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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결혼식(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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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hwancan] 쪽지 캡슐

2000-08-18 ㅣ No.1306

그냥 한꺼번에 다 올리렵니다. 요즘 너답지 않게 왜 이런 썰렁한 얘기들만 올리냐는 항의(?)가 들어왔었는데여...지두 몰러유. 날씨가 더워서 더위를 먹었는지 아무얘기나 다 잼있네여...TT...마지막이니까 힘내서 읽어주셔유...

 

 

 

너의 결혼식 #21

 

 

 

’오빠.. 오빠 혹시 프로세르피나라구 알아요??’

 

’어.. 모르겠는데 그게 뭐야..??’

 

’치..오빤 책도 안봐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예요...

 

땅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이었는데.. 불행히도 저승의 지배자인

 

하데스한테 납치가 되어 저승으로 끌려가게되죠... 그런데 엄마인

 

데메테르가 간청을 해서.. 일년의 반은 저승에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지상에서 살 수 있게 되었데요... 불쌍한 프로세르피나..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모든 남자를 유혹할 수 있을만큼 정말

 

로 아름답지만.. 얼굴 한켠에는 항상 어둠이 드리워져 있데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공원 벤치 위로 보이는 별빛이 아련히 수놓인

 

깜깜한 하늘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저기~~~ 별이 몇개 모여있는 곳 보이죠??? 저기가 바로

 

프로세르피나가 저승에서 나올때 지나간다는 곳이예요.. 흔히 처

 

녀자리라구 하죠... 전 왠지 처녀자리를 보고 있으면.. 뭐랄까..

 

뭐.. 제 생일이 처녀좌에 속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꼭

 

제가 프로세르피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히힛’

 

난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한다.

 

’하핫.. 그럼 오빠는 너를 저승왕 하데스로 부터 구하는 멋진 용사

 

역을 하면 되는거야? 하하하~~’

 

그녀와 나는 큰 소리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 그런데 얼래.. 얼래.. 벤치가 왜 이렇게 위 아래로 요동을

 

치기 시작하지...어.. 왜 이러지.. 어..

 

.

.

.

.

.

.

.

 

 

’덜컹.....덜컹.....’

 

 

덜컹거리는 소리에 맞춰 내 몸이 덜컹댄다. 여기는 어딜까. 아..꿈

 

.. 꿈이었구나.. 예전 그녀 생일날 있던던 일을..난 다시 눈을 깜빡

 

이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아까 맞아서 쓰러질때까지는 기억

 

이 나는데, 그 다음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입에서 짭짤

 

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피를 많이 흘렸나 보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건가.. 덜컹거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차에 앉아있는것 같다..

 

머리를 두발 가운데로 숙인채.....지금 어디로 가고있는 걸까...

 

난 살며시 고개를 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퍽!’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자세로 가만 있어 이 씹새야....디지기 전에..’

 

 

알고보니 나를 끼고 양 옆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내가 머리를 올리는 것을 보고는 내 머리를 손으로 후려치며

 

말한 것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나는 , 고개를 들려

 

는 생각을 버리고 머리를 숙인채 눈만 약간 옆으로 틀어 주변을 살

 

펴보았다. 역시 생각했던데로, 난 자동차 안에 타고 있었고, 내 옆

 

에는 그녀 삼촌의 부하로 보이는 검정 양복을 입은 건달 두 명이

 

앉아있었다. 난 눈을 돌려 곁눈으로나마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

 

에 산이 가까이 보이는 걸 보니, 아마도 서울은 아닌 것 같았다. 지

 

금.. 지금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난 숨을 죽이고 당시의 상황

 

을 정리해 보았다. 난 그녀와 만났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다가 그녀 삼촌에게 잡혔다. 그리고 그녀 삼촌에게

 

맞아서 기절했다. 그런데 그녀 삼촌은 내가 그녀와 한번만 더 만나

 

면 죽여버리겠다고 말을 했었다. 그럼.. 그럼 난 지금 죽으러 가는

 

것인가. 난 정신이 아찔해 옴을 느꼈다. 아..그런데 그녀.. 그녀는 지

 

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성민형은.. 다들 어떻게 되었을까.. 하

 

지만 그 누구보다 지금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는건 바로 나였다.

 

난 다시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려 곁눈으로 창 밖을 자세히 바라보

 

았다. 인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산을 뒤로하고 논이 넓게 펼쳐

 

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덜컹거리는 것으로 보아, 지금

 

포장도로도 아닌 비 포장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듯 했다. 서울에

 

서도 꽤 멀리 빠져나온 교외인 것 같았다. 도대체 이들이 나를 싣

 

고 뭐하러 이렇게 까지 빠져나온 걸까.. 정말로 나를 죽이러 지금

 

차에 실어 데리고 가는 건가.. 머리속이 갑자기 텅 비어오는 것을

 

느꼈다. 몸이 약간 뒤쪽으로 쏠린다.. 옆을 곁눈질로 보니 산속 언

 

덕길로 차가 들어가고 있었다.

 

 

’아.....’

 

 

도저히 아무 생각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난 그저 고개를 숙인채

 

공포에 사로잡혀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진짜로.. 진짜로 이

 

들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어느정도 차가 언덕으로 올라갔을

 

까.. 차가 길 옆으로 멈추더니 양 옆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야.. 내려.. ’

 

 

내 오른편에 옆에 앉아있던 건달이 내 볼을 주먹으로 치면서 나에

 

게 말했다. 난 오른손으로 내 볼을 감싸면서, 그를 따라 차에서 내

 

렸다. 생각했던데로 산 속이었다. 주변에 인가는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냥 차들 지나가라고 산 속에다가 뚫어놓은 길에 내가 있

 

는 것 같았다. 차 속에는 앞쪽에 2명, 뒤쪽에 두명의 건달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 차에서 내리더니 건달 한명이 차 트렁크를 열고 무

 

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

 

 

삽이었다. 태어나서 삽이 그렇게 무섭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난

 

아까전에 했던 나의 생각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 그것도 아주 끔찍

 

한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며, 온 몸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삽을 보고 벌벌 떠는 나를 보더니, 내 등을 앞차기

 

로 한 대 때리면서 비웃으며 말했다.

 

 

’야.... 새꺄.. 죽고싶지?? 죽고싶으니까 그 짓을 했겠지..’

 

 

그짓.. 아마도 내가 그녀와 함께 도피하려고 했던 것을 말하는 듯

 

했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 저... 당신들 누구시죠?? 그리고 여긴 어디죠???’

 

 

그들은 내 말을 듣고나서 한참을 웃더니, 그 중 한명이 나에게 달

 

려오더니 발로 내 목젖 있는 곳을 찍었다. 난 숨을 쉬지 못해 켁켁

 

거리면서 뒤로 나가 떨어졌다.

 

 

’ 미친새끼.. 죽으러 가는 놈이 그건 알아서 뭐할래.. ’

 

 

그렇다... 난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게 한치의 오차도 없

 

이 맞았다는 것을. 그들은 그녀 삼촌의 명령을 받고 서울 외곽의

 

야산에 나를 죽여 생매장 하러 온 것이었다. 온 몸에서 힘이 땅으

 

로 쫙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나좀 살려주세요 라고 소

 

리치고 싶었지만, 주변에 보이는 사람도 없고 목에서 소리도 나오

 

지 않았다. 난 땅에 철퍼덕 주저앉은채, 멍한 눈으로 그들의 얼굴만

 

을 쳐다보았다. 나를 쳤던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야..시간없다.. 빨리 끝내고 저녁먹으러 가자.’

 

 

나머지 놈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중 한명이 멍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채를 움켜 쥐더니 산 위쪽으로 끌고가기 시

 

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명은 나와 그 놈의 뒤를 따라 주위를 살

 

피며 따라오면서, 내 몸이 샌드백인양 자기들 멋대로 치고 밟기 시

 

작했다.

 

 

’아...아악~~!!’

 

’ 조용안해 이 xx야~!!’

 

 

내가 아픔을 못 이겨 소리치자, 내 앞에서 머리채를 잡고 나를 끌

 

고가던 놈이 소리치며 뒤로 돌더니, 무릅으로 내 얼굴을 그대로 찍

 

어버렸다. 내 눈앞이 잠깐 반짝이더니, 코가 얼얼해 지면서 또 코피

 

가 나기 시작했다. 난 얼굴을 맞는 것 보다는 몸을 맞는게 더 낫겠

 

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입 다물고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들에

 

게 계속해서 맞으며 도로쪽을 벗어나 산 위로 얼마나 올라왔을까,

 

사람 10명 정도 앉아서 쉴 수 있을만한 공간의 풀과 듬성듬성 나무

 

가 있는 평지가 눈 앞에 나타났다. 앞에서 나를 끌던 놈은 그 공간

 

의 중간지점으로 내 머리를 잡고 계속 끌고 갔고, 난 반쯤 숙인 자

 

세로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뒤에서 허공을 가르는 쇠

 

소리가 잠깐 들리는 가 싶더니 , 허리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악~!!’

 

 

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어버렸다. 허리를 삽으로 맞은 것

 

이었다. 내 앞에서 머리를 잡고 가던 놈은 이제서야 손을 놓았다.

 

 

’탁.......’

 

 

두 손으로 허리를 감싸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데, 뭔가가 내 옆으

 

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삽이었다.

 

 

’파라...’

 

 

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 말을 한 건달을 쳐

 

다보았다. 그는 얼굴에 조소를 띄며 나를 잠깐 쳐다보다가, 몸을 날

 

려 구둣발로 내 턱을 올려치면서 외쳤다.

 

 

’파라고 이 xx야.. 니 죽을 구녕 얼렁 파.. ’

 

 

방금전 심하게 맞았기 때문인지, 난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그대로 날아가 떨어졌다. 머리속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

 

만, 지금 내가 삽을 들고 파지 않으면 이들이 나를 때려죽일거라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덥쳐왔다. 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삽을 들

 

고 가운데 약간 넓어 보이는 공간을 파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파.. 너 5분안에 니 죽을 구녕 못파면 우리한테 맞아죽

 

는다..’

