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꼭필독] 셋째 하늘? -2코린토 12,1-10 #<홀연중11주토1독> 869_tran KH_errors [하늘나라_개념오류] [_천당] [_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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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ㅣ No.1393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3월 27일]

[번역 오류] [영어로 "heaven(s)"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아무리 빠르더라도, 1584년경에 한문 문화권 내의 천주교회 안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천당"이,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 으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1635년경에 한문 문화권 내의 천주교회 안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천국(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 의 옛말이라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주장입니다.  
 
2015년 8월 이전까지, 이 "천주교 용어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따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천국" = "천당", 즉, "천당"은 곧 "천국"을 말하고, 또 "천국"은 곧 "천당"을 말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러나 이것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2015년 8월에 들어와 처음 알게 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즉, 지금 읽고 계신 글]과 이 글에서 그 접속 주소를 밝히면서 읽으실 것을 요청하는 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음은, 가톨릭 대사전, 전례사전, 천주교 용어사전에 주어진 "천국""천당"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에 대한 설명들인데,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차용 번역 용어인 "천국"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결과, 오류(error)의 글들입니다.
 
이 설명들에서, 마태오 복음서에서 "천국"은 "하늘 나라"를 말하므로 오류가 아니나, 그러나 나머지 문맥 안에서 "천당(heaven)"으로 반드시 말해져야 하는 바가 "천국"으로 말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영어로 "heaven"으로 번역되는 표현은 반드시 "천당" 혹은 "하늘"로 교체하여 읽도록 하십시오:
 
따라서, 국내의 개신교측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 "kingdom of heaven(하늘 나라)"로 번역되는 표현에 대단히 충실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입니다. 

오늘 날짜로, 바로 위에서 지적한 오류를 아래의 본문 중에서 바로잡았습니다.
[이상, 2018년 3월 27일자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6월 13일]
바로 위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로 이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의 문제를 야기한 당사자는,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인 것으로 확인되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인 "천주강생성경직해"에 대한 이 문제와 관련된 필자의 주석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 여기를 클릭한 후에, 바로 이 번역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필자의 주석들을 차분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한문본 전례성경 및 그 해설책인 "천주강생성경직해"1790년대에 역관 최창현(1759-1801년) 등에 의하여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셩경직해광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다 보니, 국내의 천주교 신자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국" = "천당"이라고 대단히 잘못 알고 있다 생각입니다.
[이상, 2023년 6월 13일자 내용 추가 끝] 


질문:

신약에서 코린토 둘째 서간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여기에 문의드립니다.

코린토 둘째 서간 12장 2절에 셋째 하늘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셋째 하늘의 의미는 무엇이고, 성경내에 셋째 하늘이 언급된 부분이

또 있는지 궁금합니다.

설마, 첫째 하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이고 둘째 하늘은 연옥이고
셋째 하늘은 천국인건 아니겠죠?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설마, 첫째 하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이고 둘째 하늘은 연옥이고
셋째 하늘은 천국인건 아니겠죠?]


<----- 이런 분류(classification)는 저도 처음 들어보는데, 결코 아닙니다.

그러한 분류가 오류(error)임을 이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셋째 하늘" = "하느님의 거처(Heaven, 천당, 천상교회)"

임을, 성 바오로가 활동하였던 기원후 1세기 및 직전의 유다인들의 전통과 관습들을 전해주는 문헌들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합니다.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질문을 주신 2코린토 12,2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홀수해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2코린토 12,1-10)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다음은 2코린토 12,1-10 전문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바오로가 받은 환시와 계시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끝) 

2. 다음은, 주님께서 바오로에게 보여주신 "환시와 계시"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는 첫 문장인, 2코린토 12,2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인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
"열네 해 전" 이면 42년이나 43년쯤, 제1차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에 킬리키아 지방이나 안티오키아에 머무를 때일 것이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하늘이 여러 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층수는 주로 셋에서 열 개로 말한다. 일곱이 가장 흔한 수였지만 바오로는 셋으로 생각한 것 같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코린토 12,1-8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본문 중에서 전혀 인용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3. 다음은, 2코린토 12,1-4 본문 및 이 구절들에 대한 NAB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2corinthians/2corinthians12.htm

(발췌 시작)
I must boast; not that it is profitable, but I will go on to visions and revelations of the Lord.
2 I know someone in Christ who, fourteen years ago (whether in the body or out of the body I do not know, God knows), was caught up to the third heaven.
3 And I know that this person (whether in the body or out of the body I do not know, God knows)
4 was caught up into Paradise and heard ineffable things, which no one may utter. 
 
