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조상님들 덕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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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0-10-05 ㅣ No.2089

오래전 일이다. 회사가 쉬는  정초 사흘 연휴에 친구들과 함께  겨울바다를 구경한다고 내소사로해서 적벽강등이 있는   변산반도에  놀러갔었다.

 서해안에는 눈이 많이내려  버스가 길에 빠지고 우리는 천지를 구분 할 수 없는 한밤중에 눈속을 한참을 걸어 민박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앞서거니 뒤서거니 눈길을 헤쳐가던  친구들은  " 천작 한다"는 말을 했다.  처음 들은 그 말이 생소해서 ’천작한다"가 무엇이냐고 물었다.그랬더니  ’천작"이 아닌 "천주학 한다"는 것이었고 누가  시키지않는데 기를 쓰고  할때 쓰는 이야기라는 설명이었다.  2백년전 우리 교회초기 천주교인들이    목숨걸고 믿는 것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그  배경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제니씨가 올리는 103위성인의 행적을 읽으며 순교로 싹튼 믿음인데 지금 나의 신앙생활이 너무도 안이해 부끄러워진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 전해지던  조선말기. 강학회 등을 통해 복음을 공부하며 받아들인 분들은 지금으로 보면 상당한 지식층   엘리트였던  남인의  유학자 양반들이셨지만   점점  퍼져나가  백정이나 여성등 당시로서는  배운것없고 가진것없는 소외 받는 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런데 낫놓고 "ㄱ"자도 모르는 아녀자, 천민들도  놀랍게  어려운 교리를 너무나 잘 알아듣고, 용감히 증거했다는 것이 아닌가? 천주학을 접하고는 너무도 기쁘게    잡혀가서는  감옥에서  취조하는 형리나 관헌들을 오히려 설득하고 그들에게 진리를 전하려고 했다는 사실, 그리고 서슬퍼런 형장에서도 "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이렇게 서로 용기를 주고 천국에서 만날것을 기쁘게 약속했다는 대목을 읽으면 새삼 그분들의 열렬한 믿음에 가슴 절절해지고  숙연해진다.

"다시는 믿지않겠다" 또는 "나는 천주학쟁이가  아니다 "는  단 한마디 말만 하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가 있는데 ,  때로는 국가에서 높은 벼슬 자리를 주고  부귀 영화를 보장해 주겠다는데도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고 장하게 순교를 하신 것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순교가 많았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달랐다한다. 일본만해도  봉건 사회가 유지되어  각 지역을  지배하는  성주 한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이면 그에 딸린 하인이나  백성들은  모두 같은 믿음을 가져야했고,  주인을 따라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서 일본의 순교자들중에는  우리조상님들처럼  자신의 신앙을 정리해 말한마디 제대로 남기고 죽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한다. 명오 열린 우리의 조상님들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단다.

 제니가 띄우는 103인 순교 성인들의 행적을 읽으며  조상님들의  순교영성이 한국교회를 이만큼 기름지게 키웠다는 생각을 하고 새삼 나태와 안일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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