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이원론(dualism)이란? [교리용어_이원론] [교리용어_일신교] [교리용어_범신론] [교리용어_마니교][교리용어_영지주의][교리용어_이신론]

인쇄

작성중입니다 [58.232.2.*]

2012-10-16 ㅣ No.1275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이 글은, 아래의 부록에 있는 글 중에서처럼, 가톨릭 교회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가톨릭 보편 교회가 직면하였던, 종류가 다른, 여러 "이원론(dualism)"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마련된 글입니다. 

1-1.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5항 전문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정의하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마니교(摩尼敎)의 주장인, 마니교적 이원론(Manichaeism), 그리고 이 이원론에 속하는 여러 인간적 사상들을 말함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19.HTM
 
285 Since the beginning the Christian faith has been challenged by responses to the question of origins that differ from its own. Ancient religions and cultures produced many myths concerning origins. Some philosophers have said that everything is God, that the world is God, or that the development of the world is the development of God (Pantheism). Others have said that the world is a necessary emanation arising from God and returning to him. Still others have affirmed the existence of two eternal principles, Good and Evil, Light and Darkness, locked, in permanent conflict (Dualism, Manichaeism). According to some of these conceptions, the world (at least the physical world) is evil, the product of a fall, and is thus to be rejected or left behind (Gnosticism). Some admit that the world was made by God, but as by a watch-maker who, once he has made a watch, abandons it to itself (Deism). Finally, others reject any transcendent origin for the world, but see it as merely the interplay of matter that has always existed (Materialism). All these attempts bear witness to the permanence and universality of the question of origins. This inquiry is distinctively human.

285. 그 시작 이후로 그리스도교 믿음은, 자신의 것과는 다른, 기원(origins)들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들에 의하여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고대의 종교들과 문화들은 기원들에 관련하여 수많은 신화(myths)들을 산출하였습니다. 일부 철학자들은 모든 것은 하느님이다, 세상이 하느님이다, 혹은 세상의 발전은 하느님의 발전이라고 이미 말하였습니다[범신론(汎神論, Pantheism)]. 다른 이들은 세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일어나는 그리고 당신께로 되돌아가는 어떤 필연적 발산물(a necessary emanation)이라고 이미 말하였습니다. 게다가 다른 이들은, 항구적인 싸움(permanent conflict)에, 가두어 넣어진, 두 개의 영원불변의 원리(eternal principles)들인, 선(Good)과 악(Evil), 빛(Light)과 어두움(Darkness)의 존재를 이미 확언하였습니다[이원론(二元論, Dualism), 마니교적 이원론(Manichaeism)] 이들 개념들 중의 일부에 따르면, 세상(적어도 형이하학적 세상)은, 어떤 타락(a fall)의 산물인, 악(evil)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거부되어야만 하거나 혹은 뒤에 남겨져야만 합니다[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어떤 자들은 세상이 하느님에 의하여, 그러나, 일단 그가 시계(a watch)를 만들고 나서, 그것을 그 자체에 내맡기는 자인 한 명의 시계 제조자에 의하여서처럼, 만들어졌다고 인정합니다[이신론(理神論, Deism)]. 끝으로, 다른 이들은 세상에 대한 어느 초월적 기원을 거부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단지, 항상 존재해 온, 물질의 상호작용으로서만 이해합니다[유물주의(唯物主義, Materialism)]. 이러한 시도들 모두는 기원들에 대한 의문의 항구성(permanence)과 보편성(universality)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특징적으로(distinctively) 인간에 기인합니다(human). (엮은이 번역 끝).

1-2.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5항 전문입니다. 위의 제1-1항에 있는 필자의 졸번역과 비교/검토하면서 읽도록 하십시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85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은 기원에 대한 교회의 대답과는 다른 많은 대답에 직면하였다. 예컨대, 고대의 종교와 문화에는 기원을 다룬 많은 신화가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만물이 신이고, 세계는 신이라고, 또는 세계의 변화는 신의 변화라고 하였다(汎神論). 다른 철학자들은 세계가 신의 필연적인 유출이며, 세계는 그 근원에서 흘러나왔다가 다시 그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영원히 투쟁하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의 두 근원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二元論, 마니교). 이러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세계는(적어도 물질적인 세계는) 타락의 산물이므로 악하며, 따라서 이는 버리거나 초월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靈智主義). 다른 이들은 세계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은 세계를 마치 시계처럼 움직이도록 창조했고, 일단 창조한 뒤에는 나름대로 움직이도록 방치한다고 한다(理神論).  그리고 끝으로 어떤 이들은 세계의 어떠한 초월적 기원도 인정하지 않으며, 이 세계에서 항상 존재하는 단순한 물질의 작용만을 볼 뿐이다(唯物論). 이러한 시도들은 기원에 관한 질문이 언제 어디서나 제기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러한 탐구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다.