 

 

난 그들의 말에 삽질하는 손을 더 빨리 움직이면서, 정신을 차리고

 

자 고개를 흔들었다. 아..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잠시동안 삽질

 

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이들은 내가 이 구멍을 파던 안파던 어차

 

피 나를 죽일 심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삽질하는 손을 쉬지

 

않으면서, 곁눈으로 그들이 무얼 하고있는지 살펴 보았다. 오른쪽에

 

한명 왼쪽에 한명.. 두명은 안 보이는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

 

는 것 같았다. 일대사.. 일대사라.. 난 내가 생각해도 그리 튼튼한

 

몸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프로 싸움꾼들이다. 일대일로 붙어도

 

이기기가 희박한 싸움을 일대사로 덤빈다... 이건 거의 라이타를 들

 

고 화약고로 뛰어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

 

겐 삽이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방심하고 있다.. 난 삽질을 열심

 

히 하면서.. 곁눈으로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내가 삽질을 열심히

 

하는게 맘에 들었던지, 그들은 서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에

 

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우선 왼쪽에 있

 

는 놈을 삽으로 쳐서 눕히고, 그 여세를 몰아 오른쪽에 있는놈도..

 

그리고 뒤쪽에 달려드는 놈들은 삽 머리로 목을 찍어버려야지.. 나

 

는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다섯 번

 

삽질을 더 하고 나서 왼쪽놈을 쳐야지.. 한번..두번..세번..네번.. 아니

 

아니.. 열번 삽질을 하고 나서 쳐야되겠다.. 난 다섯 번을 열번으로

 

바꾸고, 다시 여섯번부터 삽질 숫자를 입 속으로 세기 시작했다.

 

 

’여섯번..일곱번...여덟번..아홉번...........열번!’

 

 

난 어느정도 파 들어가 있던 땅 속에서 몸을 날려 뛰쳐 나와 왼쪽

 

에서 뒤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놈에게 삽날을 날렸다. 역시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놈은 삽이 날라오는 것을 제대로 보지

 

도 못한채 목 있는쪽에 삽날을 ’퍽’ 소리를 내고 맞고는 뒤쪽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이제 이 여세를 몰아 오른쪽에 있는 놈도 한방이

 

다.. 난 계획했던데로 실행하기 위해서 내 몸을 오른쪽으로 재빠르

 

게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퍽.......’

 

 

오른편에 서 있던 놈의 발이 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난 가슴을

 

움켜쥐며 뒤쪽으로 날아 떨어졌다. 그리고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기

 

도 전에, 뒤쪽에 있던 놈 중 한명이 달려와 삽이 들려져 있던 내

 

손을 발로 후려쳤다. 난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아픔을 느끼며 삽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삽은 나와 먼 저쪽으로 튕겨 나갔다.

 

 

’이 xx..아주 죽을라고 발악을 하는구만..발악을.. ’

 

 

내 손을 친 놈이 나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내

 

얼굴을 발로 밟으며 짓이기기 시작했다. 난 그래도 중요한 부위인

 

얼굴과 내장을 지키기 위해, 뒤로 돌아 엎드리며 손으로 머리를 감

 

쌌다. 그러자 나머지 두명도 나에게 다가와 욕을 지껄이며 되는데

 

로 나를 밟기 시작했다. 난 가능한한 몸을 구부리면서 맞는 부위를

 

최소화 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까 맞을때는 아프다는 감각

 

이 있었는데, 이젠 아프다는 감각도 사라진 것 같았다. 나를 구해주

 

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금, 그저 빨리.. 그저 빨리 그냥 끝났

 

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녀..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성미야....’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내가 넘어져 있는 위쪽에서 휙 하는 소리와

 

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들이 나를 밟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내 귓가로, 그들중 한명이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새끼.. 너 미쳤어!!!!!’

 

 

-계속-

 

너의 결혼식 #22

 

 

난 머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약간 치켜 들어 내 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봤다. 나를 머리쪽에서 밟던 놈이 내 머리에서 세 시

 

방향 있는쪽으로 그대로 뻗어 있었고, 아까 안보이던 곤색 양복을

 

입은 발이 하나 보였다. 새로 나타난 남자는 그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려 다른 한명에게로 또다시 발을 날렸다.

 

퍽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후 쿵 하는 사람 쓰러지는 소리가 들

 

렸다. 그리고 내가 안보이는 내 등 뒤쪽에서 잠깐동안 휙 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퍽하는 소리와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누굴까.. 난 그제서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

 

았다. 어디선가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

 

다. 그는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한명을 발을 들어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찍어버리더니, 고개를 약간 숙여 대각선 아래를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워, 그

 

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그에게 말했다.

 

 

’저..저기.. 누..누구시죠??’

 

’................’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다문채 계속 시선을 아래쪽으로

 

두고 있다가, 아까 나를 여기까지 데려 온 녀석들이 다시 덤빌 기

 

미를 보이지 않자, 아까 우리가 올라왔던 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

 

했다. 그가 나에게 비록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따라가

 

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게 뻔했으므로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주춤

 

주춤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비록 온 몸이 아프기는 했지만, 죽

 

을뻔 하다가 살아난게 어딘가.. 우리가 넓은 공간지대에서 벗어나려

 

할 때쯤, 뒤쪽에 쓰러져 있던 한 녀석이 나지막히 말했다.

 

 

’준.. 너 지금 실수하는거야..’

 

’...........’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채 산을 따라 걸어내려갔고, 나도 그

 

가 내가 따라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아서 그를 따라

 

내려갔다. 아까 그놈들의 차가 있던 곳에 다다르자, 그곳에는 새로

 

운 검정색 새단 한 대가 그 뒤에 주차되어 있었다. 저차.. 저차 역시

 

어디서 많이 본 차인데.. 어디서 많이 본 것은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는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도로있는 곳

 

까지 천천히 걸어내려오더니, 이내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이 차에 내가 올라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탓다가 또 맞고 쫓겨나

 

는거 아닌가.. 난 갈등이 되었다.. 그런데 혼자라면 시동을 걸고 출

 

발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출발하지 않는걸 보

 

니, 아마도 그는 나를 데리고 가려는 모양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어,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앉

 

자마자 악셀을 밟으며 차를 몰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내가 경기도 문산 근처에 있는 야산에까지 끌려왔다는 것을,

 

스쳐 지나가는 고속도로 표지판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 도대체 누구지.. 난 직접 쳐다보지는 못하고 곁눈질로 힐끔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나이에.. 짧게 자

 

른 스포츠 머리.. 짙은 눈썹.. 강렬한 눈빛.. 어디선가 본 얼굴이기는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지금까지의 행동으

 

로 볼 때, 물어봐도 대답해 줄 사람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난

 

그냥 계속 궁금해 하기로 했다. 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

 

해 하는 마음에 그가 눈치를 못챌 정도로 고개와 눈을 움직이며 차

 

속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차 바닥쪽으로 시선을 옮겼

 

을 때였다.

 

 

’앗...’

 

 

난 몸을 구부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핀을 집어 들었다. 이건..

 

이건.. 내가 예전 그녀가 2학년때 500일 기념으로 악세사리점 열 몇

 

군대를 돌아다니며 예쁘면서도 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골라 사준

 

머리핀과 똑같이 생겼다... 아 그러고보니.. 난 약간 숙인 포즈로 그

 

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 이제 생각났다.. 지금 나를 태우고 가는

 

사람은.. 그녀를 차에 태우고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던 그 경호원

 

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나를... 비록 이 사람이 누군인지는 알

 

게 되어서 마음 한 켠이 후련했지만, 난 또다른 궁금증에 사로잡히

 

게 되었다. 혹시.. 그녀가 나를 구해주라고 부탁했나... 하지만 이 사

 

람 역시 그녀 삼촌의 부하일텐데, 그녀의 부탁이었다고 섣불리 자

 

신과 한솥밥을 먹는 동료들을 패면서 까지 나를 구하려 들지는 않

 

았을 것이다.. 그럼 왜.... 난 그에게 왠만하면 질문을 하고 싶었지

 

만, 그는 아까 산에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나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비록 말은 안했지만, 나하고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표시라는 것을 직감으로 깨달을 수 있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쉽사

 

리 말을 걸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난 다시 내가 쥐고

 

있는 머리핀으로 눈을 옮겼다. 머리핀.. 머리핀을 바라보자, 머리속

 

은 온통 다시 그녀 생각으로 가득해 졌다. 나의 사랑 그녀.. 난 또

 

그녀를 내 곁에서 지키지 못했다. 병신..쪼다.. 바보.. 어떤 욕도 지

 

금 나와 같이 무능력한 놈을 적절히 나타내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그녀.. 지금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손을

 

꼭 잡고, 학교에서 탈출해서 어떻게 살아갈까 같이 소근소근 이야

 

기를 하던 그녀.. 하지만 이제 그녀는 내곁에 없다. 단지 난 아무것

 

도 할 수 없는 놈이라는 무기력감과 절망감만이 다시 나를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는동안, 차는 어느새 톨게이트를

 

지나 서울 외곽지역을 달리고 있었다. 남쪽에서 들어오는 입구인 교

 

대 4거리에 차가 도착하자, 그는 차를 도로 옆으로 붙여 세웠다.

 

 

’.........’

 

 

우리 사이에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난 그가 말하기 만을 기다렸지

 

만, 그는 아마도 내가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이렇게 구해주셔서...’

 

’...........’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나..

 

난 머리속으로 생각하다가 다른 말을 꺼냈다.

 

 

’저.. 저 그럼 여기서 내릴까요??’

 

’..........’

 

 

그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듯,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창밖을 바

 

라보다,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아.. 아마도 그는 나를 끝까지 데려

 

다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저.. 그럼 저 저희 집 있는곳 까지만 태워다 주실 수 있을까요.. 저

 

쪽 중구 있는 쪽으로 올라가 주시면 되는데.. ’

 

 

아마도 이 말을 기다렸을까. 그는 다시 차에 시동을 걸더니, 차를

 

몰아 나가기 시작했다. 난 집으로 가는 길 중간 중간에서 그가 집

 

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방향 설명을 해 주었다. 한 30분쯤 달렸을까,

 

차는 집 근처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저기.. 저쪽 3거리에서 좌회전 하셔서 앞으로 조금만 전진하시면

 

골목 하나 나오는데, 그쪽에서 조금만 걸어들어가면 저희집 나와요. ’

 

 

난 그에게 마지막 길 안내를 해 준 후, 이제 집에가서 뭘 해야 하

 

나 하는 찹찹한 마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아..이제 그녀는 내 삶에

 

서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 학교도 이제 끝났다.. 아.. 그리고 보니

 

친구들.. 나의 친구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나는게 모두 절망

 

적인 것 뿐이었다. 좌회전 때문에 몸이 약간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난 절망석인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집.. 아직 내겐 쉴 집이

 

있고.. 그런데 커브를 거의 다 틀었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끽..’

