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당신은 위대한 푼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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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련 [jungdl] 쪽지 캡슐

2004-12-07 ㅣ No.3811

우리 성당에 한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배운것 없고 밑천 없는 그녀는 시장 바닥에서 험한 일, 궂은 일 마다않고

억척같이 일하며 두 자녀를 키웠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번듯한 아파트도 장만하고,

또한 시장에서 오래 장사한 덕분에 분양받을 상가도 있는것 같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허름한 주택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파마라곤 한적이 없다는 그 머리는 그녀가 직접 잘라서

어딘가 삐뚤한 단발의 생머리이고, 옷도 아마 돈주고 산적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저는 그녀가 우리 성당 지하에 있는, 못입는 옷을 버리는 함을 뒤적여

쓸만한(?) 옷을 챙겨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으니까요.

거기에 자기 몸은 돌보지 않아 영양부족과 과로로 얼굴을 늘 피로로 지쳐 노랗고 거무스럼하였습니다.

그녀는 영세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신앙에 정말 열심하기 때문에

신앙적 용어를 잘 몰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궁금한 것을 불쑥불쑥 물었고

또한 설명을 해도 얼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보다 먼저 신앙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조금 더 잘 아는 우리를 그녀는 무척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하루에 잘 벌면 2,3만원, 공치는 날도 많은 그녀가 유일하게 돈을 아끼지않고 부자처럼 쓰는 것은

신앙생활에 필요한 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중에 가장 밥도 잘사고, 우리에게 더 맛있는 것을,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하였습니다.

이런 그녀를 똑똑한 우리는 푼수라고 불렀습니다.

 

어느날 그녀가 개업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말이 개업이지 당신이 하던 허름한 술집이 재개발로 헐려

그 옆의 한평 남짓한 쬐끔한 가게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와서 기도를 해달라고 하여 모두들 시간이 없다고 미루다

드디어 그 가게에 기도하러 가던 날이었습니다.

마침 시간이 점심때라 그녀가 밥을 사먹이고 싶어했습니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온 그녀는 맛있게하는 국밥집을 알고 있으니 차를 타고 가자고 하였고

똑똑한 우리는 여기저기 옮기는 것이 귀찮아 쓸데없이 돈을 쓸 필요가 없다며

여기에서 먹자고 우겼지만 우리에게 먹이고 싶어하는 그녀를 이길수는 없어 국밥집에 갔었습니다.

과연 그 국밥집은 맛있어 그런지 앉을 자리가 없어 우리는 밖에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푼수같은 (?) 그녀는 당신이 돈들여 밥을 사주면서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당신탓인양

못내 미안해하며 그 식당에서 빈그릇을 치우며 바쁜 식당 주인을 도와 절뚝이는 다리로

써빙을 하느라 얼굴엔 땀이 번들거렸습니다.

그녀의 수고로 우리는 드디어 자리를 차지하여 정말 맛있게 국밥을 먹었습니다.

국밥을 먹고나니 바로 옆에있는 생맥주 집에 가서 간단하게 한잔 하자고 하였습니다.

국밥집처럼, 그 생맥주집도 신세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때부터 똑똑한 우리의 공격은 시작되엇습니다.

왜? 계획에 없던 생맥주 집엘 가야 하느냐였습니다.

기도하러 가기로 했음 바로 기도부터 해야지, 밥도 먹자하여 먹어주었으면 되었지

생맥주 집에 갔다가면 목적이 없어지지 않느냐는 똑똑한 우리의 야릇한 논리를 앞세우며

못간다고 악다구니를 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신세도 갚을겸, 또한 우리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고

부족한(?) 당신에겐 너무나 똑똑한(?) 우리를 자랑(?)하고픈 마음 도 있었겠지요.

특히 이를 통해 전교하고파하는 그녀의 마음은 똑똑한 우리의 은근한 무시로

그녀의 가게가 술집인데도 그 생맥주 집엘 가자하는 그녀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시간에 이렇게 인색한 똑똑한 우리 땜에 그녀는 우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아는 집에서 체면마저 깎이우고 한없이 망가져야 했습니다.

이날 똑똑한 우리는 그녀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앗습니다.

 

그런데,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섭섭함과 서글픔으로 흔들리는 것을 나는 보앗습니다.

잠시 촉촉히 젖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습니다.

아! 약한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지는 똑똑함의 어리석음이여!

뒷짐을 지고 다리를 절뚝이며 저만치 앞서 걷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마구소낙비가  쏟아졌습니다.

이렇게하여 똑똑한 우리는,

그래서 그녀는 푼수라고 마구 단죄하며 결국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오늘 하루,  마음이 넉넉한 위대한 푼수였습니다.

나는 "똑똑한 우리"에서 벗어나 기꺼이 당신을 닮은 푼수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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