2.
2-1.
다른 한편으로, 가만히 살펴보면, 세속의 여기 저기에서 "이원론(dualism)"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더러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만, 위의 제1-1항에서 언급되고 있는 신학적 의미(theological meaning)아닌 다른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다음의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질문 2-1: 이 글을 지금 읽고 계시는 그대/당신은 하느님입니까?

질문 2-1에 대한 답변: 세속에서도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이 질문은 질문으로서의 어떤 타당성은 있다는 생각이며, 그리고 지성이 있는,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피조물이라면, 심지어 무신론자까지도, 당연히 "아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피조물을 결코 하느님과 동일해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닐까요?

이와 같이, "나(I)""너(you)"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동일하지(identical) 않음을 인지할 때에, 사람을 포함하여, 지성이 있는 피조물은, 피아를 구분/구별(distinction)하는 표현을 행동, 말 혹은 글로써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피조물들 사이에서도, 예를 들어, 동일한 부모를 가지지 않은 두 사람은, 설사 동일한 이름을 가졌으며 그리고 동일한 장소에서 태어났고 그리고 동일한 모습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생물학적으로 결코 동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생물학적으로 결코 동일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 2-2: 바로 "이러한", 동일하지 않은 것을 동일하지 않다고 표현하는, 논리적/이성적 구분/구별을 두고서, "이원론(dualism)"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성을 지닌 이성적으로 타당한 부름일까요?

질문 2-2에 대한 답변: 대화 중에 상대방을 공격하고자 시도하는 어떤 감정적 휘둘림으로서는 타당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이러한 구분/구별은 인지되는 분명한 차이점일 따름이기에, 보편성을 지닌 이성적으로 타당한 부름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3. 위의 제2-1항제2-2항의 질문들을 조금 더 확대하면, 어떤 성질(property)을 만족하는가,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가에 의한 구분/구별을 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수들 중에서 짝수들과 홀수들. 여기서 "짝수"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숫자 2의 배수(multiples of the number 2)들"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연수들을, "숫자 2의 배수들"이라는 성질에 의하여, 짝수들과 홀수들로 구분하는 것을 두고서, "이원론(dualism)"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시쳇말로, 말장난 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어떤 주어진 어떤 성질(a property)에 근거하여, "참(true)"인 명제(statement) 혹은 "거짓(false)"인 명제라는 논리적 구분 자체를 두고서, 진위 여부 자체를 이성적으로 논하지 말자는 의도로 관심의 대상에 대한 고찰 그 자체를 거부하기 위하여, "이원론(dualism)"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시자 주 2-3-1: 그런데, 이 제2-3항의 경우가 위에서 언급된 다른 경우들과 명확하게 다른 점은 다음에 있습니다. 즉, 짝수는 언제든지 숫자 1을 더해줌으로써 홀수가 될 수 있고, 또 홀수도 언제든지 숫자 1을 더해줌으로써 짝수가 될 수 있음에 있습니다. 즉, 짝수에서 홀수로의 변화(chagement)/움직임(movement) 그리고 홀수에서 짝수로의 변화가 가능함에 있습니다.

즉, 어떤 움직임(a movement)의 말단들(terminals)로서 대상들이 존재하는 경우에, 이들 양 말단들이라는 대상들을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구분하여 표현하는 것을 두고서, "이원론(dualism)"이라고까지 싸잡아 부르는 것은 상당히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2-3-2: 그리고 자연수들을 짝수들과 홀수들로 구분하는 것은, 이들을, 예를 들어, 자연수들을, 짝수들은 오른편에 그리고 홀수들은 왼편에 등으로, 따로 떼어내어 분리하는 것을 항상 뜻하지 않습니다. 즉,

대상들을 현실태적으로 분리시키는(actually separate) 것은
논리적으로 구분하는(logically distinct) 것이지만,
그러나 그 역(converse)은 항상 성립되지 않는다.