-----
[1-4] In the body or out of the body: he seemed no longer confined to bodily conditions, but he does not claim to understand the mechanics of the experience. Caught up: i.e., in ecstasy. The third heaven . . . Paradise: ancient cosmologies depicted a multitiered universe. Jewish intertestamental literature contains much speculation about the number of heavens. Seven is the number usually mentioned, but the Testament of Levi (2:7-10; 3:1-4) speaks of three; God himself dwelt in the third of these. Without giving us any clear picture of the cosmos, Paul indicates a mental journey to a nonearthly space, set apart by God, in which secrets were revealed to him. Ineffable things: i.e., privileged knowledge, which it was not possible or permitted to divulge.

[1-4]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그는 신체적 여건들에 더 이상 가두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으나, 그러나 그는 이 경험의
역학(mechanics)을 이해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들어 올려진: 즉, 무아경 안으로(in esctasy). 세 번째 하늘 ... 낙원:(*) 고대 우주론들은 한 개의, 여러 층을 이룬(multitiered), 우주(universe)를 묘사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과 신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의 작문(composition) 사이의 두 세기들의(intertestamental) 문헌은 하늘(heavens)들의 개수(個數)에 관한 많은 추측(speculation)을 포함합니다. 일곱 개가 통상적으로 말해지는 개수(個數)이나, 그러나 레위의 유언(Testament of Levi, 2:7-10; 3:1-4)(**)세 개에 대하여 말하며, 그리고 하느님 당신 자신은 이들 중의 세 번째에 거주하십니다. 우주(the cosmos)에 대한 어느 분명한 그림을 우리들에게 제시함 없이, 바오로(Paul)는, 그 안에서 비밀들이 그에게 드러내어진, 하느님에 의하여 분리된, 어떤, 지구 위에서의 삶과 관련이 없는(nonearthly), 공간을 향한 한 개의 마음의 여행(a mental journey)을 암시합니다. 발설할 수 없는 것들(ineffable things): 즉, 그것을 누설하는 것이 가능하거나 혹은 허락되지 않았던, 특별히 허가된 지식(privileged knowledge).

-----
(*) 번역자 주:
(1) 성경 본문중에서 "세 개의 하늘들""땅위,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절들은

여기를 클릭하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다음은 신명기 10,14에 대한 다음의 NAB 주석 전문이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deuteronomy/deuteronomy10.htm

(발췌 시작)
[14] Even the highest heavens: literally, "and the heavens of the heavens"; compare the phrase, "the third heaven," in 2 Cor 12:2.

[14] 심지어 가장 높은 하늘들(Even the highest heavens): 글자 그대로, "그리고 하늘의 하늘들(and the heavens of the heaven)"이며, 그리고, 2코린토 12,2에 있는, "세 번째 하늘(the third heaven)" 이라는 표현과 비교하라.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따라서, NAB 신명기 10,14에서 "even the highest heavens"로 번역된 표현을 직역 번역하면 "그리고 하늘들의 하늘들(the heavens of the heavens)" 인데, 이렇게 번역된 표현을 "새 번역 성경"에서는 "과 하늘 위의 하늘"로 번역하였다.

(4) 그리고 다음에 있는 (개신교측의) Easton's Bible Dictionary 에 의하면, "하늘 위의 하늘(the heaven of heavens)"2코린토 12,2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현인 "세 번째 하늘(the third heaven)" 을 말한다:

출처: http://pds.catholic.or.kr/Archives/100/1/gnattboard/163/864/
Easton_Bible_Dictionary.pdf


(발췌 시작)
“The heaven of heavens,” or “the third heaven” (Deuteronomy 10:14; 1
Kings 8:27; Psalm 115:16; 148:4; 2 Corinthians 12:2).
(이상, 발췌 끝)

