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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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범 [john27] 쪽지 캡슐

1999-10-14 ㅣ No.663

서교동..본당서..저희..면목동에..올려준글인데...

 

함..생각해볼 만한..글이여서..여기다..올립니다..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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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죽었어. 성탄절 전날 밤, 자기 방에서.

 

  아주 가난한, 혼자 사는 남자였지. 행색으로 보아

 

  대학생인 듯했고, 생김새로 보아 스무 살쯤 되어

 

  보였어.

 

  그런데 그가 죽었어. 성탄절 전날 밤, 자기 방에서,

 

  언제부터 그가 자기 방에 살았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는 동전을 넣어야 하는 난방이 되는 싸구려 사글셋방

 

  을 얻어서 살았는데. 거의 갇혀 지내다시피 그 방에서

 

  살았어. 가족이 없었고, 그 역시 일부러 주의 사람들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가 죽었어. 성탄절 전날 밤, 아무도 모르게

 

  자기 방에서.

 

  왜 죽었는지는 물론 아무도 알 수 없었지. 하지만

 

  그가 죽었으니까 그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경찰이 불렀겠고, 정해진 절차대로 경찰은 부검의를

 

  불렀겠지. 누가 봐도 명백한 자살이었지만. 그렇다라도

 

  전문가의 사망 확인과 사인확인이 필요했겠지.

 

  달려운 부검의는 그다지 많은 시간을 소비하진 않았어.

 

  그의 눈꺼풀을 한번 열어 보고 그의 목 언저리를 한번

 

  만져 보고, 더 들춰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욕실로 가

 

  손을 씻고 말았어. 누가 보더라도 이미 숨이 끊긴

 

  시신이었고, 누가 보더라도 목매 자살한 시신이었으니까.

 

  손을 씻은 부검의는 소견서를 쓰기 위해 죽은 이의

 

  책상에 앉았어.

 

  그리고 발견했지. 유언장인지 일기장인지 모를 종이더미가

 

  그의 책상 한 귀퉁이에 널려 있는 것을.

 

  별생각 없이 부검의는 그 일기장인지 유언장인지를

 

  읽었어.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지. 스스로 목을 매

 

  죽긴 죽었으되 그 시신이 극심한 외로움이나 배고픔

 

  따위로 죽진 않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에겐 사람하는 여인이 있었어.

 

  사랑하는 그 여인 때문에, 그 여인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그는 죽은 것이었어.

 

  죽은 이는 그 여인을 두고 ’천사’ 라는 표현을 썼어.

 

  그 여자의 용모를 ’천사 같은 아름다움’ 이라고 묘사하고

 

  있었고.

 

  ’그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 감히 말을 걸어 보지도 못했다’

 

  고 써있어.

 

  그랬어. 혼자만의 사랑인 듯했어. 사랑 고백은 커녕

 

  제대로 된 한 번의 만남, 한번의 대화도 못 가진듯했어.

 

  어쩌면 몇 차례 어두운 복도를 스쳐 지나갔는지 모르지.

 

  어쩌면 몇 차례 어두운 복도를 스쳐 지나갔는지 모르지.

 

  어쩌면 몇 차례 좁은 계단에서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서로를 외면하며 스쳐 지나갔는지 몰라.

 

  그런 여지인데, 그 여자가 알 리 없었겠지.

 

  그 남자가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아마 그여자는

 

  그 남자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는지 몰라.

 

  다름 아닌 옆방에 사는 여자였거든.

 

  하지만 그 여자, 옆방에 사는 그여자.

 

  자기처럼 혼자 사는 것이 분명하고, 자기처럼 오랜 기간

 

  싸구려 사글셋방에 투숙한 그 여자.

 

  마주칠 때마다 한 번도 눈을 주지 않은 그 여자.

 

  하지만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그 여자.

 

  이 막막한 세상, 이 막막한 세월을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잠들고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숨쉬며 자기처럼

 

  외로움에 젖어 있을 여자.

 

  하지만 천사처럼 아름다운 여자.

 

  보이지 않는 저 벽 너머의 여자.

 

  벽에 귀를 대지 않아도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자.