 

 

그는 커브를 틀다 말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난 반동으로 앞으로 약

 

간 튕기며, 무슨 영문인지 궁금해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앗.........’

 

 

나의 자취방에 들어가는 골목길 앞에, 소방차와 경찰자 몇대가 받

 

쳐져 있는 것이었다. 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며, 비록 도로 귀퉁

 

이였지만 차 문을 박차고 나가 앞으로 휘청거리며 뛰어갔다. 설마..

 

설마....설마.....설마.....심장 뛰는 소리가 온 세상을 진동한다...

 

 

 

 

 

 

’털썩..........’

 

 

난 머리에 저격을 당한 사람처럼,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내집.. 내가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시작해서 살아오던 내 집.. 비록 자그마한 방과 부엌이긴 했

 

지만 나의 기쁨과 슬픔을 십년이 넘게 함께 했던 내 집이 창문속으

 

로 보이는 처참한 잔해와 함께 새까맣게 연기에 그을려 있었다.

 

난.. 난 너무나 가슴이 꽉 막혀와서 울지도 못하고 ’후...후....’ 하고

 

한숨만을 내쉬었다. 내 눈이 잠시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이

 

비오듯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난... 난 이제 내 집

 

도 잃어버렸다.. 이제 나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다.. 아까 차라리

 

죽어버렸어야 했어... 아까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그냥 속편히 저세

 

상으로 떠날 수 있었을텐데... 난 차마 남자이기 때문에 소리내어

 

울지는 못하고 계속 한숨만 ’후..후..’ 하고 내쉬었다. 곧이어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땅에 쓰러져 울고 있는 내 곁에

 

섰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잠시동안 내 곁에 서 있더니.. 얼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감정을 좀 억제했다는 생각이 들때가

 

되어서야 내 어깨에 손을 한번 잠시 얹고 나서, 다시 그의 차로 돌

 

아갔다. 이제 난..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내게 남은건 아

 

무것도 없다. 그녀도 잃었고, 집도 잃었고, 일자리도 잃었고,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도 잃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난 이 자리에 그대로 계속 있으면 머리를 땅바닥에 부

 

딪쳐 자살을 할 것 같았으므로, 다시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차로 돌아갔다. 다시 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난 나

 

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 저기.. 한강변으로 저를 좀 데리고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이

 

럴때면 꼭 가는 곳이 있는데..’

 

 

그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조용히 내 말을 듣더니, 다시 차에 시동을

 

걸어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않고,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절망감에 눈이 감겼다.

 

-계속-

 

너의 결혼식 #23

 

 

 

 

’후우........’

 

 

 

흐린 시야 사이로 검은 강물을 헤치며 지나가는 유람선이 보인다.

 

이곳에 온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겨울 밤이라서 그런지 강바

 

람이 상당히 새찼지만, 추위 따위는 이미 내 안중에 없었다. 난 이

 

제 모든 걸 잃었다. 내 집도, 내 친구들도, 내 아르바이트자리도, 그

 

리고 가장 중요하게 나의 사랑하는 그녀도.. 이제 나에게 남은건 하

 

나도 없다. 난 다시 고개를 떨구어 바닥을 바라보았다. 나.. 그냥 이

 

대로 한강물에 뛰어들어 죽어버리면 어떨까.. 죽어버리면 모든게 잊

 

혀지지 않을까.. 하지만 내 손으로 내 목숨을 끊을 용기가 나지 않

 

았다.. 역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 인가 보다. 그럼 앞

 

으로.. 앞으로 이제 난 뭘 해야 할까. 난 옆에 서 있는 그에게로 시

 

선을 돌렸다. 나를 이쪽 강변에 데려다 주고 나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 옆에 서서 강물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 그는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도 나를 도와

 

주는 바람에 나랑 비슷한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왜 도와주었을까.. 하기야 그가 없었으면 이미 난 산속에 파묻혀 버

 

렸겠지.. 차라리 파묻혀 버렸으면 더 났지 않았을까.. 이제 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시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난 다시 고

 

개를 숙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눈물에 젖어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 사이로, 잠깐동안 반짝이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 아.....’

 

 

 

난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반짝임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반지였다. 그녀가 나에게 1000일날 선물해 준 반지. 우리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 반지. 그 반지가 내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어져 가로등 불에 반사되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난 반지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새끼손가락에서 빼서 손바닥 위에 올렸다. 내

 

가 손바닥을 조금씩 움직이자, 반지가 가로등불에 반사되어 반짝

 

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고, 그 빛 사이로 내가 그녀와 함께 했던 즐

 

겁던, 그리고 때론 슬펐던 기억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아.. 그

 

리고 그날밤.. 서로 반지를 선물하던 그 날 밤의 그녀의 모습이 빛

 

사이로 아련히 떠오른다.

 

 

’ 오빠..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더라도, 우리 사랑 변치 말구.. 이렇게

 

영원히..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영원히... 서로만을 사랑하

 

기로 해요.. 알았죠??후훗... 오빠.. 우리 이 촛불에 우리 사랑을 맹

 

세해요...약속..’

 

 

 

’약속.......’

 

난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 그래.. 난 그녀와 약속을 했어.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더라도, 영원히 서로를 사랑하기로.. 난 반지를

 

놓고 있던 손을 꽉 쥐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 그녀는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또 나도 이렇게 그녀를 사랑하는데.. 왜 우린 함께

 

할 수 없는 걸까.. 부.. 권력..명예.. 그런게 다 뭐길래.. 왜 한 사람

 

이 그런 기준으로 평가가 되야 하는가... 난 잠시동안 세상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

 

장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 그녀의 집 앞까지 데려다 주십시오.. ’

 

 

그렇다. 난 결심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그녀를 내게

 

서 뺏기지 않겠다고. 어떤일이 있어도 그녀를 내 곁에 두겠다고 결

 

심한 것이였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잠시동안 강쪽을 깊은 생

 

각에 빠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 차 쪽으로 걸어가

 

기 시작했다. 한강아.. 잘못하면 오늘이 너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될 수 있겠구나... 항상 않 좋은 일이 있을때마다 내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이 곳.. 한강변.. 난 애처로운 눈빛으로 한강을 한번 쳐다

 

본 후, 손에 들고있던 반지를 다시 왼손에 끼고 그를 따라갔다.

 

 

 

 

한 30분 정도 차로 달렸을까. 자정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그녀의

 

집 부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집을 두 블록 정도 남겨

 

둔 시점에서 차를 도로곁으로 붙여 세웠다.

 

 

’끼익..’

 

’............’

 

 

언제나 처럼, 그는 시선을 약간 아래로 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생각에 잠긴듯한 눈빛을 보였다. 난 잠시동안 그런 그를 말 없이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마웠어요.. 오늘.. ’

 

’..........’

 

 

그는 이번에는 예전과는 다르게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평소의

 

생활 때문인지 인상 자체에서는 약간 험악한 기운이 풍겼지만, 난

 

그의 눈을 통해서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

 

다. 그는 잠시동안 나를 바라본 후, 다시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돌

 

아갔다. 난 잠시동안 그를 더 바라보다가, 고개를 약간 끄덕여 가볍

 

게 인사를 한 후,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아가씨를.... 진심으로 사랑하나?’

 

 

그가 처음으로, 아주 조용한 어조로 나에게 말을 했다. 난 나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까와 같이 생각에 찬 눈을 하며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아가씨라면 그녀를 말하는건가...난 뜻밖의 질문에 당황스러워 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예...예.....’

 

’...........’

 

 

그는 나의 대답에 다시 한번 나를 잠깐 쳐다보다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앞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

 

다.

 

 

’너 혼자선 무리다. 내가 집 앞까지 태워다 줄테니까, 내가 차를 멈

 

추면 내려서 바로 문 있는 쪽으로 뛰어라. ’

 

’예...예......’

 

 

지금 이 사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하기야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니, 내가 그의 도움을 받아서 그쪽에서 도망을 친걸 그녀의

 

삼촌도 이미 알았을테니까, 내가 그녀의 집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

 

해 집 주변에 건달들을 배치해 놓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난

 

얼마 안있으면 다가올 또 한번의 격전에 대한 두려움에, 몸이 떨려

 

왔다. 그는 이미 결심을 굳혔는지, 재빠르게 기아를 바꾸더니 빠른

 

속도로 차를 앞으로 몰아나가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두 골목.. 두 골목만 더 돌아가면 그녀의 집이 보이는 골목에 도달하

 

게 된다. 심장 소리가 내 전신을 감싸며 귀를 울려오기 시작했다.

 

첫 골목 꺽이는 지점에 도달했다.

 

 

’끼이이이이익.............’

 

 

차 바퀴가 밀리는 소리와 함께, 우리를 태운 차는 앞바퀴를 중심으

 

로하여 시계방향으로 뒷바퀴가 쫘악 밀리며 커브를 틀었다. 이제

 

저 사거리..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꺽기만 하면 막다른 골목에 있는

 

그녀의 집이 보이게 된다. 난 떨리는 두 손을 깍지를 끼며, 나도

 

싸움에 동참해서 조금이나마 그를 도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는

 

어둠이 깔린 도로를 가르며, 앞으로 빠른 속도로 질주해 나간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꺽이는 지점에 도착하면서 몸이 급격히

 

왼쪽으로 쏠린다.

 

 

’끼이이이이익..........’

 

 

 

-계속-

 

너의 결혼식 #24

 

 

 

차창너머로 보이는 시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른 속도로 스쳐

 

가면서, 눈 앞에 어렴풋이 어둠속에 앉아있는 사람들 몇 명의 모습

 

이 보였다. 차가 완전히 회전을 멈추자 그들의 모습이 또렷히 보이

 

기 시작했는데, 대략 열명 가량이 그녀의 집과 길 꺽이는 부분 중

 

간 정도의 지점에 앉아서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는 심장..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

 

까 냈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땅을 박차고 주변에 놓아두었던

 

연장을 집어들며 뛰어오는 건달들에게 맹렬한 속도로 차를 몰아나

 

갔다. 그들과 우리의 거리는 대략 10미터, 건달들은 거리가 별로 안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차가 달려 오는 방향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눈 앞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난 공포에 질려 아

 

래쪽으로 고개를 숙여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눈을 감았다.

 

 

’끼이이익..........’