(5) (이 글의 결론) 이상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하늘 위의 하늘" = "세 번째 하늘" (2코린토 12,2)                  
               = "하느님께서 거주하시는 하늘(하느님의 거처)"   
= "천당(Heaven, 천상교회)"
 

임을 알게 되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6월 1일]

그리고 아래에 첨부한 << 부 록 >> 에는 다음의 언급이 있다:

(발췌 시작)
바오로 사도고린토 2서 12장 2절에서 ‘셋째 하늘’을 언급하는데, 이는 하느님과 천사들과 성도들이 사는 가장 높은 하늘(‘하늘 위의 하늘’ : 신명 10,14; 1열왕 8,27; 2역대 2,6; 느헤 9,6)을 말한다.
(이상 발췌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
번역자 주: 여기서 레위(Levi)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Jacob)과 레아(Leah)의 세 번째 아들을 말한다. "레위의 유언(Testament of Levi, 2:7-10; 3:1-4)"은 다음에 있다:
http://www.summascriptura.com/html/T12P_RG.html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6월 1일]

4-1.
다음은, "유다 백과 사전"에 주어진 "heaven"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7440-heaven

(발췌 시작)
In the third of the seven, or the seventh of the ten, heavens paradise was placed, and within it the treasures of life and of righteousness for the soul (?ag. 12b-13a; Slavonic Enoch, viii. 1; II Cor. xii. 2 et seq.; Matt. vii. 19-20; Ex. R. xxxi. 4).

일곱 개의 하늘들 중의 세 번째 하늘, 혹은 열 개 하늘들 중의 일곱 번째 하늘, 안에 낙원(paradise)이 놓여졌으며, 그리고 그 안에 영혼을 위한 생명의 그리고 의로움의 보물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ag. 12b-13a; Slavonic Enoch, viii. 1; 2코린토 12,2와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II Cor. xii. 2 et seq.); Matt. vii. 19-20; Ex. R. xxxi. 4].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4-2. 끝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홀수해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2코린토 12,1-1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11_sat.htm <----- 필독 권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주어진 성 바오로의 체험에 대한 해설을 발췌 인용하는 등, 대단히 좋은 해설이므로,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읽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그리고 특히,1970년쯤에 마련된 위의 제3항의 NAB의 주석들이, 이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고 묵상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6월 4일]

4-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2코린토 제12장에 대한 "The Great Biblical Commentary of Cornelius a Lapide"에 주어진 주석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여러 교부들과 성경 주석자들의 주석들을 상세하게 비교/검토하고 있기에, 영어 가능한 분들로서 바쁘지 않은 분들께서 또한 읽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http://www.catholicapologetics.info/scripture/newtestament/2ndcor1213.htm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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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아래의 << 부 록 >> 에서, (띄어 쓰기에 주목하십시오!)

"하늘나라" = "天國(천국, heaven, 천당)" <----- [(2022년 5월 16일) 주: 국내의 천주교 신자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그러나 바로 여기에, "천당"(heaven)과 "천국"(天國)이 동일하다는 대단히 심각한 판단 오류가 포함되어 있음.]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

이며, 그리고 이들 둘은, 예수 재림의 날까지, 결코 동일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에 혹시라도 약간은 도움이 될까 싶어, 아래의 글 중에 필자가 굵게 표시도 하고 색깔도 입히고 또 밑줄도 쳤으며, 그리고 [ ] 안에 몇 개의 단어들을 추가하고 또 게시자 주들를 붙였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 부 록 >>


성서에서 말하는 하늘나라

정태현 신부
(전주교구, 성서학자)

 

 

 