3.
이번 항에서는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역사 안에서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1.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momotheism(일신교)"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일신교(monotheism)입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10499a.htm

(발췌 시작)

Monotheism

일신교

...

Among the early heresies, some of the most important and most directly opposed to Monotheism arose out of the attempt to account for the origin of evil. Good they ascribed to one divine principle, evil to another. (See GNOSTICISM; MANICHÆISM; MARCIONITES.) These dualistic errors gave occasion for a vigorous defence of Monotheism by such writers as St. Irenæus, Tertullian, St. Augustine, etc. (see Bardenhewer-Shahan, "Patrology", St. Louis, 1908).

...

초기의 이단(heresies)들 중에서, 일신교(Monotheism)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반대한 이단들 중의 일부는 악의 기원(the origin of evil)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하는 시도로부터 유래하였습니다. 그들은 선(good)을 한 개의 거룩한 원리(one divine principle) 귀속시켰으며 그리고 악을 또다른 한 개의 거룩한 원리에 귀속시겼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 마니교(MANICHÆISM); 마르치온주의자들(MARCIONITES)을 보라]. 이러한 이원론적 오류(dualistic errors)들, 성 이레네오(St. Irenaeus, 202년경에 죽음), 테르툴리아노(Tertullian, 160년경 - 225년경),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 등과 같은 저술가들에 의하여. 일신교(Monotheism)에 대한 강력한 옹호(defence)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Bardenhewer-Shahan, "Patrology", St. Louis, 1908 을 보라].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2.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dualism(이원론)"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05169a.htm

(발췌 시작)

Dualism

이원론

...

Christianity rejected all forms of a dual origin of the world which erected matter, or evil, or any other principle into a second eternal being coexistent with God, and it taught the monistic origin of the universe from one, infinite, self-existing spiritual Being who freely created all things. The unfamiliar conception of free creation, however, met with considerable opposition in the schools of philosophy and was abandoned by several of the earlier heresies. The neo-Platonists sought to lessen the difficulty by emanastic forms of pantheism, and also by inserting intermediate beings between God and the world. But the former method implied a materialistic conception of God, while the latter only postponed the difficulty. From the thirteenth century, through the influence of Albertus Magnus and still more of St. Thomas Aquinas, the philosophy of Aristotle, though subjected to some important modifications, became the accredited philosophy of the Church. The dualistic hypothesis of an eternal world existing side by side with God was of course rejected. But the conception of spiritual beings as opposed to matter received fuller definition and developmen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human soul and the body which it animates was made clearer and their separability emphasized; but the ultra-dualism of Plato was avoided by insisting on the intimate union of soul and body to constitute one substantial being under the conception of form and matter.

...

그리스도교는, 물질(matter), 혹은 악(evil), 혹은 임의의 다른 원리(any other principle)를 하느님과 함께 존재하는(coexstent) 어떤 두 번째 영원한 있음(a second eternal being)으로 승격시키는(erect), 세상(the world)에 대한 어떤 이원적 기원(a dual origin)의 형태들 모두를 거절하였으며(rejected),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자유롭게 모든 사물들을 창조하셨던, 한 분이시고(one), 무한하신(infinite), 스스로 존재하시는(self-existent) 영적 거룩한 있음(spiritual Being)으로부터 우주(the universe)에 대한 일원적 기원(monistic origin)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창조(free creation)라는 친숙하지 않은 개념은 철학의 학파들로부터 상당한 반대를 경험하였으며 그리하여 초기의 이단(heresies)들 몇몇에 의하여 포기되었습니다. 신플라톤주의자(neo-Platonists)들은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의 발산적 형태(emanastic forms)들에 의하여, 그리고 또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 매개적 있음(an intermediate beings)들을 삽입함으로써, 이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하느님에 대한 어떤 유물론적 기원(a materialistic conception)을 뜻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후자는 이 어려움을 오로지 미루었을(postponed)뿐이었습니다. 13세기부터, Albertus Magnus의 영향과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더 많은 영향을 통하여, 비록 다소의 중요한 수정들을 겪게되나, 아리스토텔레스(Atistotle)의 철학은 인정받는 교회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나란히 존재하는 어떤 영원한 세상이라는 이원적 가정(the dualistic hypothesis)은 당연히 거절되었습니다(rejected). 그러나 물질(matter, 질료)에 반대되는 영적 있음(spiritual beings)들의 기원(conception)은 더 넉넉한 정의(definition)와 발전(development)을 받아들였습니다. 인간의 영혼(human soul)과, 이 영혼이 살아있게 하는(animates), 몸(body) 사이에 있어서의 구분은 더 분명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들의 분리가능성(separability)은 강조되었으나, 그러나 플라톤(Plato)ultra-dualism(초이원론)은, 형상(form)과 질료(matter)라는 개념 아래에서 한 개의 본체적 있음을 구성하는 영혼과 몸의 친밀한 결합에 대하여 강조함으로써, 회피하게 되었습니다.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pantheism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5376