 

 

몸이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가 싶더니, 난 오른쪽 창문쪽에

 

달라붙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옆 창문 너머로 무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연속해

 

서 계속 들리는 가 싶더니, 차가 끌리는 소리가 멈추며 제자리에

 

멈춰섰다.. 난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차는 아까 오던

 

방향에서 한바퀴를 더 돌아, 차 앞쪽이 아까 꺽어나온 사거리쪽을

 

기준으로 11시 방향 정도를 향하며 아까 깡패들이 처음에 앉아있던

 

자리 부근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차의 앞쪽에는 , 아까 부

 

치던 소리의 주인공인 듯한 건달들이 길바닥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뒹굴고 있었고, 차를 피한 것 같은 나머지 대여섯명도 황당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차로 밀어버릴

 

생각으로 직선도로에서 왼쪽 급커브를 틀었던 것이다. 역시 그 보스

 

에 그 똘마니인가.. 난 그를 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빠르게 상황을 지켜보더니, 문을 박차고 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도 무언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 문 있는 곳에서 별로 안 떨이진 오른쪽 귀퉁이에 건달 한명이

 

서 있었기 때문에 덜덜 떨려 차마 나가지는 못하고 제자리에서 지

 

켜보고만 있었다. 그는 문에서 내려 차 엔진 있는 앞쪽으로 뛰어올라,

 

차를 밟고 내 눈 앞을 달려가나 싶더니, 그대로 몸을 솟구쳐 나하고

 

가까이에 있던 건달의 턱을 오른발로 후려쳤다. 그 건달은 옆으로 몇

 

번 회전을 하다가 벽에 몸이 부딪치며 땅으로 고꾸라 졌다. 그는 땅

 

에 발을 딪은 뒤, 내가 있는 쪽 차문을 발로 세게 걷어 차면서 소리

 

쳤다.

 

 

’ 뛰어 !!!’

 

 

난 그의 말에 정신을 번떡 차리고, 차 문을 열고 튀어나와 그녀의

 

집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마치자 마자, 운전석

 

앞쪽과 길 왼편에서 그를 향해 쇠파이프를 들고 뛰어오는 건달들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쇠파이프 소리와 기합소리들을 뒤로 하고

 

뛰는 중간에 난 생각했다... 아까.. 나 그를 돕기로 작정하지 않았던

 

가.. 난 뛰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얼굴을 뒤로 돌렸다. 그는 내가

 

잠시 뛰는 동안 한명을 더 쓰러뜨렸는지, 이제 남은 세명과 서서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 상황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가 가운데 서 있고, 나머지 세 명이 그들 둘러싸고 일정

 

거리를 두고 빙빙 돌면서 그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대련 자세를 취하고 다리는 땅에 붙이고 있었지만, 연신 고개를 앞

 

뒤로 움직이며 초초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난 이런 그를

 

그대로 두고 갈 수 없어, 주변에 뭔가 무기가 있나 없나를 살피며

 

그가 있는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갔다. 그런데 한 2미터나 다

 

시 뒤로 걸어갔을까..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성낸 얼굴을

 

하며 소리쳤다.

 

 

 

 

’빨리 뛰어 이 xx야!!!! ’

 

 

 

그가 나에게 소리치는 순간, 헛점을 봤는지 그의 뒤에 있던 한 놈

 

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그의 등을 그대로 가격했다. 그가 뒤를 돌아

 

보지 않고 앞쪽으로 몸을 숙이며 구르자, 나머지 두 명의 파이프가

 

그의 머리위를 아찔한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그는 전방낙법을 써

 

서 한바퀴 굴러 다시 일어나더니, 파이프를 크게 휘둘러 빈틈을 보

 

이고 있는 그의 10시 방향에 서 있는 건달 한 명의 정수리에 주먹

 

를 날렸다. 그러나 바로 직후 오른쪽에 서 있던 다른 한 놈에게 발

 

로 옆구리를 가격당해 왼쪽으로 굴러 쓰러졌다. 이 상황에서 난 어

 

떻게 해야 하나.. 난 그의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을

 

듣고 그녀의 집 쪽으로 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자리에

 

서 일어나는 모습을 눈으로 스치면서, 그녀의 집 쪽을 향해서 달리

 

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거리.. 불빛이라고는 그녀의 집 바로 앞쪽에

 

있는 가로등 불빛 하나밖에 없었다. 난 가로등을 향하여.. 있는 힘

 

을 다해서 달렸다. 뒤에서는 짧은 신음 소리와 휙휙 거리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부딛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헉........헉......’

 

 

난 그녀의 집앞에 도달해서 숨을 한번 고른 후 , 벨을 누르려 손을

 

벨 위로 가져갔다. 그런데 벨을 누르기 직전, 도대체 벨을 누르고

 

나서 무슨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아 순간 손을 멈췄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전 성미의 남자친구 박진석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승으로 갈뻔 했지만 이렇게 용케 살아남아 이렇게 성미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래야 하나.. 아니면 전 성미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성미와 제가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래야 하나.. 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면서, 다시 대문쪽에서 한걸음

 

물러나 그가 싸우고 있는 쪽을 바라봤다. 다행히 한명은 아까 주먹

 

공격으로 물리쳤는지, 그는 두명과 싸우고 있었다. 그가 차 위로 뛰

 

어오르자, 다른 건달이 파이를 휘둘러 그의 발목을 강타했다. 그가

 

몸에 중심을 잃으며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차 위에서 쓰러지는가 싶

 

더니, 그는 재빨리 손을 차에 짚으며 다가오는 놈의 면상을 발로

 

후려쳤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 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걸음 앞

 

으로 나아가, 벨을 눌렀다.

 

 

’띵동...........’

 

 

12시가 넘은 시각.. 난 문틈을 통해서 그녀의 집을 쳐다보았다. 그

 

녀의 방은 2층에 있었는데 방 불이 꺼져있었고, 부모님이 계시는 1

 

층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런데 벨을 누르고 시간이 지나도, 벨에

 

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난 초조한 마음에 문 위 아래를 이리

 

저리 살피면서 빨리 누군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문 위쪽

 

을 올려다 보았을 때였다. 그곳에는 흔히 좀 잘사는 집에만 있는,

 

감시 카메라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난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였

 

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긴장된 마음으로 벨을 한번 더 눌렀다.

 

 

’띵동...........’

 

’저.. 박..박진석이라고 합니다... 성미 남자친구구요.. 성미..성미

 

좀 만나러 왔는데.. 어떻게 좀 만나볼 수 없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겨우 끝마쳤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난 초조한 마음에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 왼

 

쪽편을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두 명과 싸우고 있었는데, 두 명도

 

많이 지친 듯 했고 그도 역시 지친 듯 했다. 그런데, 아득히 보이는

 

헤드라이트 불빛 사이로, 그의 이마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는 한줄

 

기의 피를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머리를 파이프로 한 대 맞은

 

모양이다. 그는 앞쪽에서 자신의 머리를 겨냥해 파이프를 휘두르는

 

건달을 몸을 숙여 피하더니, 오른발을 들어 건달의 복부를 올려쳤

 

다. 그런데 앞쪽으로 그놈이 튕겨나감과 동시에, 나머지 한놈이 왼

 

쪽에서 그의 얼굴을 옆차기로 올려쳐 그도 오른쪽으로 나가 떨어졌

 

다. 난 긴장된 얼굴로 쓰러져 있는 그와 벨을 번갈아 바라보았지만,

 

벨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나오지 않았다. 난 다시 벨 앞으로 나아가,

 

벨을 누르며 말했다.

 

 

’띵동........’

 

’ 성미 어머님..성미 아버님.. 전 성미를 좋아.. 좋아합니다. 성미도

 

저..저를 좋아하고요. 그러니 성미와 저를 갈라놓으려 하지 마시고

 

사귀..사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

 

 

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적만이 흐를

 

뿐, 아무런 응답이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지금 나

 

를 보시고 계실까.. 난 카메라가 있는 곳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서 저쪽이 보이는게 아니므로,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아까하고 뭔가가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었다. 아.. 그러고 보니 주위가 고요해 진 느낌이었다. 난 놀란 눈을

 

하고 걸음을 빼서 그가 싸우던 곳을 쳐다보았다.

 

 

 

 

-계속-

 

너의 결혼식 #25

 

 

’아..........’

 

그때... 그때 난 보았다. 사나이의 진정한 모습이라는게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는 나와 어느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모든 건달들을

 

그 혼자 손으로 물리친채, 어두운 밤거리 아래서 헤드라이트 불빛

 

을 뒤로 하고 사거리 쪽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었다. 난 그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뭉클거리는 것을 느꼈다.

 

목이 매여오는 것을 참고, 난 다시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반

 

지를 오른손으로 한번 꼭 쥔 뒤, 앞으로 나가 벨을 한번 누른후,

 

카메라에서 보일만한 곳에 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 성미 어머님 성미 아버님. 전 성미를 예전 만났을 때부터,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다. 행복하

 

게 해 줄 자신도 있구요. 성미가 없는 저의 삶은 불행 그 자체이

 

고, 제가 없는 성미의 삶도 불행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의

 

현재의 모습만 가지고 저를 평가하지 마시고, 앞으로 다른 사람들

 

보다 백배, 천배 더 열심히 일해서 능력있는 사람이 될 테니, 예쁘

 

게 키운 딸 저에게 주시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전 이 자

 

리에서, 성미를 저에게 주실 때 까지 , 그게 몇일, 몇 년이 되더라

 

도 이대로 꿈쩍앉고 앉아있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죽이실꺼면 차라

 

리 여기서 죽이십시요.’

