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남자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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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telecop2] 쪽지 캡슐

2000-08-26 ㅣ No.1494

내 나이 1살...

아.. 눈이 부시다. 이것이 세상인가? 그런데, 어떤 험학하게 생긴것이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뭐라고 한다. 무섭다.

난 있는 힘껏 울었다. 그랬더니, 험학한 얼굴대신, 지금까지 느껴왔던

체온과 심장을 가진 얼굴이 나를 안았다.. 아 이 포근함이여..

 

내 나이 2살...

엄마는 내가 울면 젖도 물려주고, 물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준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한번에 알아 듣는다.. 아 좋다.

인생이란 이렇게 편한거구나. 그러나, 아빠와 함께 있으면, 젖먹고 싶은데,

기저귀 갈아주고, 똥싼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면, 우유만 준다.. 아..

오늘도 똥싼 기저귀를 깔고 누워 우유만 물고 있다..

아빠는 내가 원하는 걸 왜 이리도 모를까..

 

내 나이 5살...

오늘은 엄마의 젖을 만지며 놀았다.

옆에서 부러운 듯 보고있던 아빠가 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내가 악을 쓰고 울자 엄마가 아빠를 야단쳤다...

아빠는 참 못됐다...

나처럼 이쁘고 착한 아기를 때리다니...

 

내 나이 7살...

오늘도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간다. 아빠는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본다.

왜 그러지 모르겠다.

부러우면 같이 오면 될텐데.. 목욕탕에서 같은동네 유치원 여자친구를 만났다.

목욕탕안에서 같이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런데, 난 뛰면 가운데 있는게 달랑달랑 거리는데, 그 친구를 자세히 보니..

없었다. 신기해서 목욕이 끝날때까지 계속 보고 나왔다...

 

내 나이 9살...

매일 일하러 가시던 아빠가 요즘엔 집에 하루종일 있다.

그래서,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너무너무 재미있다.

왜 아빤 진작 이렇게 나와 놀아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아빠를 졸라서 놀이 공원에 가자고 해야 겠다.

요새는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다.

 

내 나이 11살...

학교에서 반 아이와 싸웠다.. 난 싸웠다고 생각했는데,

내 짝꿍이 말하길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한다. 이런, 쌈 못한다고 소문나겠다.. 집에가서 아빠에게 말했다.

태권도 도장에 다니겠다고, 맞아서 부은 얼굴이 안쓰러웠는지,

오늘은 아무말씀 안하시고, 나를 도장에 데려다 줬다.

 

내 나이 14살...

이젠 챙피해서 친구들이랑 목욕탕도 못가겠다. 다른 친구들은 옛날하고

똑같은데, 나만 거기에 수염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나만 보면 수염났다고 놀린다. 밤에 몰래나와 뽑아 보기도 했지만

아프기만 하고 줄어들 생각을 안한다. 이러다가 뭐가 잘못 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꽤꼬리같던 내 목소리도 둔탁해지기 시작했다.

도데체 왜 이런 변화가 오는지 모르겠다.

 

내 나이 17살...

옆동네에 살던 여자애가 달라보인다. 지금까지는 소꼽친구로만 보였는데...  

전에 보니 가슴도 많이 나왔다.  

내가 제랑 어렸을때 같이 목욕도 했었는데.. 그런데, 기억이 잘 안난다.

서로 볼거 다 본 사인데, 지금은 날 모른척 한다. 난 이 여자애랑 사귀어

볼려고 말하려다가 채였다.  내 거기를 발로 차고 가버렸다.

으.. 아파라... 여자들은 이렇게 쉽게 변하는 건가..

 

내 나이 19살...

몰래 포르노 비디오를 보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와 담배를

하나만 달라고 했다...

나는 놀라서 비디오를 얼른 끄고 노크도 없이 들어오냐고 소리쳤지만

할아버지는 아직 내가 무슨 비디오를 봤는지 모르는 눈치다... 다행이다.

내가 아버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슬쩍하는 것을 이미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얻으러 온 모양이다... 언제부터,

할아버지에게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난 창문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담배한가치를 받고는 내 방에서 나가신다.