dualism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3236

monotheism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4947

monism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4939

monistic evolution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4940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이원론자(dualists)들이 아니다:
http://www.aquinasonline.com/Topics/soul.html
http://www.aquinasonline.com/Questions/dualism.html




작성 중입니다.


====================

<< 부 록 >>

어떤 반론의 글:

소순태님의 댓글을 죽읽고 나름 한말씀드립니다.

카톨릭재단에서 행하는 사업이 아니면 모두 세속이고,
가톨릭주관으로 하는 일은 성역입니까?

대학에서의 전공음악을 모두 세속이라 하는 것은 좀 심한표현같습니다.

그리고, 성속의 이원론은 이미 교회가 이단의 원천으로 인정하고
극복되었읍니다.  초기 기독교때부터 이원론적사고에서 이단과 그 아류들이 파생되었고, 항상 교회는 그 이원론적 사고와 싸워왔읍니다.

학문을 폄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 존중되어야지 어떻게 세속에서 공부한 사람은 전례를 모른다, 교리를 모른다고 할 수 있읍니까?

저두 30대에 들어서야 교회서적을 보기 시작했지만,
20대때 서양사학를 공부하는 친구들이 저보다 훨씬 교리나
공의회의 결정등 교회사전반에 걸쳐 정확히 많이 알고 있었고,
그 문제점과 장점을 파악하고 있었읍니다.

성 토마스아퀴나스의 유명한 말씀이 있읍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과 학식이 있는 사람중
학식이 있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그에게서는  빛을 찾을 수 있다고....

-----------

게시자 주: 이하는, 위의 반론의 글 아래에서 진행된 한줄답변 대화입니다.


[대학에서의 전공음악을 모두 세속이라 하는 것은 좀 심한표현같습니다.]

<----- 전혀 심한 표현이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세속의 음대 어느 전공 분야에서 "성변화"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교리를 가르칩니까?    
 
[카톨릭재단에서 행하는 사업이 아니면 모두 세속이고, 가톨릭주관으로 하는 일은 성역입니까?]

<----- 제가 언제 이런 주장을 하였던지요??? 이 주장은 자매님 고유의 생각이겠지요...      
 
[성속의 이원론은 이미 교회가 이단의 원천으로 인정하고 극복되었읍니다.  초기 기독교때부터 이원론적사고에서 이단과 그 아류들이 파생되었고, 항상 교회는 그 이원론적 사고와 싸워왔읍니다.]

<----- 언제 제가 여기에 대하여 언급하였던가요??? 왜곡도 정도껏 하십시오.   
 
[넵^^ 저두 서양사학과에서 성변화에 대해 교리에서 배우는 것보다 자세히 배웠읍니다.]

<-----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가르치는 "성변화"에 대한 내용이 아닌 것은, 사실은, 아닌 것입니다.    
 
[소순태님이 주장하는 세속의 음악이라는 표현이 이원론적 사고를 들어내고 있는겁니다.]

<----- 자매님의 억지 주장이죠... 성과 속이 어디서 만납니까?    
 
[무슨 말씀인지 ???]

<----- 아니, 성과 속이 어디서 만나는지도 모르시는 분이시군요... 놀랍습니다.   

[그럼 님이 말하는 세속음악은 뭡니까?]
 
<-----  제가 말하는, 세속 음악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에 합당하지 않는, 전례 용도 외적 음악 모두를 말합니다. 과거에 일부 교황님들께서는, 영어로 표현하면, "profane music"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순태님이 혼자 펴는 논리를 제가 어떻게 이해할수 있겠읍니까? 납득을 시키려면 본인의 주장을 명백히 밝혀주셔야지요... 본인이 주장하는 세속음악이라는 게 뭡니까?]
 
<----- 혼자 펴는 논리??? 아닌데요... 위에 분명하게 말씀드렸는데요... "성음악(sacred music)"이 아닌 것은 모두 "세속 음악"입니다. 또 "profane music"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렸다는 생각입니다.    
 