 

 

난 말을 마친후 문 앞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었다. 그래.. 차라리 나

 

를 여기서 죽여라.. 나와 성미를 결혼시켜주지 않을거면.. 차라리

 

나를 여기서 죽여라.. 그녀가 보는 앞에서 죽는다면 차라리 더욱

 

기쁠 것이다.. 그의 영향 때문일까, 나에게도 내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엔가 감추어져 있던 오기와 배짱이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사거리를 바라보며, 나는 대문을 바라보며, 주변에 정적이 깔린채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난 만일 문만 열리기만 하면 그녀

 

어머니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서라도 그녀와의 결혼 승낙을 받아내

 

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리가 처음에

 

차를 타고 꺽어 나온 사거리 왼쪽 골목 방향에서 어렴풋이 ’두두두

 

두..’ 하는 말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그 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그는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린

 

듯, 주변에 떨어져 있는 파이프 하나를 집어 들더니, 뒤쪽에 있는

 

차의 위로 뛰어 올라서며 사거리 쪽을 주시했다. 아.. 설마.. 응원군

 

이 온건가.. 난 긴장된 눈으로 사거리쪽을 바라보았다. 발 소리는

 

점점 더 크게, 그리고 더 많이 들리는 것 같더니, 무수히 많은

 

검정 양복을 입은 건달들이 제각기 손에 각목을 쥐어들고 우리가

 

왔던 코너쪽을 돌아나오기 시작했다. 난 그들의 많은 수효와, 그녀

 

삼촌을 방불캐 하는 그들의 등치에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적게 잡아도 한 40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저승사자가 40

 

명이라.. 난 아까의 굳은 결심에도 불구하고, 몸이 부르르 떨려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코너를 돌아오다가, 차 위에

 

서서 한손에 쇠파이프를 움켜지고 있는 그를 보자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경계의 자세를 취하며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그렇

 

게 한 1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낮게 깔린 헤드라이트 불빛 사이로,

 

그들이 양 옆으로 쫙 갈라지면서 검정 양복을 입은 또 한 사람의

 

거구가 등장했다. 난.. 그가 누구인지.. 비록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직감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녀의 삼

 

촌이었다. 난 잠깐동안 그녀집 대문을 긴장된 눈으로 바라보다, 다

 

시 그녀의 삼촌이 걸어오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병신같은 새끼....’

 

 

 

그녀 삼촌은 나지막하지만 주변에 있는 것을 모두 떨게할만한 살

 

벌한 목소리로, 그와 조금 떨어진 앞까지 다가와 차 위에 올라서

 

있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나서 뒤로 약간 물러나 윗

 

양복을 뒤에 있는 부하에게 벗어 주며 물러나라는 신호를 하더니,

 

그에게 다가가며 내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마도 일대일로 맞장을

 

뜰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그도 삼촌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를 알

 

겠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오른쪽으로 던지고 자신도

 

윗 양복을 벗으며 차 밑으로 내려왔다. 키는 그가 약간 작았지만,

 

체격도 비슷하고 실력도 비슷할 것 같은 두 사람.. 두 사람은 가로

 

세로 5미터 정도 되는 공간에서 낮게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으며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빙빙 돌기 시작했다. 주변은 그들의 발자

 

국 소리만을 제외하고는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듯 조용

 

해 졌다. 그렇게 한 몇 바퀴 정도 돌았을까, 그가 먼저 왼발로 뒤

 

를 박차며 앞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삼촌의 명치를 향해 옆차기를

 

질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삼촌은 미처 생각을 못했는지 그걸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퍽~’

 

 

짧은 순간 후 그의 발이 그녀 삼촌의 명치 부근에 꽂히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난 속으로 쾌재를 울렸다. 역시 그.. 그가 한 수

 

위일꺼야..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 그녀 삼촌은 그걸 맞고 다른 사

 

람처럼 뒤로 날아가기는커녕, 오른손으로 자신의 명치에 꽂혀있는

 

오른발을 감싸 잡았다. 아까 싸워서 힘이 떨어졌기 때문인가.. 난

 

불안해 하는 눈으로 계속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자신의 발이 잡

 

힌것에 대해 놀랐는지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주춤거리다가,

 

다시 이를 악물며 왼발을 튕겨 몸을 삼촌 있는 쪽으로 던지며

 

왼발로 삼촌의 정수리 있는쪽을 돌려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

 

에는 그녀의 삼촌이 고개를 숙이며 그 공격을 피해 버렸고, 그는

 

공중을 한바퀴 발로 부웅 돌다가 그녀 삼촌에게 오른발이 잡힌 상

 

태로 등을 보인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 삼촌은 육

 

중해 보이는 왼발을 가슴깨까지 치켜 올리더니, 오른손으론 그의

 

오른발을 계속 잡은채로 왼발로 그의 등을 그대로 내리 꽂았다.

 

 

 

 

’뚜둑......’

 

 

 

비록 먼 거리였지만, 나는 뼈가 문드러지는 듯한 소리를 내 귀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승부는 너무 쉽게 결판이 나 버렸다. 그녀

 

삼촌이 그렇게 한방을 때린후 손을 놓자, 그는 그대로 앞으로 힘없

 

이 무너졌다. 그녀 삼촌은 아까 그의 발 때문에 먼지가 묻은 듯 와

 

이셔츠 어깨 부위를 손으로 탈탈 털면서, 부하들이 보고있는 뒤쪽

 

으로 말없이 걸어갔다. 난 그가 아마도 그대로 기절했으리라고 생

 

각했다. 하지만, 그녀 삼촌이 부하들에게 도착해서 웃옷을 다시 입

 

고 있을 때, 차창 너머로 아래에서부터 부들부들 떨며 위로 일어서

 

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몸을 떨면서 차에 기대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가 싶더니, 차에서 손을 때고 뒤로 돌아 휘청

 

거리며 대련 자세를 잡고 그녀의 삼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발걸음을 때어 놓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삼촌은 옷을

 

다 입고 나서 뒤를 돌아보다가 그를 발견하더니, 그에게 다가와 이

 

번에는 왼발 돌려차기로 턱을 걷어 차 버렸다. 그는 앞쪽으로 한바

 

퀴를 구르는 가 싶더니, 헤드라이트 있는쪽으로 나가떨어졌다. 난

 

이번에는 정말로 그가 기절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흐르자, 불빛에 비치는 그림자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차 위로 그의

 

손이 올라왔다.

 

 

 

’...........’

 

 

그가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그녀의 삼촌은

 

무표정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그는..

 

가까스로 왼쪽 팔목을 차 앞쪽에 얹은 뒤, 잠시 후 몸을 떨면서

 

오른쪽 팔목도 차 위에 올리고 나서, 밑을 보던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눈의 초점을 잃었는지,

 

그의 눈은 내가 아닌 담 너머의 그녀 집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왜...왜 웃고 있는걸까...

 

그런데 그때, 그녀의 삼촌이 그런 그의 뒤로 각목을 하나 들고 천

 

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에 도달해서 ,각목을 머리위로 높게

 

치켜올렸다. 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퍽.....’

 

 

 

차 있는 쪽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를 들으며, 난 내 눈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 나를 구해주고.. 나에게 사나

 

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줬던 그... 집이 불탔다고 실의에 빠져있던

 

나를 말없이 위로해 주던 그.. 그 역시도 지금 그녀 삼촌에 의해서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 정말로.. 정말로 내곁에 남은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이 자리에 앉아서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릴뿐.. 저

 

벅....저벅... 한 사람의 발걸음이 차 있는 곳에서 내 쪽을 향해서

 

천천히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난 그때가 되서야 깨달았다. 지금

 

까지 내가 했던 행동... 그 행동들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

 

을. 왜 난 그렇게도 항상 소극적으로, 우유부단하게 행동했었던 걸

 

까. 그녀에게 처음 반지 선물할때도, 그녀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때

 

도, 아니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항상 내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올까

 

봐 두려워하는 소극적이고도, 비겁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의 희생

 

과, 이제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절망감이, 나에게 저 가

 

슴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진정한 용기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난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삼촌이 걸어오고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비열한 깡패새끼.. 비록 내

 

가 이승에서는 너에게 졌지만, 저승에 가서는 내가 귀신이 되어 너

 

의 몸을 짓밟아 주겠다.. 난 세상에 대한 조소를 한껏 실어 골목이

 

울려퍼질만큼 크게 경멸의 웃음을 웃었다.

 

 

’하하하~!’

 

 

드디어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번엔 피하지 않고, 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가 지난번에 꿈속에서 봤던 이글

 

거리는 빨간 눈빛, 그건 단지 꿈에 불과했고 그는 그저 조용한 눈

 

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난 그의 눈을 계속해서 맹

 

렬히 노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오른팔은 구부려 어깨높이로

 

올리고 왼팔은 발 있는 쪽으로 내리면서, 아까 그가 취했던 대련 자

 

세를 잡았다. 그래 이 더러운 깡패새끼야, 덤벼라.. 내가 비록 널

 

죽이지는 못 하더라도.. 너에게 주먹 한방은 선사하고 이 세상을

 

떠나리라.. 이제 앞으로 다섯 발자국 .. 다섯 발자국만 앞으로

 

다가와라.. 내 몸은 분노로 부르르 떨려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계속-

 

 

너의 결혼식 #26

 

 

 

’형님~~!!’

 

뒤쪽에 있던 건달 한명이 그를 부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는 발

 

걸음을 멈추고, 인상을 쓰면서 뒤를 쳐다보았다.

 

 

’너 지금.....’

 

’아 형님..왠만하면 제가 해결할라고 했는데요.. 저기 큰형님 전화라

 

서요..’

 

 

그는 다시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뒤로 돌아가며 전화를 받았다.

 

난 맥이 풀려 꽉 쥐었던 손을 밑으로 내렸다.

 

 

’예..형님 접니다..’

 

’예... 예.... 아니 그래도 어떻게...’

 

 

’.................’

 

’예... 예... 예 알겠습니다.. 형님 섭섭한 마음 감출길이 없습니다..’

 

 

누구한테 전화가 왔던 것일까.. 그는 전화를 받고나서 그 자세로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며 서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내게 한발자국

 

씩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난 다시 주먹을 불끈쥐어 위로 올

 

렸다. 와라 이 건달새끼야.. 이 더러운 세상 .. 비록 네 손에 죽는게

 

아쉽기는 하다만.. 내 기필코 너에게 내 주먹을 선사하고 죽으리

 

라..... 그런데 그는 나에게 다가오다가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서 다시 멈춰섰다. 얼라...저새끼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난 그의 눈

 

을 맹렬한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았다. 한발자국만 더..한발자국만..

 

그런데 그때였다.

 

 

’휙~~~~’

 

 

뭔가가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더니, 내 바로 앞옆에 있는 벽

 

돌에서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난 깜짝놀라 뒤로 한걸음 물

 

러서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손이 으스러진 벽돌 사이에

 

박혀있었다. 난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그는 피가 흐르는 손을 벽돌에서 빼더니,

 

나를 잠깐동안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그냥

 

가는건가.. 난 긴장이 풀린탓인지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런데 왜.... 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나를 구해준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아마도 아까 맞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는지 차에 가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 삼

 

촌은 부하들에게 손을 들어 뭔가를 지시하는 것 같더니, 나와 반대편

 

에서 뒤쪽 차문을 열더니 헤드라이트 아래에서 사람 한명을 끄집어

 

뒷자석에 집어 넣고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건달들도

 

어둠 속에서 부상자들을 들쳐메고 부축하고 하면서 부산을 떨더니만,

 

하나 둘씩 다들 자신들이 달려왔던 길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남은건 내 위의 가로등 불빛.. 그리고 나.. 그리고 저쪽 어둠속에

 

떨어진 그의 윗양복...뿐이었다. 그.. 그는 죽었을까 .. 살았을까..

