親屬: 父,甫也,始生也。

(이상, 발췌 끝)

 

2-4. 그리고, 위의 제1항에 발췌된 바의 연장으로서, 한국고전종합DB 검색 엔진에서 key word로 "始生己" 를 입력하여 검색을 해보면, 이 표현이 검색되는 문헌들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여유당전서"에 포함된, 세 개뿐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보되는 국고전종합DB 검색 엔진에서 key word로 "始生己" 를 입력하여,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db.itkc.or.kr/

 

출처 1: http://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_0150_020_0010&solrQ=query†始生己$solr_sortField†그룹정렬_s 자료ID_s$solr_sortOrder†$solr_secId†GO_AA$solr_toalCount†3$solr_curPos†0$solr_solrId†BD_ITKC_MP_0597A_0150_020_0010&viewSync2=TR

 

출처 2: http://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_0200_010_0210&solrQ=query†始生己$solr_sortField†그룹정렬_s 자료ID_s$solr_sortOrder†$solr_secId†GO_AA$solr_toalCount†3$solr_curPos†1$solr_solrId†BD_ITKC_MP_0597A_0200_010_0210&viewSync2=TR

 

츨차 3: http://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_0730_010_0010&solrQ=query%E2%80%A0%E5%A7%8B%E7%94%9F%E5%B7%B1$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GO_AA$solr_toalCount%E2%80%A03$solr_curPos%E2%80%A02$solr_solrId%E2%80%A0BD_ITKC_MP_0597A_0730_010_0010 

 

게시자 주 2-4: 바로 위에서 수행한 검색 결과에는 다음이 포함될 것입니다: 즉, "始生己"라는 표현의 자구 출처가, 중국 한(漢, 기원전 202년~220년)나라 말기의 훈고학자 유희(劉熙, ?~?)에 의하여 저술된 훈고학 사전인, 《釋名》(석명) 임을, 조선의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모르고 있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한다.

 

3. 이 글의 결론들

 

3-1. "始生己"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질문 1에 대한 답변) 위의 위의 제1항과 제2항에서 고찰한 사료 분석들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始生己"라는 표현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는 아무리 늦더라도 기원전 202년 이전에 저술된, 훈고학자 유희(劉熙)《釋名》, 《釋親屬》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1: (1) 따라서, "始生己"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어떤 책 중의 한 문장을 읽고서, 만약에 자신이 지금 읽은 바에만 오로지 근거한 성급한 판단(rash judgment)의 범주에 속하는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을 행하여, 바로 이 표현을 한 자가 그리스도교 구약 성경, 창세기(Genesis)의 천지창조를 서술하고 있는 어떤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학습하였을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rash conclusion)을 내리게 되면,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1) 때문에, 성급한 판단에 의한 오류의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따라서 신뢰할 수 없는한 개의 결론이라 아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글의 결론 2)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께서는 1628년에 초간된 "만물진원"을 저술할 때에,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적응주의 선교 정책에 따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 즉, 창조주, 즉, 조물주이신 성부 하느님(God the Father)을 "한문 문화권"의 유학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아무리 늦더라고 기원전 202년 이전에 저술된 훈고학자 유희(劉熙)《釋名)》, 《釋親屬》에 정의된(defined) 낱글자 ""의 개념을 도입하여 사용하셨음을, 따라서,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의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인 "만물진원""始生己"라는 표현의 내용 출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1: (2)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은, 1616년에 발생한 남경교난 시절에, 중국인 천주교 신자인 사대부 양정균의 집에 머물면서, 양정균으로부터 한학을 깊이있게 학습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더 나아가,

 

(이 글의 결론 3)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께서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적응주의 선교 정책에 따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 즉, 창조주, 즉, 조물주이신 성부 하느님(God the Father)을 "한문 문화권"의 유학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아무리 늦더라고 기원전 202년 이전에 저술된 훈고학자 유희(劉熙)《釋名)》, 《釋親屬》에 정의된(defined) 낱글자 ""의 개념을 도입하여,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듯이, 조부(祖父)을 의미하는, "大父"(대부)라는 단어를, 창조주, 즉, 조물주이신 성부 하느님(God the Father)를 나타내는 한 개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서 사용하셨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5%A4%A7%E7%88%B6 

 

3-2. "洪水"(홍수)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유사 이래로,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피해 때문에, "洪水"(홍수)는 기록된 문서가 전해지고 있는 어느 문화권에서든 언급되고 있는 바라 아니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은 "한문 문화권"의 4서 5경들 중에서 "맹자", 滕文公上에서 발췌 한 바입니다:

 

출처: https://ctext.org/pre-qin-and-han?searchu=%E6%B4%AA%E6%B0%B4

(발췌 시작)

當堯之時,天下猶未平,洪水橫流,氾濫於天下。

 

요(堯)의 시기에 이르러() 천하가 크게(猶) 평안치 못하더니, 홍수(洪水)가 황류(橫流)하여 천하에 범람(氾濫)하였느니라.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2: (1) 따라서, "洪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어떤 책 중의 한 문장을 읽고서, 만약에 자신이 지금 읽은 바에만 오로지 근거한 성급한 판단(rash judgment)의 범주에 속하는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을 행하여, 바로 이 표현을 한 자가 그리스도교 구약 성경, 창세기(Genesis)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어떤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학습하였을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rash conclusion)을 내리게 되면,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예를 들어, 바로 위에 발췌된 "맹자", 滕文公上에 서술된 바 때문에, 성급한 판단에 의한 오류의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따라서 신뢰할 수 없는한 개의 결론이라 아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왜 이 지적을 구체적으로 드리는가 하면, 요즈음의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로 위에 발췌된 "맹자", 滕文公上에 있는 "洪水" 이야기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성 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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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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