푸후.. 남들은 고3 방에는 얼씬도 못한다는데 우리 집은 이게 뭐야...

참! 비디오를 마저 봐야지...

아 나도 빨리 커서 저런 비디오의 한 주인공이고 싶다.

그리고,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으면...

 

내 나이 20살...

대학에 입학했다. 지금까지 삭막한 남자놈들하고만 있다가 아리따운

여성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니 넘 좋다. 이히, 나도 빨랑 한명 꼬셔서

친구들에게 자랑해야지..

 

내  나이 21살...

드디어,, 키스란걸 해봤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영화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침을 질질 흘렸다.그렇지만, 너무 좋다.. 다음에 만나면, 좀더 멋지게 해야지..

몇 달후, 그녀와 난 키스하는게 한 폭의 영화로 발전했다.

내가 생각해도 난 키스의 귀재다.. 그리고, 그녀와 처음으로 여관에서

밤을 세웠다. 그녀는 처음이라 했다. 나도 처음이었다.

역시 그 느낌은 키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내일 또 그녀를 만나야 겠다.

 

내 나이 22살...

머리를 깎았다. 그것도 현역이다. 신체 건강한 것도 죄냐...

마지막 밤을 그녀와 여관에서 보냈다.

예전과 다르게 같이 여관에 가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기다리겠다고, 난 그녀의 말을 믿는다.

다른 여자는 몰라도, 그녀는 날 꼭 기다릴 거다.

처음으로 내무반에서 잠을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

아.. 앞으로 2년을이렇게 생활해야 하다니.... 그녀가 보고 싶다..

 

내 나이 23살...

오늘 편지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기다릴거라 믿었던

내 생각은 바보같은 생각이었었다..  

나쁜년, 내가 널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했는데,

그렇게 쉽게 날 버릴 수 있어? 하루종일 울었다..

여자들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건가... 내 전우들은 원래 다 그런거라며,

날 위로했다... 부모님이 보고싶다..

역시 날 따뜻히 감싸주는 분은 부모님밖에 없다... 제대하고

나가면, 꼭 효도 하리라...

 

내 나이 25살...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다. 내 머리가 이렇게 나쁜지 정말 몰랐다..

군대가기 전엔, 재밌는 일도 많았는데, 갔다오고 나니 재밌는 일이 없다.

전엔 집에서 용돈도 주더만, 이젠 내가 알아서

벌란다. 아 벌써부터 찬밥인가... 푸후, 연애라도 했으면.

그런 중에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났다. 별로 이쁘지는 않지만,

그런데로 마음이 끌렸다. 많은 투자 끝에 그녀와 키스를 하게 되었고,

여러번 요구끝에 여관에도 갔다. 아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 진다.

 

내 나이 27살...

오늘도 도서관에서 늦게 나왔다. 지하철안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가 재밌게 논다.  요새 애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남녀가 붙어 다닌다.

부럼다. 난 또 혼자다. 그녀를 만나도 더이상

재밌지 않았다. 가끔 여관에 가는것 말고는...

취직도 안되고, 세상 사는게 벌써 고민된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아저씨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카락이 거의 없다. 사는게 무지하게 힘든가 보다.

 

내 나이 29살...

직장생활 한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모르겠다. 일에 치이다

보니, 매일 매일이 똑 같다. 아침에 피곤한 눈으로 출근하고,

저녁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가끔, 내게 왜 사는지 물어본다. 모르겠다. 나만 이렇게 피곤한걸까..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한다. 피로연장에서 신부의 친구들과

오랜만에 재밌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한 여인이 괜찮아 보였다.

더이상 혼자 지내는 것도 힘들다. 그녀와 사랑하고 싶다.

 

내 나이 31살...

피로연에서 만난 그녀와 결혼한지도 1년이 넘었다. 그리고 오늘

나를 쏙 빼닮은 고추녀석을 보았다. 누군가 말한것처럼,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건 핏줄밖에 없다더니.... 그런데, 이 자식이

엄마품에 있으면 웃으면서, 내가 안아주고 웃어주면, 금방 울어버린다.