 

그런데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들이 사라져간 어둠속을 지켜

 

보고 있었을 때였다.

 

 

’ 박진석 군이라고 했나??’

 

 

난 순간적으로 고개를 틀어 소리가 나는 문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언제 모르게 열려있었고, 거기에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키가 크

 

고 등치가 좋은 남자 한명이 서 있었다. 인상 좋은 얼굴, 오똑한

 

코, 난 직감으로 이 남자가 성미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미 아버지가 나를 구해준 건가.. 난 놀란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예..예..’

 

 

’자네 우리 성미를 진심으로 사랑하나..?’

 

 

’예..예.....’

 

 

’그런데 난 평범한 사람을 내 사위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예..........’

 

 

그는 이 말에 절망적인 얼굴을 하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

 

는가 싶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법 고시 공부를 한다고 했던가..?’

 

 

’예...예.....’

 

 

’..........’

 

 

 

’2년의 시간을 주겠내. 집과 돈과 공부에 필요한 제반 모든 것은

 

다 내가 제공해 주지. 자네는 오로지 공부만을 하게. 그래서 2년안

 

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내 딸을 주지. 하지만 2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때는 내 딸을 포기하게.. 알겠나??’

 

 

 

’......예..예.....’

 

 

난 고개를 떨구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눈에서는 .. 뭐랄

 

까.. 아까와는 다른 안도의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

 

지가 나를 인정해 주셨다.. 2년의 시간을 주셨다.. 난 떨리는 목소

 

리로 말했다.

 

 

’감사..감사합니다.....’

 

 

그녀 아버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신채, 다시 뒤로 돌아 집쪽으로

 

걸어들어 가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집쪽에서 문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그녀였다.

 

그녀는 얼굴이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범벅이 된채 내게로 달려오더

 

니,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오빠~~~~~~~~~~~’

 

 

’성미야~~~~~~~~~’

 

 

난.. 그녀를 다시 찾았다. 아니.. 내 모든걸 다시 찾은 듯 했다.. 내

 

눈에서도, 그녀 눈에서도 .. 끊임없이 안도의 눈물이 솟아나오고 있

 

었다. 이대로.. 이대로 다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램뿐이었

 

다.... 영원히...

 

 

-계속-

 

너의 결혼식 #27

 

 

역시 나의 생각대로, 전화를 걸었던 건 그녀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는 처음 우리가 차를 몰고 건달들에게 부딪쳐 왔을때부터, 집 곳곳

 

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통해서 바깥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처

 

음에는 그녀가 아무리 애원해도 날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셨는

 

지 그냥 말 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계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가

 

그녀 삼촌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며

 

그에게 덤빌려는 자세를 보이자, 그때서야 뭔가를 결심하신 듯 고

 

개를 끄덕이시더니 삼촌에게 전화를 해서 그냥 돌아가라고 말을 하

 

셨다고 한다. 아마도 마지막에 보여준 내 용기를 높이 평가하셨나..

 

하여튼 그 덕분에 나는 그녀 아버지로부터 2년간의 기간을 보장받

 

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약속 했던데로,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고시촌이 밀집해 있는 신림동 부근에

 

아파트도 한채 장만해 주시고, 학원비 대고 한달 생활하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돈을 생활비로 매달 보내주셨다. 난 그런 그녀의 아버

 

지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관계는, 예전

 

과는 다르게 상당한 구속을 받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장받

 

은 2년은 돌려 생각하면 그녀 집안과 민혁이라는 놈의 집안과의 결

 

혼 유예기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녀 어머니는 남편의 말

 

에 따라 어쩔수 없이 2년간 결혼을 늦추기는 했지만, 내가 실패하

 

기만 하면 바로 민혁이라는 놈과 그녀를 결혼시킬 심산이었다. 그

 

래서 난 그녀를 매일 만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혼전에 몸을 잘 간수해야 된다는 그녀 어머님의 억지로

 

그녀 어머니의 감시하에서 잠깐동안 손도 못 잡아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비록 헤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말 그대로

 

또다른 의미의 헤어짐 속에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사법고시.. 일

 

류대 생들도 몇 년간 공부해도 겨우 붙을 둥 말둥 한다는 사법고

 

시.. 그런 사법고시를 겨우 작년 일년 공부한 내가 내년과 내후년까

 

지 해서 2차까지 합격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

 

생각되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책상앞에 놓여진 그

 

녀의 사진과, 매일 저녁 학원을 끝마치고 와서 음성 메시지를 확인

 

하면 녹음되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등에 업고, 하루에 4시간 정

 

도씩만 잠을 자면서 피나는 노력을 다해서 공부를 했다. 97년 2월,

 

그녀의 응원을 들으며 난 처음으로 사법고시 1차 시험을 치러 갔

 

다. 내가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지 불과 3개월도 채 안되는 시점에

 

서 본 시험, 붙을 리가 없었다. 난 그 시험을 그냥 시험장 분위기를

 

익힌다는 의미에서 응시했었고, 그녀의 아버님도 그리 기대를 하시

 

지는 않으시는 것 같았다. 4월달에 발표된 결과는 역시 불합격 이

 

었다. 이제 남은건 98년 1차 시험 한번..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2년

 

을 채울것도 없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었다. 난 발표가 난 직후부터,

 

하루 4시간 자던잠도 3시간으로 줄이고, 밥 먹으면서도 법전을 펴

 

놓고 보면서 미친 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나를 보러온

 

그녀는 옆에 앉아있는 그녀 어머니 때문에 나에게 안기지는 못했지

 

만, 말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 야위어 가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

 

다. 그녀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나는 더 미칠지경이었지만, 난 이렇

 

게 안하면 그녀를 영영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오직 법

 

전만을 바라보며 일년을 보냈다. 그리고 98년 2월, 두 번째로 1차

 

시험을 보러 시험장으로 갔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때문일까,

 

난 긴장도 하지 않고 차분하게 시험에 임했다. 그리고 4월달에 발

 

표된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것도 높은 점수로.. 그녀와 나는 기쁨의

 

함성을 울렸고, 그녀 아버지도 꽤 만족해 하는 눈치셨다. 그녀 어머

 

니만 빼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이런 기쁨의 여

 

세를 몰아 2차 준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마 책을 미친

 

듯이 바라보다가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정신을 잃으며 잠들었던 것

 

으로 기억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난 이제 올해 2차만 붙으

 

면 그녀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로 열심히 공

 

부를 했다. 그리고 그해 .. 그러니까 작년 6월, 아침에 그녀가 직접

 

와서 해 준 밥을 먹고 힘을 내서 2차 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 기간

 

은 모두 3일, 난 3일내내 내가 아는 문제는 모두 맞힌다는 심정으

 

로 차분히.. 차분히 답안지를 채워 나갔다. 그렇게 3일이 지났고, 난

 

시험을 끝냈다. 이젠 결과가 제발 좋게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

 

에 없었다. 그렇게.. 긴장속에서 7,8,9,10 4개월이 흘러갔고, 11월 초

 

가 되어서야 드디어 합격자 발표를 했다. 그녀와 나는 아침 일찍부

 

터 합격자 확인 전화번호를 누르며, 초조한 마음으로 빨리 합격자

 

명단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마 6시간 정도를 전

 

화를 눌러댔을까.. 드디어 합격자 발표 데이터 베이스에 전화가 연

 

결이 되었고.. 난 손을 벌벌 떨면서 조심스럽게 내 수험번호를 눌렀

 

다.. 아마 살아가면서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잠시 후, 수화기에선 내 시험 결과가 흘러나왔고, 그걸 들은 그녀와

 

난 서로를 얼싸안고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아.. 그럼 총각이 2차에 합격했고, 그렇게 해서 3차까지 합격해서

 

지금 그 성미라는 아가씨랑 결혼하러 결혼식 장으로 가는건가???

 

정말 멋지구만~~~이야~~ 정말 멋져~~’

 

 

난 아저씨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차는 벌써 목적지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아저씨.. 저쪽 사거리 신호등 건너기 전에 세워주시겠습니까?’

 

’그러세~~~ 아이고 오늘 기분이 진짜로 좋구만~~ 사법고시 합격생

 

을 아침부터 태우고~~’

 

 

난 아저씨의 말에 연신 웃으며,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결혼식장 분위

 

기를 살폈다. 역시 강남의 유명 결혼식장 답게 , 규모가 어마어마하

 

고 주변에 고급차들도 즐비해 있었다. 드디어 택시가 목적지에 멈

 

춰섰다.

 

 

 

-계속-

 

너의 결혼식 #28

 

 

 

’아저씨 얼마예요??’

 

’아~~ 만천원 나왔는데.. 총각 그냥 만원만 줘~~ 아침부터 좋은 이

 

야기 듣게 해준 보답일세 보답~~~’

 

 

중간에 차가 막히더니.. 역시 돈이 많이 나왔군.. 난 아저씨에게 웃

 

으며 만원자리 한 장을 내민 후, 차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나왔다.

 

시계를 바라보니, 결혼식이 한 10분정도 남아 있었다.. 이런 서둘러

 

야 되겠군..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결혼식장 주위를 비치고 있었다.

 

난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와 있나 살피며, 2층 홀 있는 쪽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오늘 그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벌써 신부 화장은

 

끝냈겠지..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운 그녀... 오늘은 예복을 입고 훨

 

씬 더 아름답게 하고 있을 것을 상상하며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

 

다.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등치가 큰 사람들이 몇몇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그녀의 심촌도 서 있었다. 난

 

계단을 뚜벅 뚜벅 걸어올라가며 그녀의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녀

 

삼촌도 걸음 소리에 뒤를 보다 내가 오는 걸 봤는지, 조용한 눈빛

 

으로 올라오는 나를 쳐다본다. 난 2층에 올라 그녀 삼촌에게 인사

 

의 의미로 잠깐 고개를 끄떡인 후, 결혼식 준비로 왁자지껄한 2층

 

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부대기실 주위에 그녀와 친한

 

아는 과 여후배 몇몇이 몰려 있는게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녀..

