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펀글] 세 그루의 나무

인쇄

안병해 [charmbaby] 쪽지 캡슐

2001-10-10 ㅣ No.1685

** 세 그루의 나무 **

 

아주 옛날, 높은 산 위에 어린 나무 세 그루가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꿈을 갖고 있었는데,

장차 큰 나무가 되어서 이루게 될 일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첫째 나무는 하늘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보석들을 보호해주는 상자가 되고 싶어.

 내가 값진 보석으로 채워지거나 황금을 담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상자가 될 테야."

 

둘째 나무는 넓은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작은 개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아주 커다란 배가 될 거야.

 그래서 넓은 바다를 떠다니며 위대한 왕들을 태우고 다닐 거야.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배가 될 테야."

 

그러나 셋째 나무는 좀 달랐습니다.

셋째 나무는 저 계곡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 마을에서 여러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산을 결코 떠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기 위해 일을 멈추었을 때,

 그들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아주 큰 나무로 자라고 싶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될 테야."

 

세월이 흘렀습니다. 비가 내렸고, 햇볕이 빛났습니다.

어느새 이 어린 나무들은 큰 나무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세 명의 벌목꾼이 산에 올라왔습니다.

 

첫 번째 벌목꾼은 첫째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 나무는 매우 아름답군. 완벽해."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끼로 찍어 첫째 나무를 쓰러뜨렸습니다.

첫째 나무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나는 아주아주 아름다운 상자가 되어서 아름다운 보석을 지키게 될 거야.’

 

두 번째 벌목꾼이 둘째 나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 나무는 생기가 넘치는군. 바로 내가 원하던 나무야."

그는 순식간에 도끼로 둘째 나무를 쓰러뜨렸습니다.

둘째 나무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나는 드넓은 바다를 떠다니게 될 거야.

 그리고 왕들에게 어울리는 커다란 배가 되겠지.’

 

셋째 나무는 벌목꾼이 그를 쳐다보았을 때,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나무가 되더라도 상관없어.’

순식간에 셋째 나무도 도끼에 쓰러졌습니다.

 

첫째 나무는 벌목꾼이 그를 목수의 집으로 옮겼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그러나 목수는 상자를 만들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바빴습니다.

거칠게 박힌 손으로 그는 첫째 나무를 동물의 먹이통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전에는 그렇게 아름답던 나무가 이제는 더 이상 보석이나 황금을 담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농가에서 굶주린 가축들의 먹이용 풀을 채우거나 톱밥을 담아두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둘째 나무는 벌목꾼이 그를 배 만드는 목수에게 주었을 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범선과 같은 큰 배를 주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둘째 나무는 많은 망치질과 톱질을 당한 뒤

평범하고 단순한 고깃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큰 바다나 넓은 강물에 띄우기에는 너무 작고 약했으므로

조그만 호수로 옮겨져 매일매일 비린내나는 죽은 생선들을 수없이 날라야 했습니다.

 

셋째 나무는 벌목꾼이 그를 굵직한 대들보로 만들어

마당에 쌓아놓았을 때 너무나 슬펐습니다.

"어찌 된 일인가? 내가 원했던 것은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산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는데..."

 

그 후로 낮과 밤이 수없이 지났습니다.

이 세 그루의 나무는 자신의 꿈을 거의 잊어버린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어떤 젊은 부인이 먹이통에 갓 태어난 아기를 뉘이자

황금 별빛이 첫째 나무를 비췄습니다. 곁에 있던 남편이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아기에게 요람을 만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별빛이 윤기 나는 먹이통 위를 조용히 비추었고,

아기의 어머니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구유는 정말 아름답군요."

그 순간, 첫째 나무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저녁, 피곤에 지친 나그네와 그의 동료들이 낡은 고깃배를 가득 채웠습니다.

배는 호수 위를 순조롭게 떠갔고 나그네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번개가 치고 폭풍이 일었습니다. 둘째 나무는 두려웠습니다.

비바람 속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안전하게 싣고 갈 힘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나그네가 깨어 일어나 팔을 벌리고 말했습니다.

"잠잠하라!"

그러자 폭풍은 일어났을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잠잠해졌습니다.

둘째 나무는 자기가 하늘과 땅의 임금을 태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금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셋째 나무는 그 동안 잊혀져 버려진 채 쌓여있던 나뭇더미로부터

자신이 뽑혀나갈 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사나운 군중 사이로 옮겨져 병사들이 어떤 사람의 손을 자기 위에 못박을 때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 태양이 솟아오르고 온 땅이 큰 기쁨으로 진동했을 때,

셋째 나무는 하느님의 사람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첫째 나무에게 아름다움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둘째 나무에게 강함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셋째 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로 남아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5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