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반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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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02-04-05 ㅣ No.238

우리는 보았습니다.
아침 일찍 꿈을 털어내고 일어나
어두운 바람 속을 한참 달리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뱃가죽이 들러붙도록 극심한 고뇌와
무력감에 시달린 후에야 알았습니다.
부끄러움과 슬픔, 두려움과 자책 속에서
몇 주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과거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우리의 삶과 세상 한가운데를 지나
예수의 죽음의 신비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 죽음이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긴 하지만,
죽음에 가까이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달려가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 방향으로든 저 방향으로든,
선택받았다는 사실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거져 주셨습니다.
보기만 하면 됩니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수없이 여러 번 성서는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죽음보다 강하시다고.
수없이 여러 번 그들은 성서를 읽었고, 우리도 읽었습니다.
그분이 직접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수없이 살아 계실 때 보여주신 것은 사라지고 무의미해졌습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채가 눈부셨습니다.
그는 확인하였습니다. 새 날이 밝았음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였습니다.
떠오르는 햇살에 투명하게 비치는 물방울처럼,
적군이 물러간 뒤 누리는 자유처럼,
우리를 온전하게 내주었을 때 쏟아지는 은혜처럼,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어떤 수의조각도 그분을 잡고 있지 못했고,
어떤 끈도 그분을 묶어두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죽음과 싸워 승리하신 것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의 삶은 그분의 죽음에 촉촉히 젖어 들어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불길로 타오릅니다.
아침 일찍 꿈을 털어내고 일어나 어두운 바람 속을 헤치며
달려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새로운 해는 떠오릅니다.
한 주간, 이제는 끝이 없을 것 같은 한 주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 쟈끄 뒤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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