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반 게시판

수도원 기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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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zenobiak] 쪽지 캡슐

2002-06-19 ㅣ No.354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을 나누고 싶어 옮겨 봅니다.

...

사람한테 부끄러워 못 하는 말을 하느님한테는 다 해요. 문자 그대로 별 말을 다 하는 거죠.

그런데 신기한 건 최대한 솔직하게 기도하자, 마음먹어도 하느님과 내게 조차 솔직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낸다는 거 옳든 그르든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알아낸다는 거... 그거 참 어렵다는 거 이제야 조금 알 거 같아요.

 

사랑이 미움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지던 걸 속수무책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이,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지옥이었을 뿐..

 

대체 눈물이란 무엇인지? 아마도 영혼과 육체가 통하는 통로가 있다는 증거가 눈물이 아닐까? 마음이 슬플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육체의 한 현상이 그것이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수많은 군중 속에서 유독 그 사람의 뒤통수를 알아보는 것, 수많은 발자국 소리 중에서 유독 그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는 귀를 가지는 것.......

나는 어쩌면 아직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내 여행의 윤곽이 문득 선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러니 결국 이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고 내가 길 위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수도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들을 만나려고 내가 이 길을 떠났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멀리 서녘으로 하늘이 개어오고 있었다. 검은 휘장이 열리는 것처럼 구름이 걷히고 붉은 노을이 열차 창으로 선명했다.

날이 개고 노을이 비치고 있다. 개인 하늘로 드문드문 별까지 뜨고 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나무들에는 이제 바람의 자취가 없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나는 서쪽 하늘로 먼저 떠오른 별 하나가 하느님의 맑은 눈빛처럼만 여겨져 윙크를 해드렸다.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 신께서 나를 위해 날을 개게 해주시고 바람을 자게 해주시며 결국 이 모든 하늘과 땅, 우주만물을 지어주셨음을,

하느님은 아름다운 창조물을 그리운 것들과 나누고 싶었나보다. 좋은 걸 보면 생각나는 게 사랑이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을 만든 신을 거부해도 좋을 무서운 자유, 그 신성의 일부까지 부여하셨나보다.

사랑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나를 기다려 주신 것이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마지막 장을 덮는다.

그녀와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나도 요 며칠간 유럽엘 다녀온 기분이다.

늘 꿈꾸던 유럽여행을 이렇게나마 할 수 있었다니... 그녀의 오랜 방황이 주님 앞에 무릎 꿇음으로 끝난 것처럼 우리의 방황도 결국 그분께 돌아가기 전에는 끝나지 않겠지?

 파리의 아르정탱 수도원으로부터 시작 된 그녀의 여행은 끝났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나는 아직 그의 여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안다. 그리고 나 또한 아직은 남은 날들을 더 방황하며 살아야 하리라.

더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고, 사랑을 주고 받기도 하겠지.

 그 고통과 기쁨 가운데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 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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