 

  보이지 않는 저 벽 너머로 들려 오는 그녀의 노랫소리,

 

  발자국 소리, 하품소리.

 

  도무지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여자.

 

  그 추운 겨울, 그 외로운 시간을 남자가 묵묵히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저 보이지 않는 여자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저 가로막힌 벽처럼 그녀 사이에 놓인 사랑의 벽이 언젠가는

 

  허물어질지 모른다는 믿음 때문인 듯했어.

 

  그런데 그가 죽었어.

 

  조금도 죽을 생각이 없었던 그날, 저 벽 너머에서 평소와는

 

  다른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 없어.

 

  마침 성탄절이 코앞에 다가왔고, 자신을 괴롭히는 극렬한

 

  추위와 배고픔, 처절한 외로움에 남자가 시달리고 있을 때

 

  보이지 않는 저벽 너머, 보이지 않는 여자에게서 무슨

 

  소리가 들려 왔어.  

 

  침대 삐걱이는 소리, 무슨 한숨을 토해 내는 소리,

 

  아니 신음을 토해 내는 소리, 무슨 관능의 헐떡임과

 

  애욕에 찬 비명소리, 그리고 저 저주스러운 침대 삐걱거림 소리.

 

  끊임없이 들려 오는 애욕에 찬 비명소리... 자신을 비웃는 듯한

 

  저 욕육의 추잡한 소리.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게 하는 저

 

  악마들의 몸부림 소리.

 

  그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일기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 소리는 들려 오고 있었어.

 

  그 천사가 가져다 준 견딜 수 없는 배신감과 역겨움,

 

  그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심, 그 좌절의 고통과 절망감이

 

  그를 죽게 했어.

 

  이젠 더 살아야 할 이유나 목표가 없어진 거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여자와 더 이상 벽 하나를

 

  두고는 살 수는 없었고, 이젠 더 시상 몸담고 싶지 않은

 

  추악한 세상과 영원히 결별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악마들의 신음과

 

  헐떡거림을 뒤로 하고 목에 밧줄을 걸어 버린 거지. 다가오는

 

  성탄절 전날 밤, 아무도 모르게 자기 방에서.

 

  그 유언장과 같은 일기를 다 읽은 부검의는 화가 치밀었어.

 

  화가 치밀 이유도 없는데, 여자에게 화가 치민 거지.

 

  저 벽 너머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어.

 

  한바탕 뜨거운 육욕의 파티를 끝낸후 노곤히 두 벌거숭이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는지 모르지.

 

  부검의는 갑자기 여자를 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 잡혔어.

 

  도대체 천사의 탈을 쓴 여자가 어떻게 생긴 얼굴인지,

 

  또 그 여자의 품에 안겨 잠들었을 또 한 명의 공모자는

 

  어떻게 생긴 작자인지.

 

  십중팔구 알몸인 채 이불을 쓰고 허둥댈 그 두 추잡한

 

  인간들을 똑똑히 보아 두고 싶었고, 한 불쌍한 영혼을

 

  그렇듯 비참하게 날려 버린 그 여자에게 한 차례 증오의

 

  눈길을 보내고도 싶었어.

 

  부검의는 주인 여자와 함께 그 여자의 방으로 갔어.

 

  몇 차례 그 여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여자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어. 괄괄한 성미의 주인 여자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와 그여자의 방문을 억지로 열었지.

 

  그리고 부검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놀라 자빠지고

 

  말았어.

 

  한 천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어.

 

  한 천사의 가냘픈 몸이 고통으로 뒤틀려 죽어 있었어.

 

  천사의 침대에는 약병이 놓여 있었고, 천사의 책상위에도

 

  그 남자의 책상에처럼 한 장의 유언장이 널려 있었어.

 

  그 신음소리, 그 비명소리, 그 헐떡임 소리는 음독으로 인한

 

  고통의 몸부림 소리였어.

 

  한 외로운 영혼이 다가오는 성탄절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버린 거야. 저 벽 너머에 자기를 닮은 영혼 하나가 자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저 벽 너머에 자기를 사랑하는 영혼 하나가 자기의 사랑을

 

  받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걸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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