 

그녀가 저 안에 있겠군.. 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눈길을 오른쪽으

 

로 돌렸다. 새내기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몇이 군중들 사이에

 

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동민이도 그 사이에 있었다. 짜식.. 어

 

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인가.. 얼굴이 약간 벙 떴군.. 난 혼잣웃음

 

을 웃으며 동민에게 걸어갔다. 동민도 내가 오는걸 봤는지 내게 웃

 

으며 달려와 인사한다.

 

 

’형 오셨어요~~’

 

’어..어엉...’

 

’형.. 이제 아픈 과거 싹 잊구.. 새출발 하시는겁니다.. 어제 술자리

 

에서 한 약속 안 잊으셨죠??’

 

 

’엉.. 물론이지..’

 

’아참..성미 지금 저쪽 신부대기실 안에 있어요.. 하실 말씀 있으면

 

지금 하시는게 좋을듯...’

 

 

난 동민의 말에 그녀가 있다는 왼편의 신부대기실 쪽을 바라보았

 

다. 그녀 친구들에 가려서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들

 

의 다리 사이로 하얀색 예복의 끝단 부분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같다. 먼저 봐도 될까.. 내가 과연 그녀를 볼 수 있을까.. 난 주춤

 

주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이~ 진석군 이제야 왔는가~~’

 

 

난 나를 부르는 소리에 홀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하객과 이야기를

 

하시던 그녀의 아버님이 나를 보고 부른 것이었다.

 

 

’예..예....’

 

 

’자넨 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 멋진 친구야.. 허허허... ’

 

 

난 쑥스러운 웃음을 띄우며 인사를 가볍게 하고는, 그녀가 앉아있

 

는 신부대기실 쪽으로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점점 가까워 지는 그

 

녀.. 난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신부 대기실 입구쪽을 둘러싸고 있는 그녀 친구들 너머

 

로 그녀가 앉아있는 곳을 고개만 내밀어 말 없이 쳐다보았다.

 

 

 

 

 

’아.........’

 

 

 

그녀.. 그녀의 지금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

 

다.. 하늘의 천사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녀의 천연의 아

 

름다움은.. 예복의 아름다움과 조화되어 .. 그녀 주위를 환하게.. 아

 

주 환하게 빛내고 있었다. 나는 잠시동안 눈부심을 느껴 눈을 깜빡

 

거린 후, 다시 흐뭇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서서 머리를 만져주고 있는 친구 민정이에게 무슨 주문을 하

 

는지 연신 뭐라고 말을 하며 눈을 위로 한채 웃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에 들려져 있는 저 하얀 부케.. 부케속의 꽃이 그녀의 아름다

 

움의 힘을 얻어 한껏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

 

다.

 

 

’신부 대기하세요~~~~ 3분후 입장입니다~~’

 

 

내 오른쪽에서 대기시간을 알리는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

 

는 위를 보던 눈을 내려 그 사람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잠

 

깐 옆으로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는 얼굴을 하더니,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도 그

 

런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어준 후, 그녀의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다시 홀 입구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친구들과 후배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성민형은 끝내 오시지 않으셨군.. 성민형도 오셨으

 

면 참 좋았을텐데..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는 꼭 결혼식에 참석하겠

 

다고 다짐을 하셨는데.. 왜 안오셨을까.. 난 혹시 성민형이 왔는데

 

나를 못찾고 있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제 3분만

 

있으면 신랑입장이군.. 기대되는데.. 난 그녀가 앉아있는 곳과 신랑

 

과 신부가 입장할 긴 융탄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이제 조금만

 

있으면.. 조금만 있으면.. 난 서로 서로 이야기를 하는 과 후배와 친

 

구들의 곁에서 약간 벗어나,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홀 입구 왼켠으

 

로 자리를 옮겼다. 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조금만 있으면.. 난 초

 

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10시 59분 이었다. 11시가 시작

 

이니까 딱 1분 남았군.. 난 초조해 하며 사회자의 입을 바라보았다.

 

시간아..... 시간아.. 난 다시 그녀가 있는 신부 대기실 쪽을 바라보

 

았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그녀의 삼촌이 서 있던 2층 홀 입구쪽

 

을 바라보았다.

 

 

 

’.................’

 

 

 

바로 그때, 내 가슴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신랑입장~~!’

 

 

조용한 음악이 홀 내에 잔잔히 깔리기 시작하며, 하객들의 박수소

 

리가 홀을 가득 매우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

 

 

난 앞으로 한걸음 두걸음, 뚜벅 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

 

 

’뚜벅...뚜벅......’

 

 

’짝짝짝.....’

 

 

’뚜벅...뚜벅...’

 

 

’짝짝...’

 

 

’뚜벅...뚜벅...’

 

 

 

 

 

 

귓가에서 아련히 멀어져 가는 박수소리 사이로, 다시한번 사회자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온다.

 

 

’신부입장~~!!’

 

 

난 뒤를 한번 돌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뒤를 보면 감

 

정을 주체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내 앞에 있는 계단을 뚜벅

 

뚜벅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객들의 박수소리가 내 귓가에서

 

점점 멀어져 가면서, 가슴속이 뭔가 뭉클해져 오면서 내 눈에서는

 

지금까지 꾹 참았던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오빠.. 나 이제 오빠한테.... 그냥 아는 오빠 이상의 감정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지난 2년동안 이민혁이라는 사람 만나면서..

예전에 오빠한테 가졌던 감정.. 지금은 그사람한테서 느끼고 있어요..

오빠.. 저 그 사람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테니까... 내일 꼭 오셔서

웃는 얼굴로 절 축복해 주셔야해요... 아셨죠.. 약속이에요 약속.. ’

 

 

 

’약속...’

 

 

그래.. 약속.. 난 그녀와 약속을 지켰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웃고.. 그녀를 아까 웃는 얼굴로 대했으니.. 약속을 지킨 것이

 

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고 하더니.. 그녀도 역시 세상 사

 

람이기는 하구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어떻게 그럴수가.. 난 계

 

단을 술먹은 사람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며 걸어내려오면서,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내가 사랑하는 그

 

녀가.. 저 남자와 함께 행복할수만 있다면.. 그녀가 행복할수만 있다

 

면 ... 그래 난 만족이다..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못준 행복감.. 그에

 

게서 라도 한껏 느끼며.. 남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면 난

 

만족이다.. 결혼식장을 빠져나오자, 아침 햇살이 눈물에 반사되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고 있었다. 아.. 이제.. 이제.. 난 .. 이제 난..

 

이제 난 뭘... 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채 그냥 앞으로 한발자국

 

.. 두발자국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식장을 거의 나가서 도로 있는쪽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계속-

 

너의 결혼식 #29

 

 

 

’오빠~~~~~~~~~~~~’

 

오빠.... 오빠라고.. 설마 그녀가.. 설마 그녀가.. 난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뒤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꿈이었을뿐... 그녀가 아

 

닌 민정이가 내 뒤쪽에서 나를 부르며 결혼식장쪽에서 달려나오고

 

있었다. 민정이는 헥헥 거리면서 뛰어오더니, 내 앞에 다다라서 나

 

를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을 꺼낸다.

 

 

’오빠~~!! 한참 찾았잖아요.. 어제 성미랑 결혼식 끝까지 보고 가시

 

겠다고 약속하셔놓곤..이렇게 그냥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오빠도

 

참.. ’

 

 

그녀는 나에게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을 하더니만,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뭔가를 꺼내 나에게 건낸다. 흰 종이에 둘둘 말려있는

 

조그만것.... 만져보니 반지였다. 그래..아참.. 어제 그녀에게 반지

 

를 안 받았었군.. 이제 우리 사이가 정리되었으니.. 반지도 필요없

 

겠지.. 난 민정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후, 다시 뒤로 돌아 지나

 

가는 택시를 불러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민정이를 뒤로하고 택시에

 

올랐다.

 

 

 

 

 

 

 

 

’아저씨.. 한강이요...’

 

 

 

 

 

 

 

 

 

 

 

내가 이 곳을 언제 와보고 지금 다시 와보는 건가.. 난 항상 내가

 

앉았던 자리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며, 차가운 겨울 바람을 온 몸으

 

로 맞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아.. 전에 그랑 같이 이곳에 와 보았

 

던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군. 그러고 보니.. 그.. 그는 어떻게 되었을

 

까.. 지금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딴 세상으로 떠

 

났을까.. 아마 살고 있다고 해도 허리나 머리가 상해서 불구자가 되

 

었겠지.. 하지만 그런 그의 희생.. 이젠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렸으

 

니.. 이제.. 어떻게 저 세상에서라도 그를 만날까.. 난 언제나처럼,

 

한강변 둑 있는 곳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그래.. 이제 내게 남은건

 

하나도 없다... 그냥 이대로.. 이대로 한강물에 내 몸을 담궈.. 내 모

 

든 희로애락을 물에 씻어내 버리자. 난 웃옷을 벗어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구두를 벗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그 언젠가 본 것 같던.. 그 빛.. 그 빛이 또다시 내 눈을

 

스쳐 지나간다. 난 다시 왼손을 바라보았다. 반지였다.. 그래..반지..

 

난 언젠가 처럼 반지를 빼서 다시 왼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태양빛에

 

비추어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반짝이는 빛 사이로.. 그녀와 내가

 

지냈던 아름다운 순간, 아쉬웠던 순간들이 하나 둘 슬라이드 필림

 

스치듯 오버랩 되며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이 영상의 끝은 항상..

 

언제나 처럼.. 그 약속..

 

 

’ 오빠..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더라도, 우리 사랑 변치 말구.. 이렇게

 

영원히..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영원히... 서로만을 사랑하

 

기로 해요.. 알았죠??후훗... 오빠.. 우리 이 촛불에 우리 사랑을 맹

 

세해요...약속..’

 

 

햇빛이 반지의 한쪽 끝 부분에 반사되어, 마치 촛불인양 고요히 빛

 

을 내며 타오른다.. 그래 약속.. 그런데 그 영원히 사랑하자던 약속..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고 마는

 

구나.. 난 주머니를 뒤적여서, 아까 민정이가 내게 건내준 반지싼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종이를 끌러, 나머지 반지.. 그녀의 반지

 

를 내 반지 위에 가볍게 포개 올렸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조용히 속

 

삭였다.