사람이 죽고 나면 ‘좋은 곳에 갔다’ 또는 ‘좋은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으로 보통 ‘하늘나라[천국]에 갔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나라가 어떤 곳이냐?”하고 물으면,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과 좋은 집등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시작하여 완전한 자유와 기쁨과 평화 등, 정신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그 답이 제각각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하늘나라’를 결국 인간의 최종 구원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성서는 다음 세상을 두고 어떻게 말하는가? 성서에서 하늘나라와 관계 있는 개념들은 하늘, 낙원,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이다. 이 가운데 가장 대중적 개념인 ‘하늘’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동안 다양한 의미로 발전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하늘’의 다양한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 여기에 다른 개념들을 연결시켜 우리가 지향하는 최종구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히브리 우주관에서 본 하늘
고대 히브리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평평하고 둥근 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우주관에 따르면 이 땅은, 활 모양으로 휘어진 단단한 껍질(욥기 37,18), 이른바 ‘궁창’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 궁창에는 해, 달, 별들이 붙박혀 있다. 궁창은 산 기둥들로 떠받쳐 있으면서(욥기 26,11)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는 구실을 한다(창세 1,6-7). 하늘이 파란 이유도 바로 이 윗물의 색깔 때문이다. 하늘의 물이 궁창에 난 창문들을 통과하여 지상에 떨어지면 비가 된다. 노아의 홍수 때에는 아예 궁창이 열려 윗물과 아랫물이 합해졌다. 땅 역시 하늘처럼 기둥들로 떠받쳐 있는데, 이 땅 기둥들 사이로 죽은 이들의 처소인 ‘셰올’이 자리잡았다. 지상의 인간들이 죽으면 이곳에 내려가 의식은 있으나 활동력을 잃은 채 머문다.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서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하늘은 땅과 궁창 사이의 공간, 궁창, 궁창 위의 윗물이 자리한 곳, 그 위의 화천(火天), 그 위의 천상 조정 등 지상 위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화천은 하느님의 병기인 천둥과 번개, 비와 눈, 우박과 폭풍을 보관하는 창고이다(욥기 37,9; 38,22; 시편 135,7; 예레 10,13). 화천 위의 천상 조정에서는 하느님이 천사들을 문무백관처럼 거느리시며 세상의 일을 주재하신다(욥기 1,6-12).

하늘은 징표가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노아와 맺은 계약의 징표로 무지개를 하늘에 나타나게 하셨다(창세 9,12-17). 하느님의 권능은 하늘과 땅에 일으키시는 징표와 기적으로 크게 드러난다(다니 6,27). 하늘에 나타나는 징표들은 지상에 내리는 하느님이 심판, 특히 종말의 심판을 포함하기도 한다(요엘 2,30-31; 마태 24,30; 묵시 15,1). ‘하늘과 땅’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다(이사 65,17; 2베드 3,13; 묵시 21,1).

하늘은 하느님의 처소
이스라엘인들은 시나이산(신명 33,2; 시편 68,17), 예루살렘 성전(1열왕 8,12-13; 시편 68,17-18; 에제 43,7)이나 시온산도 하느님의 처소로 여겼지만, 하느님의 가장 고유하고 합당한 처소는 역시 하늘이었다. 하늘에는 하느님의 옥좌가 놓인 궁전 또는 성전이 있고, 그곳에서 하느님은 하늘과 땅 위에 임금으로 군림하신다(이사 6,1: 시편 11,4).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요 땅은 그분의 발판이다(이사 66,1). 하늘이 하느님의 처소라는 말은 그분의 초월성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피조물과 완전히 구별되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늘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느님을 완전히 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하늘의 하느님’(2역대 36,23; 에즈 1,2; 요나 1,9)은 ‘땅의 하느님’이시기도 하며, 때때로 지상을 방문하신다(창세 11,5.7; 출애 19,18; 이사 64,3). 곧 하느님은 하늘에 멀리 떨어져 계시는 초월자이신 동시에 창조된 세계와 인간 역사에 깊이 개입해 들어오시는 내재자이시다. 하늘이 하느님의 처소인 까닭에 하늘은 구원의 원천이요 구원이 실현되는 자리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인 만나도(출애 16,4),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축복도 하늘에서 내려왔다(창세 49, 25; 신명 33,13). 죽음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생각이 유다교 안에서 점차 발전해감에 따라 그런 삶이 하느님의 처소인 하늘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도 생겨났다(다니 12,2-3 참조). 신약성서에서는 하늘을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보상의 장소로 여겼다(요한 14, 2; 2고린 5,1-10; 묵시 11,12).