으이구, 누가 너 분유값을 버는줄도 모르고...

 

내 나이 32살...

모처럼 일요일이라 집에서 푹 쉬려고 했더니,

마누라는 동창회라 2살짜리 아가를 남기고 일찍 나갔다.

오늘도 애보느라 쉬긴 글른것 같다. 어찌된게, 제때에 우유주고,

기저귀 갈아주었는데도 이놈의 아가는 맨날 울기만 한다. 오후가

넘었는데도 마누라는 들어올 생각도 안하고, 애는 울고..

아 슬픈 내 인생이여.. 나도 할 만큼 했다. 우유병을 아가의 입의 물리고

아가옆에서 잠이나 자야겠다.

 

내 나이 35살...

이놈의 아가가 나타난 이후로 난 완전히 찬밥이다. 잘때도 사이에

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더

니만, 깨어나서도 엄마옆에서 떨어지질 않는구나. 그리고, 너 때문에 니

엄마 젖 한번 못 만져보고

지낸지도 한달이 넘었다. 아.. 내가 애를 왜 낳았을까.. 원망섞여 살짝

머리를 쥐어 밖았더니,, 누굴 닮아 그렇게 크게 우는지.. 에이 오늘도

나홀로 독방신세로구나..

 

내 나이 36살...

초인종을 누르자 자다가 나왔는지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마누라가 나왔다.

문을 열어주고는 금방 돌아서 주방으로 가는 뒷모습을 보니 푹 퍼진

몸매가 정말 정 떨어진다...

마누라가 이불 속에서 요란하게 방귀를 뀔 때면 나는 정말 사기

결혼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녀 때는 그렇게 내숭을 떨더니...

벌써 권태기인가...

 

내 나이 37살...

오늘은 애 엄마가 목욕탕에 간단다. 7살이나 먹은애를 여탕에 데리고 가다니.

저놈이 커서 기억이나 제대로 할까? 여탕에 가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옆집 순이 엄마, 뒷집 똘이 엄마  

모두 벌거벗고 있겠지.. 야.. 부럽다 부러워.. 흑흑..나도 가고 잡다.

 

내 나이 38살...

옆에서 김대리가 신발 끈을 하루종일 매고 있다...

박과장은 지갑을 안 가져왔다며 이쑤시개로 이빨만 쑤시고 있다.

치사한 녀석들 같으니...

하긴 점심은 내가 사겠노라고 항상 동료들을 데리고 와서 신발 끈을 메는

척 하다가 다른 동료가  돈을 내면 그제서야 내가 내려고 했다고 우긴

것은 항상 나였으니까...

아마도 오늘은 둘이서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로 짰나보다...

내가 돈을 내자 뒤에서 웃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이 카운터의 거울을 통해

보였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내 나이 39살...

만년 과장으로 있다가, 며칠전에 드디어 하는 일이 없어 졌다. 우리회사가

하루 아침에 퇴출 될줄이야.. 그리고, 그날 부로 신용불량거래자가 되었다.

학교다닐때도 안해봤던, 투쟁가를 불렀다.

앞으로 마누라와 아가를 어떻게 먹여 살릴지 고민이다. 그런데도 아가를

보고 있으면 얼굴을 찡그릴 수가 없다. 오늘도 웃는 얼굴로 아들과 야구도

하고 축구도 했다. 아들녀석이 내일은 놀이공원에 가자고 한다.

내일은 여의도에 퇴출자 집회가 있는 날이다.

그곳이나 데리고 갈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나이 41살...

아들녀석이 학교에서 반 아이와 싸우고 돌아왔다..

내가 보기엔 일방적으로 맞은것 같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약골인지 모르겠다. 아들이 태권도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오늘은 두말없이 같이 도장에 같다.

그래, 험한 세상 살려면, 자기몸 정도는 보호할 수 있어야겠지..

 

내 나이 44살...