[성 토마스아퀴나스의 유명한 말씀이 있읍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과 학식이 있는 사람중 학식이 있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그에게서는 빛을 찾을 수 있다고....]

<-----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말을 하였다는 것은 제 기억에 없습니다만, 하여튼,] 기왕에 이런 인용을 하셨으니, 그 출처를 또한 밝혀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신학대전을 한번 보시죠^^ 거기서 보았으니깐요]

<-----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그래야, 그 인용이 지금의 대화에 어느 정도 적절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께서 성속을 구별하고 계시잖아요? 그것이 바로 이원론적 사고입니다. 많은 음악가, 철학자, 과학자, 모두 진리를 탐구하고 미를 추구하던 분들입니다. 비록 교회에서 활동하지 않았어도 오히려 교회가 그들의 학식을 쓰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토미즘도 그렇고요... 성 토마스아퀴나스가 그리스철학은 이방문화라고 버렸는줄 아십니까?]  

<----- 이건 또 무슨 소립니까??? 이런 말씀을 하시면 자매님의 주장이 무슨 설득력을 더 가집니까? 다음의 주소에 한 번 접속해 보십시오:

http://club.catholic.or.kr/tourofsumma    
 
[단 한권의 책밖에 읽지 않은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좁은 본당의 울타리속에서 전수되는 것만 받으려 하고 다른 것은 모두 버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 누구 들어라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본인께서 성속을 구별하고 계시잖아요? 그것이 바로 이원론적 사고입니다.]

<----- 성과 속이 어디서 만나는지도 모르는 분이, 어디서 들은 "이원론" 이라는 표현을 하시는데,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입니다.    
 
[늦은 밤 수고가 많으세요^^ 제가 신학대전 몇권에 나왔는지까지 확인할수 없고, 주위에 토미즘전공하시는 신학생이나 신부님계시면, 물어보세요,.... 거짓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전 이만 자러갑니다.]

<----- 교만이 딴 것일까요? 신학 대전, 어디에 있다를 밝히지도 못하면서도, 신학 대전을 왜 들먹입니까?

성과 속이 어디서 만나는지도 모르는 분이...

그런데... 무엇을 두고 "이원론"이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고 말씀하시는지요? "이단사" 말씀하시는데, 성 이레네오의 저서 말씀하십니까?  
 
[어디서 들은 이원론이 아니라, 제가 경험해보니 이원론적 사고가 문제가 많더군요~ 연구소에 계시는 신부님과 얘기하다보니, 신부님이 이단사에 관한 자료를 주셨고, 그래서 검토했고, 그래서 알게 된 겁니다. 가금 저도 평신도들의 강의를 듣기도 하는데 검증안된 강의속에 이원론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 자매님의 검토 결과 알게 되었다는 "이원론"입니까? 아니면 가톨릭 보편 교회가 말하는 "이원론"입니까??? 그리고 어느 신부님이신지, 저에게 쪽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서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면서 엉뚱한 소리로 신자들을 잘못인도할수 있다는....]

<---- 지도자???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런 용어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뇨...제가 이단사자료 정리해서 도와드린 적 있읍니다. 그때 이단의 뿌리가 이원론에서 비롯된 것 알았읍니다.]    
 
<----- 글쎄 거기서 말하는 "이원론"의 의미를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혹시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악(evil)" 정의(definition)를 아시면, 이것을 대신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어느 신부님까지 왜 말씀드려야 하나요? 자꾸 저에 관해 노출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사양합니다.^^ 그럼, 늦은 밤 편히 쉬시고, 좀 생각이 달라 논쟁이 심했지만, 잊고 주무세요^^ 담에 또 뵐께요]

<-----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엉뚱한 표현들을 먼저 말씀하셨으니, 말씀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원론" 운운하면서, 어느 신부님 이라는 표현을 하면, 자매님의 어설픈 주장이 무슨 설득력을 가집니까?    
 
[이원론이 (누가 말하는 이원론이 아니고), 영육, 성과 속을 뚜렷이 구별하는 사고를 말합니다. 심지어는 이원론적 사고에서는 성자의 수난까지 부인하게 되지요]

<----- 그것 참...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악"의 정의도 모르는 분이 "이원론"을 들먹인다??? 말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성과 속을 뚜렷이 구별하는 사고를 말합니다.]