한편 바빌론 유배 이후 유다 저자들은 하늘의 모습이나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강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여러 외경 문헌의 저자들은 에녹, 아브라함, 바룩 같은 큰 인물들을 내세워 하늘에 관한 환시와 하늘 여행을 묘사한다(1/2 에녹, 아브라함의 예언, 3바룩). 이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하늘이 어디에 있는지, 그 주민들은 누구인지, 재판하는 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그밖의 여러 가지 비밀들이 계시된다. 유다 랍비 문헌에서는 하늘을 보통 일곱 개로 본다. 바오로 사도고린토 2서 12장 2절에서 ‘셋째 하늘’을 언급하는데, 이는 하느님과 천사들과 성도들이 사는 가장 높은 하늘(‘하늘 위의 하늘’ : 신명 10,14; 1열왕 8,27; 2역대 2,6; 느헤 9,6)을 말한다. 이곳은 앞에서 언급한 천상 조정을 가리킨다. 여러 하늘 가운데에는 악인들을 벌주는 곳을 포함하는 하늘도 있다.

하늘에 오른 사람
신구약성서를 통틀어 하늘에 올라간 사람들은 에녹(창세 5,24), 엘리야(2열왕 2,1-12), 예수님(루가 24,51; 사도 1,9), 바오로(2사무 12,2-4), 요한(묵시 4,1)이다. 또 주님의 하늘 어좌와 천상 조정을 본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의 원로들(출애 24,9-11), 미가(1열왕 22,19-23), 이사야(이사 6,1-13), 에제키엘(에제 1장; 10장)이다. 하늘에 올랐거나 하늘을 방문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은 신구약성서 말고 고대근동 문헌과 헬라 문헌에도 나온다. 이 기록들을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 두 가지의 기록은 주로 고대근동문헌과 구약성서에 나오고, 나머지 두 가지의 기록은 헬라 문헌과 신약성서에서 쉽게 눈에 띈다.

첫째 것은 하늘을 침범한 경우이다. 히브리인들을 비롯하여 고대 근동인들의 우주관에서 인간은 땅에 속한 존재로서 죽으면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한번 지하세계로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이런 인간이 하느님과 천사들에게만 유보된 하늘에 올라간다는 것은 일종의 침입 행위이다. 아카드 문헌에서 에아의 아들 아다파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하늘에 올라가려 했다가 지상으로 다시 쫓겨났다(〈고대근동문헌〉101-3). 구약에서도 하늘에 오르려 했다가 지하 세계로 내쫓긴 인간의 운명이 언급된다(이사 14,12-20).

둘째 기록은 계시를 받으려고 하늘에 올라간 경우이다. 이 경우에 인간은 하늘에 왕복 여행을 하거나 천상환시를 체험하고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하늘의 여행과 체험은 첫째 경우와는 달리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형태로 계시를 받은 것(출애 24장), 이사야가 환시를 통하여 예언자 소명을 받은 것(이사 6,1-3), 앞에서 언급한 에제키엘의 천상 어좌에 관한 환시와 미가야의 천상 조정 환시가 모두 이 경우에 속한다. 여기서 하늘의 여행과 체험은 계시의 내용에 가장 높은 권위를 부여하는 구실을 한다.

셋째는 천상 세계의 복락을 미리 맛보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하늘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는 점에서 계시를 받으려고 하늘에 올라가는 둘째 경우와 구별이 잘 안 된다. 그러나 이 두 경우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천상 세계에 다시 돌아가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둘재 경우에는 하늘 여행을 하거나 천상 환시를 체험한 사람이 나중에 죽어서 다시 그 천상 세계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없지만, 셋째 경우에는 천상 세계를 미리 맛본 사람이 죽음의 나라(셰올)에 가지 않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에녹은 살아 생전에 천상 세계를 잠깐 체험할 때 나중에 다시 하늘로 올라와 영광과 영원한 천상 생명을 영원히 누리리라는 말을 듣는다(1에녹 37-71장). 신약시대에는 바오로‘셋째 하늘’, 곧 낙원에 들려올라간 체험을 한다(2고린 12,2-4).