 조그마한 장사를 시작한지도 3년이 되간다. 그러나, 새벽이 일어나고,

밤 늦게 끝마치는 일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

거울을 보니 이마가 잠실 야구장 만하다. 머리를 빗을 때마다 빗에 머리카락

이 한무더기가 뽑힌다. 잡지에 나온 가발 사진을 보고 전화를 해보니

가발 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니 한 학생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앉아서 가서 몸은 참 편해서 좋은데  기분은 한마디로 더러웠다.

 

내 나이 49살...

어제 분명히 담배가 8가치가 남아있는 것을 적어놨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6가치이다... 그 동안 담배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 짐작은

했지만... 드디어 오늘에서야 물증을 잡았다.

아버지는 시골 내려갔고... 남은 것은 아들녀석... 나는 아들을 불러 추궁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발뺌을 하던 녀석이 내가 개수를 적은 담뱃갑을

내밀자 자신의 짓을 실토했다.

오늘부터 끊으라고 하고 매를 줬다. 다 큰 놈한테 매를 드니,

가슴이 가볍지만은 않다.  

누굴 닮아서 벌써부터 담배를 피는지 알수 없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머리에 염색이나 하고, 커서 뭐가 될지 걱정된다. 잠이 오질 않아서

하루종일 줄담배만 폈다.

차라리, 연예계로 나가서 성공이나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해봤다.

 

내 나이 55살...

아들녀석이 군대갔다 온지도 몇 개월이 흘렀다.

이 자식이 처음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이불도 개고, 청소도 하고,

어깨도 주물러주어서, 역시 군대가야 사람된다고 칭찬해줬더만,

3일을 못가고 말았다.  지금 11시가 다되가는데도 일어날 생각도 안한다.

다 큰 놈을 흔들어 깨웠다.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이라도

벌 것이지, 다 큰 놈이 아직까지 용돈도 스스로 못 벌어서 손을 내미냐..

이놈아..

 

내 나이 60살...

아들녀석이 결혼을 하고, 애도 하나 낳았다. 그것도 고추다.

내 손자여서 그런지 아주 잘 생겼다.

한번 안아볼려고, 다가가자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이놈이,

너가 내 핏줄인데, 안아보기도 전에 우냐? 며느리는 얼굴을 보여주는 둥

마는 둥하고 내가 손이라도 대면, 병균 옮을까봐 눈 꼬리가 올라간다..

내가 무슨 병균덩어리냐.. 하지만, 어쩌겠어..

떨어져서 얼굴만 바라볼 수 밖에..

 

내 나이 68살...

손주 녀석이 어떤 녀석하고 싸우고 왔다.. 내가 보기엔 일방적으로 맞고 왔다.

가슴이 아프구나

내가 대신 맞아주었어야 했는데, 누굴 닮아서 저리 약골인지..

저녁에 손주녀석이 태권도장에서 배웠다고 차렷과 열중쉬어를 반복해서 했다. 그래, 험학한 세상 살아갈려면, 자기 한 몸은 자기가 지킬 수 있어야지...

 

내 나이 77살...

이젠, 며느리가 늙었다고 용돈도 안준다. 아들놈은 주고 싶어도 며느리

눈치보기 바쁘다. 그런데 이놈의 버릇이 뭔지, 담배는 도저히 끊을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손주방에 들어가 담배한가치를 꾸기로 했다.

누굴 닮아서 벌써부터 담배를 피는지.. 방에 들어가자 마자 손주가 급히

비디오를 끈다.. 얼핏봤지만, 포르노임이 틀림없다.

자식... 모르는척 해주는게 낫겠지...

손주녀석은 담배를 줄 생각은 안하고, 창문을 크게 열기만 한다.

흠.. 내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많이 나나보구나...

자식 그래도, 내가 나간 다음에 할 것이지...

담배 한가치를 받고 생각했다.

수험생 있는 집안에서 담배 피다 며느리한테 걸리면, 또 큰 소리 나올까봐

아에 바깥으로 나왔다.

다리는 왜 그렇게 아픈지, 서있기도 힘들다.. 오늘도 바깥계단에 쭈구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으니,

몇 해전에 이승을 달리한 할망구가 생각났다. 왜 날 먼저 버리고 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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