 

 

’그래 .. 비록 우리 사랑은 이렇게 끝나지만.. 오빤 이 반지 두 개를

 

오빠품에 영원히 간직한 채.. 이 세상을 이만 떠나갈게.. ’

 

 

난 반지를 다시 종이에 싸서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옆에 놓여져 있

 

던 꾸깆꾸깆해진 종이를 다시 한번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

 

 

 

 

햇빛에 반사된 꾸깆한 종이사이로, 가는 검정색 선들이 희미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종이를 바닥에 놓고

 

손으로 밀어서 편 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들었다. 편지였다.. 글

 

씨 여러곳이 물에 젖어 번져있는 편지.... 난 떨리는 눈으로, 조심스

 

럽게 그것을 읽어내려갔다.

 

 

 

 

 

 

’ 영원한 나의 사랑 오빠에게

 

 

오빠.. 사랑하는 나의 오빠.. 오빠가 이 편지를 보실 수 있다는건

아마도 제가 오늘 .. 눈물을 참고.. 오빠를 바라보며 웃었기 때문일

거예요.. 오빠.. 이렇게 제가 오빠를 떠나는거.. 제 본심이 아니란거

아시겠죠.. 시험이 끝나고.. 오빠가 떨어진걸 엄마가 알게되자,

엄마는 바로 결혼을 하라고 저를 독촉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삼촌.. 삼촌이 실의에 빠져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제가 이민혁

이라는 사람과 올해 안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오빠를 이번에는

진짜로 죽여버리겠다고.. 그리고 이말을 오빠에게 하면 그때는

오빠를 바로 파묻어 버리겠다고.. 저에게 나지막히 말했어요....

 

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단지 오빠가 죽는 것을 막기위해..

엄마에게 결혼식 날짜를 독촉하고.. 그리고 이민혁이라는 사람에

게 온갖 애교를 다 떨어가면서.. 다행히 올해가 지나기 전에 결

혼실 날짜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구요.....

 

 

오빠...앞으로는..앞으로는 제가 오빠 곁에 머무를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원치않는 결혼생활 속에서... 많은슬픔을 겪겠지만... 단지...

단지 오빠가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성미는 그렇게 오빠를 그리워 하며 남은 여생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물론..지금부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자신이 안 서지만요...

 

 

오빠... 사랑하는 우리 오빠.. 비록 우리.. 이 세상에서는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서.. 그때는 꼭 사랑을

이루기를 바래요.. 오빠.. 사랑하는 우리오빠.. 저 없다구 슬퍼하거나

실의에 빠져있지 마시구... 꼭 열심히 사셔야 해요.........

 

오빠...이젠 안녕... 그리고 오빠....사랑해요...영원히.....

 

F.L. 성미’

 

 

 

그녀가 쓴 편지지 위에.. 툭..툭.. 소리를 내며 내 눈물이 떨어져 내

 

리기 시작했다. 난.. 난....도대체 난... 난 왼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움켜 쥐며 가슴깊은 곳으로부터 소리쳤다.

 

 

 

’아아아악~~~~~~~~~~~~~~~~~~~~~~~~~~’

 

 

-계속-

 

너의 결혼식 #30

 

 

오랜만에 만난 그녀.. 난 그녀와 함께.. 고향의 호수에

 

찾아왔다.

 

 

 

 

’성미야.. 여기가 오빠가 항상 말하던.. 그 호수야...

 

오빠가.. 기쁠때나 슬플때나.. 무언가 고민이 있을때면..

 

언제나 찾아왔던 호수... 어쩌면 오빠가.. 서울로 이사가고

 

나서 즐겨찾던 한강보다는.. 이 호수가 오빠한테는.. 더욱

 

아련하고.. 더욱 포근하고.. 너두 알잖니.. 그런느낌..

 

고향에 왔다는 느낌이랄까... 오빤 여기서 고향을 느껴..

 

그리고 이 고향에.. 오빠의 마음의 고향에..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성미와 함께.. 단 둘이서 배를 타고 오

 

붓하게 나올수 있다는 사실이.. 오빠는 너무.. 기뻐...’

 

 

지는 해를 머금어 빨갛게 물든 호수 사이로, 나와 그녀를

 

태운 배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가로질러간다.....

 

 

’성미야.. 오빠는 말이지.. 저 지는 빨간해를 보고 있으면

 

말이지.. 예전 아버지 돌아가셨을때 생각이 나.. 그때 아

 

버지 돌아가셨을때.. 혼자 이곳 강에 배타고 나와서... 배

 

위에서 하루 종일 소리내서 엉엉 울었었거든.. 정말로..그

 

때는 정말로.. 세상이 다 끝난것만 같았어.. 그리고 그 후

 

로 계속 우울하게 세상을 살았구... 삶 자체가 고달펐으니

 

까.. 성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배는 천천히 앞으로 나오다가.. 드디어 호수의 중간 정도에서

 

멈춰섰다. 정적.. 주위의 모든것이 멈춰있고.. 숨 소리도

 

나지 않고.. 오직 저물어 가는 빨간해와.. 그 해를 머금은

 

호수의 물만이 우리를 태운 배 둘레를 빠알갛게 둘러싸고 있었다.

 

 

’근데 성미야..성미야.. 오빠는 성미를 만나서 말이지...

 

성미를 만나서.. 진짜로 세상 사는게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이란게 무엇이고.. 행복이라는게 무엇인지 깨달았어...

 

성미를 만난 날부터.. 결혼식날.. 성미와 헤어지던 날까지

 

말이야... 오빤 진짜.. 그때는 이 세상이 전부 오빠것인것만

 

같았어...’

 

 

난 호수를 바라보던 눈길을 그녀에게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한다....

 

’근데 성미야 그거 아니.. 이건 오빠한테는 정말 비밀이야긴데

 

말이야.. 오빠.. 오빠 아버지 돌아가시던날.. 바로 이 자리에

 

서 울면서 말이지... 나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겠

 

다구...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 만들어서.. 그렇게 헤어질때

 

아파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거든.... 그런데 .. 성미를 만나서

 

그 맹세가 깨지기는 했지만 말이야...후훗...’

 

 

어..근데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눈 앞이 갑자기 흐려지는거야..

 

내가 왜.. 내가 사랑하는 그녀랑 이렇게 함께 있는데 내가 왜..

 

난 눈을 소매로 닦으며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 하지만 오빠는 후회하지 않아.. 성미.. 정말로 오빠가 이 한 몸을

 

바쳐서 사랑해도 부족할만큼.. 정말 착하구.. 예뿌구.. 아름다

 

운 여자였으니까 말이야... 하하.. 아니라구.?? 아냐.. 넌 정말 그

 

래.. 오빠 눈에는 이 세상 어떤 여자보다도 성미가 최고야...

 

아.. 근데 성미야.. 아까 오전에.. 너 데리러 너희 집에 갔을때..

 

너희 부모님 표정.... 뭐랄까......’

 

 

 

다시 눈앞이 흐려진다.... 눈을 닦으러 손을 눈쪽으로 옮겼지만..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눈이 또렷해지지 않는다..

 

이런.. 성미에게 이렇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데.. 이런...

 

 

 

난 다시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웃는 얼굴로 다시 그녀를 쓰다듬

 

으며 바라보았다.

 

 

 

 

’성미야........있잖아.......’

 

 

 

’성미야........’

 

 

또 다시 눈앞이 흐려진다....

 

 

’성미야...근데......’

 

 

 

’성미야..........’

 

 

 

’성미야... 너 왜 이렇게 가벼워졌니... 왜...’

 

 

그녀를 담고 있는 하얀상자위로, 나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방울을 이루며 조용히 떨어진다....

 

 

’하하.. 성미야..미안해.. 오빠가 또 약한 모습을 보여

 

버렸내.... 진짜 앞으론.. 앞으론 절대 울지 않을꺼라구..

 

성미 결혼식날 맹세했었는데 말이야.. 진짜루...’

 

 

난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다시 빨갛게 물든 호수 저편의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아련히 보이는 빨간 불빛.. 저 불빛..

 

어디선가 본 불빛... 바로 약속의 불빛...그리고 그 불빛

 

사이로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 그리고 약속..

 

 

’ 오빠..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더라도, 우리 사랑 변치 말구..

이렇게 영원히..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영원히...

서로만을 사랑하기로 해요.. 알았죠??후훗... 오빠.. 우리

이 촛불에 우리 사랑을 맹세해요...약속..’

 

 

난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미야 근데 있잖아.. 너 설마 .. 너가 약속을 어겼다구..

 

오빠한테 미안해 하는건 아니겠지?? 미안해 한다구?? 이런..

 

이런..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넌 약속을 어긴 게 아니야..

 

이렇게 오빠 곁에 너가 있구.. 너 곁에 오빠가 있는데..

 

그게 어떻게 약속을 어긴거야.. 오빤 이렇게 영원히..

 

언제까지나 영원히.. 성미곁에 있을테니까.. 걱정하지마..’

 

 

 

 

 

 

 

’아차..근데 이제 생각났다.. 오빠두 전에 들은 말이었는데

 

이승에서의 1일이.. 저승에서는 1년과도 같데... 그래서

 

하루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다음 생에서는.. 1년 먼저

 

태어난다구 하더라구.......’

 

 

 

 

 

 

’오빠... 다음에 .. 다음생에서.. 오빠 다시 만나면...

 

연하라구 무시하지 않을꺼지...?? 그래봤자 겨우 2년차니까

 

말이야....하하..그때는 내가 너를 누나라고 불러야 되는건가??’

 

 

 

하하.. 그녀두 웃고.. 나도 웃었다.. 역시 난 그녀와 함께

 

있을 때가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가장 즐겁다.....

 

 

’성미야.. 근데 오빠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성미를 품에 안고

 

있어서 너무 편안해서 그러나.. 너무 잠이 온다... ’

 

 

 

 

 

’근데 성미야.. 이 저물어 가는 해를 머금고 있는.. 이 호수..

 

너무 포근해 보이지 않니... 뭐라구?? 너두 지금 그 위에

 

눕고 싶다구..? 그래.. 그럼 우리 이제 그만 이야기 하구..

 

호수에 누워 잠을 청하도록 하자...’

 

 

 

 

 

 

 

약속.. 이 세상에선 지켜지지 못한 약속.

 

하지만 약속.. 다음 세상에선... 다음 세상에선 꼭 지켜질 약속.....

 

 

 

안녕 성미야.... 안녕... 내 사랑........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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