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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65] 성 도미니꼬 사비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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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명 : 도미니꼬 사비오 축일 : 03.09 DOMINIC SAVIO 증거자 ------------------------------------------------------------------
도미니꼬 사비오 3월 9일 증거자(DOMINIC SAVIO 1842-1857)
도미니꼬 사비오는 1842년에 피에드몬트의 리바에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성 요한 보 스꼬가 청소년 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시작할 때 또리노의 성직자들에 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 주도록 의뢰하였는데, 도미니꼬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돈보스꼬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리하여 그가 12세 때에 또리노의 성 프란치스고 드 살의 학생이 되었 다. 그의 개성과는 달리 도미니꼬는 자신이 그곳에서 조직한 "무염성모 회"때문에 길이 기억된다. 이 회는 신심적인 목적 외에도 돈보스꼬를 여러가지 구체적인 면에서 도와 주었으므로, 성 요한 보스꼬가 살레시 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무염성모회"의 회원 22명이 주요 회원이 되었다.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울 때, 도미니꼬는 그들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 끼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 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 인이다. 그리고 나는 앙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게 던져라." 나이 어린 소 년의 이 한 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다. 그는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였고, 그의 기도 정신은 당대의 어느 큰 성인 못지 않았다. 가끔 돈보스꼬는 그의 과도한 열성 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 일은 하지 못합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이라도 그 것을 하렵니다."하며 대답하였다. 또 돈보스꼬는 그가 고행에 몰두하는 것을 다소 저지하였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도미니꼬가 얇은 시트 한 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돈보스꼬가 발견하고, "왜, 이 런 짓을 하느냐, 폐렴에 걸릴려구?"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 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돈보스꼬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도미니꼬는 아침 미사 때부터 몇 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 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 는 광경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다.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중들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 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돈보스꼬에게 이렇 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할 가톨릭 신앙입니 다." 돈보스꼬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께 알렸고, 교황은 이 어 영국에 대한 큰 배려를 하게 되었다. 그의 건강은 날로 나빠져서, 1857년에는 고향집이 있는 몬도니오로 보내졌고, 3월 9일 저녁에 병자 성사를 받았다. 그의 시복은 1914년에 로마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서, 돈보스꼬의 시성 후에야 이루어졌다.
성 바오로 선교네트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지금 어느 출판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도미니꼬 사비오 성인에 대한 책도 있습니다. 아마 가톨릭 출판사, 성바오로 출판사, 분도 출판사 셋 중의 한 곳일 것입니다. 교회 서점에 가셔서 물어보시면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을테니 자세한 내용은 참조해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