<----- 결국에, 자매님의 생각이군요...     
 
[말은 그럴듯하죠.. 하느님의 전능함은 결코 고통을 느낄 수 없다고... 고통을 느끼듯 보인것은 성자의 육체일 뿐이나, 우리눈에 그렇게 보일뿐 그분의 영은 육과 분리되어 고통을 느낄 수 업다는 괴변에 이르기까지.... 이원론의 발전양상은 다양합니다.]

<----- 당연히 다양하죠... 그런데 이런 말씀 늘어 놓기 전에, 자매님께서 말하는 "이원론"의 정의(definition)부터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야죠.    
 
[소순태님은 이원론에도 누구의 이원론, 누구의 이원론, 학문적 접근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전 신학의 전공자가 아닙니다. 관심갖고 살펴보고 있을 뿐이죠....]

<----- 아니, "이원론"의 정의(definition)"도 모르면서 위에서 아는 척 하였던 것입니까???    
 
[전 논문을 쓰고 있는게 아닙니다^^ 넘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마시길]

<----- 이것 보십시오. 왜 그러면, 그런 신학적 용어를 먼저 들먹였는지요? 이 부분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자매님께서 말씀하시는 학식이란 것이 그런 정도를 말하는지요?    
 
[소순태님은 자신은 모두 알고, 타인은 무지의 주체로 보이시나요? 기본전제가 그렇게 출발하시는 것 같아....좀 대화가 좀 껄끄럽네요^^ 암튼 이만 하죠]

<----- 기껏해야, 아는 척 해 본 분이십니까?    
 
[손 들었읍니다. 대단하세요... 상대방이 말하는 요점을 파악하셔야 안되겠어요? 제가 율법학자하고 대화하는 기분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요지를 파악해주시면 좋겠는데...나머지는 언어의 한계입니다.]

<----- 이것 보십시오. 정작에 본인은 잘 알지도 못하는 신학적 용어를 남발해 놓고는, 이제 이런 소립니까? 정도가 심한 분이시군요.   
 
자매님께서 말하는 요점을 파악해 드리고자 구체적으로 여쭈었더니, 율법학자와 대화한다??? 글쎄요... 또다른 억지 소리인데요...    
 
[저 아는 것 별로 없지만, 핵심은 파악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신학 이런 것은 관심도 없고, 다만 교부이래 전수되고 있는 진리에 관심가지고 흥미느낍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짧은 언어속에 표현하려 하는데, 자꾸 핵심은 벗어나서, 학문적 분석으로 유도하시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다간, 학문의 오류에 빠져 진리에서 벗어납니다.]

<----- 성과 속이 어디서 만나는지도 모르는 분이 핵심을 파악했다고 생각하신다??? 글쎄요... 상당히 자의적인 파악인 듯 싶습니다.    
 
[제 능력밖이기도 하고요.... 엄청 졸리네요^^ 그럼 또 나중에 뵐께요]

<----- 왜 졸립니까? 정말로 능력밖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함부로 이런 저런 거창한, 뒷감당 못할 신학적 용어를 사용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도 들먹이지 않으셨어야 할 것입니다.    
 
[학문적 분석으로 유도하시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다간, 학문의 오류에 빠져 진리에서 벗어납니다.]

<----- 아니, 위의 본글에서, 학식을 신앙보다 앞세우는 분이 어떻게 이런 말씅을 하십니까??? 많이 이상합니다.   

그런데, 엄청 졸린다는 분이 또 한줄답변을 주셨네요???   
 
그리고, "교회의 유료봉사에 대하여"가, 전혀 무관한, 토미즘으로 빠졌네요??? ㅋ   

[제게 토미즘을 선물해준 친구가 있읍니다 학문은 방법입니다 그 자체가 목적아니고요 방대한 학식소유자 아퀴나스도 한순간의 신비체험으로 진리를 알고 자신의 저서를 쓰레기라고 표현했읍니다]

<----- 그 표현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닌 자는 인용 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토미즘" 말씀하시는데,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신학 대전에서, "질투(envy)""시기(jealousy)"의 차이점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던지요?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며, "토미즘"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76.htm 

[외람되지만, 소순태님 연세가 꽤 있어 보여요^^ 사고의 경직성이랄까....대화의 일방성이랄까....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 다시 읽어 보니 위에서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혹시 오히려 자신의 사고 체계가 천방지축성 논리적 비약, 일방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1,667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