넷째는 불사불멸하는 천상 생명에 들어가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죽어 없어질 인간이 하늘의 영역에 오름으로써 불사불멸의 삶을 얻는 것을 말한다. 셰올에서 죽은 이들이 영원히 머무른다는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생각은 헬라 시대의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점차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혼의 불사불멸 사상으로 대체되어 갔다(다니 12,3; 지혜 3,1-9 참조). 이런 사상적 변화의 배경에는 인간을 본디 하늘에 속한 존재로 보고 그의 지상 삶을 천상 생명의 타락한 형태이거나 죽음의 세력에 일시적으로 예속된 상태로 여기는 헬라 사상이 깔려 있다. 인간이 불사불멸할 수 있다는 헬라 사상은 신약성서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마태 13,43). 신약성서 곳곳에서 의인들에게는 영원 생명이 주어진다는 약속이 되풀이된다(마르 9,42-45; 마태 25,46; 사도 13,48; 로마 6,23 등). 예수님의 부활은 의인들의 부활에 대한 가장 뛰어난 예표이다. 그분이 죽은 이들에게서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영원한 삶을 누리듯이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도 같은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3; 로마 8,29-30; 1고린 15,20-28). 이제 죽은 이들의 부활, 영혼의 불사불멸, 하늘에 오름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정상적인 규범이 된다.

낙원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
낙원이라는 말로 옮긴 그리스어 ‘파라대이소스’는 본디 페르샤(오늘의 이란)에서 빌려온 말이다. 고대 이란어에서 낙원은 본디 담이 있는 정원을 가리켰다 〈칠십인역〉은 히브리 본문(창세 2,8)의 ‘간에덴’(에덴의 정원)을 낙원으로 옮겼다. 낙원의 뜻이 태초에 인간이 누리던 영화와 행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확대된 낙원의 의미는 유다교에서 메시아 시대에 누리게 될 영화와 행복과 연결되었다.

신약성서에서는 낙원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루가 복음 23장 43절에서 낙원은 영혼들이 죽은 다음 곧바로 가서 안식을 누리는 곳으로 제시된다. 고린토 1서 12장 2-4절에서 바오로낙원을 두고 영화를 체험하는 ‘셋째 하늘’동일시한다. 낙원이 종말론적인 의미로 쓰인 것은 묵시 2장 7절에서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시련을 이긴 자에게 낙원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낙원은 시련으로 가득 찬 지상 생애가 영광스럽게 완성될 곳이다.

이렇게 발전된 낙원의 개념이 바로 우리 사이에서 통용되는 천국이나 천당의 개념과 유사하다. 천국의 대중적 개념은 물질적인 풍요와 마음의 평안을 마음껏 향유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우리를 기복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 본디 천국[heaven]을 우리말로 풀면, ‘하늘 천, 나라 국’ 해서 ‘하늘나라[heaven]’가 되는데,(*) 천국이나 천당의 대중적 개념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거리가 멀다. 마태오 복음에 자주 나오는 하늘 나라[the kingdodm of heaven]’는 ‘하느님’이라는 말을 직접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유다교적 경외심에서 고안해낸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완곡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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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천주교가 한문 문화권으로 전파될 초기에, 영어로 "heaven"으로 번역되는 용어가, "天國(천국)/天堂(천당)" 으로 잘못 차용 번역이 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 천주교에도 그대로 수입이 되었는데, 상당한 최근에 이르러 한글 전용의 시대가 시작되어, 차용된 번역 용어인 "天國" 을 다시 우리말로 풀어서 2차 번역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영어로 "heaven"과 등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애초의 원 단어를 확인하지 않고, 위의 글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天國"을 "하늘나라"로 번역하였던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 신약 성경 본문에서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으로 번역되는 표현을 우리말로 "하늘 나라"로 번역을 하였다. 언뜻 보기에, 하나는 "하늘나라"로 표기하고 또 하나는 "하늘 나라"로 표기하면 아무런 혼란/혼동이 없을 것 같으나, 전혀 그렇지가 않아 왔다. 커다란 문제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가톨릭 교우들이 "하늘 나라"를 눈으로 읽거나 귀로 듣는 즉시, "하늘나라"를 눈으로 읽거나 귀로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또한 "天國"을 무의식적으로 연상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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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중적 개념으로서의 천국[heaven, 천당]과 거리가 먼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하느님 나라는 일차적으로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통치 또는 그 통치권을 말한다. 곧 임금님으로서 당신 백성에게 베푸시는 선정(善政)을 뜻한다. 그런데 이 선정의 혜택은 당신 백성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주어진다. 가난한 이들은 구약에서 고아와 과부와 외국인으로 대표되고, 신약에서는 물질적으로 가나나한 이들뿐 아니라, 죄인, 꼴지, 채무자, 여자, 어린이, 장애인, 병자, 마귀 들린 자 등 인간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모든 이를 가리킨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인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넉넉하게 드러났지만, 온 세상 구석구석 모든 이에게 다 전달되지는 않았다.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전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이미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시작과 완성 사이에서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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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공생활의 시작과 함께 이 땅에 비로소 개시하셨던(initiated) 그리고 지상의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서서히 자라고 있는,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즉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이, 예수 재림의 날까지, "천당(heaven, 하늘)"동일하지 않음에 대한 필자의 전달의 글들은 다음에 있으며,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을 강력히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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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 있어서 이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가장 보편적이요 핵심적인 요소는 ‘영원한 생명’이다. 그래서 공관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와 영원한 생명이 곧잘 동의어로 나타나며(마르 10,17-27; 마태 19,16-26; 루가 18,18-27; 요한 3,1-21),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영원한 생명으로 대체된다(요한 1-21). 또 요한 복음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구원과 동일시된다(요한 3,16-17). 영원한 생명 또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계명을 지켜야 하고 온갖 신적 부와 권능을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취하신 예수님처럼 자기가 가장 애착하는 것을 봉헌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것은 율법의 핵심인 사람의 이중 계명, 곧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루가 10,25-28).

