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이해인 수녀)
1
오늘은 가을 숲의 빈 벤치에 앉아
새 소리를 들으며 흰구름을 바라봅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불볕처럼 타올랐던
나의 마음을 서늘한 바람에 식히며 앉아
있을 수 있는 이 정갈한 시간들을 감사합니다.
2
대추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우리집 앞마당.
대추나무 꼭대기에서 몇 마리 참새가 울리는 명랑한 아침기도.
바람이 불어와도 흩어지지 않는 새들의 고운 음색.
나도 그 소리에 맞추어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며
3
한 포기의 난을 정성껏 키우듯이
언제나 정성스런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면
그것이 곧 기도이지요?
물만 마시고도 꽃대와 잎새를 싱싱하게 피워 올리는
한 포기의 난과도 같이,
나 또한 매일 매일 당신이 사랑의 분무기로 뿜어 주시는 물을,
생명의 물로 받아 마신다면 그것으로 넉넉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