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눈 덮인 아내의 무덤

인쇄

김두영 [dykim77] 쪽지 캡슐

2001-03-29 ㅣ No.2250

 

 

한국을 떠나 이곳 싱가폴에 온지 6개월,

더 이상 참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파

모든 일 뿌리치고 서울을 찾았지요.

 

공항 출입문이 열리고 카터를 끌고 나가면

항상 그곳에서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던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어디 가고

매섭게 찬바람이 내 눈시울을 적시는군요

 

두 손녀딸, 며느리 데리고 산에 올랐지요,

아내의 무덤은 어제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더군요

굉장히 추위를 싫어했던 그 사람인데…

 

며늘아이와 함께 위령 기도를 시작하였지요

지금은 거의 외우다 싶히한 위령기도가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어서

중간에 나는 그만 두었답니다.

 

이틀 후 또 산에 올랐지요, 이번에는 혼자서.

마음 놓고 소리 내어 혼자 울어도 보았습니다.

그의 이름도 마음 놓고 소리 크게 불러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남는 것은 허무, 허전, 서글픔 뿐이군요.

 

"그래, 그 동안 어찌 지냈느냐?"고 물어도 보았지요

"내가 보고 싶지도 않느냐?"고도 하였지요.

그렇게 귀여워하던 손녀딸이 내일이면

초등학교 처음 가는 날인데 이곳에

이렇게 혼자 있으면 어찌하느냐?고 원망도 하였답니다.

 

그녀가 그렇게도 열심히 하느님을 찾던

중계동 성당도 갔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영성체 하던 그 사람,

신부님 강론 중 주보라도 펼치면 쿡쿡 치던 그 사람,

미사 중 핸드 폰 벨이 울리면 미운 눈으로 돌아보는 나를

"그 사람은 얼마나 더 민망하겠냐?"며

미사시간 만이라도 너그러워 보라던 그 사람.

그녀는 영영 그곳에 없드군요.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불러가시던 3~4시간 전,

시아틀의 조그마한 섬에서 그 사람을 사진에 담던

그 사진이 마지막이 되어 지금 내 책상 앞에서

빙그레 웃으며 놓여 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좀더 잘해줄 것을…

좀더 사랑해 줄 것을…

좀더 더불어 살 것을…

조금만 더 살아주었으면 좋으련만…

 

주님,

나의 처 골롬바는

세상에 있을 때에 주님 우리 안의 양이었사오니

모든 성인 성녀들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게 하소서.

아멘.

 

dykim77@kornet.net

doo-Young Kim



8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