이미 시작된 나라
하늘나라[heaven]’ 즉 천국[heaven, 천당]은 하느님의 영역이다. 따라서 그 나라에 간다는 말은 그분과 함께 살며 그분의 생명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통속적인 천국 개념은 다분히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관련 있다. 죽음 이후 육체가 사라진 뒤에는 물질의 부요함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죽은 뒤에 육신은 무덤에서 썩어버리고 영혼은 천당에 올라가 즐거움을 누리거나 지옥에 떨어져 괴로움을 겪되, 영혼은 형상이 없어서 세상의 육신이 받는 고락과 다르다”(정약종의 〈주교요지〉 22). 그러니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도 이승에서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바쳐 주변의 고통받는 이들에게 애덕[charity, 사랑]을 실천할 일이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모셔들이는 지름길이요 하늘나라[천국, 천당, heaven]에 올라가는 길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삶의 최종 목표이다.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상에]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우리의 동참을 기다린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생활성서」9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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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필자가 입수한 이 << 부 록 >> 의 글에서의 이 문장에는, '하늘 나라' 대신에, '하늘나라'가 적혀 있었으나, 그러나 (i) 위의 (*)(ii) 이 문장 안에서의 전후 문맥에 의하면, 예수님의 강생 이전부터 존재해온 '하늘나라[천국, 천당, heaven]'가 아니고, 예수님에 의하여 이 땅 위에 비로소 개시되었던 '하늘 나라' 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필자가 입수한 글에서의 이 문장에서의 '하늘나라'를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
(2) 위의 글은 "생활성서" 1998년 11월호에 실린 글인데, 다음은 2000년 3월 31일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문헌 [제목: 확정 교회 용어]에 의하면, 적어도 2000년 3월까지, 국내의 가톨릭계에는 다음과 같은 대단히 심각한 용어 번역 오류로 인한, 중대한 가톨릭 신학적 개념을 나타내는 번역 용어들 사이의 심각한 혼란이 있었다. 부디, 아래의 발췌 문장과 위의 << 부 록 >> 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다시 한 번 잘 읽어 볼 것을 권고드린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ck/2000_CBCK확정교회용어.hwp  

게시자 주: 크게 잘못된 언급들

 

(발췌 시작) 

86) 다음과 같은 용어들은 지금까지 써오던 대로 필요에 따라 여러 말을 함께 쓰기로 하였다

- 교의, 교리(Dogma, Dogmata, Doctrina) 

- 하늘, 천국, 천당, 천상, 하늘 나라, 하느님 나라(Caelum, Regnum Caelorum)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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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부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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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8시간 (자료 파악/분석 및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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